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심산 등록일: 2017-03-18 22:15:37 IP ADRESS: *.139.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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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경산수화 속의 인왕산을 걷다

한국산서회와 함께 하는 인문산행

1회 인왕산과 겸재 정선의 장동팔경


 

 

/심산(한국산서회)

 

한국산서회(韓國山書會, Korea Alpen Book Club)19861129일에 창립된 유서 깊은 단체이다. 발족 당시의 창립 취지문을 보면 우리 산악문화의 뿌리를 찾고 연구하며, 올바른 학문적 산악운동의 원동력이 되어 보다 찬란한 산악운동 전개의 밑거름이 되고자하였다. 창립 당시의 발기인은 33인이었고, 회원마다 고유한 회원번호를 부여하였는데, 맏형 격인 회원번호 1번이 1977년 한국에베레스트원정대의 원정대장 김영도였고, 막내 격인 회원번호 33번이 현재 하루재클럽의 발행인 변기태였다.


창립 당시 한국산서회 발기인 33인의 면모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한국산악계의 지식인들은 모두 여기에 모여 있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그들 중에는 손경석, 이우형, 안경호 등 이미 유명을 달리 하신 분들도 많이 계시지만, 이수용, 이용대, 홍석하, 박그림, 남선우 등 현재에도 산악계의 지도자로서 모범적으로 활동하고 계시는 분들도 많다. 연회보인 [산서] 27호가 발행된 시점(20171) 현재 한국산서회의 회원은 188명으로 늘어났다. 해외 산악문학작가 버나데트 맥도널드가 회원번호 181번이고, 해외 산악인 라인홀트 메스너가 회원번호 182번이며, 현재의 막내(회원번호 188)는 바로 한국의 젊은 산악인 안치영이다.


하지만 오랜 세월 동안 한국산서회는 입회하기가 쉽지 않은 단체로 유명했다. 영국의 알파인클럽을 귀감으로 삼아 입회의 조건과 심사를 매우 까다롭게 만들어놓았던 까닭이다. 덕분에 소수정예를 모토로 삼은 클럽으로서의 위상은 굳건히 지켜왔으나, 일반 대중과 함께 호흡하기에는 역부족인 면이 없지 않았다. 그러한 전통의 한국산서회가 창립 30주년을 맞은 지난 2016년에 획기적인 방향전환을 꾀하기 시작했다. 그 동안 해왔던 다양한 사업을 지속적으로 선도하되 “1000만 등산인구와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건전한 등산문화와 산악애호 사상을 체계적으로 펼칠 수 있는 조직과 봉사할 수 있는 활동체계를 구축하기 위하여 한국산서회를 사단법인으로 창립하고자하는 것이다.


한국산서회가 사단법인으로 전환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클럽과 사단법인은 무엇이 다른가? 클럽이 소수정예의 배타적 모임이라면 사단법인은 대중성과 투명성을 갖춘 공익적 모임이다. 현재 한국산서회의 사단법인화는 매우 순조롭게 진행되어 조만간 당당하게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낼 듯하다. 사단법인 한국산서회가 펼칠 수 있는 사업은 무궁무진하다. 한국산서회가 그 기나긴 여정의 첫 발자국을 내딛는 사업으로 선정한 것이 바로 이 한국산서회와 함께 하는 인문산행이다.

 

한국산서회 최초의 일반인 대상 산행 프로그램

 

인문산행이라는 표현이 조금 낯설게 느껴질 지도 모르겠다. 이 용어의 핵심 키워드 두 가지는 등산인문학이다. 등산과 인문학을 한 자리에서 논할 수 있는 곳이 바로 한국의 산이다. 물론 히말라야에서도 인문학을 논할 수 있다. 알프스라고 예외일 리도 없다. 하지만 한국의 산처럼 등산과 인문학이 찰떡궁합을 이루는 곳은 달리 찾기 힘들다. 그것은 전국토의 75%가 산악지대로 이루어져 있고, 고작해야 평균 해발고도가 1000미터도 안 되는 나지막한 산들의 모든 능선과 골짜기마다 다양한 문화유산을 남겨놓은, 우리 한국인들만이 누릴 수 있는 축복이다.


