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심산 등록일: 2021-04-26 20:42:55 IP ADRESS: *.38.164.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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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작정 어딘가로 떠나고 싶을 때

여행의 순간 1

 

어딘가로 떠나고 싶을 때가 있다. 이때 중요한 것은 어딘가가 아니라 떠나고 싶다는 것이다. 그럴 때마다 문득 떠오르는 사진이 있다. 혹은, 그와 역방향으로, 그 사진을 보면 문득 다 떨쳐내고 무작정 어딘가로 떠나고 싶어진다. 내게는 이 사진이 그러하다. 비록 실루엣만 보이고 인물의 표정 따위는 아예 생략되어 있지만 무심코 들여다볼 때마다 가슴이 뛴다. 오래된 트럭의 숨 가쁜 엔진소리와 머리칼을 날리고 뺨을 때리던 제주의 거친 바람결이 생생히 느껴진다.

 

제주올레가 한창 건설 중이던 2009년의 봄이었다. 외동딸 심은과 함께 제주올레를 걸었다. 그녀가 입고 있는 작은 티셔츠의 문구도 눈에 띈다. “바위에 오르자(Go Climb A Rock).” 1996년에 방문했던 미국 요세미티 등산학교(Yosemite Mountaineering School)의 공식 캐치프레이즈이자 공식 티셔츠다. 내가 요세미티로 거벽등반(Big Wall Climbing)을 떠났을 때 그 아이는 겨우 두 살이었다. 나는 언젠가 그 아이가 성장하면 이 티셔츠를 입히고 함께 엘 캐피탄(El Capitan)에 오르리라는 야무진 꿈을 꾸었더랬다.

 

불행히도 나와 미국과의 인연은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딸아이는 성장하여 이제 저 티셔츠는 몸에 맞지 않는다. 그저 이 사진만이 남아 떠나고 싶은 욕망을 되새김질해줄 뿐이다. 하지만 삶이란 정말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게임이다. 올여름에 딸은 LA로 떠난다. 그렇다면 조만간 그 아이와 함께 샌프란시스코의 국립공원인 요세미티에 갈 수도 있지 않을까? 꼭 요세미티가 아니면 또 어떠한가? 그저 무작정 어딘가로 떠나고 싶을 뿐이다. 그 여정을 딸과 함께 한다면 더 없는 행운일 테고. 이 사진을 들여다보며 그런 생각을 한다.

 

2009530일 김진석이 찍은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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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산

2021.04.26 2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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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별로 할 일도 없어서 예전의 사진들을 뒤적여보다가 문득 짤막한 사진산문(Photo Essay)이나 써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런 형식도 없고, 그냥 매우 편안하고, 어쩌면 별다른 의미조차 없을지도 모르는. 내가 나를 위해 쓰는 글이고, 누군가 공감해준다면 다행이고. 이 시리즈의 제목을 놓고 삶의 한 순간여행의 순간사이에서 잠시 고민했으나 삶이 곧 여행이기도 하니 <여행의 순간>으로 정했다. 어디서 청탁 받고 쓰는 글도 아니고 원고료를 받는 글도 아니니 그저 아무 때나 제멋대로 올릴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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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산

2021.04.26 2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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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멋진 사진의 비하인드 스토리. 나와 딸은 트럭 뒷칸의 앞에 서서 신나게 달렸으나, 정작 이 사진을 찍은 김진석과 백동진(당시 심산스쿨 홈페이지 관리자)은 트럭 뒷칸의 뒤에 쪼그리고 앉아 너무 괴로워했다(ㅎㅎ). 같은 날 내가 찍은 사진이다.

P1200794A.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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