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심산 등록일: 2017-05-30 23:18:22 IP ADRESS: *.139.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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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원사에 얽혀있는 수많은 인연들

한국산서회와 함께 하는 인문산행

3회 안산의 봉원사와 봉수대

 

/심산(한국산서회)

사진/서영우(한국산서회)

 

인왕산이 서쪽으로 비스듬히 뻗어 무악재를 지난 다음 다시 불끈 솟아나 295m의 봉우리를 이룬 것이 안산(鞍山)이다. 온전히 서대문구 안에 포함되어 있는 이 낮은 산에는 이름도 많고 사연도 많다. 한자어 안()은 말안장을 뜻하는데, 산정이 두 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고, 그 봉들을 잇는 능선이 흡사 말안장과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순 우리말로는 길마재라고 하며, 다른 한자어로 안현(鞍峴)이라고도 표기한다.

조선 선조 때의 풍수학자 남사고는 낙산과 안산을 놓고 파자(破字)를 하여 흥미로운 예언을 전한 바 있다. 즉 경복궁의 동쪽에 있는 낙산(駱山)은 말[]을 따로[] 타니 갈라설 것이요, 경복궁의 서쪽에 있는 안산(鞍山)은 혁명()을 한 이후에야 안정()되리라는 것이다. 아마도 당시 당쟁의 총본산인 동인(東人)과 서인(西人)의 운명을 두고 예언한 말일 터인데 꼭 그리되었다. 여기서 서인의 혁명이란 물론 인조반정(1623)을 뜻한다.

이 산과 관련된 가장 오래된 지명은 기봉(岐峯)이다. 높은 산을 뜻하는 기봉 혹은 기산(岐山)이라는 이름은 [고려사] 고려 숙종 7년에 등장하는데, 당시 남경의 서쪽 경계를 이루는 봉우리로 적시된다. 기봉 즉 안산을 남경의 서쪽 경계로 보는 인식은 그대로 조선 개국 초기에도 이어져 한양도성 축성계획에도 영향을 미친다. 즉 현재의 도성은 인왕산에서 직접 남산으로 이어지지만, 당시에는 인왕산에서 일단 무악으로 넘어갔다가 거기에서 금화산 능선을 타고 약현을 거쳐 남산과 연결되도록 도성을 연결해야 된다는 의견이 있었던 것이다.

모악(母岳) 또는 무악도 안산의 또 다른 이름이다. 백악이 최종적으로 한양의 주산으로 결정되기 전에는 인왕주산론도 있었고 무악주산론(毋岳主山論)도 있었다. 만약 무악주산론이 채택되었더라면 현재의 연세대학교 자리에 경복궁이 들어섰을 것이다. 연세대학교의 교가는 관악산 바라보며 무악에 둘러, 유유히 굽이치는 한강을 안고...”로 시작된다. 흔히들 연대 뒷산이라고 부르는 안산이 오랫동안 무악산으로 불려왔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 밖에도 봉화뚝, 봉우재, 봉우뚝이라는 이름이 있다. 이는 물론 이 산의 정상에 봉수대가 우뚝 솟아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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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 자락의 천년 고찰, 한국 태고종의 총본산

 

한국산서회와 함께 하는 인문산행은 매달 첫 번째 토요일에 개최된다. 단 이번에는 예외적으로 두 번째 토요일에 열렸는데, 5월 초의 잇달은 연휴와 서둘러 치루어진 대통령 선거 때문이다. 2017513, 문재인을 대한민국의 제19대 대통령으로 선출한 이후의 첫 번 째 토요일, 신촌 봉원사 입구 이대부고 버스정류장근처의 한 편의점 앞. 한국산서회의 회원들과 참가자들은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배낭을 들쳐 멘다. 오늘 산행의 기점은 안산이 품은 유서 깊은 고찰 봉원사(奉元寺)이다.

봉원사의 연혁은 천 년을 훌쩍 뛰어넘는다. 신라 진성여왕 3(889) 도선국사는 현재의 연세대학교 교정 안에 절을 하나 짓고 반야사(般若寺)라고 이름 붙인다. 이 절이 봉원사의 전신이다. 고려 말기에는 태고 보우가 이 절을 증축하면서 금화사라고 고쳐 불렀다. 그 덕분인지 현재의 봉원사는 태고종의 총본산으로 꼽힌다. 조선 태조 5(1396)에는 삼존불상을 봉안하였고, 이후 태조의 진영을 모시는 원찰이 되었지만, 임진왜란 때에 전소되었다. 봉원사가 현재의 위치로 이전된 것은 영조 24(1748)의 일이다. 이때부터 새로 지은 절이라 하여 새절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다. 이듬해 영조가 친필로 쓴 봉원사 현판을 하사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영조에게 봉원사는 도대체 어떤 절이었길래 직접 신축을 지시하고 현판까지 하사하였을까? 현재 연세대학교 백주년기념관이 들어서 있는 곳 일대에는 예전에 수경원(綏慶園)이 있었다. 영조의 후궁이자 사도세자의 생모인 영빈 이씨의 원묘이다. 즉 임진왜란 이전에 도선의 반야사와 보우의 금화사가 있던 곳에 수경원이 들어섰던 것이다. 영조는 이 절을 수경원의 원찰로 삼고자 했다. 그래서 현재의 위치로 옮겨 신축하고, 봉원사라는 편액을 내린 것이다.