그 동안 한국 산에 대한 인문학적 접근은 다각도에서 파상적으로 진행되어 왔다. 질과 양에서 흡족하지는 않으나 얼핏 떠올릴 수 있는 명저들도 여럿 꼽을 수 있다. 김장호의 [한국명산기](평화출판사, 1993), 최정호()[산과 한국인의 삶](나남, 1993), 조자용의 [삼신민고](가나아트, 1995), 김윤우의 [북한산 역사지리](범우사, 1995), 그리고 비교적 최근에 나온 최원석의 [사람의 산, 우리 산의 인문학](한길사, 2014)등이 대표적인 명저들이다. 한국산서회와 함께 하는 인문산행은 이들 책들과 궤를 같이 한다. 더욱 간단하게 말하자. 한국산서회의 인문산행은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산 위로 끌고 올라간 것이다.


한국산서회는 이 사업을 위하여 일종의 특수임무팀(Task Force) 격으로 인문산행팀을 꾸렸다. 팀장은 외람스럽게도 필자인 심산(회원번호 114)이다. 인문산행팀의 자료조사 및 현장답사는 조장빈, 현장진행은 허재을, 사진담당은 서영우인데, 앞으로 계속 팀원들을 보강해나갈 예정이다. 물론 한국산서회의 최중기 회장이 적극 후원하고 있으며, 호경필 부회장이 지원을 맡았고, 현재의 자문위원으로는 심우경, 이규성, 손복 등 한국산서회원 겸 전현직 교수들이 조언을 아끼지 않고 있다. 이쯤 되면 명실상부 한국산서회의 핵심 사업이라 할만하다.


서론이 길었다. 한국산서회의 인문산행은 한국의 산행문화를 한 단계 끌어올릴 것이다. 한국산서회의 인문산행은 일반인 참가자들과 호흡을 함께 할 것이며, 동시에 한국산서회의 사단법인화를 위한 전초작업이 될 것이다. 한국산서회의 인문산행은 치열한 자료조사와 꼼꼼한 현장답사가 자랑이고, 때로는 기존 학설과 다툼을 벌일 자신이 있을 만큼 고증과 논거가 뚜렷한데, 그 모든 내용을 담기에는 이 지면이 턱 없이 부족하여 안타까울 따름이다. 이 연재는 간략한 행사 후기 정도에 머물 수밖에 없지만, 향후 보다 두툼하고 밀도 높은 원고로 다시 찾아뵐 것을 약속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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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경산수화폭 속으로 걸어 들어가 바라 본 인왕산

 

201734일 토요일, 정유년(丁酉年) 경칩(驚蟄)을 하루 앞둔 날. 절기의 명칭에 화답하듯 따스한 날이었다.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1번 출구로 올라가기 직전의 지하 2층 경복궁 쉼터는 제1회 한국산서회 인문산행의 참가자들로 북적거렸다. 일반 참가자 15명과 한국산서회 측의 참가자 15명 등 도합 30명이 서로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오늘의 인솔자 조장빈(한국산서회 이사, 경기대 산악부 OB)이 간략한 코스 소개를 하고 한국산서회의 최중기 회장이 격려의 인사말을 건네고 난 다음, 곧바로 제1회 인문산행의 힘찬 첫발을 떼어놓기 시작하였다.


오늘의 주제는 인왕산과 겸재 정선의 장동팔경이다. 겸재(謙齋) 정선(鄭敾, 1676~1759)은 널리 알려져 있다시피 이곳 인왕산 자락에서 나고 자라고 결국에는 이곳에서 삶을 마감한 조선 후기의 화성(畫聖)이다.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화에 대해서는 한국 최고의(그러니까 세계 최고의) 전문가로 알려진 최완수(崔完秀, 1942~ , 간송미술관 연구실장)[장동팔경첩]을 그의 화력에서 후기의 대표작들 중의 하나로 본다. 하지만 이 장동팔경조차도 하나로 싸잡아 평가하기가 어렵다. 현재까지 발견된 것만 해도 간송미술관본, 국립중앙박물관본, 개인소장본(2013년 공아트홀 [한양유흔전] 도록 참조) 3개의 버전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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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표에서 보이는 바와 같이 3개의 버전에서 말하는 장동팔경은 일치하지 않는다. 중복되는 것들도 많지만 독자적인 팔경도 많다. 세 버전의 장소들을 꼼꼼히 살펴보면 15개 명칭의 장소를 그렸으되, 실제로는 13개의 장소가 등장한다. 한국산서회 인문산행팀은 물론 수십 차례(!)의 답사를 통하여 그 13개 장소의 현위치와 추정 위치를 대부분 파악하였으나 고작해야 반나절의 산행으로는 그 모두를 둘러볼 방법이 없다. 결국 일반 참가자들의 체력 안배와 편안한 동선을 고려한 결과, 상당 부분을 제외하고, 제일 먼저 찾기로 한 곳은 필운대(弼雲臺)이다.


