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06-01-09 11:42:34 IP ADRESS: *.16.20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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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에 잠기는 가을날의 산책로

내원사-칼바위능선-보국문-대성문-형제봉능선
 


  굳이 릴케의 시귀를 빌리지 않더라도 지난 여름은 위대했다. 땡볕 더위의 기승 못지 않게 장마비도 원없이 내렸고 별의별 희한한 이름의 태풍들이 줄기차게 이 나라의 산하를 뒤흔들었다. 이재민이나 농민들에게는 죄송스러운 표현이 되겠지만 한여름의 태풍에는 뭔가 화끈한 맛이 있다. 어쩌면 그것은 대자연의 섭리와 순환상 반드시 필요한 요소인지도 모른다. 레포츠에 미친 못 말리는 사내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폭풍 속으로>를 보면 서퍼 그룹의 리더 보디사트바(菩薩)의 명대사가 나온다. 대자연은 “주기적으로 스스로를 정화하기 위해” 그리고 “기고만장한 인간의 나약함을 일깨워주기 위해” 폭풍과 해일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추석 연휴의 끄트머리에 맞물렸던 태풍 사오마이가 휩쓸고간 산하는 더 없이 깨끗하다. 바위는 세탁솔로 벅벅 밀은 듯 하얘졌고 녹음은 낮게 드리워졌던 스모그들을 걷어내 더욱 푸르르다. 아침 저녁으로 불어오는 바람은 어느덧 가을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발치에서 올려다보는 북한산은 여전히 푸르르기만 하다. 위대했던 여름에게 작별을 고하고 다가오는 가을에게 눈인사를 보내려는 오늘의 산행은 차분한 사색을 도모할 수 있는 평탄한 산책로로 택했다.
정릉 기점의 들머리는 옛 청수장
  정릉에서 시작하는 산행의 기점으로는 의례히 청수장을 택하기 마련이다. 지금은 사라져버렸지만 청수장은 과거 서울 시내에서도 몇 손가락 안에 꼽히던 기품 있는 여관이자 음식점이어서 나 역시 여러번 이곳의 신세를 진 적이 있다. 소설이나 시나리오를 쓰다가 막바지에 이르면 이곳으로 원고를 싸들고 들어와 열흘이고 보름이고 죽치면서 마무리작업에 매달리곤 했던 것이다. 밤새도록 귓전을 맑게 해주던 정릉계곡의 맑은 물소리와 단아하나 맛깔스러운 음식들로 가득했던 한정식 식사가 이제는 추억 속의 명물로만 남아있게 되었다니 새삼 그리운 마음에 아쉬움만 깃든다.
예전의 등산로와 잇달아 있던 청수장의 담벼락은 이제 허물어졌다. 지난 해 이곳을 허문다길래 또 그 볼썽 사나운 러브호텔이나 아파트가 들어서는가 싶어 영 입맛이 썼었는데 다행히도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유럽풍의 카페를 연상시키는 본관만 남겨두고 부속 건물들은 대개 다 허물었는데 아담하게 남아있는 정원들이 정릉 사람들의 휴식공간으로 이용되고 있는 듯 하다. 대신 청수장의 대문이 있던 곳에 ‘북한산 국립공원’이라고 새긴 듬직한 바위 하나가 새로 세워져 산을 찾는 사람들에게 반가운 이정표의 구실을 한다.
  정릉매표소를 지나 10여분쯤을 걷다보면 길이 여러 갈래로 갈린다. 제일 왼편은 형제봉 동(東)능선으로 붙는 길이고, 그 옆은 영추사-삼봉사 계곡을 따라 일선사로 이어지는 길, 다시 그 옆이 넓적바위를 지나 보국문으로 붙는 정릉계곡길이고, 제일 오른편이 내원사를 거쳐 칼바위능선으로 이르는 길이다. 우리는 오늘 제일 오른편 길을 택한다. 위에 열거한 네 가지의 코스 중에서 가장 시계가 좋은 길이다. 갈림길에서 시멘트길을 따라 오른편으로 휘어지니 양지 바른 곳에 자리잡은 북한산국립공원 동부관리사무소가 나온다. 내 기억이 맞다면 예전에 ‘스타풀장’이 있던 곳이다. 그 풀장의 운영에 우리 집이 관계했었던 인연으로 초등학교 시절 뻔질나게도 드나들며 물장구를 치느라 하루 해를 다 보내곤 했었는데 그 역시 이제는 추억 속의 흑백사진으로만 남아있다.
  내원사로 오르는 길은 동부관리사무소의 정문에서 왼편으로 비껴나 있다. 이 역시 예전에는 산구비를 멋지게 휘돌아 감는 호젓한 흙길이었는데 이제는 승용차를 끌고도 올라갈 수 있는 넓다란 돌길로 변하고 말았다. 틀림없이 내원사 중창공사 때문일 것이다. 과연 절을 크게 짓기 위해서라면 산을 제멋대로 깎아내어 길을 내고 그 위에 시멘트를 덧칠해놓아도 좋은 것일까? 햇살 눈부신 초가을날 묵묵히 발걸음을 옮겨놓으며 문득 상념에 잠긴다. 어째서 아름답고 정취 있는 것들은 하나 둘씩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져가는 것일까? 무엇을 위한 변화고 누구를 위한 발전인가? 과연 그것이 발전이기는 한가?
  내원사는, 현재 중창공사가 한창 진행중이어서 그렇기도 하지만, 볼품 없는 절이다. 절 앞의 연혁게시판에는 “고려시대의 보조국사가 창건하였다”고 쓰여져 있지만 이 역시 그다지 믿을 바가 못된다. 북한산과 관련된 그 어느 고서를 들춰보아도 내원사에 대한 기록은 없다. 그저 새로 지은 축대 위의 종루에 올라가 잠시 땀을 식히고 이내 발걸음을 떼어놓으면 그뿐이다. 우리는 내원사의 오른편 끝을 휘돌아가는 오솔길로 붙어 내처 걷는다. 15분 정도 꽤 가파른 경사의 돌계단길을 계속 오르면 곧 하늘과 맞닿은 능선 위로 올라선다. 오늘 산행을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툭 트인 시야를 확보한다. 여기서는 강북구와 도봉구 일대가 한 눈에 들어오며 저 멀리 도봉산의 모습도 또렷하게 다가오는데 불어오는 가을바람은 더 없이 시원하다.  

