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심산 등록일: 2006-04-29 16:38:33 IP ADRESS: *.237.8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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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에 붙어 봄을 찬양하다

 
엊그제 바위를 하고 왔다. 암벽등반을 했다는 소리다. 황사 때문에 뿌옇던 시야가 참으로 반가왔던 봄의 단비 덕분에 모처럼 해맑게 개인 날이었다. 인수봉에 오르다 문득 뒤돌아봤을 때 발 아래 펼쳐져 있던 서울의 풍경은 가슴 저리게 정겨웠다. 우리가 매일 매일의 세끼 밥상을 위해 아귀다툼을 벌이며 살아가고 있는 저 일상의 전쟁터가 과연 이토록 아름다운 도시였던가 하는 착각마저 들 정도였다. 햇살은 따사로왔고 바람은 부드러웠으며 등반은 멋졌다. 살아있다는 것이 새삼 행복하게 느껴지는 완벽한 하루였다.


계절의 변화에 가장 민감한 부류들 중의 하나가 바로 산사람이다. 녹음은 짙푸른데 바위가 뜨거워 살을 데일 것 같으면 여름이다. 등반 중에 흘린 땀이 문득 서늘하게 느껴지면 가을이 온 거다. 바위는 차가운데 아직 얼음이 얼지 않았으면 겨울의 초입이다. 그리고 짱짱한 얼음이 시퍼런 속살을 드러내며 우리를 유혹하는 것은 한겨울이다. 지난 겨울은 무료하기 짝이 없었다. 이상난동 탓에 빙폭이 형성되지 않아 아이스바일을 애꿎은 허공에 휘두르며 짜릿한 빙벽등반을 고대해온 산사람들은 야속한 눈길로 하늘만 쳐다봐야 했다.


그러나 겨울은 가고 봄이 온다. 정한 이치다. 등산화에 밟히는 흙의 감촉이 부드럽고 동공에 맺히는 산록이 온통 푸른 빛으로 물들었으니 누가 뭐래도 봄이다. 산사람들은 봄을 바위에서 맞는다. 처음 손을 대면 서늘한 바위가 차츰 속 깊은 온기를 전해올 때면 우리는 잊었던 그리움이 문득 되살아온 듯 세포 하나 하나마다 전율을 느끼며 바위에 달라붙는다. 기약없이 헤어졌던 연인과 거짓말처럼 다시 만나 몸을 섞는다해도 이보다 더 행복할 순 없다. 얼음이 풀리기 시작하는 소리가 들릴 때부터 일찌감치 산사람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것이 바로 한해를 시작하는 첫 번째 봄바위의 감촉이다.


산악인 겸 작가인 박인식은 암벽등반에서 흔히 쓰이는 "바위를 한다"는 표현을 파고들어 유머러스한 해석을 내린 바 있다. 바위를 해? 뭘 한다는 거지? 박인식은 "바위를 한다"라고 할 때의 그 "한다"라는 동사가 실은 "섹스를 한다"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지적했다. 얼핏 듣기엔 황당한 소리 같지만 실제로 "바위를 하는" 인간들은 내심 고개를 끄덕거리며 설핏 얼굴을 붉힌다. 비밀로 간직하고 싶었던 가장 내밀한 욕망을 들켜버린듯한 심정이 되는 것이다. 실제로 산사람들은 가끔씩 그런 농담을 주고 받는다. "한번 바위맛이 들어봐, 섹스보다 더 좋아!"


바위를 한다는 것은 흔히 생각하듯 '정복'과는 거리가 멀다. 좁쌀만한 홀드에 의지하여 몸을 일으켜 세울 때, 그것마저 찾을 수 없어 오직 암벽화의 마찰력 하나만을 믿고 체중을 실어버릴 때, 그것은 바위와 '합일'하는 일이다. 제 아무리 뛰어난 암벽등반가라도 별 수 없다. 바위가 받아주지 않고 밀쳐내면 하릴없이 추락하는 수밖에. 믿을 수 없는 것이 바위요, 믿을 수밖에 없는 것이 또한 바위다. 일단 그 바위의 감촉이 주는 형언할 수 없는 쾌감에 중독되기 시작하면 사태는 심각해진다. 또다시 그 바위와 온몸을 부비며 합일되고 싶어 넋 놓고 봄바람이 불어오기만을 기다리는 것이다.


얼마 전에 산과 산서(山書)의 세계를 다룬 졸저 <심산의 마운틴 오딧세이>를 출간한 다음 연일 즐거운 비명이다. 낯 모르는 독자들로부터 책이 무척 재미 있었다는 격려성 메일들이 쏟아져 들어오는 까닭이다. 그들이 꼽는 가장 인상적이었던 대목들 중의 하나가 시인 김장호의 산시(山詩) 한 귀절이다. 김장호는 [바위타기]라는 시에서 이렇게 썼다. "바위는 믿음직하다 바위는 위험하다/손바닥을 얹으면 같이 죽자던 여인의 알몸이다." 이렇듯 바위에서 살맛[肉味]을 느끼고 바위를 하며 살 맛(삶의 기쁨)을 느끼는 것이 바로 산사람이다.


세상의 모든 바위가 다 "같이 죽자던 여인의 알몸"처럼 그립고 반가운 것은 아니다. 아마도 섬나라 특유의 바닷바람 때문인지 일본의 바위는 잘 부서지고 푸석거린다. 이런 바위에 매달려 합일의 희열을 느끼기란 곤란하다. 미국 요세미테의 바위는 지나치게 미끈거리는 품새가 꼭 겉만 번지르르한 주제에 돼먹지 않게 콧대만 높은 백인여자를 만지는 것 같다. 이에 비하면 우리나라의 바위는 더 없이 찰지고 정겹다. 한치의 헛돎이 없이 합일되어 몸을 부비고 있는 동안에도 그리움이 샘솟을 만큼 속 깊은 사랑을 전해주는 것 한국의 바위다.


돌아오는 토요일은 보름이다. 만월(滿月)의 밤에 즐기는 암벽등반을 이름하여 '야(夜)바위'라고 하는데, 바위와 나눌 수 있는 가장 은밀한 사랑의 몸짓이다. 희미한 달빛 아래 은근히 드러나는 바위의 속살을 어루만지며 한발 한발 인수봉에 오르다보면 발 아래 펼쳐져 있는 서울의 야경은 그야말로 황홀한 빛의 바다다. 보름달이 떠오르는 봄밤, 한 마리 예민한 짐승이 되어 세속의 모든 근심걱정을 털어버리고 바위에 붙을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가슴이 설렌다.

 

[중앙일보] 2004년 4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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