작성자: 심산 등록일: 2017-09-19 18: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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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회 멤버들은 잘 압니다. 저는 최근 2년간 거의 수락산에만 다녔습니다. 한 마디로 수락산과 사랑에 빠져있는 셈이지요. 1990년대의 저의 산은 북한산이었습니다. 거의 매주, 어떤 때에는 한 주에 사나흘씩, 북한산의 바위와 골짜기와 능선을 쏘다녔습니다. 북한산에 대한 사랑이 식은 것은 북한산의 탓이 아닙니다. 국립공원관리공단 때문입니다. 이른바 정규등산로라는 것을 지정하고, 그 이외의 모든 곳을 가지 못하게 하니, 게다가 멀쩡한 구간에 나무데크를 설치하고 심지어 그 위에 폐타이어 따위를 깔아버리니, 더 이상 가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는 나의 산이라고 부를만한 산을 만나지 못하게 되는 것 아닌가 하고 있던 참에 불현 듯 떠오른 것이 수락산입니다. 수락산에 대한 저의 사랑은 앞으로도 오래도록 지속될 것 같습니다. 제발 이 산만은 국립공원 따위로 지정되지 않고 지금 이대로 남아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얼마 전에 한국산서회와 함께 하는 인문산행시리즈들 중의 하나로 또 다시 수락산에 다녀왔습니다. 다음 달의 월간 [](201710월호)에 실릴 내용들인데 이곳에 미리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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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락산의 폭포들을 찾아서


한국산서회와 함께 하는 인문산행

7차 수락산 폭포기행


/심산(한국산서회)

사진/서영우(한국산서회)


한여름의 폭염도 절기를 피해갈 수는 없다. 처서를 지나니 아침저녁으로 시원한 바람이 분다. 9월의 첫째 토요일 아침, 지하철 4호선의 종착지인 당고개역 앞에 모여든 사람들은 반가운 얼굴로 인사를 나눈다. 7차 인문산행의 참가자들이다. 약속시간인 정각 10시가 되자 버스정류장으로 발길을 옮긴다. 오랜만에 이 코스의 버스를 탄 사람들은 일순간 당황한다. 버스가 덕릉고개로 올라가지 않고 딴 길로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최근 당고개에서 청학리로 향하는 버스들은 대개 덕릉터널을 관통해서 달린다.


순화궁 고개를 넘자마자 다음 정거장에서 하차한다. 수락산 등산로 입구 혹은 수락산 유원지 입구 혹은 청학동이라고 불리는 이곳은 경기도 남양주시에 속한다. 들머리에 커다란 등산로 개념도가 그려져 있다. 그 아래에서 장비들을 챙기며 오늘의 산행코스에 대한 간단한 브리핑을 시작한다. 오늘 산행의 키워드는 폭포다. 남양주시 청학동으로 올라 향로봉의 능선을 타고 넘어 의정부시 흑석동으로 내려가면서 무려 4개의 근사한 폭포들을 감상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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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심하고 기이함은 수락산이 으뜸"


수락산은 북한산과 도봉산의 그늘에 가려 상대적으로 저평가되고 있는 산이다. 덕분에 찾는 이가 적어 호젓한 산행을 즐길 수 있다. 수락산의 이름을 세상에 널리 알린 이는 두 말할 나위도 없이 매월당 김시습(1435-1493)이다. 이후 거의 같은 시기를 살다 간 호곡 남용익(1628-1692)과 서계 박세당(1629-1703)이 각각 수락산의 동쪽과 서쪽의 계곡을 차지하고 오랫동안 터줏대감 행세를 해왔다.


호곡과 서계는 여러 모로 대비를 이루는 인물들이다. 둘 다 서인에 속했지만 호곡은 노론에 속하고 서계는 소론에 속한다. 그래서 두 사람의 문집에는 서로에 대한 언급이 거의 없다. 공통점을 찾는다면 둘 다 김시습을 흠모하였다는 점이다. 특히 박세당은 김시습을 너무 숭앙한 나머지 자신의 호를 서계(西溪)라고 짓는다. 김시습의 또 다른 호인 동봉(東峯)과 정확히 대()를 이루는 개념이다.


그런 서계가 이 산의 정상에 오른 직후 남긴 [유수락산시후서](1677)는 수락산의 숨겨진 진면목을 명확히 짚어낸다. “삼각산(三角山)과 도봉산(道峯山)은 도성 근교의 우뚝한 산으로 수락산(水落山)과 더불어 솥발처럼 높이 솟아 있다.(중략) 우뚝 솟은 형세로는 삼각산과 도봉산이 갑을(甲乙)을 다투지만, 유심(幽深)하고 기이(奇異)함으로는 동봉(東峯)이 으뜸이다.” 여기서 말하는 동봉은 물론 수락산의 다른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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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락팔경의 옥류폭은 음식점의 풀장이 되고


수락산을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오랜 세월 동안 구전으로 내려오는 시가 있다. 정허거사가 지었다고 전해지는 [수락팔경]이다. 정허거사에 대해서는 생몰연대조차 알 수가 없는데 대략 조선 후기의 유생이었으리라 짐작한다. 본격적으로 산행을 시작하기 전에 그의 [수락팔경]부터 읊어본다. 처음부터 한글로 쓰여진 것으로 일종의 기행가사가 아니었나 싶다.


