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 없는 새해에도 삶은 계속됩니다
요즘 저는 아예 뉴스를 보지 않습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분야에 걸쳐 그야말로 끔찍한 뉴스들뿐이니까요. 뉴스를 듣고 보다 보면 새해에도 그리고 우리들에게도 아무런 희망이 없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럴 때면 언제나 그랬듯 저는 산으로 들어갑니다. 인간세상에서 멀리 떨어진 어떤 곳에서는 잠시나마 시름을 잊을 수 있으니까요.
충청남도 천안시 서북구 성거읍 천흥리에는 성거산(573m)이 우뚝 솟아있습니다. 이 산자락에 만일사라는 절이 있고, 그 절의 경내에 ‘만일사마애불’이라 불리는 옛선조들의 바위문화유산이 남아있습니다. 며칠 전 눈 덮힌 성거산에 다녀왔습니다. 아주 오래전 햇볕이 따사로왔던 어느 날 처음 뵈었던 이 마애불은 너무 닳고 닳아서 그 본모습을 거의 알아볼 수 없었습니다. 고려시대에 조성되어 무려 천년 가까이 그곳에 꼼짝도 않은채 그저 무심히 좌정하고 있었으니 그럴 만도 하지요. 그런데 눈 덮힌 날의 마애불은 달랐습니다. 차가운 바람과 함께 눈이 내려 쌓이니 이제야 비로소 본모습을 드러낸 것입니다.
저는 이 눈 덮힌 마애불을 오랫동안 마주 보면서 묘한 위로감을 받았습니다. 햇살 따사로운 날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얼어붙고 눈이 쌓여야 제 모습을 보여줍니다. 고작해야 백년도 살지 못하는 우리의 가슴앓이야 뭐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천년 동안 저 자리에 앉아 세월을 견뎌내는 이도 있습니다. 그래서, 아무런 희망도 찾을 수 없는 새해에도, 우리의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문득 했습니다. 이 사진과 이 글이 여러분에게 작은 위안이라도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