현재 배화여자대학교의 교정 안에 남아 있는 필운대는 널리 알려져 있다시피 백사 이항복(白沙 李恒福, 1556~1618)의 집터였다. 하지만 이 필운대가 곧 겸재의 장동팔경 중 [필운상춘]에 묘사되어 있는 그 장소는 아닐 수도 있다. 무슨 뜻인가? 인왕산의 옛이름은 필운산이다. 그리고 필운산에는 대(, 높고 평평하여 승경을 감상하기 좋은 곳)가 많았다. 결국 필운산에는 필운대가 여기 저기 있었다는 뜻이다. 정조가 자주 찾아와 시회도 열고 활쏘기 시합도 벌였으며, 그래서 [국도팔영]필운화류로 표현되어 있는 필운대는 잠시 후 우리가 방문할 세심대(洗心臺)이다.


필운대를 나와 황학정(黃鶴亭)으로 향한다. 국궁수련장으로 유명한 이곳에는 등과정(登科亭)과 황학정팔경(八景)이라는 바위글씨가 남아있다. 본래는 1898년 고종의 어명으로 경희궁 회상전 북쪽에 세웠던 사정(射亭, 활 쏘는 곳)인데, 1922년 일제가 경희궁을 헐면서 등과정 옛터로 이전해온 것이다. 황학정팔경의 바위글씨는 금암 손완근이 1928년에 새겼다. 한시와 시조에 능한 한국산서회의 한상철 이사가 오늘의 산행을 기려 이 황학정팔경을 시조로 새로 창작하여 전해왔다.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새로 창작된 청아한 시조로 귀를 씻으니 인문산행의 향기가 더욱 그윽해진 듯하다.


이번 산행에서는 시간관계상 탐방을 생략하였지만 청와동(靑瓦洞)이라고 쓰여진 바위글씨가 있다. 그 청와동의 물줄기가 수성동으로 내리면서 옥류동과 합쳐져 인왕동을 이룬다. 제법 깊은 협곡 사이로 콸콸 흐르는 계곡의 물소리가 아름다워 수성동(水聲洞)이라 부르는 이곳 역시 장동팔경의 하나이다. 현재 이곳에는 겸재의 그림을 컬러로 재현한 안내판이 서 있는데, 그림 속의 인물들은 이제 막 수성동의 물소리를 감상한 후 인왕산의 능선으로 오르려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이 그림과 수성동의 내력에 대하여 조장빈의 명쾌한 강의가 이어진다.


점심식사는 이곳 수성동 계곡에서 이루어졌다. 산행참가자들은 삼삼오오 모여앉아 저마다 집에서 싸온 맛있는 음식들과 차를 나눈다. 처음 뵙는 분들과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는데 들어보니 산행경력이며 인문학 지식 등이 모두 만만치 않다. 괜히 여기서 어줍지 않은 지식 따위를 늘어놓았다가는 큰 코 다치기 십상이겠다고 하자 모두들 크게 웃는다. 날은 따사롭고 산행은 즐거우며 마음은 넉넉하다. 소박하지만 즐거운 점심식사를 마치자 모두들 다시 배낭을 꾸려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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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산행의 하이라이트는 청풍계 비경의 상단부

 

서울맹학교(시각장애인을 위한 학교) 교정 뒤편에 선희궁(宣禧宮) 터가 있다. 선희궁은 사도세자의 생모인 영빈 이씨의 제사를 모시기 위한 사당이었다. 세심대(洗心臺)는 선희궁의 북쪽에 있다. 글자 그대로 마음을 씻는 곳이라는 의미를 지닌 곳인데, 왕실과 관련한 문헌에 자주 등장하며, 일명 필운대 혹은 동대(東臺)라고도 불리었다. 예전에는 세심대라는 바위글씨가 새겨져 있었다고 하나 현재에는 확인할 수 없는 대신 후천(后泉)이라는 바위글씨가 남아있다.


