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심산 등록일: 2006-12-06 01:29:35 IP ADRESS: *.237.8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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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라는 존재

 

 

제목이 너무 거창하다. 히말라야에 대한 글을 써달라길래 요모 조모 생각해보다가 결국 나에게 히말라야란 어떤 존재인가라는 화두 같은 자문(自問)에 빠져버린 탓이다. 히말라야를 생각하면 가슴이 탁 트인다. 히말라야를 떠올리면 왠지 모를 안정감을 느낀다. 히말라야 앞에 서면 자신의 존재에 대하여 더 이상 가슴앓이를 하지 않게 된다. 내게 있어 여기까지는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질문은 이곳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런데, 왜 그런가?

 

눈을 감고 히말라야를 명상한다. 그러면 그곳의 거연하고 장쾌한 모습이 떠오른다. 하지만 그 다음엔? 엉뚱하게도 나는 히말라야가 솟아오르는 장면을 떠올린다. 이를테면 ‘판구조론’에 기대고 있는 셈이다. 인간 따위가 생겨나기도 훨씬 이전인 아주 까마득한 옛날이다. 당시 지구라는 행성 위에는 거대한 땅덩어리들이 이리 저리 이동하고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땅덩어리가 차지하는 면적보다는 바다가 차지하고 있는 면적이 훨씬 더 크다. 본질적인 의미에서 ‘대륙’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대륙이란 상대적으로 큰 섬일 뿐이다.

 

현재 이탈리아 반도라고 불리우는 땅덩어리가 유라시아라고 불리우는 땅덩어리와 부딪힌다. 그 충격으로 땅덩어리들의 일부가 하늘을 향해 솟구친다. 그게 알프스다. 현재의 세계지도를 입체적으로 들여다보면 이 사실은 분명하다. 이탈리아 반도가 유럽에 붙어 있는 그 접점지역에 생겨난 아름다운 주름이 알프스 산맥인 것이다. 그렇다면 히말라야는? 인도라 불리우는 땅덩어리가 아시아라고 불리우는 땅덩어리와 충돌한 결과다. 그 충돌의 강도는 아마도 지구 역사상 가장 강력한 것이었으리라. 알프스가 아름답다면 히말라야는 위대하다. 알프스가 인간의 영역에 속한다면 히말라야는 신의 영역에 속한다.

 

여기서 나는 다시 화두를 붙잡고 끝까지 파고든다. 나는 왜 히말라야가 처음 생성될 때의 그 장엄한 충돌을 떠올리는 것일까? 오래도록 그 장면을 들여다보니 예기치 못했던 곳에서 답안이 떠오른다. 그 답안은 많은 사람들에게 불편한 것일 수도 있겠다. 이 답안이 모범답안인 것도 아니다. 다만 나만의 답안일 뿐이다. 그 답안은 이렇다. 나는 인간이 태어나지 않은 원시의 지구를 그리워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의 척도로는 감히 가늠조차 할 수 없는 거대한 존재가 ‘단지 그곳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커다란 위안을 얻고 있는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인간의 역사란 곧 해충의 역사다. 이 지구라는 행성이 생겨난 이후 우리 인간이라는 동물이 행한 일들은 거의 예외 없이 재앙에 속한다. 인간은 산을 깎아 도로를 내고 석유를 캐내어 대기를 오염시키며 적대적이지 않은 동물들을 잡아 죽인다. 우주의 관점을 가질 필요조차 없다. 지구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인간은 끔찍한 파괴자일 뿐이다. 인간의 관점만을 유지하더라도 사정은 매한가지다. 인간처럼 자신의 동류들을 대량학살한 동물은 그 어디에도 없다. 인간처럼 잔인한 계급사회를 만들고 그것을 제도적으로 확대재생산하며 끊임없이 합리화시키고 있는 끔찍한 동물은 달리 찾아볼 수가 없을 것이다.

 

나는 성선설을 믿지 않는다. 나는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는 주장에 헛웃음을 짓는다. 인간이 이룩한 이 모든 문화와 문명들? 나는 그것들이 모두 본질적으로 ‘간빙기(間氷期)의 낙서’에 불과하다고 믿는다. 나 역시 이기적이고 그악스러운 인간 종(種)의 한 개체일 뿐이다. 그래서 나는 미안하다. 불행하게도 인간과 동시대의 간빙기에 생명을 얻어 처참하게 파괴되거나 멸종되어 버린 모든 동물과 식물들에게. 그리고 산과 강과 바다와 하늘에게. 그렇다면 인간이 저질러온 이 끔찍한 죄악들에 대하여 참회하거나 보상할 길은 없는가? 아무리 생각해봐도 방법이 없다. 오직 인간이라는 이 끔찍한 종이 멸종되어 버리는 것 이외에는.

