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심산 등록일: 2006-06-06 01:42:05 IP ADRESS: *.147.6.178

댓글

1

조회 수

3257

[img1]

생존과 야망과 원죄

송해성의 [역도산]

 

지난 연말 개봉 당시 언론의 집중적인 스포트라이트와 관객의 엄청난 기대를 한 몸에 받았으나 예상 외의 흥행참패를 기록했던 한국영화가 있다. 설경구가 주연을 맡고 송해성이 연출한 [역도산]이다. 워낙 많은 제작비가 투여된 작품인지라 흥행실패에 따른 흉문들도 스산하기 짝이 없다. 자타가 공인하는 한국 최고의 영화제작사 싸이더스가 휘청거릴 정도라고 하니 가볍게 웃어넘길 수만은 없는 일이다. 하지만 숱한 예술가들이 한 데 모여 혼신의 노력을 다 쏟아부은 끝에 간신히 세상에 내놓은 하나의 작품을 단순히 흥행성패에 따라 멋대로 재단해버리는 작금의 행태에 나는 반대한다. 최근 나의 가슴을 가장 강렬하게 뒤흔들어 놓은 영화 속의 캐릭터는 바로 역도산이었다.

과연 역도산의 그 무엇이 내 마음에 파문을 일게 했을까? 영화를 보고 난 며칠 동안 나는 역도산이라는 캐릭터에 집중했다. 영화 [역도산]에서 흠집을 찾아내기란 쉬운 일이다. 상업영화 특유의 과장된 드라마타이즈를 일부러 비껴갔고 덕분에 관객의 감정이입을 의도적으로 차단하는 일종의 소격효과를 냈다는 것쯤이야 굳이 평론가들이 지적하지 않더라도 금세 알아차릴 수 있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역도산이라는 캐릭터에게서 공감을 느끼고 가슴 저려했던 것은 왜일까? 똑 부러지는 답변이 쉽지 않은 질문이다. 아마도 내가 역도산에게서 무언가를 느꼈다면, 그것은 내 안에 있는 ‘역도산적인 면’이 그 캐릭터와 조응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그 ‘역도산적인 면’이 바로 ‘수컷적 삶의 원형’이라고 생각한다.

생존과 야망 그리고 원죄. 역도산의 삶을 세 단어로 압축한다면 이렇게 될 것이다. 그는 살아남기 위하여 더러운 개울물에서 꼭두각시처럼 병정놀이를 해대며 일본군가를 불렀다. 그는 정상에 오르기 위하여 권모술수를 부리고 상대방을 잔인하게 짓밟았다. 하지만 그는 단 한 순간도 ‘조센징’이라는 원죄(!)로부터 자유롭지 못하여 언제나 좌불안석이었다. 역도산의 이러한 삶은 과연 ‘특별한’ 것인가? 무한경쟁을 부추기는 이 비열하고 잔혹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 모두의 삶 또한 영락없이 저런 꼬락서니가 아니었던가? [역도산]을 보면서 나는 나의 생존과 야망 그리고 원죄를 생각했다. 남 몰래 들른 함경도 고향친구의 고깃집에서 빠져나와 연신 경계하는 눈빛으로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어두운 골목길 속으로 사라져가던 그의 외로운 뒷모습이 끝내 잊혀지지 않는다.

[좋은 생각] 2005년 3월호

백소영

2007.11.16 22:20
*.212.95.146
아...... 역시 보는 사람에 따라 감정이입은 엄청난 차이가 있다는 것을..
글을 읽어내려가면서 수컷적인 삼의 원형까지는 아니라 하더라도, 원죄에 의해 자유롭지 못했던 한 인물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봅니다. 갑자기 슬퍼지네요. ㅜ.ㅜ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sort 조회 수
26 이제 그만 오토바이를 멈춰라 + 3 file 심산 2006-06-18 4390
25 짝사랑에 빠진 편의점 소녀 + 2 file 심산 2006-06-18 4384
24 문제에 봉착한 캐릭터 + 1 file 심산 2006-06-18 3850
23 캐릭터 중심 시나리오의 절정 + 1 file 심산 2006-06-18 4330
22 내가 모르는 나 + 3 file 심산 2006-06-17 3764
21 미국의 모순과 분열 + 1 file 심산 2006-06-17 3433
20 품위 있는 삶을 살고 싶다 + 1 file 심산 2006-06-17 3769
19 너무 정직한 것도 피곤해 + 1 file 심산 2006-06-17 3423
18 정처 없는 영혼의 그녀 + 2 file 심산 2006-06-12 3658
17 자신 속에 갇힌 전문가 + 1 file 심산 2006-06-12 3503
16 비열한 거리를 통과하는 남자 + 1 file 심산 2006-06-12 3847
15 사랑에 빠진 푼수 + 1 file 심산 2006-06-12 3509
14 모든 집안의 천덕꾸러기 + 4 file 심산 2006-06-12 3459
13 다른 계급의 여자를 사랑한 남자 + 1 심산 2006-06-08 3361
12 어떻게든 살아남을 놈 + 1 file 심산 2006-06-08 3474
11 방탕한 청춘에겐 핑계가 필요하다 + 8 file 심산 2006-06-08 3735
10 파도처럼 살다간 반항아 + 1 file 심산 2006-06-08 3499
9 허망함을 직시하되 몰두하다 + 4 file 심산 2006-06-08 3434
» 생존과 야망과 원죄 + 1 file 심산 2006-06-06 3257
7 나와 함께 견디어줘서 고마워 + 5 file 심산 2006-05-31 38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