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오명록 등록일: 2011-02-10 15:14:41 IP ADRESS: *.51.77.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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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고 있었습니다.
                      - 고 최고은 작가를 추모하며


꿈을 꿉니다.
때론 아름다운 주인공과 사랑을 나누고
명품브랜드 옷과 품나는 자동차를 몰아도 보고
바버리 코드를 휘날리며 쌍권총을 쏴대기도 하였지요
우리에게 영화는 꿈의 공장이었고
시나리오를 쓰는 것은 그 꿈을 디자인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꿈에서 깨어난 현실은 참혹합니다.
밤새도록 모니터만 쳐다보았지만 글은 써지지가 않고
어렵게 쓴 글 조차도 다음날이면 어김없이
Delete 키를 눌러야 했는 날들의 연속이었습니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는 것, 수많은 사람들의 소중한 시간을 뺏어
오로지 나의 이야기로만 집중시킨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글이 밥이 되기까지는 험난하기 그지없는 인고의 시간을 거쳐야 하는 것을
우리는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빈곤한 생활의 연속일지라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영화라는 꿈이 있었기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영화라는 놈이 이렇게 사람을 잡는 놈인줄은 몰랐습니다.
설연휴동안 오랜만에 만나는 가족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느라
길고 긴 연휴동안 방바닥에 뒹글며 TV 채널을 돌리느라
다이어트 걱정하며 남은 밥을 쓰레기봉투에 집어넣으면서도
보일러 끄기가 귀찮아 이불을 걷어 차내면서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당신은 냉골이 된 골방에서 피를 토하듯 기침을 하며
이불을 돌돌말고 자판을 두드렸다는 것을
우리는 모르고 있었습니다.
같은 길을 걷는 동행이었음에도 내 어깨의 짐이 버거워
힘겨워하는 당신을 그대로 지나쳤는지도 모릅니다.

유난히도 추웠던 이번 겨울
얼마나 추우셨습니까?
“ 식사 왔습니다 ” 배달오토바이가 옆집 문을 두드릴때
얼마나 배고프셔 겠습니까?

모르고 있었습니다.
긴 연휴가 지나도록
당신이 운명을 달리한지 일주일이 지나도록
까많게 모르고 있었습니다.

영화판이 원래 그래...
당신이 수많은 시간과 노력과 정렬을 투자해서 쓴 시나리오가
또 엎어지고 돈 한푼 받지못해 빚만 늘어 신용불량자가 되었때도
우리는 ‘ 원래 그래 ’ 란 말만 되풀이 할뿐 무관심했습니다.

당신의 죽음을 기사로 접하고
화가 났습니다 슬펐습니다. 부끄러웠습니다.
미안했습니다.

왜 우리는 이런 못된 관행을 이런 불손한 태도를 이 더러운 시스템을
그냥 방관하고 있을가요?
부끄럽습니다. 그리고 미안합니다.

현실의 고통없는 좋은 곳에서 당신의 꿈을 마음껏 디자인하시길 바랍니다.
편히 잠드시길 바랍니다.

[img1]

최민초

2011.03.27 09:24
*.7.39.153
참 안타깝고... 뼈 시린 일입니다.

<소풍 끝내고 간다>는 그 세상에서
...
편안히 잠드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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