  칼바위능선의 흉물스러운 철제사다리

  차가운 커피를 마시며 잠시 휴식을 취한 일행은 다시 배낭을 꾸린다. 이곳은 여러갈래로 길이 갈라져 이정표가 난무하는 곳이다. 오른편은 삼성암을 거쳐 빨래골 내지 화계사로 내려가는 길이고, 능선 너머로 넘어서면 조병옥 박사묘지를 지나 냉골로 빠진다. 칼바위능선으로 붙기 위해선 왼편으로 올라서야 한다. 힘들 것도 없고 위험한 곳도 없는 호젓한 산책로를 20분 정도 걸으면 이내 고도가 툭 떨어지며 칼바위능선의 위용이 맞은편으로 바투 다가온다. 그 너머로 산성주능선은 물론이고 노적봉과 만경대 그리고 백운대와 인수봉이 한껏 자태를 뽐내며 우뚝 서 있는 모습이 빤히 올려다 보인다. 정릉 기점의 등산로 중 가장 멋진 시야가 펼쳐지는 곳이다.  
  칼바위능선이 제법 뾰죽한 암릉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름만큼 험악(?)하지는 않다. 완전한 초보자만 아니라면 별다른 장비 없이도 수월하게 오르내릴 수 있는 평범한 암릉인 것이다. 게다가 북한산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암릉들이 그러하듯 평탄한 우회로까지 번듯하게 나 있어 애초부터 위험요소와는 거리가 멀다. 그런데 이 아름다운 등산로가 최근에는 흉물스럽게 변하고 말았다. 쇠기둥을 때려박고 철제 구조물을 세워 인공계단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이미 여론의 집중포화를 받고 있는 공사인지라 짐작은 했었지만 직접 그 공사현장을 눈으로 보니 일행들 모두의 입이 쩍 벌어지며 욕이 절로 튀어나온다. 한 마디로 어이가 없다.
  칼바위능선은 그 자체가 천연 계단이다. 손 잡을 데와 발 디딜 데가 너무도 확실한 구간인 것이다. 그런데 이 구간을 위험하다고 하여 쇠기둥을 때려박고 철제사다리를 만들다니 그 발상 자체가 기막히다. 완전한 예산낭비요 자연파괴이며 몰상식한 짓거리인 것이다. 도대체 국립공원관리공단은 산악공원을 일본식 정원으로 만들려고 하는가? 이 어이없는 공사에 무려 37억원을 배정해놓았다고 하는데 그게 도대체 누구 호주머니에서 나온 돈인가? 바로 북한산을 사랑하고 즐겨찾는 우리들이 낸 돈이다. 따져볼수록 분노가 치민다. 더욱 화를 돋우는 것은 여론에 밀려 일시 중단된채 그대로 방치되어 있는 철제 구조물들의 흉악한 몰골이다. 몸체가 뻥 뚫린채 허공을 그러잡고 있는 그 쓰레기 같은 방해물 때문에 발디딜 곳조차 마땅치 않다. 당장 철거하지 않으면 오히려 사고를 불러일으킬 것이 틀림없다.
  우리는 흙을 밟고 바위를 타기 위하여 산에 온다. 등반역량에 따라 조금 어려운 코스를 택할 수도 있고 쉬운 코스를 택할 수도 있다. 만약 조금이라도 어려운 코스는 모두 다 위험하다고 판단하여 인공계단을 만든다면 결국엔 인수봉에까지도 철제사다리를 설치해야 한다는 논리가 아닌가? 짜증이 치민 일행은 결국 철제 사다리가 놓여있는 구간을 피하여 더욱 절벽 쪽으로 달라붙어 아예 새 길을 낸다. 약간의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결국 나의 두 팔과 두 다리로 오르는 것만이 등산의 본질이요 목적이다. 우리는 규격화된 계단을 따라 안전하게 발길을 옮겨놓기 위하여 산에 오르는 것이 아닌 것이다.