양주라 수락산을 예 듣고 이제 오니, 아름답게 솟은 봉이 구름 속에 장관일세.

청학동 찾아들어 옥류폭에 다다르니, 거울 같이 맑은 물이 수정 같이 흘러가네.

푸른 송림 바위 길을 더듬어서 발 옮기니, 백운동에 은류폭이 그림 같이 내려 쏟고,

자하동에 돌아들어 금류폭을 바라보니, 선녀 내려 목욕할 듯 오색서기 영롱쿠나.

미륵봉의 흰 구름은 하늘가에 실려 있고, 향로봉의 맑은 바람 시원하기 짝이 없네.

칠성대 기암괴석 금강산이 무색하고, 울긋불긋 고운 단풍 그림인 듯 선경인 듯.

내원암 풍경소리 저녁연기 물소리에, 불로정 맑은 약수 감로수가 이 아닌가.

선인봉 영락대에 신선 선녀 놀고 가니, 청학 백학 간 곳 없고 구름만이 오고 가네.”


정허거사가 살던 시기에는 현재 우리가 크게 뭉뚱그려 청학동이라 부르는 곳이 계곡마다 별개의 이름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즉 옥류폭이 있는 곳은 청학동이요, 은류폭이 있는 곳은 백운동이며, 금류폭이 있는 곳은 자하동이라 칭했던 것이다. 맨 먼저 우리를 맞이하는 것은 옥류폭이다. 아주 멋진 폭포이지만 참가자들의 입에서 터져 나오는 것은 찬탄이 아니라 탄식이다. 음식점들이 점령하고 계곡물까지 막아 물놀이 풀장이 되어버린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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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벽등반의 연습장으로 사용되었던 숨은 폭포


옥류폭포에 대한 실망을 보상하는 데에는 그다지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은류폭포가 이곳에서 멀지 않다. 흔히들 수락산의 3대 폭포라고 하면 금류와 은류와 옥류를 꼽는다. 하지만 수락산을 다루고 있는 옛 유산기들을 샅샅히 살펴보아도 은류폭포에 대한 언급은 거의 찾을 수 없는 것으로 보아 비교적 최근에 붙인 이름임에 분명하다. 정규등산로로부터 살짝 벗어나 있을 뿐더러 뚜렷한 이정표도 없어 찾기가 쉽지 않은 숨은 폭포다. 산선배들의 증언에 따르면 1970년대까지만 해도 이 폭포에서 빙벽등반 연습을 했다고 한다.


은류폭포는 하단, 중단, 상단의 삼단으로 이루어져 있다. 바위와 오솔길을 따라 위로 올라갈수록 절경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금은옥의 세 폭 중 이곳 은류폭포를 으뜸으로 친다. 큰 비가 올 때나 비온 다음 날 이곳을 찾으면 힘차게 내리꽂히는 폭포 물소리가 온 계곡을 진동하여 선경(仙境)이 따로 없다. 일행은 이곳에서 배낭을 풀고 과일을 나누고 차를 마신다. 이곳 수락산에서 거의 10년의 세월을 보낸 김시습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니 끝을 맺기가 어렵다.


금류폭포로 가기 위해서는 왔던 길을 되돌아 내려간다. [수락팔경] 식으로 이야기하자면 백운동을 돌아나가 자하동으로 꺾어져 올라가는셈이다. 금류폭포 옆으로 나 있는 돌계단이 자못 가파르다. 돌계단의 끝자락에 금류동(金流洞)’이라고 쓴 암각문이 보인다. 보다 멋진 글씨는 폭포 위에 있다. 해서체로 멋지게 쓴 금류동천(金流洞天)’이라는 바위글씨가 탄성을 자아낸다. 경산 정완용(1783-1873)[수락도봉산유기](1852)따르면 상서 박주수(1787-1836)가 썼다고 한다. 상서는 당대의 명필로서 남한산성 수어장대의 글씨도 썼다. 옆에 세워진 안내판을 보니 오류 투성이어서 한숨이 절로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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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조의 탄생과 내원암의 칠성대


내원암의 정확한 연혁에 대하여 알려진 신뢰할만한 정보는 없다. 다만 분명한 사실은 이 절이 순조의 탄생 덕분에 그 사세를 크게 확장하였다는 것이다. 후사가 없어 골머리를 싸맸던 정조는 이 절의 용파스님에게 득남을 기원하는 불공을 올려달라고 부탁한다. 그것이 1789년의 일이다. 그리고 이듬해 순조가 출생한다. 정조는 이에 크게 기뻐하며 보은의 의미로 내원암에 내탕금을 하사한다. 17945월에 쓰여진 [내원암칠성각신건기]를 보면 이 사실이 명확하게 기록되어 있다.