이제 오늘의 하이라이트인 청풍계로 향한다. 청풍계를 향하여 꺾어지는 길목에서 자하동(紫霞洞)과 청하동(靑霞洞)은 같은 동인가에 대한 조장빈의 강의가 이어진다. 대개 이 두 동명을 같은 장소의 지명이라 추정하고 있지만 조장빈의 생각은 다르다. 이 견해에 대해서는 향후 보다 엄밀한 고증과 치열한 토론이 필요할 듯하다. 예전에는 푸르른 계곡물이 넘실대었겠지만 이제는 가파른 아스팔트로 뒤덮힌 길을 한참 오르자 저 유명한 백세청풍(百世淸風) 바위글씨가 나온다.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 1607-1689)의 친필로서, 그 이후 탁본되어 전국에 퍼져있는 모든 백세청풍 글씨의 오리지널이며, 이 계곡이 청풍계라는 확실한 증거이다.


고급 주택가의 아스팔트길을 벗어나 인왕산의 흙길을 밟으며 조금 더 올라가니 뜻밖의 풍경이 펼쳐진다. 서울 시내에서도 그 한복판인 종로구에서 산자락에 걸쳐진 현수교를 만난 것이다. 이쯤에서 우리는 고려대본 [청풍계(淸風溪)]의 그림을 조목조목 짚어가며 현재의 위치를 가늠해본다. 그림 속의 이 바위가 저 바위다. 그림 속의 이 계곡이 저 계곡이다. 이윽고 참가자들 모두 약속이나 한 듯 탄성을 자아낸다. 우리는 지금 겸재의 걸작 청풍계 안에 들어와 있는 것이다. 진경산수화의 매력과 가치를 온몸으로 체험하게 된 멋진 순간이었다.


현수교를 지나면 잘 만들어진 나무데크 쉼터가 있다. 그곳에서 잠시 쉬며 올려다본 인왕산은 그야말로 절경이다. 힘차게 꿈틀거리며 뻗어 내린 바위의 성채는 겸재가 [취병암도(翠屛岩圖)]에서 묘사한 바로 그 취병암이다. 모두들 바위에 취하여 넋을 놓고 있는데 심우경 교수가 말을 보탠다. () 고려대학교 조경학과 교수로서 한국 전통조경의 일인자로 꼽히는 그는 현재 세계상상환경학회 회장으로 재직 중인데, 온통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한국 산의 바위 사랑이 남다르다. 짧은 코멘트 정도에 불과한 강의였지만 참가자들 모두에게 한국 산에 대한 사랑과 자랑을 일깨우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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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들 눈 앞의 승경과 그곳에 어린 역사의 향기에 취해 있는 동안 시간이 너무 많이 흘러버렸다. 인문산행팀은 발걸음을 재촉하여 자하문 터널 인근의 백운동천(白雲洞川) 바위글씨, 경기상고 교정 안에 있는 청송당유지(聽松堂遺址) 바위글씨를 둘러보고 마지막으로 경복고등학교 교정 안으로 들어섰다. 오늘 본의 아니게 우리의 산행을 안내해준 겸재 정선이 태어난 곳이다. 교정 한켠에 그의 생가터임을 기려 커다란 바위조형물이 하나 들어서 있는데, 앞면에는 겸재의 그림 [독서여가]가 동판으로 재현되어 부착되어 있고, 뒷면에는 최완수가 쓴 글이 새겨져 있다. 이곳에서 바라본 풍경이 바로 저 유명한 [인왕제색도(仁王霽色圖, 국보 제216)]와 정확히 일치한다. 그는 이곳에서 나고 자라며 바로 눈 앞의 풍경을 화폭에 옮겼던 것이다.


경복고 교정의 노천극장에서 오늘의 산행을 마무리한다. 처음 하는 행사인지라 진행상 미숙한 점들도 많았다. 너무 많은 것을 보여드리고자 동선을 복잡하게 짜는 바람에 이동거리도 제법 길었다. 너무 많은 것을 알려드리고자 설명이 길어져 자칫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었다. 하지만 참가자들은 너그러웠다. 이어진 뒷풀이 자리에서는 벌써 다음 인문산행이 화제였다. 1회 인문산행이 인왕산의 산허리 아래쪽을 훑었다면, 2회 인문산행은 인왕산의 정상을 향해 나아가면서 그 주변의 무속과 민불들을 살펴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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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산] 2017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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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산

2017.03.18 22:20
*.139.1.130

담아야할 컨텐츠와 사진들이 어마무지하게 많은데

[월간 산]에서 내어준 지면은 터무니 없이 적다


이 내용들은 별도의 원고로 정리할 생각이다

매우 두툼한, 상세한 주석을 단, 참고문헌들을 모두 밝힌, 다양한 사진들로 가득한

매우 두꺼운 책이 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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