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05-12-19 12:42:24 IP ADRESS: *.16.20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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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말라야가 길러낸 건강한 사랑
  자크 란츠만 장편소설/김정란 옮김, <히말라야의 아들>, 세계사, 2000년
  

  지난 여름 생애 두 번째로 히말라야 트레킹을 다녀왔다. 공교롭게도 두 번 다 대상지는 안나푸르나였다. 수년 전의 첫방문 때에는 라운드 트레킹의 흉내만 내면서 푼힐전망대까지 올라갔다 온 게 전부였는데, 이번에는 에둘러 가는 대신 곧바로 치고 올라가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까지 올라갔었다. 그러나 그 넓고 장엄한 히말라야 자락에서 어떤 코스를 선택하여 돌아봤느냐가 대체 무슨 상관이랴. 고개를 틀 때마다 시야를 압도해오던 그 비현실적으로 웅장한 흰 산의 정취를 가슴 가득 품고 왔으면 그 뿐이다.
  히말라야 자락을 쏘다닐 때면 늘상 느끼곤 하는 일이지만 그곳 사람들의 눈빛은 너무 선하고 맑다. 씩씩한 남정네들의 눈빛에선 겸손하지만 강건한 기상이 넘실대고, 다소곳한 여인네들의 눈빛에선 수줍으나 신비한 광채가 가슴을 찌른다. 나처럼 외지에서 온 여행자들을 호기심에 가득찬 눈으로 슬쩍 훔쳐보다가 우연히 눈길이라도 마주칠라치면 짐짓 허공 너머의 히말라야로 고개를 돌려버리는 모습을 보면 웬지 명치 끝이 찌르르해진다. 그런 느낌을 뭐라고 설명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본원적 그리움이 되살아나 몸 안의 이곳저곳을 헤집고 다니는 느낌.
  여러번 고도를 높였다 낮췄다 하면서 제법 긴 코스를 주파한 셋째날 밤이었다. 유쾌하고 넉살 좋은 롯지의 여주인에게 부탁해 마을 사람들을 모두 불러모아 잔치를 벌였다. 마당 한가운데 지펴놓은 모닥불 주변에 캔맥주와 창(네팔 고산족들의 민속주)을 잔뜩 쌓아놓고 웃고 떠들며 밤새도록 춤을 추는 걸판진 축제였다. 그들이 얼마나 허물없고 즐겁게 놀아대는지 정작 그 자리를 마련한 우리는 머쓱한 이방인에 불과한 존재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그러나 행복했다. 아직도 엄마 품에 안겨 젖을 빠는 갓난아이로부터 코흘리개 개구쟁이들, 장성한 처녀총각들, 그리고 머리가 하얗게 세어버린 팔순노인에 이르기까지 동네의 모든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여 한바탕 흥겹게 신명을 풀어내는 마을잔치란 우리가 오래 전에 잃어버린 도원경의 모습이 아닌가.
  그날 밤 나는 이제는 입 밖에 꺼내놓기도 민망한 단어가 되어버린 ‘행복’이란 것에 대해서 생각했다. 우리는 그들보다 많은 것을 가지고 있다. 멋진 자동차와 고액 연봉과 초고속 인터넷, 깔끔한 아파트와 휘황한 룸살롱과 꽉 찬 스케쥴. 그래서 우리는 그들보다 행복한가? 천만의 말씀이다. 혹독한 자연과 무너져가는 집과 일용할 곡식만을 가진 그들이 우리보다 훨씬 행복해 보였다. 세계 유명메이커의 상표가 다닥다닥 붙어있는 옷과 장비로 중무장한채 마치 무슨 재벌이라도 되는 양 거드름을 피우고 있는 우리는 실상 그들이 소중하게 가꿔가는 행복을 눈동냥으로만 넘겨짚어보며 부러워하고 있는 한낱 걸인에 불과했다.
