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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로진

2012.02.29 18:00

김유리 님의 수강후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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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 동감상련에서 내 마음에 주단을 깔아 놓은 지 이틀이 지났다. 마지막 수업시간까지만 해도 ‘시간 참 빠르네.’ 담담했다.
지하철을 타고 선생님이 주신 장미꽃을 멍하니 내려다봤다.
‘꽃잎이 한 장, 두 장... 뭐가 이렇게 많아? 6개월이 많다 했는데 얘가 더 많네.’
순간 지난 고전반 수업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고전을 읽는 즐거움.’, 처음엔 그 즐거움을 알려다가 대머리가 되는 줄 알았다. 매주 한 권씩 읽어야 하는 고전의 압박감과 당최 무슨 말을 하시는 건지 읽고도 갸우뚱. 고전의 ‘고’자도 제대로 접해본 적이 없으니 막막하기도 했다.
오죽하면 첫 수업 때 논어를 다 읽었다고 해놓고 쪽지시험을 그 지경으로 봤을까.

1. 다음 중 공자의 3대 제자가 아닌 사람은?
1)자공 2)자로 3)안연 4)번지

4번 수레를 끌던 사람, 번지를 골랐다. 절망적이었다. 역시 고전은 만만치 않구나. 그때 세 번째 문제를 채점하던 중 나와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여자분(언니, 그때도 참 동안이었다.)이 까르르 웃으셨다.

3. 공자는 자신의 일생을 스스로 설명했다. 從心所慾不踰矩란 무슨 뜻이며 그의 나이 몇 살에 깨달은 것인가?

“선생님, 나이가 꼭 중요한가요,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지 않아요?”

‘그래, 맞다. 저 자세다. 내가 고전을 다 알면 뭐하러 수업을 듣겠어. 모르는 것은 인정하고 아는데 까지 열심히 듣자.’

고전반 수업을 등록할 때 만고의 진리를 깨닫고자 한 것은 아니었다. 이리 비틀 저리 비틀 주변 상황에 번번이 흔들리는 내가 답답해졌다. 흔들릴 때 흔들리더라도 중심축을 세워두고 싶었다. 철없은 시절 빨리 나이 들고 싶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 어른이 되면 해탈한 사람처럼 모든 게 명확해지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사회생활을 하다 보니, 나이를 먹는다고 꼭 훌륭한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그럼 나는 어떻게 인생을 살아가야 잘 살았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 그 답을 고전에서 찾기로 했다.

답은 아직 찾는 중이다. 고전 수업 중에 어떤 책이 좋았냐고. 그것도 찾는 중이다. 대신 여유가 생겼다. 20권의 책 중 어떤 책에서 그 지혜를 배웠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내게 얽혀 있는 문제에 대해 조바심을 내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섣불리 답을 내리지 않기로 했다. 내게 벌어진 문제들에 대해 거리를 두고 멀리, 넓게 보는 것 그것이 내가 6개월 동안 수업에서 얻은 답이었다.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고 참선을 하고 나서는 산은 더 이상 산이 아니며, 강은 더 이상 강이 아니라고 하지 않는가.

끝으로, 6개월 동안 얼굴에 '나 힘들어요' 써 붙이고 다닐 때마다 용기를 주신 선생님들, 언니들, 오라버니 고맙습니다. 6개월 동안 소녀시대 별칭으로 참 행복했어요. 제가 어디 가서 소녀시대랑 어깨를 나란히 해 보겠어요. (사실 워크숍이나 뒤풀이에 갔을 때는 주변 눈치가 보이기도 했어요. 혹시 여기에 소녀시대 팬이 우리에게 돌을...) 끝까지 소녀시대의 별칭 부정을 안했던 건 그래도 나름 고전반에서 하나 있는 캐릭터라.. 버릴 수 가 없더라구요.

아무것도 없던 허허벌판같은 제 마음에 주단을 깔아주신 고전반 선생님들 다시한번 고맙습니다. (제 마음이 주단은 마지막 수업에서가 아니라, 고전반에 등록했을 때부터 깔리기 시작했더라고요.)

우물 안 개구리 같던 제게 고전반 1기 수업은 많은 걸 배우고 느끼게 해주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