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들 안녕하세요,
그동안 안녕하셨는지요?
제 나이는 지금 35살입니다. 저희 할아버지께서 작년에 100살 가까운 나이에 이 세상에서 떠나셨습니다. 그리고 올해 2009.11.7일 오후 6:00시 즘에 제 아버지께서 55세에 이 세상에서 다시 만날 수 없는 곳으로 떠나셨습니다, 제게는 이 사실을 받아드릴 자신이 없습니다. 벌서 16일이 지난 지금 이 순간에도 아버지 생각만하면 눈물만 납니다. 어머니께서 하루에 두 세 번은 기절 하시고, 여동생들도 울고, 우는 모습을 보는 진척들도 울고 모두들 울기만 합니다. 이제 빨리 잊어야 한다고 생각을 하면서도 마음을 다스리기가 많이 힘듭니다.
아버지께서는 22년 공무원으로 계시다가 6년전에 본인이 희망하셔서 은퇴를 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와 어머니께서 고르카 어머라이 라는 마을에서 편안한 생활을 하시고 계셨습니다. 그러다가 1개월 전에 목 앞면이 조금 아프다며 카트만두로 혼자 올라오셨습니다. 오시자마자 네팔의 좋은 병원으로 알려진 Teaching Hospital 에 입원 하셨습니다. 이후 하루가 다르게 좋아졌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저음 10일은 한 숨도 못 주무셨습니다. 그리고 배에서 물을 뺐습니다. 이후 이틀동안은 주무셨습니다. 그러다가 입원한지 12일째 되는 날 오전에 국물 조금 드셨고 그리고는 짐대에 누우셨습니다. 그러다가 낮 2:30분부터 숨을 쉬지 못하셨습니다. 6:00시 까지 병원 짐대에 그대로 있다가 의사들이 이제 시신을 옮겨달라고 하여 그대로 파수파티 사원으로 갔습니다.
저는 아버지께서 조금 있다가 다시 일어나시겠지 하면서 아직도 기대를 걸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제 짧은 생각에 불과했습니다. 아버지는 제가 많은 눈물을 훌려도, 큰 소리로 울어도 대답이 없으셨습니다. 화장터는 준비 되었고, 힌두인의 의식대로 큰 아둘인 제가 아버지 시신에 불을 붙인 후에 화장터에서 연기가 나고, 3시간 후에는 동전 하나정도 되는 “어스뚜” (시신이 탄 후에 남긴 것) 가 남았습니다. 화장터에서 일을 하는 아저시가 “어스뚜“를 흰 수건에 놓고 제 손에 주셨습니다. 그리고는 바그머띠강 모래에 묻어달라고 하여 그대로 하였습니다. 이제 저는 아버지를 볼 수 도 없고 불을 수도 없습니다. 그리고 이야기를 나눌 수 도 없습니다. 정말로 빨리 돌아가셨습니다. 이야기를 나누시다가, 나는 이제 가니까 아둘아 어머니, 동생 잘 돌보라고 하시면서 가셨습니다. 저는 아직도 슬픔에 빠지고 있습니다. 제 ‘카르마‘가 이러하니 어떻게 하겠습니다. 제가 감당을 할 수 밖에..............
선생님 송금하셨다는 전화를 잘 받았습니다. 그리고 내일이나 모래 즘에 은행에 가서 통장 확인 후에 내역을 스켄 해서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후원하신 여러 선생님이 후회 하시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제게 의로 많이 해 주십시오.
이렇게 좋은 일에 도움이 되고자 좋은 마음으로 일을 하겠다고 했는데 제게는 신이 큰 벌을 주셨습니다. 오늘 이 쯤에서...
시버 올림
나도 얼마 전에 아버님을 다른 세상으로 보내드렸어...
뭐 언젠가는 우리 모두 치뤄야 될 일이고, 우리 역시 그렇게 떠나야 될 터이니...
너무 오래 너무 많이 슬퍼하지는 말기를...
옴 마니 반메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