  몇 순배씩 술잔이 돌아 제법 거나하게 취해버린 늦은 밤이었다. 마을 청년들이 갑자기 환호성과 박수를 남발하며 길을 터주었다. 그때껏 집안에 틀어박혀 있던 한 마을 처녀가 비로소 사립문을 박차고 무대에 합류한 것이다. 열일곱살이나 되었을까? 한눈에 보아도 대단한 미인이었다. 아마도 마을 최고의 미인으로서 모든 동네 총각들의 가슴을 설레이게 하는 처녀임에 틀림없다. 극히 절제된 동작으로 그네들만의 오래된 민속춤을 추는 그녀의 모습이 더 없이 환상적이었다. 그녀의 어깨 위에서 부드럽게 물결지는 파르스름한 달빛이 신비하고도 에로틱한 감정을 자아냈다.
  나는 그 독하다는 창을 연달아 벌컥벌컥 마셨다.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재울 수 없는 갈증이 격렬히 용솟음치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 나는 치기만만한 공상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내 모든 걸 다 버리고 그냥 여기 주저앉아 저 아가씨랑 살림을 차리고 살까? 그런 터무니없는 몽상에 빠져든 것이 처음도 아니다. 베트남의 버려진 바닷가 해변마을에서, 캄보디아의 허름한 시장골목 국밥집에서, 나는 때때로 그런 욕망에 시달려왔다. 물론 자신이 살고 있는 환경에 대하여 넌덜머리를 내고 있는 여행자들이 전혀 무관한 이국땅의 소녀들을 바라보며 흔히 느끼는 무책임하고도 파렴치한 공상에 불과하다. 용기 없는 자에게 공상은 그저 공상일 뿐이다. 그러나 장은 달랐다. 우리는 <히말라야의 아들>을 보며 이 낭만적이되 무책임한 공상이 현실화됐을 때 실제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간접체험할 수 있다.

  프랑스인 트레커와 남체의 셰르파니가 맺은 사랑

  장은 예술적 재능이 뛰어나지만 잠시도 한곳에 머무르지 못하고 전세계를 떠돌아 다니는 방랑자다. 시나 소설 혹은 시나리오를 쓴답시고 긁적대다가도 매혹적인 여자가 나타나면 모두 다 때려치우고 잠적해버리는가 하면, 그린피스의 자원봉사자로 체르노빌 사태에 항의시위를 벌이다가도 금세 지구 반대편으로 달려가 킬리만자로에 올라가 있는 그런 인물이다. 1985년에 장은 26세의 청년으로서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 트레킹에 나섰다가 그만 왼쪽 발목을 다쳐 남체에 머무르게 된다. 그때 장이 머물던 롯지에서 그를 치료하다가 운명적인 사랑에 빠져든 16세의 아리따운 셰르파니가 카미다.
  소설의 현재 시점은 1996년이다. 카미가 낳아 기른 아들 히마는 벌써 10살이 되었지만, 장은 그 사실을 전혀 모르는채 불과 3주전에 죽었다. 천하의 방랑자답게 이집트 카이로의 한 호텔에서 불특정 다수에 대한 폭탄테러로 뜽금없이 세상을 떠난 것이다. 장의 아들이 남체에서 자라고 있다는 사실을 전해들은 사람은 알렉상드르인데, 그는 장의 5년 연하 동생으로서 이 소설의 화자이기도 하다. 알렉상드르는 장과는 정반대의 캐릭터를 가진 인물로서 중학교 수학선생으로 근근히 살아가는 전형적인 소시민인데, 최근에 겪은 이혼과 급작스러운 형의 죽음 때문에 정신적인 공황상태에 빠져있다. <히말라야의 아들>은 알렉상드르가 형의 유골단지를 안고 그의 아들 히마가 살고 있다는 남체를 향해 가는 과정을 그린 여행소설이다.  
  소설의 화자인 알렉상드르를 따라 남체로 가는 발걸음은 힘겹다. 가장 일반적인 행로는 카트만두에서 국내선 경비행기를 타고 루클라까지 가는 것인데, 알렉상드르에게는 이 행로가 허락되지 않는다. 최근에 있었던 경비행기 추락사고로 이 국내선 항로가 일시폐쇄되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그는 하염없이 먼 길을 오직 자신의 두 발로 에둘러 걸어가야 한다. 히말라야 트레킹은커녕 국내여행조차 변변히 해본 적이 없는 책상물림 꽁생원에게는 지옥과도 같은 고행길이 될 수 밖에 없다. 더구나 그의 배낭 속에는 평생 동안 자신을 콤플렉스 속에 시달리도록 만든 형의 유골이 들어있지 않은가?
