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김정한 등록일: 2009-12-13 15:26:40 IP ADRESS: *.47.19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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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와인버그 / 최종이론의 꿈

누구나 어린시절에 한번쯤은 과학자를 꿈꾼다.
나 역시 멋진 과학자가 되어 대단한 연구를 하는 꿈을 꾸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 내가 꾸었던 꿈은 무엇이었더라...
아마 별자리와 관련된 책을 읽으며 우주과학자를 꿈꾸었던 것 같다.
초등학교 5~6학년쯤...

블랙홀이라는, 무엇이든 그 근처를 지나가는 물체는 강력한 힘으로 빨아들여 모든 것을 먹어삼키는 괴물...
그에 반대되는 개념이라는 화이트홀...
뭔 말인지 잘 이해가 되지는 않아도 무척 궁금해하고 관심을 가졌던 기억이 난다.

아인슈타인의 멋진 콧 수염도 부러웠다. (난 이상하게 아인슈타인과 히틀러의 콧수염이 헷갈렸다. 아니 둘의 콧수염때문에 두 사람이 서로 헷갈렸던 것 같다.)

그러다가 언제부턴가 에디슨의 이야기에 발명가를 꿈꾸었고...

그런 멋진 꿈과 멀어지는 나이쯤 되어서 스티븐 호킹이라는 인간승리의 주인공이 쓴 책을 읽어보려다가 결국 중간쯤에 포기했었다. 뭔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어서...

얼마 전, 라디오 프로그램의 공개방송에 갔다가 기념품으로 받은 게 이 책이다.
받았다기 보다는 대충 골라서 잡은 것이다.
제목이 꽤 인상적이었다.

최종이론의 꿈...
최종이론이라...
지금까지 나온 모든 이론의 마지막에서 종지부를 찍는 마지막 이론이라는 말인가?

사실 이 책을 완독하게 되리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일단 한 번 시도를 해보고 도저히 안되겠으면 포기하자고 가볍게 생각하고 읽기 시작했다.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아... 물리학자도 이렇게 멋진 에세이를 쓸 수 있구나."

솔직히 이 책에 나오는 내용의 절반 이상은 내 능력으로는 완전하게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생판 들어보지도 못한 무슨 희한한 물질에 관한 이야기며...
양성자, 자외선 파국, 뮤온 입자, 약력, 강력, 뭔 베네치아노의 공식이며 초끈이론??

그런데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이런 말이 뭔 말인지 하나도 모르고 도저히 독해가 불가능할 것 같은 이 책이...
읽히기는 한다는 사실이다.
꽤나 철학적인 느낌의 우문을 놓고 작가는 나름대로 현답이라고 말을 한다.
글쎄 나한테는 그게 우문에 현답인지 현문에 우답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이 책은 1992년에 쓰였으니 꽤나 오래된 책이다. 그걸 우리나라는 이제야(2007년 12월) 번역해서 출간했으니 꽤 오래 걸린 셈이다.
그리고 이 책은 다른 목적이 있어서 쓰여진 책이다.
저자도 책 곳곳에서 언급했듯이 [초전도 초대형 충돌기 (Superconducting Super Collider, SSC)]라는 과학 프로젝트의 연구예산을 따내고 거대한 공사를 진행하기 위한 목적으로 집필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프로젝트는 결국 예산을 따내지 못했다. (그래도 작가의 인세수입은 대단할 것 같다. ㅋ)

난 이부분이 꽤 인상적이다.
우리나라도 그런가?
과학자가 연구분야의 예산을 배정받고 연구를 진행하기 위해 이런 책을 쓴다는 것이 우리나라의 풍토에서도 가능한 일일까?

아마 모르긴 몰라도 우리나라서 만일에 이런 책을 쓴다고 하면, 설령 책으로 나온다고 해도 일반 독자가 사서 본다는 걸 기대하는 것 자체가 우습지 않을까?
아니 그전에 연구예산을 위해 이런 책을 쓴다는 것 자체를 받아들일 과학자가 있기는 할까?
더 큰 문제는 그런다고 해서 과연 저쪽 여의도에서 그런 노력을 알아주기는 할까?

뭐, 이런 다분히 정치적 장벽과 도도한 과학자연하는 사람들의 행동에 의문이 생긴다.

어쩌면 우리나라는 이런 책을 쓴다는 것 자체가 전혀 불가능한 일이 되지 않을까 싶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내게 이 책은 정말 어렵다. 읽은 내용의 반의 반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 같다.
그럼에도 이 책이 내게 주는 의미는 정말 크다.

