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심산 등록일: 2014-06-19 16:47:22 IP ADRESS: *.139.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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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노산악인의 치열한 비망록

이용대, [그곳에 산이 있었다], 해냄, 2014

 

심산(심산스쿨 대표)

 

알파인 저널리스트로서 이용대의 경력은 길다. 정확한 팩트의 제시와 냉철한 이성적 판단으로 유명한 그의 산악칼럼들은 이미 1970년대부터 빛을 발했다. 그가 한국을 대표하는 산악월간지 <><사람과 산><MOUNTAIN> 등에 논문과 에세이 등을 선보여온 세월이 어언 40년을 바라본다. 아마도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지속적으로 산악관련 칼럼들을 연재해온 이는 따로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저자로서 이용대의 경력은 상대적으로 짧다. 그가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세상에 내보인 첫 번째 단행본은 <등산교실>(해냄, 2006)이었다. 그의 출생연도가 1938년이니 거의 칠순에 이르러 저자 혹은 작가로 늦깎이 데뷔를 한 셈이다. 1985년 이후 코오롱등산학교를 이끌었으며 1997년 이후 현재까지 동 학교 교장으로 재직 중인 저자로서는 매우 솔직한데뷔였다. 이 책은 등산의 기초부터 차근차근 가르쳐주는 일종의 교과서로서 등산학교의 표준 교안이라고 보아도 무방한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이다.


그의 두 번째 책은 <알피니즘, 도전의 역사>(2007, 마운틴북스)였다. 이용대가 본격적인 저자 혹은 작가로서 자신의 이름을 만천하에 떨친 야심작이다. 그 이전까지 한글로 쓰여진 세계등반사를 갖지 못했다는 것은 한국산악계의 맹점 혹은 수치였다. 모름지기 모든 학문의 기초는 통사(通史)로부터 비롯되는 것이다. 이 책의 출현 이전 한국산악계는 실기는 앞서되 이론은 빈약한혹은 현상만 있지 문화는 없는상태에 머물러 있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러므로 <알피니즘, 도전의 역사>의 출간은 이용대 개인의 영광이었을 뿐 아니라 한국산악계 전체의 경사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의 세 번째 책은 놀랍게도 사전이었다. 이때의 사전은 용어를 해설한다는 뜻의 사전(辭典, dictionary)과 만물을 설명한다는 뜻의 백과사전(百科事典, encyclopedia)을 동시에 포괄하고 있는 개념이다. <등산상식사전>(해냄, 2010)은 등산과 관련된 모든 용어들을 가나다순으로 배열한 다음, 그 하나 하나의 항목마다 매우 꼼꼼한 해제를 달아놓은 책인 것이다. 사전을 편찬한다는 것은 해당 분야 최고의 지식인 혹은 전문가만이 도전할 수 있는 일이다. 이는 오직 그가 40년 가까이 알파인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면서 방대한 자료들을 섭렵하고 끊임없이 연구해온 결과물들이 쌓여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나는 코오롱등산학교에서 강의할 때 혹은 사석의 술자리에서 위에 언급한 세권의 책을 묶어 이용대 3부작이라 부르곤 했다. 이미 칠순을 훌쩍 넘긴 노산악인이 불과 5년도 안 되는 아주 짧은 기간 안에 세권의 책을 세상에 내놓았다. 바로 교과서와 역사서와 사전이다. 가장 기본이 되는 내용이요, 그 위에 무엇이든 안심하고 쌓아올려도 좋을 만큼 든든한 기초라 할 수 있다. 그야말로 가장 완벽한 3부작이다. 이제 더 이상 무엇을 쓸 것인가? 하지만 더 이상 덧붙일 것이 없다고 생각한 우리 앞에 이용대는 네 번째 책을 들이밀었다. 바로 산문집 <그곳에 산이 있었다>(해냄, 2014)이다.