  발바닥은 물집으로 시달리고 가슴은 고소증세로 터질 것만 같은 그 여행은 그러나 알렉상드르의 삶에 본질적인 변화를 가져온다. 뜻하지 않게도 진정한 삶과 행복의 의미를 되묻고 숙고하게 만드는 자기 성찰의 시간을 갖게된 것이다. 게다가 여행 도중 마주치는 모든 트레커들은 알렉상드르를 장으로 오인하여 난감한 상황을 연출한다. 알렉상드르는 평생 이해할 수 없었던 형의 삶을 대리체험하며 그 속으로 깊숙히 빨려들어가는 희한한 존재의 전이를 경험하게되는 것이다. 이 여행 도중 알렉상드르의 눈에 비친 클라이머 및 트레커들에 대한 묘사가 대단히 냉소적이면서도 인상적이다.
  “그들은 마치 자신들이 최초의 탐험가인 것처럼 행동했다. 마치 산이 처녀라는 듯이 말이다. 그러나 산은 수많은 방문객과 기념물로 오염되어 있다. 그들은 카메라로 에펠탑이나 생마르크 광장을 찍는 사람들과 다를 바 없는 것이다.”
  때로는 국외자가 더 단순한 진실을 목도하는 법이다. 상습적인 트레커들에게는 가슴 찔리는 지적이 아닐 수 없다. <히말라야의 아들>에서 묘사된 트레킹의 풍경들은 대단히 리얼하다. 수 차례에 걸쳐 이곳에 다녀갔을 것임에 분명한 자크 란츠만은 도코․가트․참파․사두․티카․쿠크리․사랑기․초르템․탕가․도르제 등 이곳 사람들의 일상 깊숙히 파고 들어있는 토속적인 사물들을 능수능란하게 인용하며 독자들을 히말라야 산 속 깊숙히로 끌어들인다.
  여성트레커 셜리와 짧은 하룻밤을 보내고 동네 꼬마들이 형의 유골단지로 축구를 하는 바람에 뼛가루들을 몽땅 잃어버리는 등 갖은 우여곡절을 다 겪은 끝에 남체에 도착한 알렉상드르는 카미와 마주치자마자 전율을 느낀다. 형인 장이 그랬듯 한눈에 사랑에 빠져버린 것이다. 더욱 고약한 일은 카미마저 알렉상드르를 장으로 오인하고 그를 기꺼이 받아들이려 한다는 점이다. 도대체 이 행복하되 기만적인 존재의 이전에 대하여 어떻게 반응해야 될 것인가? 알렉상드르가 실존의 위기에 처해 고뇌하고 있을 때 드디어 문제의 꼬마 히마가 들이닥친다. 붉은 머리에 단단한 코 그리고 적갈색 주근깨가 귀여운 이 꼬마는 야크의 방목장에서 이제 막 돌아오는 참이었다. 그런데 이 매력적인 꼬마가 무려 10년만에야 나타난 아빠(로 오인된 사람)에게 던진 첫인사가 걸작이다.
  “아이구, 되게 오래 걸려서 왔네요! 어디 한번 일어나 봐요! 얼마나 키가 큰지 한번 보게 말예요!”

  셰르파족의 성과 사랑 그리고 생활과 사상

  소설의 주무대는 이제 남체에 있는 카미의 롯지로 집중된다. 그곳에서의 첫날밤 무슨 일이 벌어졌던가? 히마는 무책임한 서양인 아빠를 엄마의 방에 집어넣어 동침하도록 권한다. 카미에게는 현재 버젓이 남편이 존재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알렉상드르는 그 사실을 알고 혼비백산한다. 히마는 그러나 도통한 구도자처럼 싱글싱글 웃을 뿐이다. 도대체 어떻게 해서 이런 일이 가능할까? <히말라야의 아들>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바로 이 지점이다. 이 소설은 우리가 몰랐던 셰르파족의 성과 사랑 그리고 생활과 사상을 구체적인 형상언어로 세밀하게 그려낸다.