대학에서 공학이 학생들의 기피대상이 된다는 뉴스도 새삼스럽지 않고...
대학생들의 글쓰기 능력이 수준 이하이기에 대학에서 글쓰기 강좌를 앞다투어 개설한다고 하는 뉴스도 자주 접한다.

가끔 학위 논문을 들여다볼 때가 있다.
이런저런 자료를 찾기 위해 들여다 보기도 하고, 지인들의 논문을 받아서 읽어보는 기회도 가끔 있다.
그런데 사실 이런 논문을 읽다가 그냥 덮어버리고 마는 경우가 꽤 많이 생긴다.

논문은 자신의 학문적 성과물이다. 저자가 그간 배우고 익히며 자신의 지식으로 쌓은 모든 것을 한 권으로 집약시켜 보여주는 것이 논문이다.
그런데 그런 논문이 아예 처음부터 신뢰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가장 흔한 경우가 맞춤법과 띄어쓰기와 같은 기본적인 문장구조가 맞지 않는 경우이다.
이런 글을 접하면 아무리 대단한 주제의 논문이라고 하더라도 그냥 한숨만 나온다.
그리고 조용히 책장을 덮고 한쪽에 던져두게 된다.

또는 읽다보면 도대체 무슨 말인지 이해되지 않는 문장들이 있다.
읽고 읽고 또 읽어도 해석이 되지 않는 그런 글들이 있다.

외서를 읽다가도 번역상의 오류로 인해 논점이 흐려지거나 명확하지 않으면 짜증이 나는데, 하물며 같은 한국인이 한국말로 쓴 글이 이러면 환장한다.

외국어 번역물을 너무도 많이 접해서 한글이 헛갈리는 건지는 모르지만. 이러면 글을 쓰는 최소한의 규칙도 지키지 못한다는 것 아닌가? 그런 글을 읽는다는 것은 전적으로 시간낭비이다.

이 책도 몇 군데 어색하거나 문맥이 흐트러지는 부분이 있기는 하다.
내 생각엔 그건 저자의 잘못은 아닌 듯 하다.
각 장마다 짤막하게 적절한 글을 발췌하는 능력도 그렇고 전반적인 흐름을 보아도 저자의 글쓰기 능력을 의심할 수 는 없을 것 같다.

아마도 둘 중의 하나일 것이다.
첫째는 내 독해 능력의 부족일 경우가 있겠다.
내가 이런 류의 책을 자주 접하지 못하다 보니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아니겠는가?
같은 단어가 분야에 따라 약간씩 다른 뜻을 갖는 경우도 있을 것이고, 기타 등등의 이유로 말이다.

또 다른 이유는 아마도 번역상의 문제가 있을 수 있다.
그리고 설령 번역상의 문제라고 한다면 그것이 역자의 잘못은 또한 아닐게다.
언어 별로 특성이 다르고, 표현의 차이가 있겠고... 뭐 그런 걸 것이다.

어쨋든 난 이 책을 읽으면서 분명하게 한가지 자극을 받았다.
이제는 전문분야가 있는 연구자도 이렇듯 대단한 글쓰기 능력을 가져야 하는 세상이다.
그래서 자신의 글쓰기 능력으로, 그 어려운 연구분야에 대해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공개특강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쉽고 재미있게 글을 쓸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럼 도대체 나처럼 유별난 능력같은 건 절대 보이지 않는 사람은 어쩌란 말이냐?
유별날 것이 없으니 그럴듯한 글을 쓸 일도 없으려나? 만일 그렇다면 그건 더 슬플 일 아닌가...

아...
이 책을 읽으며 또 하나 알게 된 사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에 등장하면서 실명이 알려지고 유명해진 이휘소 박사...
이 책의 저자는 이휘소 박사를 좋은 친구, 자신보다 더 대단한 과학자, 그 죽음이 너무도 안타까운 사람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리고 이휘소 박사가 그렇게 허무하게 죽지 않았다면 어쩌면 함께 파트너가 되어 연구했을 수도 있는 내용으로 저자는 노벨상을 받았다고 한다.

도대체 우리나라는 그런 박사 하나를 지키지 못해 젊은 나이에 요절하게 만들어버렸으니...
이 얼마나 통탄할 노릇인가...
profile

심산

2009.12.13 18:18
*.237.80.250
물리학...그 중에서도 현대물리학! 정말 재밌지...
내가 고교시절에 물리학과 지망생이었는데...수학을 너무 못해서 문과로 쫓겨났다는...ㅋ

김정한

2009.12.13 22:10
*.47.197.18
ㅎㅎ... 수학을 못 하는 건 저랑 같으시군요.
전... 제 어머님께서 한 때 중, 고등학교 수학/물리 선생님이셨는데...
그 머리를 물려받지 못한 것이 한입니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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