이 책은 위에 언급한 세권의 책의 연장선상에 있으면서 전혀 다른 차원에 속하고 전혀 다른 위상을 가지고 있다. 학문의 분야에서건 산악문학의 분야에서건 가장 기초가 되는 삼각점은 역사서와 사전과 교과서다. 이 삼각점 위에서 이제 문화가 꽃을 피운다. 세 개의 삼각점이 땅에 든든히 발을 붙이고 있다면, 문화는 그 위에 자유롭게 피어나는 아름다운 꽃이다. 이제 이용대의 저서들이 2차원에서 3차원으로 도약하고 있다는 뜻이다.


역사서와 사전과 교과서는 팩트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물론 저자의 세계관이 투영될 수는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객관적인 팩트의 기록이다. 하지만 산문집은 다르다. 이것은 보다 주관적인 장르에 속한다. 우리는 <그곳에 산이 있었다>를 통해서 비로소 냉철한 저널리스트 이용대가 아닌 인간 이용대를 만나게 된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서 그가 겪었던 개인적인 아픔과 고통 그리고 우직하면서도 세심한 그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다. 먼발치에서 바라보았을 때에는 무표정한 얼굴에 매서운 눈매를 가지고 있으며 송곳니를 번득이고 있어 감히 말을 붙이기도 어려웠던 그가 뜻밖에도 옛추억을 소곤소곤 이야기해주는 친숙한 산선배로 변화하는 순간이다.


아무리 산문집이라고 해도 이용대는 이용대다. 기본이 저널리스트이지 에세이스트는 아니라는 뜻이다. 여타의 저서들과는 달리 편안하게 시작되는 문장을 따라가도 결국에는 한국산악계 혹은 세계산악계의 중요한 사건들을 팩트로서 마주치게 된다. <그곳에 산이 있었다>한 없이 가벼운에세이가 아니다. 아무리 작은 화제(話題)라도 평생을 산에서 보낸 노산악인의 묵직한 존재감이 실려 있어 깊고 융숭한 시선을 느낄 수 있다.


이용대가 고백하듯 털어놓는 동료 후배 산악인들과의 교류기 혹은 추억을 함께 곱씹어 보는 것은 각별한 일이다. 김영도, 안승일, 홍석하, 남선우, 유학재 등 현존하는 산악인 혹은 산악문화인들과의 인연도 흥미롭지만, 에드문드 힐러리, 손경석, 김형주, 박영석, 고미영 등 이제는 우리 곁을 떠난 이들과의 추억은 읽는 이의 눈시울을 뜨겁게 한다. 북한산 인수봉에서 시작하여 요세미티와 돌로미티를 거쳐 히말라야에까지 이르는 이용대 자신의 등반기도 물론 빼놓을 수 없는 읽을 거리다.


저자로서 이용대의 경력은 짧다. 늦깎이 저자로 데뷔하여 최근 8년 동안 4권의 저서를 낸 것이 전부다. 하지만 그 수준이 이리도 높은 것은 왜일까? 간단하다. 알파인 저널리스트로서 이용대의 경력이 길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지 그뿐일까? 아니다. 더 있다. 알피니스트로서 이용대의 경력이 더욱 더 길기 때문이다. 그는 이미 1970년대에 동양산악회를 이끌며 인수봉의 궁형길과 동양길을 개척한 정통 클라이머 출신이다. 등반에 대한 그의 욕망은 세월도 잊어 지난 2013년에는 희수(77)를 기념하여 25명의 지인을 이끌고 인수봉 인수B 코스를 선등하기도 했다. <그곳에 산이 있었다>는 단순한 산문집이나 값싼 회고록이 아니다. 이것은 40년 세월을 바위에 붙어 살아온 어느 노산악인의 치열한 비망록인 것이다.

 

월간 [MOUNTAIN] 2014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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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산

2014.06.19 19:22
*.12.64.210

이 양반...참 대단하지 않아?ㅎ

김만수

2014.07.14 20:06
*.118.124.170

그렇죠! 참 대단한 양반이시지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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