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심산 등록일: 2025-09-16 13:01:55 IP ADRESS: *.38.164.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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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천적 여행주의자의 내면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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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국 산악소설, [세상 밖으로 날아가다], 바른북스, 2025

 

심산(작가)

 

최영국과의 인연을 되짚어보자니 이 또한 아마득하다. 그와 함께했던 산행과 여행의 나날들을 손꼽아보자니 벌써 30년도 훌쩍 넘는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며 입가에 미소를 맴돌게 한다. 따져보면 내 인생의 절반을 그와 함께 보낸 셈이다. 그와 함께 산에 오르고 길을 걷고 웃고 떠들고 마시며 보냈던 나날들 중에서 유쾌하지 않았던 순간이 없다. 그는 내가 알고 있는 가장 유쾌한 사내다.

 

하지만 최영국을 그저 가장 유쾌한 사내라고만 정의한다면 장님 코끼리 만지기에도 못 미치는 직무유기에 해당한다. 그를 한마디로 정의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는 매우 육체적이고, 실용적이며, 현세적인 인간이다. 그는 산악인이며 여행가이며 사업가이기도 한데, 이 모두를 꿰뚫는 키워드는 결국 여행이 아닌가 싶다. 남들이 보기에는 그저 놀러 다니는것처럼 보이는 이 여행을 그는 참으로 치밀하게 계획하고 집요하게 실행에 옮긴다. 그는 낙천적 여행주의자다.

 

그는 또한 뛰어난 요리사이기도 하다. 나는 그가 히말라야 트레킹에서 손수 만들어주었던 냉면과 잡채의 맛을 잊지 못한다. 그가 알프스 트레킹에서 담궈줬던 김치와 황기백숙의 맛은 또 어떤가. 그는 항상 최악의 조건에서도 놀라운 솔루션을 찾아내어 최선의 결과를 만들어낸다. 낙천적이고 유쾌한 사람만이 해낼 수 있는 삶의 예술이다. 덕분에 그와의 동행은 언제나 즐거웠고 유쾌했으며 행복했다. 나는 그를 같은 핏줄이 흐르는 도반(道伴), 곧 나의 친형처럼 여기며, 그와의 인연에 대하여 언제나 감사하고 있다.

 

최영국이 한국봔트클럽 창립 50주년이자 자신의 고희를 기념하고자 [세상 밖으로 날아가다]라는 산악소설을 펴냈다. 저자는 누군가는 이 책을 여행기로 읽을 것이고, 누군가는 소설로 느낄 것이라고 했다. 밀란 쿤데라가 말하는 전적으로 소설적인 에세이 혹은 전적으로 에세이적인 소설정도에 해당하리라. 게다가 등장인물들 중 김민우를 제외하고는 모두들 실명으로 등장하는 실명소설인지라, 그들의 대부분을 알고 있는 나로서는 읽는 감회가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귀에 익숙한 그들의 목소리가 실시간으로 음성지원되어 읽는 내내 피식 웃다가 이따금씩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희한한 독서체험을 했다.

 

이 책의 내용 중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부터가 상상인가를 따지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 최영국이라는 인간 자체가 방외인(方外人)이니, 이 책은 방외인의 문학이다. 아니 어쩌면 소설 혹은 문학이라는 규정의 방외(方外)로 나아가버렸으니 굳이 문학이라 부르지 않아도 무방하다. 최영국 역시 방내(方內)의 규정이나 평가 따위에는 전혀 개의치 않으리라 확신한다. 그런 뜻에서 이 책의 제목은 그 내용들을 간결하게 표상하고 있는 셈이다. 세상 밖으로 날아가다.

 

[세상 밖으로 날아가다]18일 동안 원시 자연 속의 길 359Km를 걷는 존뮤어 트레일을 중심에 놓고 어린 시절에 만났던 농아 산악인 김민우와의 인연과 이별에 대하여 회고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도봉산 선인봉의 표범길은 그와 처음 만나고 사후 그를 추억하는 수미상관의 바윗길로 등장한다. 책을 다 읽고 나면 뚝섬의 매미소리가 이명(耳鳴)처럼 귓전을 감돌아 술잔을 기울이게 만든다. 이 길고 굴곡진 이야기를 어떻게 받아들이는가는 온전히 개별 독자들의 몫이다.

 

나로서는 내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최영국의 내면을 선입견 없이 들여다볼 수 있는 뜻밖의 기회였다. 언제나 낙천적이고 유쾌하게만 보였던 그의 내면이 이토록 섬세하고 다정다감하였다니. 그의 호탕한 웃음소리 뒤에 숨겨져 잘 보이지 않았던 내면의 풍경이 가끔씩은 이렇게 허전하고 쓸쓸하였다니. 그런 뜻에서 나는 이 책 [세상 밖으로 날아가다]를 한 낙천적 여행주의자의 은밀한 내면일기로 받아들이며 소중하게 읽고 또 곱씹는다.

 

최영국은 이 책의 글들을 탈고하고 출간하는 과정에서 가장 소중했던 두 친구를 잃었다. 이동민과 김강회. 나 역시 잘 알고 사랑했던 형들이라 이 자리를 빌어 그들의 명복을 빈다. 나 또한 최영국과 마찬가지로 안다. 우리가 그들보다 오래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단지 운이 좋아서였을 뿐이라는 것을. 그리고 소망한다. 최영국은 한국봔트클럽 창립 50주년과 자신의 고희를 넘어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그 호탕한 웃음소리를 오래오래 우리에게 들려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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