  북한산성을 쌓은 사람들

  칼바위능선이 끝나는 곳에서 산성 주능선까지는 지척의 거리다. 주능선에 올라붙으니 세속의 번뇌와 불쾌함을 잠시나마 잊게 해주는 시원한 산바람이 우리를 맞는다. 여기서 왼쪽으로 돌아 야트막한 고개를 하나 타넘으면 바로 보국문(輔國門, 567m). 북한산성에 만들어져 있는 7개의 암문 중의 하나인데 본래는 동암문이라 불러야 옳다. 보국문이라는 이름은 그 아래쪽 산성계곡 안에 있던 보국사라는 절 때문에 생긴 것으로 보인다.
  암문이건 대문이건 산성에 속해 있는 모든 문들은 그 자체로 천연 에어컨이다. 그도 그럴 것이 능선 상에 위치해 있는 까닭에 산을 타고 넘는 모든 바람들이 이곳을 통과하기 때문이다. 보국문 안쪽의 서늘한 바위에 기대어 땀을 식히고 있는데 성벽에 새겨져 있는 희미한 명문(銘文)들이 눈에 띈다. 퍼뜩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 자세히 읽어보려 하지만 워낙 마모가 심하여 판독이 어렵다. 숫자도 보이고 연월도 보이는 것이 필시 그 옛날 이 문을 만든 사람들이 남겨놓은 기록임에는 틀림없다. 보국문이 금위영의 정계(定界)임을 떠올리며 찬찬히 훑어보니 제일 위의 글씨가 금(禁)자인 것 같기도 하다.
  북한산성은 총연장 12 Km가 넘는 거대한 성이다. 놀라운 사실은 이 성을 실제로 축조하는 데 걸린 시간이 불과 반년 밖에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숙종 37(1711)년 4월 3일 착수된 공역이 완료된 것은 같은 해 10월 19일. 헬리콥터나 포크레인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등산로조차 제대로 닦여져 있지 않았을 시절에 어떻게 이런 대규모의 공사를 이처럼 신속하고 완벽하게 마무리지을 수 있었을까? 해결의 열쇠는 삼군문(三軍門)과 승군(僧軍)이다. 특히 삼군문은 바로 직전에 서울 도성을 수축한 경험까지 있었으므로 계획의 수립에서 시행까지를 완벽한 통제 하에 해치울 수 있었다. <북한지>를 보면 이 공사를 위하여 삼군문에게 각기 다른 구역을 배당하여 책임지게 하였음을 알 수 있다.
  