 

인간의 멸종을 상상해본다. 핵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고 남극과 북극이 녹아내릴 수도 있다. 거대한 지진이 발생하여 해일이 덮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이 지구라는 행성 역시 끝장인가? 그렇지 않다. 다만 또다른 빙하기가 도래할 뿐이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우리가 만들어 놓은 이 모든 간빙기의 낙서들은 마치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다는듯 깨끗이 사라져버릴 것이다. 그러면 우리가 절대로 상상할 수 없었던 또 다른 생명체들이 이 지구 위에서 살아가게 될 것이다. 지구의 입장에서 보면 인간이란 존재는 없어져 버리는 것이 훨씬 더 낫다.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히말라야는, 바로 그 너머에 있다.

 

나라는 개인이 죽어 없어진 다음에도 히말라야는 늘 그곳에 있으리라는 사실이 나를 위로한다. 인간이라는 종 자체가 멸종되어 버린 다음에도 히말라야는 의연히 그곳에 솟아 있으리라는 상상이 내 마음을 편하게 한다. 히말라야의 입장에서 보자면 잠시 웬 해충들이 그 발치에서 찧고 까불다가 사라져버린 것에 불과하리라. 아무래도 그래서인 것 같다. 히말라야를 떠올리면 가슴이 탁 트이며 자신의 존재를 용서할 수도 있을 것 같아지는 것은. 히말라야 앞에 서면 내가 얼마나 하찮고 우연한 존재인가를 온몸으로 느끼고, 세상살이의 비루함에서 얻은 가슴앓이들조차 별 것 아니었음을 통쾌하게 깨닫게 되는 것은.

 

월간 [작은숲] 창간호/2007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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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로진

2006.12.06 10:50
*.86.217.161
헐.......이렇게 까지 광대무변한 사고를......
두손 모아 합장할 따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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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산

2006.12.06 13:08
*.237.82.3
원고를 보내줬더니 [작은숲] 편집부에서 기겁(!)을 하는군...
하긴 뭐 '아름다운' 이야기 혹은 '나긋나긋한' 이야기를 싣고 싶어하는 잡지인데
그런 지면에 이런 썰렁한 이야기를 써주다니 나도 참 모진 놈이야...^^
영 불편하면 싣지 않아도 좋다고 했으니 어쩌면 이 글은 이 홈피가 최종 발표지면이 될 것 같기도 해...^^

김희자

2006.12.06 14:02
*.134.45.41
오호..좋은데요. 히말라야에 정말 가보고싶은 욕구가 생기게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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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님

2006.12.06 15:26
*.96.231.185
히말라야를 담은 이 글의 폭이 넓어서 일까요? 갑자기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 서문이...

앤 드류언에게

광대한 우주, 그리고 무한한 시간.
이 속에서 같은 행성, 같은 시대를
앤과 함께 살아 가는 것을 기뻐하면서.

씨니컬한 이글을 읽고 있자니
히말라야를 생각하는 게 참 편안해지고, 아둥바둥거리며 조급해 하는 일들이
별 일 아닌듯 생각되어 지네요.
얼마전 신문에 난 스티븐 호킹 기사가 생각나요.
지구는 멸망할 것이기 때문에 가까운 미래에 우주에 새로운 행성을 마련해야 한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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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산

2006.12.06 15:32
*.237.82.3
이거 씨니컬한 거 아니야 그냥 사실의 기술일 뿐이야...
그러길래 누가 나한테 그런 심각한 질문을 하래?
삶이 뭐냐 인간이 뭐냐 히말라야가 뭐냐...뭐 이런 질문들...^^

스티븐 호킹도 배울만큼 배운 사람이 그런 식으로 말하면 안되지
지구 하나를 망쳐놓은 것만으로도 모자라 우주의 다른 행성도 망쳐버리자고?
예끼 이 사람아, 그냥 우리만 사라져주면 모든 게 평화로와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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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님