  장과 카미는 서로를 사랑했다. 아이가 태어난 것은 그들이 정사를 나누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셰르파들의 사회에서 그것은 “수놈 야크가 암놈 야크와 짝짓기를 하듯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 문제는 임신한 다음이다. 여자는 남자에게 그 사실을 통고한다. 남자가 기꺼이 아이를 기르겠다는 의사를 밝히면 결혼하면 된다. 하지만 거부하면? 간단하다. 여자와 그녀의 가족들에게 사과하고 벌금을 내면 된다(소설 속에서 카미는 프랑스로 돌아간 장에게 임신사실을 통고했지만, 장은 그 소식을 접하지 못했다).
  그 결과 카미는 미혼모가 됐다. 하지만 그 사실조차 셰르파들의 사회에서는 별반 문제가 되지 않는다. 동네의 총각들은 히마가 딸린 카미에게 적극적으로 구애한다. 결국 파쌍이 카미와 결혼하여 히마의 아버지가 된다. 셰르파들의 사회에서는 ‘아이를 낳게 해준’ 남자가 아니라 ‘아이를 길러준’ 남자가 아버지로 인정된다. 파쌍이 셰르파로서 히말라야 등반 중 사망하자 이번에는 그의 동생 칼덴이 카미의 남편이 된다. 셰르파들에게는 형사취수를 중심으로 하는 일처다부제의 전통이 남아있는 것이다. 어안이 벙벙해진 알렉상드르에게 카미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한다.
  “그게 삶의 법칙이에요. 동족 간의 유대를 강화하고 종족의 영속성을 보장하기 위한 우리 나름의 방법이죠.”
  한 마디로 모계 중심의 결혼제도다. 이런 제도 속에서 셰르파족 특유의 건강성을 읽어낸다면 나만의 억지인가? 내친 김에 그들의 결혼풍속도를 좀더 세밀히 들여다보자. 그들에게는 ‘소뎀’이라 불리우는 독특한 약혼신청제도가 있다. 진짜 약혼식은 ‘뎀창’인데, 이 소뎀과 뎀창 사이에는 허락된 방종이 존재한다. 즉 이 기간 동안 남자들은 다른 여자들과 마음껏 정사를 나누고, 여자들 역시 마찬가지다. 그들의 표현을 빌면 “자기 여자(남자)의 맛을 더욱더 좋아하게 만들기 위해서”이다. 뎀창 때에는 마을사람들과 라마승을 초대해서 재산이 바닥날 때까지 먹고 마신다.
  하지만 뎀창을 지냈다해서 서로를 배타적으로 소유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진짜 결혼식인 ‘기옌-쿠뎁’을 거행하기 전까지 그들은 여전히 자유롭다. 서로 상대방 부모의 집에 가서 마음껏 성관계를 갖는 동시에 제3의 남자(여자)와도 여전히 즐기는 것이다. 이 모든 과정을 통과한 다음에도 여전히 서로를 평생의 반려로 맞겠다면 그제서야 정식결혼식인 기옌-쿠뎁을 거행한다. 요즈음 우리 사회에서 첨단의 성풍속처럼 떠받들고 있는 ‘미혼동거’를 그들은 오랜 전통에 따라 아예 부모의 집에서 맘껏 누리고 있는 셈이다.
  카미와 사랑에 빠져버린 알렉상드르는 엄청난 문화적 충격을 느끼면서도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가 이렇게 묻는다.
  “그런 전통이 있다면, 만약 내가 죽었을 때, 내 동생과도 결혼할 수 있겠소?”
  카미는 특유의 영리한 눈빛을 빛내더니 이내 대답한다.
  “감정적으로는 쉽지 않겠지만 적어도 이성적으로는 그렇지요.”