지난 기유년(1789) 내전(內殿)에서 불심으로 경건하게 치성한 다음해인 경술년(1790)에 나라에 큰 경사가 있어 도처에서 모두 기뻐하였으니, 어떤 연유로 해서 이러한 상서로운 일이 일어나게 되었는지를 몰랐겠는가. 더욱더 정성스러운 예를 다하고 간절히 해마다 보사(報祀)하고자 하였으나, 옛 단이 산 꼭대기에 있어 비바람을 피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이를 염려한 지 얼마나 되었는지 모른다. 지금 국내(局內)에 복된 땅을 점쳐 정성스럽게 칠성각을 지은 것, 다만 오랫동안 생각하여 잊지 않는 정성으로 그렇게 한 것이다.”


왜 정조는 하필이면 내원암에 부탁하여 불공을 올리게 하였을까? 산 꼭대기에 있던 칠성단이 특별히 영험하였기 때문이다. 칠성대는 곧 칠성바위이며 칠성단은 그 밑에 있다. 결국 현재의 내원암을 만든 것은 칠성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원암에는 칠성신앙 혹은 기자신앙과 관련된 유물들이 많이 산재해있다. 대웅전 앞마당의 미륵바위(옛문헌에는 용각암이라고 표기된다)와 석조미륵보살상(세칭 내원암마애불) 등이 그것이다.


내원암 삼성보전 앞의 너른 앞마당에서 점심식사를 마친 일행들은 이제 칠성대를 향하여 올라간다. 꽤 멀고 높은 곳에 떨어져 있는 칠성대까지 돌계단이 놓여있다. 이 정도의 공사를 민간 차원에서 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칠성대에 조금 못 미친 곳에 마애부도가 있다. 그 어떤 기록도 남아있지 않은 것으로 보아 아마도 인문산행팀이 최초로 발견한 것일 터이다. 칠성대 밑에는 철거된 옛 칠성각의 잔해들이 남아있다. 바위를 크게 에돌아 칠성대의 정상으로 오른다. 돌연 탁 트인 전망과 금강산이 무색한기암괴석들을 보고 참가자들이 모두 탄성을 내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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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선동과 문암폭포에 제 이름을 찾아주다


칠성대에서 산을 횡단하여 영락대로 향한다. 향로봉과 주봉을 잇는 능선 상에 위치한 전망 좋고 넓은 바위()이다. 이 능선의 너머는 의정부시에 속한다. 일행들은 시계(市界)를 넘어 은선동으로 내려선다. 숨은 신선(隱仙)의 계곡()이라, 참 멋진 이름이다. 이 계곡과 그 끝에 걸쳐져 있는 멋진 폭포에 참으로 오랜만에 제 이름을 찾아주었다는 것이 이번 인문산행 최대의 성과이다. 바로 은선동과 문암폭포(門巖瀑布)이다.


옛 유산기들을 찾아보면 수락산의 3대폭포로 꼽는 것이 은선, 옥류, 금류이다. 나는 처음에 은류의 옛이름이 은선인 것으로 오해하였다. 하지만 계속되는 탐구와 집요한 답사 끝에 은선이란 은선동의 문암폭포를 뜻함을 깨닫게 되었다. 이 세 개의 폭포들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것이 문암폭포인데, 삼산재 김이안의 [기유][문암유기] 그리고 미호 김원행 등의 [문암폭포연구](이상 1746), 냉재 유득공의 [은선동기](1775), 미산 한장석의 [수락산유람기](1868) 등에 지속적으로 등장한다.


은선동 계곡의 인적 드문 오솔길을 걷다가 이윽고 문암폭포의 상단에 다다른다. 참가자들이 카메라 셔터 누르기에 바쁘다. 다시 오솔길을 에돌아 문암폭포의 하단과 곡수유상을 즐기던 너른 바위 위로 내려서니 모두들 경탄을 금치 못한다. 이곳이 오늘 인문산행의 하이라이트이다. 한 장석의 유산기 속 묘사를 읽어보자. “길이 끝나려 하는 곳에 바위 병풍이 우뚝하게 솟아 마치 성가퀴 모양처럼 그 삼면을 둘렀고, 입을 벌린 듯 그 가운데는 트여있었다. 큰 바위가 그 꼭대기에 시렁을 얹은 듯 들보 모양을 하고 있고, 높이는 10여 장()인데, 세찬 폭포가 걸려 있었다.”


한가로이 사진을 찍고 탁족을 즐기며 참가자들이 이야기꽃을 피운다. 오늘 본 4개의 폭포들 중에 어느 것이 가장 멋진가? 약간의 편차는 있지만 대개는 이곳 문암폭포를 으뜸으로 꼽는다. 나로서는 은류폭포와 문암폭포 중 하나를 고르기가 어렵다. 한 장석의 유산기로 그 평가를 가름하도록 한다. “옥류동은 맑지만 협애하고, 금류동은 크지만 누추하여 수석(水石)이 모두 서로 어울리지 못했다. 오직 은선동만이 산이 높푸르고 맑고 트여서 그 기이함을 떨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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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산] 2017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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