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심산 등록일: 2015-01-15 18:12:04 IP ADRESS: *.139.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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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보문고] 작가와의 만남

만나고 싶었던 작가의 근황을 공개합니다


 “자기 스타일로 길을 내고 살아간 사람들이니까 매력적이죠”

[마운틴 오디세이]의 심산


등산을 좋아하지 않는다. 힘든 것도 힘든 것이지만 산이 너무 무섭다. 산행을 가면 항상 중간에 내려와 밑에서 일행을 기다리는 사람, 좀 험하고 높은 산이면 항상 더 이상 못 간다고 엉엉 울며 주저앉아버리는 사람이 바로 나다.
그런데 이건 또 무슨 아이러니인지 산악인에 대한 이야기는 픽션이나 논픽션이나 가리지 않고 좋아한다. 거대한 자연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인간의 도전과 사투는 너무나 압도적이기에 일상과는 다른 차원의 경험과 사고 속으로 나를 이끄는 것이 산악문학의 매력이 아닐까 싶다.   
 
『마운틴 오디세이』는 《비트》 《태양은 없다》 등의 시나리오를 쓴 시나리오 작가이자 매주 산에 오르고 매년 해외로 원정 혹은 트레킹을 떠나며 『엄홍길의 약속』, 『심산의 마운틴 오딧세이』등 산악문학 저서를 쓴 작가 심산이 위대한 산악인 38명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책에는 에베레스트에 처음 오른 에드문드 힐러리, 인류 사상 처음으로 8,000미터 봉 14좌를 모두 오른 라인홀트 메스너 등 일반인에게도 유명한 이름뿐만 아니라 과학적 근대 등반의 아버지라 불리는 소쉬르부터 영화 <클리프 행어>에서 실베스터 스탤론의 대역으로 등장했던 볼프강 귈리히, 그리고 암벽 등반의 여제 린 힐까지 다소 낯선 이름들을 통해19세기부터 시작된 알피니즘의 역사를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인터뷰를 위해 심산 작가가 시나리오와 와인을 가르치는 심산스쿨을 찾았다. 『마운틴 오디세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야 하는데, 그의 머리 속에는 벌써 다음 책, 다른 산행에 대한 기획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한 곳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목표를 찾는 모습이 그가 책 속에서 그린 산악인들과 흡사해 슬며시 웃음이 나왔다.


책의 부제가 심산의 알피니스트 열전인데요. ‘알피니즘’, ‘알피니스트하는 개념이 일반인들에게는 좀 익숙지 않은데요.

알프스에서 시작된 등산 운동을 알피니즘이라고 하는데요 정확하게 따지자면 책 속에서 소개한 인물들은 알피니스트도 있고 히말라야니스트도 있고 그래요. 복잡한데, 아무튼 이런 개념들은 모두 서구적인 개념이에요. 서구적 개념의 알피니즘에도 관심이 많고 흥미로워요. 실제로 가보기도 했고요. 하지만 알피니즘만이 중요한 건 아니에요.
 
전 어렸을 때부터 이런 생각을 했어요. 왜 사람들이 히말라야, 알프스를 대하는 태도와 한국의 산을 대하는 태도는 다를까? 최근에 나온 『사람의 산 우리 산의 인문학』이라는 책에서도 비슷한 얘기가 있었어요. 히말라야는 너무 크게 위대해서 사람들이 히말라야 자체를 성스러운 존재로 받아들이고 그러니까 그곳에서 여러 종교가 발생하죠. 알프스 사람들은 알프스를 굉장히 무서운 곳으로 인식했어요. 싸워 이겨야 할, 또는 도망쳐야 할. 그런데 우리나라처럼 2,000미터 미만의 산이 많은 곳의 사람들은 산을 그렇게 위대하게도, 무섭게도 보지 않았어요. 친근하게 봤죠. 조선시대 산행 기록을 보면 정상에 올라간 기록이 별로 없어요. 대부분 유산기에요. 산 밑에 가서 실컷 놀다 왔다, 이런 건데 전 이게 굉장히 한국적인 태도라고 생각해요.
 
알피니즘이 한국에 들어온 것은 1920년대에서 30년대 사이에요.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들이 도입한 거죠. 일본은 알피니즘을 유럽에서 받아들였고요. 그렇게 시작된 한국 등산의 역사는 어찌 보면 굉장히 짧아요. 우리 나라 몇 천 년의 역사 중에 이게 겨우 백 년 밖에 안 된 거니까요. 그래서 요즘은 알피니즘보다 더 오래된 우리 산에 대한 태도, 그런 것들을 좀 더 공부하면서 지내고 있어요.
 