봉원사에 얽힌 역사와 인물 이야기만 하다가 하루 해를 다 보낼 수는 없다. 남은 이야기는 봉원사 경내에 들어가서 잇기로 하고 발걸음을 재촉한다. 봉원사는 경내외를 가르는 담벼락이 따로 없다. 봉원사는 태고종에 속하고, 태고종은 승려들의 결혼과 출산을 허용하므로, 절 근처에 승려들의 일반 살림집들이 즐비하다. 매우 독특한 사하촌 풍경이다. 절 입구에 붙임바위가 있다. 작은 문댐돌로 문대다가 바위에 붙이면 소원이 성취된다는 민간신앙의 흔적이다. 이윽고 거대한 느티나무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일명 장군나무라고도 불리는 이 나무들은 400년이 훌쩍 넘는 수령을 자랑하며 우리를 맞이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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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전과 이광사와 김정희의 글씨, 대원군의 별서 아소정

 

봉원사에는 볼 것이 너무 많다. 가장 오래된 유적으로는 명부전(冥府殿)의 현판으로 남아있는 정도전의 글씨를 꼽을 수 있다. 조선 태조는 자신의 왕비인 신덕왕후가 타계(1395)하자 현재의 정동에 분묘를 조성하고, 그 원찰로서 흥천사를 지은 다음 그 옆에 명부전을 건립하였는데, 자신의 오른 팔인 정도전에게 그 현판을 쓰라고 명한다. 그 편액이 정조 18(1794)에 봉원사로 옮겨져 현재까지 전하는 것이다. 지금도 현판의 좌측 상단에 정도전필(鄭道傳筆)이라는 글씨를 볼 수 있다. 웅혼한 예서체로 자신감 넘치게 쓴 걸작이다.

1950년의 한국전쟁 때 이 절은 크게 파괴된다. 이후 1966년 즈음에 재건을 시작하는데, 이때 대웅전 건물로 쓰려고 옮겨온 건물이 바로 대원군의 아소정(我笑亭)이다. 대원군이 자신의 아들과 며느리인 고종과 민비(명성황후)에게 권력을 빼앗긴 다음 나 스스로를 비웃노라는 뜻의 자조적인 당호(堂號)를 내걸고 유폐되어 있던 이 건물은 본래 공덕동 로터리 부근에 있었다. 이 아름다운 한옥 건물은 이건 초기에 대웅전으로 사용되기도 하였으나 현재에는 염불당 대방으로 바뀌었다. 그런데 이 건물과 함께 따라온 편액들이 또한 걸작이다.

건물을 정면으로 바라볼 때 한가운데 있는 편액이 [무량수각(無量壽閣)]이고, 왼쪽에 걸린 편액이 [산호벽수(珊瑚碧樹)]이며, 오른쪽에 걸린 편액이 [청련시경(靑蓮詩境)]인데, [무량수각]은 옹방강의 글씨이고, [산호벽수][청련시경]은 추사 김정희의 글씨인 것이다. 추사와 석파(石坡,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호)는 매우 가까운 사이였다. 추사는 석파의 스승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외가 쪽으로 따지면 5종사촌 형이 된다. 추사와 옹방강의 이 멋진 편액들이 아소정에 걸려있었던 것은 아마도 그런 인연 때문이리라. 그리고 덕분에 우리는 서울 서대문구 한복판의 산중에서 이런 호사스러운 안복(眼福)을 누린다.

봉원사에는 석파와 관련된 유적이 하나 더 있다. 바로 봉원사 범종이다. 이 종은 본래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에 있던 가야사의 것인데, 풍수지리를 신봉했던 석파가 자신의 부친인 남연군의 묘를 그곳에 쓰겠다며 절을 폐쇄하는 바람에 쫓겨나 이리로 온 것이다. 석파가 쫓아낸 범종과 석파가 말년을 보낸 아소정 건물이 이제 이곳 봉원사에 나란히 자리 잡고 있는 것을 보니 역사의 아이러니를 실감하지 않을 수 없다. 아소정과 함께 딸려온 정원장식용 석물들이 봉원사 뒷마당 여기저기에 아무렇게나 방치되어 있는 것을 보니 또한 만감이 교차한다.

