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은 탐구대상…철학·문학 담겨있죠”
[알피니즘, 도전의 역사] 펴낸 산악인 이용대씨
산악 전문 출판 브랜드 ‘마운틴북스’가 생겼다. 바다출판사의 자회사인 이 브랜드는 출판을 통해 산악 관련 문화를 일구겠다는 뜻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시나리오 작가로 유명한 심산씨가 편집인을 맡았다. 산악문학가로서다. “국내 등산인구는 1000만명에 이르지만 산악 문화는 여전히 척박하다”는 인식에서 출발한 만큼 출간할 계획인 책 목록이 줄줄 나올 정도로 의욕에 넘친다. 그 중 첫번째 책 ‘알피니즘 도전의 역사’가 나왔다. ‘한국 산악계의 산증인’으로 불리는 이용대 코오롱 등산학교장(70)이 썼다. 국내에서 처음 쓰여진 세계 등반 역사서라고 한다.
“등산은 단순히 솟아있는 봉우리를 오르고 내려오는 것이 아닙니다. 선인들이 쭉 걸어왔던 역사와 전통이란 실체가 있기 때문에 역사도 함께 알아야 합니다. 등반 기록, 산악 인구 등 하드웨어 면에서 우리나라는 등산 선진국 수준이지만 소프트웨어인 등산 문화는 아직도 빈약합니다. 24년째 등산교육을 하고 있지만 수업 때 쓸 등반 역사서조차 없었으니까요.”
월간 마운틴에 4년여 동안 연재한 것들을 재구성해서 쓴 이 책은 세계적인 주요 등정 기록과 그와 관련된 일화들이 소개돼 있다. 200여개의 등산 관련 도판도 실었다. 역사적 사실과 등반가들의 드라마틱한 이야기가 겹쳐지면서 책은 지식과 감동을 같이 전해준다. “1786년을 등반 역사의 시작으로 보니까 벌써 200년 이상이 흘렀습니다. 무엇을 넣느냐보다 무엇을 빼느냐에서 고민을 많이 했어요. 수많은 사건 가운데 등산 발전에 전환점이 된 극적인 것만 다뤘는데도 지면이 모자랐습니다.”
‘공부하는 산악인’ ‘문무를 겸비한 산악인’으로 불리는 이교장은 틈 날 때마다 등산에 대한 공부와 글쓰기를 강조한다. “산의 세계는 일반인이 들어와서 보면 찡한 것이 많습니다. 평생을 살아도 체험해보지 못할 극적 경험들을 간접적으로 볼 수 있으니까요. 극한의 상황과 등반에 얽힌 희비는 처음 산악 문학을 읽는 사람들도 깊이 빠질 만큼 매력적입니다. 1950년 모리스 에르조그 대장이 인솔한 팀이 8000m 안나푸르나를 인류 최초로 초등했습니다. 등반하고 돌아왔을 땐 동상으로 손가락 발가락을 모두 잘라야 했어요. 그리고 병상에서 구두 진술해 책을 썼습니다. 문장이 화려하고 극적이었죠.” ‘검은 고독 흰 고독’ ‘나는 살아서 돌아왔다’ 등을 쓴 세계적인 산악인 라인홀트 메스너를 이교장이 높이 평가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메스너는 등반하고 나면 곧바로 책을 썼어요. 그 책은 곧 여러 나라에 번역됐고요. 등반 역사에 대한 지식이 해박하고 등반에 대한 철학도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지요. 이런 기록은 등반가뿐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귀중한 자산이 됩니다.”
등산인구가 느는 만큼 등산문화도 꽃피기를 이교장은 바라고 있다. 그러기 위해선 등산에 대한 철학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등산은 편의성을 거부하는 행위이자 불확실성에 도전하는 행위입니다. 지금은 미답 고지가 거의 없다 보니 고도보다는 태도를 지향하는 시대가 됐습니다. 어떤 방법으로 어떻게 오르느냐는 문제지요. 낮은 산도 높게 오르고, 쉬운 산도 어렵게 오르는 것입니다. 또 사람들이 조금만 나이 먹으면 포기하고 안하는데 등산은 자기 나이에 맞게 하면 됩니다. 정년이 없어요.” 자신 역시 ‘현역’이라고 말하는 그는 이번 책에 이어 등반용어사전, 칼럼집, 조난에 관한 책 등도 쓸 계획이다. 그리고 또 덧붙였다. “산을 오르는 대상으로 보지 말고 탐구의 대상으로 보라. 공부를 많이 하라.”
글/임영주
사진/이상훈기자
[경향신문] 2007년 9월 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