책에서는 유명한 알피니트스 38명을 소개하고 있는데 이들을 선정한 기준이 있었나요?

정해진 기준은 없어요. 연재하면서 100명 정도 리스트업을 해놓긴 했지만 연재할 때는 그 주에 생각나는 사람을 다루는 식이었어요. 그리고 연재가 끝나고 책으로 묶으면서 연대순으로 배열을 했고요. 어떤 사람들은 이 사람은 왜 빼먹었냐, 이 사람은 왜 들어갔냐 그러는데 그냥 제가 좋아하는 사람들인 거죠(웃음). 왜 좋아하냐고 물으면, 독창적이니까. 남들이 했던 일을 다시 하는 걸 굉장히 싫어하고 자기 스타일로 길을 내고 살아간 사람들이니까 매력적이죠. 
 
산악인 중에는 자신의 경험을 글로 쓰는 사람도 많고 산악문학이라는 독자적인 장르도 있을 만큼 관련한 책들이 많은데요. 책 속에서도 산악인들이 쓴 글이나 문장들이 중간 중간 삽입되어 있는데 이 글들이 굉장히 좋더라고요. 문학가의 글과는 다른 힘이 느껴지는 글들이었어요.

등산이 과연 스포츠냐 아니냐하는 문제에는 의견이 많아요. 스포츠라고 볼 수도 있지만 스포츠라고 안 보는 견해가 훨씬 많아요. 스포츠를 하다가 죽는 경우는 많지 않잖아요. 그런데 등산에는 인간 실존이 걸려있는 부분이 굉장히 많거든요. 그래서 많이 생각하고 많이 쓰는게 아닐까,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문학이라는 것이 인간을 탐구하는 것이 목적인데, 등산을 할 때는 인간의 극한적 상황에 놓이는 경우가 많으니까 인간에 대해 가장 깊게 탐구할 수 있는 분야일지도 모르고요.

라인홀트 메스너에 대해서는 ‘20세기를 대표하는 인물이라고 했는데요.

진짜에요. 체력적인 면에서는 너무나 당연하고요 정신적으로도 강한 사람이고, 집필자로서도 거의 60권이 넘는 책을 썼는데 그 책들이 또 다 대단해요. 전세계적으로 많이 팔리기도 했고요. 그 사람의 삶의 태도는 정말 흠잡기 힘들어요. 너무 완벽해서 얄밉죠(웃음).
 
앞부분에서는 니체도 등장하더라고요. 니체와 산이 연결되는 부분이 흥미롭던데요.

20세기 초반의 알피니즘을 풍미한 단독등반(가이드를 대동하지 않고 혼자 등반하는 형태)자들 중에는 사고로 사망한 이들이 많았는데, 그들의 배낭 속에서 니체의 책이 많이 발견되었어요. 니체의 초인 사상과 시체로 발견된 단독등반자들 사이에 구체적으로 어떤 관계가 있는지는 뚜렷하지 않지만 실제로 니체가 젊은이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악마취급을 받고 욕도 많이 먹었죠. 니체 입장에서는 억울하지만요.  
그리고 니체가 요양을 위해 알프스 지역의 작은 마을에서 머물 때 그가 자주 올랐던 산도 만만치가 않아요. 3,400미터급이니까 백두산보다 훨씬 높은 거죠. 니체는 그 산을 여러 번 올랐다고 해요.
 
알피니즘의 역사를 살펴보면, 처음에는 아무도 오르지 못한 곳을 가장 먼저 오르는 초등 경쟁을 벌이다가 이후에는 점차 다른 방식으로 산을 오르는 것에 대한 상상력을 발휘하게 되던데요.

알피니즘은 19세기 말 제국주의 시대의 산물이기도 해요. 히말라야 초등 정복까지만 해도 대개는 국가적인 지원을 받았어요. 그러던 것이 2차 세계대전을 통과하면서 다른 방식으로 산을 오르는 산악인들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국가를 위해서가 아니라 즐기고 싶어서, 팀을 짜서 함께 오르는 것이 아니라 혼자, 개인주의적으로 오르는 사람들이 생겨난 거죠.
현대등반이라고 하는 것은 극단적인 면들이 있어서 사실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어요. 현대미술하고 비슷해요. 너무 추상적이죠. 그렇게 개인화되고 극단적으로 변해가는 것이 현대 등반의 사조인데, 지금 다시 국가주의적 등반을 하는 것도 안 어울리죠. 8,000미터 영역에 누가 또 올라갔다 하는 건 더 이상 화제가 안 되고요. 남들이 다 갔던 루트를 산소마스크 쓰고 가는 것은 이제 등반의 가치가 없다고들 하지요. 이제는 그런 것 말고 좀 다른 형태의 등반을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죠.
자타가 공인하는 20세기 최고의 원정대장인 크리스 보닝턴이 한 말이 맞아요. “그런 등반이 정말 즐거울까요?”
 