현재 신축된 봉원사 대웅전의 편액은 원교 이광사가 썼다. 널리 알려져 있다시피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최고의 서예가가 바로 원교와 추사이다. 그 두 사람의 글씨를 같은 공간에서 볼 수 있다니 이 또한 희귀한 경험이다. 봉원사를 스쳐간 역사적 인물들을 열거하자면 끝이 없다. 갑신정변의 주역 김옥균 등의 개화파들이 떠받든 개화승 이동인이 이곳 봉원사에서 5년간 주석한 바 있다. 1908년 국어연구학회(현재의 한글학회)가 창립총회를 연 곳도 바로 이곳 봉원사이다. 봉원사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지체하였다. 이제 다시 발길을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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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세콰이어 숲길을 에돌아 안산 정상의 봉수대로

 

안산은 등산로와 산책로가 거미줄처럼 뒤엉켜 있는 산이다. 진입로도 많고 샛길도 많다. 봉원사에서 정상까지 곧장 올라가려고 하면 30분이면 족하다. 하지만 무엇 때문에 서두른단 말인가? 우리는 안산자락길(산책로)을 따라 그 길을 에돌아 올라가려 한다. 서대문구는 안산을 지극정성으로 가꾼다. 계절마다 피고 지는 꽃들이 다르고 산책로를 아우르는 숲의 향기가 다르다. 4월에는 벚꽃이 한창이었는데 5월에는 아카시아 꽃들이 만발했다. 때마침 강풍이 불어와 산책로에는 아카시아 꽃비가 흩날린다.

메타세콰이어 숲길을 걷는다. 완만한 경사에 나무데크로 길을 잘 내서 장애인들도 편안히 오갈 수 있는 산책로이다. 참가자들은 저마다 휴대폰이나 카메라를 꺼내어 추억을 남기기에 바쁘다. 즐거운 봄소풍이다. 본래 점심식사를 하기로 했던 숲속무대에는 등산객과 산책자들이 너무 많다. 지난 번 답사산행에서 미리 보아둔 1만남의 장소에서 배낭을 풀어 내린다. 나무 평상들이 곳곳에 있어 삼삼오오 모여 앉아 식사를 하기에 적격인 장소이다. 한국산서회의 회원이자 시인인 박계수 선생과 염상열 선생이 자작시를 낭송하여 운치를 더해준다.

고은초등학교에서 올라오는 등산로와 만나는 지점에서 정상을 향하여 꺾어진다. 지금까지 걸었던 산책로와는 달리 약간의 경사가 느껴진다. 정상 부근에 거의 이르니 모 등산학교에서 이용하였던 자연암장들이 눈에 들어온다. 안산의 남서 사면이 주로 편마암으로 이루어져 있다면 이곳 북동 사면은 주로 화강암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윽고 정상에 오른다. 1994년에 서울 정도 600년을 기념하여 새롭게 복원한 안산봉수대가 우뚝 솟아 우리를 반긴다. 안산에는 2개의 봉수대가 있어 각각 동봉수와 서봉수라 불렀는데, 지금 현재 복원되어 있는 것은 평안도 강계에서 시작되어 고양시 봉현을 거쳐 이곳에 이르는 제3봉수로의 동봉수이다.

해발 300m를 넘지 못해도 정상은 정상이다. 안산 정상의 봉수대에 올라 사위를 둘러본다. 바로 코 앞 동북 방면으로 인왕산과 그 너머의 북한산이 보인다. 북쪽으로 고개를 더 틀면 백련산 역시 코 앞이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의 서울 사택이 그곳에 있다하여 새삼스럽게 유명세를 타게 된 산이다. 때마침 강풍과 더불어 비바람이 몰아쳐온다. 검은 먹구름 아래의 남산이 저 멀리 보인다. 서둘러 기념촬영을 하고 하산을 서두른다. 본래는 이괄의 난(1624)의 격전지인 승전봉을 거쳐 금화산에 오른 다음 영천동으로 하산하려고 했다. 지금은 자취를 찾기 어렵지만 옥폭동이라 불렸던 계곡을 찾아 김려의 애절한 연애시 [사유악부]도 읊조려 보려 했다. 하지만 날씨가 다음 날을 기약하라 한다. 아쉬워하는 참가자들에게 어줍지 않은 위로의 말씀을 건넨다. 인간이 어디 가지 산은 어디 가지 않습니다.

오늘 산행의 종점은 다시 봉원사이다. 정상에서 봉원사 내려가는 길에는 민속신앙의 바위들이 많다. 저 유명한 안산의 말바위와 까진바위다. 따로 설명을 올릴 방법이 없어 그저 혼자 걸터앉고 쓰다듬으며 발걸음을 재촉할 뿐이다. 봉원사에서 가장 큰 불전은 삼천불전이다. 삼천불전의 처마는 넓고도 길다. 참가자들 모두 천불전 처마 밑에 모여 비를 그으며 다음 산행을 기약한다. 참가자 한분이 말을 보탠다. 이 작은 산에도 이렇게 많은 유적과 이야기가 서려 있군요. 그렇게 잊혀지고 숨어 있는 것들을 찾아나서는 것이 인문산행이다.


월간 [산] 2017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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