   수문 북쪽 변두리로부터 용암봉까지의 2292보 구간은 훈련도감이 쌓았고,    용암봉 남쪽 변두리로부터 보현봉까지의 2821보 구간은 금위영이 쌓았   고, 수문 남쪽 변두리에서부터 보현봉까지의 2507보 구간은 어영청이   쌓았다(內自水門北邊至龍巖, 二千二百九十二步, 訓鍊都監所築. 自龍巖南 邊至普賢峯, 二千八百二十一步, 禁衛營所築. 自水門南邊至普賢峯, 二千五 百七步, 御營廳所築).

  그렇다면 보국문을 만든 것은 금위영이다. 금위영은 숙종 8(1682)년 정초군과 훈련별대 등을 합쳐 새롭게 창설된 중앙군영의 하나로서, 훈련도감 및 어영청과 더불어 수도 방위와 국왕 호위를 주 임무로 삼았던 특수부대이다. 아무리 특수부대원들이라고는 해도 그토록 짧은 기간 동안 이 험준한 산 위에 석성을 쌓았다면 엄청난 노력과 희생이 뒤따랐을 것이다. 이제 그들은 간 데 없고 산성만이 남았다. 다만 그들이 머물던 유영터가 대성암 아래 쪽 계곡에 남아있으며 그 옆에는 이건기비(移建記碑)가 이끼를 잔뜩 머금은채 그들의 역사를 오늘날에 전할 뿐이다.
  햇살 따사로운 가을날 새로 단장한 산성길을 따라 주능선을 걸으며 새삼스럽게 역사를 생각한다. 그 옛날 우리의 선조들은 나라를 생각하며 이 아름다운 북한산에 돌로 성을 쌓았다. 그들이 피나는 노력으로 쌓은 산성은 우리에게 고스란히 남겨져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이 되었다. 오늘 우리는 안전을 핑계로 환경을 파괴해가며 바위에 쇠말뚝을 박고 인공계단을 만든다. 우리가 후대에게 물려줄 것이라고는 과연 저 흉물스럽기 그지없는 철제 사다리뿐이란 말인가?

  경복궁과 행궁을 이어주던 대성문

  보국문에서 계속 보현봉 쪽으로 나아가며 야트막한 봉우리를 서너 개쯤 넘으면 대성문(大城門, 626m)이 자태를 드러낸다.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홍예(虹霓, 무지개처럼 생긴 반원형의 구조물) 형식의 성문만이 휑뎅그레 남아있었는데 1992년에 이르러 현재와 같이 멋진 모습으로 복원되었다. 이 문은 북한산에 있는 5개의 대문들 중에서도 규모가 가장 크고 멋지다. 대남문이 높이 11척에 폭 11척이고, 대서문이 높이 11척에 폭 13척인 데 반해, 대성문은 높이가 13척인데다가 폭이 14척이나 된다. 이유는 간단하다. 왕이 드나들던 문이었기 때문이다.
  지도를 펼쳐놓고 등고선을 짚어나가다 보면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경복궁에서 북한산성 내의 행궁으로 이동할 때 가장 수월한 길이 바로 보토현(補土峴, 현재의 북악터널 위에 있는 고개)을 넘어 형제봉 서능선을 따라 오르다가 대성문을 통과하는 길인 것이다. 대성문의 현판 글씨가 숙종의 친필로 되어 있는 것도 이러한 사실과 무관하지 않을 듯하다. 대성문의 녹슨 철대문을 슬쩍 밀어보니 기이잉 하며 중후하게 울리는 문소리가 역사 속으로의 사색을 더욱 자극한다. 문 밖의 성벽을 찬찬히 훑어보노라니 앙증맞은 담쟁이 넝쿨 옆에 명문 몇 자가 또렷이 남아있다.
  
     금영감조패장 장태흥, 석수변수 김선운(禁營監造牌將 張泰興, 石手邊首 金善云)

