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사랑에 빠진 편의점 소녀
[중경삼림]의 화예
[중경삼림]의 영어 제목인 ‘충킹 익스프레스’는 홍콩 충킹에 있는 한 포장판매 전문 외식업소다. ‘익스프레스’라는 업소는 바쁘고 외로운 현대인들의 일상을 집약적으로 묘사하기에는 제격이다. [중경삼림]은 이 업소를 매개로 하여 그곳을 드나들며 스쳐지나간 각각 다른 네 남녀의 서글프고도 코믹한 사랑을 경쾌하게 그리고 있다.
화예(왕정문)는 충킹 익스프레스의 여점원이다. 소년처럼 짧게 깎은 머리에 어딘지 성년의 문턱을 넘어서지 못한 듯한 모습의 그녀는 또래의 계집아이들이 흔히 그러하듯 속 마음을 드러내지 않는다. 화예는 단골인 정복경찰 633(양조위)을 짝사랑하지만 내색하지 않는다. 그저 커다란 조리기구를 양 손에 든 채 ‘캘리포니아 드리밍’을 불러대며 설레임과 외로움을 달랠 뿐이다.
잘 만들어진 영화는 타인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만든다. 우리는 [중경삼림]을 보며 짝사랑에 빠진 풋풋한 처녀의 엉뚱하고 귀여운 욕망을 낱낱히 훔쳐보는 즐거움을 만끽한다. 우연히 633의 아파트 열쇠를 손에 넣은 화예가 몰래 매일 그곳에 들어가 벌이곤 하던 엉뚱한 짓들은 얼마나 귀엽던지. 짝사랑하는 남자의 침대에서 그녀의 애인이 떨구고 간 긴 머리카락을 집어들고 소리를 질러대던 모습은 또 얼마나 상큼하던지. 실연의 상처 때문에 비누나 맥주병하고나 대화를 나누던 633이 화예의 존재를 알아차리는 것은 영화가 거의 끝나갈 즈음이다. 마침내 둘은 카페 ‘캘리포니아’에서 첫 데이트를 갖기로 약속한다. 하지만 633이 ‘캘리포니아’에서 그녀를 기다릴 때 화예는 엉뚱하게도 진짜 미국 캘리포니아로 날아가 버린다. 소녀는 처녀가 되어 그를 만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꿈꿔왔던 캘리포니아도 직접 가보니 “별 거 없었다”고 말하는 그녀는 분명 성숙한 여인이었다. 어쩌다 24시간 편의점 같은 데서 졸고 있는 아르바이트 소녀들을 보면 화예가 생각나 빙긋 웃는다. 저 아이들은 혼자 있을 때 무슨 노래를 부를까? 저 아이들도 이제 곧 누군가를 사랑하면서 눈부신 처녀로 성숙해가겠지?
[동아일보] 2001년 11월 27일
왕가위 감독 작품으론 그냥 그랬지만, 왕정문이란 배우를 발견한 것만으로도 좋았던 작품이다.
얼핏 보면 미친년인거 같은데 저렇게 매력적일 수 있나!!!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