  알렉상드르는 그 말에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그대로 남체에 주저앉는다. 그러나 그의 삶을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리는 것은 단순히 셰르파 특유의 성풍속도나 결혼제도가 아니다. 건강한 히말라야의 아들 히마와 함께 하는 나날의 삶은 그에게 이전까지는 꿈도 꾸지 못했을 새로운 차원의 행복을 선사한다. 천진난만한 꼬마의 모습과 세상살이에 도통한 성자의 모습을 동시에 구현하고 있는 히마의 존재는 단연 이 소설의 압권이다. 우리는 알렉상드르와 더불어 히마로부터 셰르파족 특유의 사상과 지혜를 전수받으며 오랫동안 꿈꾸어왔던 이상향으로 이어지는 좁지만 휘황한 오솔길을 산책하게 된다.
  <히말라야의 아들>을 과연 산악문학으로 분류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이 소설에는 등반과정이 전혀 묘사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히말라야의 아들>은 히말라야의 문학이다. 이 몽환적인 소설을 읽고 있노라면 가슴 속 깊은 곳에서부터 셰르파족에 대한 존경과 찬탄이 절로 인다. <히말라야의 아들>을 보면 우리가 트레킹이나 등반을 함께 해온 셰르파들이 왜 그토록 온화하면서도 강건한 기상을 가지고 있는지, 대책 없는 연정을 불러일으키던 셰르파니들이 왜 그토록 신비하면서도 본원적인 흡인력을 가지고 있는지를 속속들이 이해하게 된다. 이 소설의 숨겨진 배경이자 진정한 주인공은 결국 히말라야 그 자체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카미와 히마로 형상화된 건강한 사랑과 삶을 잉태하고 길러낸 것은 결국 히말라야가 아닌가.  

  시오니즘과 오리엔탈리즘을 넘어서는 진실

  <히말라야의 아들>에서 결함을 들추어내는 것은 쉬운 일이다. 역자인 김정란이 장문의 해설에서 밝혔듯 이따금씩 유태인을 세상의 중심으로 놓고 보는 시오니즘과 동양에 대한 표피적 찬양으로 가득찬 오리엔탈리즘이 눈쌀을 찌푸리게 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히말라야의 아들>은 아름다운 소설이다. 이 소설에는 우리 모두가 쫓겨나온 이상향에 대한 그리움과 진정한 삶과 행복에 대한 건강한 진실이 아름답게 응축되어 있다.
  작가인 자크 란츠만은 유태계 프랑스인으로서 ‘신발창에 바람이 들어간 사나이’다. 12살 때 집에서 쫓겨난 이래 온갖 허드렛일을 전전하며 지구의 이곳저곳을 싸돌아다닌 방랑자다. 요컨데 그는 알렉상드르가 아니라 장에 가까운 인물인 것이다. 체험 위에 기초한 탄탄한 사실성과 마구 휘갈겨쓴듯한 스피디한 문체로 유명한 그는 이 작품 <히말라야의 아들>로 1997년 프랑스의 콩쿠르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불문학박사이며 시인이자 문학평론가로 유명한 김정란의 번역솜씨 또한 일품이어서 일단 책을 펼쳐들면 마지막 페이지를 넘길 때까지 속절없이 빨려들고 만다.
  히말라야를 사랑하는 사람에게 <히말라야의 아들>의 독서는 즐거운 체험이다. 나는 언제나 클라이머보다는 셰르파가 히말라야를 속 깊히 이해하고 있으리라고 생각해왔다. <히말라야의 아들>은 셰르파의 세계 속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셰르파의 세계를 통하여 새롭게 마주하는 히말라야는 더없이 원숙하고 위대하다. 그것은 여행자의 무책임한 춘정 따위로는 감히 넘겨짚어볼 수도 없는 완결된 세계다. 그렇다면 이제 매혹적인 셰르파니에게 쏘아보내곤 하던 그 무책임한 욕망의 눈빛은 제풀에 사그라들 것인가? 그렇지 않다. <히말라야의 아들>을 읽고 나면 오히려 그 눈빛은 더욱 본원적인 그리움으로 갈증을 더해갈 것이다. 지금이라도 당장 히말라야로 달려가 그 눈 덮힌 장엄한 능선 위를 하염없이 걷고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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