  금위영 소속의 패장(통솔장교)이 장태흥이었고, 석공들의 십장이 김선운이었다는 뜻이다. 300년 가까운 세월 동안 풍우에 시달렸으면서도 또렷하게 남아 있는 그들의 이름이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을 일게 한다. 그들이 쏟아부었을 눈물과 고통과 자부심이 역사 속에 또렷이 음각되어 있는 현장이다.
  대성문을 나와 하산을 시작하니 또 그놈의 인공계단이 기분을 잡친다. 봉건적인 전제군주 시대의 왕도 걸어올라왔던 길을 민주공화국 시대의 시민이 계단을 밟고 내려가는 셈이다. 대성문에서 형제봉에 이르는 길은 더 없이 고즈넉한 산책로이다. 산허리를 에돌아 유장하게 이어지는 오솔길에서 초가을의 정취가 물씬 풍겨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내면 속으로 침잠해 들어가기 좋다. 대성문 밑의 철제 인공계단과 일선사에서 닦아놓은 경운기용 시멘트길만 없다면 해탈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길이다.  
  형제봉은 작은 형제봉과 큰 형제봉(467m)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실제로는 네 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어 분명한 봉명을 적시하기가 무척 곤란한 곳이다. 그러나 봉명이 무엇이건 상관없이 전망만은 일품이다. 왼편으로는 정릉계곡이 펼쳐져 있고 오른편으로는 평창계곡이 펼쳐져 있는데 고개만 돌리면 산성주능선의 그 정겨운 봉우리들이 모두 한 눈에 들어온다. 이곳에서 내려다보는 평창동의 고급주택가는 흡사 유럽의 부촌 같다. 북한산을 갉아먹으며 똬리를 틀고 앉아 있는 모습이 흉물스러운 것도 사실이지만 시새움이 용솟음칠만큼 아름다운 것도 사실이다.
  형제봉에서 하산할 때는 계속 오른편으로 붙어야 한다. 곳곳에 이정표도 없는 갈림길이 많이 나 있는데 왼편으로 내려가면 국민대학교 쪽으로 빠져나가게 된다. 인적이 드물어 한적한 맛은 있지만 막상 지상으로 내려서면 북악터널 바로 아래라 택시를 잡아타는 것조차 쉽지 않아 난감해지기 마련이다. 그러니 북악터널이 가까워졌다 싶으면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고도를 낮추는 것이 상수다. 왕이 행차하던 길을 버리고 세속으로 돌아가는 분기점이다. 이곳에서 방향을 틀 때면 언제나 아쉽다. 기회가 닿고 여건이 허락된다면 언젠가 북악터널 위(보토현)를 건너고 북악스카이웨이의 팔각정을 끼고 돌아 삼청동 위의 북악산(342m)까지 내처 걸어보고 싶다.
  하산길의 막바지에 만나는 조그마한 암자가 구복암이다. 법상종에 속하는 절집으로서 조계종 계통의 절집과는 사뭇 분위기가 다르다. 입구에 서 있는 커다란 바위 두 개가 일주문을 대신하고 있고 대웅전이나 약사전 같은 건물이 없는 대신 용화전이니 성모전이니 하는 낯선 부속건물들이 들어서 있는데, 북두칠원성군이라는 것을 칠성각에다 모셔놓은 것으로 보아 토속신앙과 혼융된 종교형태인 듯하다. 구복암 곁을 졸졸 흐르는 시냇물을 따라 느긋하게 걸으면 이내 형제봉 매표소에 다다른다. 너무 짧은 산행이었기 때문일까? 북한산 밖으로 빠져나가기가 싫다. 나는 다시 한번 북한산을 올려다보며 마음 속의 인사말을 건넨다. 오늘 하루도 그대 품 안에서 잘 놀았소.


  교통편과 먹을 데

  정릉의 (옛)청수장을 산행기점으로 삼을 경우 시내버스 1, 3, 5-1, 16, 710번을 이용한다. 가장 가까운 지하철 역은 4호선 돈암동(성신여대입구)역이나 길음역이다. 이곳에서 내려 택시를 이용하거나 버스를 타는 것이 좋다.
평창동의 형제봉 매표소 쪽으로 하산할 경우 적당한 음식점을 찾는 것이 쉽지 않다. 값이 싸다고는 할 수 없지만 북악파크호텔 아래쪽의 육교 맞은 편에 있는 중국요리점 한성(주인 윤정로(45세), 02-394-1500)이 추천할만하다. 수타면을 전문으로 하는 집인데 주방장의 요리솜씨가 수준급이다. 입맛을 돋우는 냉채요리(2-3만원)에 시원한 맥주로 갈증을 달랜 다음 야채두부탕(1만원)에다가 독한 이과두주를 곁들이면 기분좋게 취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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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색에 잠기는 가을날의 산책로 관리자 2006-01-09 36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