2006.12.06 17:40
*.96.231.185
<작은 숲> 창간호에 이렇게 멋진 글을 안 실으면 그쪽만 손해죠, 뭐.^^
그나저나 글이 참 깊네요.
샘께는 가끔 어디선가, 누군가가, 어김없이, 이런이런~
미간을 모으는, 심각한 질문을 해줘야 돼요. why? 암튼 그래야 돼요.^^

박한내

2006.12.06 20:14
*.204.84.180
아,눈물나려고 해요--;; 제가 사막을 상상하고 가보고 싶어하는 이유와 비슷하구요..
이글 출처랑 저자 밝히고 모 폐쇄사이트에 소개하면 안될까요..
profile

심산

2006.12.07 03:26
*.131.158.75
한내, 폐쇄 사이트가 아니라 공개 사이트에 해도 돼...
이곳 홈피의 내 모든 글은 카피 레프트야...^^

대신, 출처는 [작은숲] 창간호가 아니라 [심산스쿨]이야...^^

박한내

2006.12.07 09:47
*.204.84.180
알겠슴다^^ 카피 레프트..출처는 심산스쿨!!

임현담

2007.08.27 17:15
*.241.46.214
살다보니 추구하는 것중에 최고는, 돈을 쌓아놓고 사는 일도 아니고 좋은 차를 타고 다니는 일 역시 아니고, 더불어 맛있는 음식 역시 아닌데요. 그냥 히말라야 언저리에서 밤새 덜덜 떨고, 음식이라 할 것도 없는 것들을 그냥 입에 넣으면서도, 텐트밖에 우주를 향해 피어난 하얀 연꽃과 같이 오래오래 지내는 일. 이것이 되어버렸죠.

히말라야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위빠사나를 한 덕분에^^) 체온이 오르면서 심장의 박동이 슬며시 올라가는 일이 느껴지구요, 우리 마누하눌님의 말씀을 빌리자면 얼굴 표정이 바뀐다는군요. 삶에서 이렇게 절대지존이 되어버린 히말라야. 등산학교에서 말하는 '세상의 두 부류, 즉 인수봉을 올라본 사람과 올라보지 못한 사람으로 나뉜다' 조로 이분법을 동원해 이야기하자면, 제 나날들은 '히말라야와 함께 하는 날과 그렇지 않은 날'로 명확히 나누어지구요. 같이 하지 않은 날들은 같이 하기 위한 준비를 하는 날들이니 어쩌겠어요. 설산병도 큰 병이라 할수 밖에요.

삶이 히말라야에 집중되고 있죠. 아무리 집이 편해도 그 푹신한 벼개에 머리를 눕힐 때는 텐트 옆을 지나면서, 바닥을 울리던 히말라야 시냇물들 소리가 그립고, 텐트 아래 설산의 딱딱한 바닥 역시 두고온 옛집처럼 아련해 집니다. 아침이면 저 멀리 히말라야 능선 위로 떠오르는 일출을 보면서 응가하는 일도 그렇고, 밤이면 별자리들은 또 어땠던가요(사실 히말라야 별자리 보려고 바깥 풍경을 볼 수 있는 코베아 텐트 샀습니다^^) 나이가 먹을수록 그 큰산이 점차 앞으로 다가오는 것이 느껴지고 있는데, 못지 않게 노쇠한 부모님의 갑작스러운 질병과 같은 복병들의 저항도 만만치 않습니다. 배낭을 꾸려놓으면 다시 아퍼하는 부모.

힌두신화에서 브라흐마가 세상을 창조할 때, 무에서 유를 만들기 시작했을 때, 그 태초의 장소는 카일라스였고, 또 마음을 내서 마라스로바 호수를 만들었답니다. 그곳에서 발원한 두 개의 강이 하나는 동으로 달리고 하나는 서로 달리다가 남하하는데 그 사이에 우뚝 일어난 것이 히말라야죠. 이 판떼기 저 판떼기가 부딪히고 융기한 일도 그렇지만 그 신화의 정신이 흘러가는 곳에 제 고향(스스로 결정했음^^)이 있다는 건, 즉 태초와 연관된 무엇이 있다는 건, 본래면목을 추구하는 저 같은 사람에게는 일종의 성소이며, 돌아가야할 낙원일지 모르겠습니다.

히말라야라는 단어를 보면 그냥 지나가지 못하는 환자 한 사람이 긁적거리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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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산

2006.12.08 11:30
*.131.158.75
흠, 카일라스...아, 카일라스...카일라스!
카일라스의 자태 앞에서는 늘 말문이 막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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