산에 목숨을 바침으로써 신화가 된 사람들도 있지만 살아남아 다른 삶을 살면서 또 다른 깊은 인상을 준 사람들도 많던데요. 아웃도어 의류업체로 유명한 파타고니아의 설립자 이본 취나드가 그런 경우인데요. 전에 독특한 철학을 가진 기업인 파타고니아에 대한 책을 읽은 적이 있었는데, 이본 취나드에 대해 알게 되니까 파타고니아라는 기업의 DNA가 무엇인지 이해가 가더라고요.

이본 취나드, 참 멋지죠. 파타고니아의 본사가 캘리포니아의 해변가에 있어요. 그래서 파도가 밀려오면 직원들 일을 못하게 한데요. 다 나가서 서핑하라고(웃음). 굉장히 감동적인 데가 많은 사람이에요. 파타고니아가 한때 등산용 면 티셔츠 판매로 어마어마한 수익을 올렸는데, 어느 날 면을 생산하는 목화밭에 이본 취나드가 가 본 다음에 굉장히 충격을 받았대요. 목화도 농약 범벅이고 노동자들의 건강도 물론 안 좋고요. 그래서 면 티셔츠 생산을 중지해버려요. 매출이 확 떨어졌죠. 그리고 나중에 유기농 목화를 사용하는 걸로 바꾸고요. 파타고니아가 훌륭한 건 매출도 매출이지만 그런 점들 때문이죠. 그런 회사를 이끌고 왔다는 점에서 이본 취나드도 굉장하고요.
 
책에서 소개한 여러 산악인 중에서 더 마음이 가는 그런 사람이 있나요?

저는 정말로, 책에서 소개한 모든 사람들을 다 좋아해요. 이본 취나드도 좋고 카트린 데스티벨도, 개리 헤밍도 좋고요. 그런데 현대등반가들이 훨씬 더 개성있기는 해요. 19세기 말, 20세기 초중반에는 너무 의무를 다하기 위한 등반, 불굴의 의지, 이런 것들이 강조되는데 그건 좀 부담스럽거든요(웃음).

벌써 마운틴 오디세이다음 책도 준비하고 계시다고요?

2002년에 출간되었던 『심산의 마운틴 오딧세이』의 개정증보판인데, 산악문학에 대한 걸 다루고 있고요. 원고도 다 썼고 곧 나올 거에요.
그리고 그 다음 책도 준비하고 있는데, 이번엔 한국의 산, 그 중에서도 마애불과 관련된 얘기를 해보려고요. 요즘 한창 답사를 다니고 있는데, ‘마애를 넓게 보면 그와 관련된 것이 엄청나게 많아요. 그래서 한 권으로는 안 될 것 같고, 서울마애산행, 전국마애산행, 그리고 산이 아니라 국도나 마을에 있는 마애신앙을 찾아가는 전국 미륵기행, 이렇게 나눠서 자료를 찾고 있어요. 그리고 틈틈이 폭포와 산성도 찾고 있고요.
그래서 참고서적을 이렇게 쌓아놓고 읽고 있어요.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라 노는 거랑 같지만 노는 것도 얼마나 힘든데요(웃음). 무지하게 공부해야 하고. 엄청 바빠요(웃음).

2015년 1월 14일
 
 
| 박수진 (교보문고 북뉴스)
leftfield@kyobobook.co.kr




원문링크

http://news.kyobobook.co.kr/people/writerView.ink?sntn_id=9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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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산

2015.01.15 18:17
*.139.1.130

사진들도 실렸는데 생략...

남세스러워서...ㅋ

한수련

2015.07.13 21:30
*.226.196.104

제가 심산스쿨 떠날 때 선생님께서 선물해주신 파타고니아 잠바는 온 가족이 아직도 잘 돌려 입고 있어요.

엄마  167cm

남동생 180cm

나 158cm

지만 언제 어디서나 누구나 입고 다녀도 잘 어울리는 옷.

새삼 거기까지 데려다 주셔서 떠나는 제자 한테 저런 좋은 옷을 사준신 선생님 마음이 생각나 눈물이 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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