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심산 등록일: 2006-05-15 17:08:31 IP ADRESS: *.254.86.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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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고 

망고의 원산지는 인도북부와 미얀마 그리고 말레이반도다. 인도북부를 여행하다가 마주치게 되는 망고나무는 그 키가 무려 30미터를 넘어서는 것들도 있다. 일그러진 비대칭형의 이 과일은 무엇보다도 쥬스로 인기가 높다. 여행이나 트레킹 도중 이 쥬스를 발견하면 일단 빨대부터 꽂고 본다. 껄쭉하면서도 달콤한 맛이 일품이다. 아시아의 일부 지역에서는 망고의 과육을 갈아 샐러드의 드레싱으로 쓰기도 한다.

 지옥훈련을 방불케 하던 난다 데비 트레킹을 마치고 돌아와 델리의 혼탁한 거리를 헤매이다가 망고장수의 리어커 앞에 선다. 아직은 본격적인 제 철이 아니어서 약간의 녹색기운을 띄고 있는 샛노란 망고들이 탐스럽다. 지나가는 말로 곁에 놓인 귤값을 묻는다. 꾀죄죄한 옷차림에 덥수룩한 수염을 한 인도 상인은 다짜고짜 상한가부터 불러놓고 본다. 손을 훼훼 저으며 돌아선다. 역시나 팔 소매를 잡아끈다. 못이기는 척하고 원래 눈독을 들였던 망고값을 묻는다. 역시나 터무니 없다. 나는 그가 부른 가격의 5분의 1을 불러놓고는 바람이 휑하니 일도록 등을 돌린다. 결국 단돈 50루피에 망고 한 아름을 가슴에 안는다.

배낭여행자들의 거리 네루 바자르에서 가장 깨끗한 릴렉스 호텔의 2층 베란다에서 망고를 꺼내든다. 베란다 저 아래 시장에서는 여전히 악다구니 소리가 드높다. 마치 베네통 광고사진처럼 비현실적인 느낌마저 주는 망고의 샛노란 빛깔이 이채롭다. 나는 그 중 가장 잘 생긴 녀석을 하나 골라들고 두 손으로 조물락거리기 시작한다. 망고를 먹는 재미는 여기에 있다. 자신의 열 손가락을 모두 이용해 마치 성스러운 의식이라도 거행하듯 끊임없이 조물락거려서 부드럽게 만들 것.

탱탱한 망고에 칼을 들이대면 망한다. 과육이 너덜너덜해질뿐더러 칼마저 지저분하게 변한다. 행여나 입을 크게 벌려 와득 씹기라도 한다면 재앙이다. 망고 안에는 전체 크기의 거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커다란 씨가 들어있어 이빨을 상하게 되기 십상이다. 탱탱한 망고를 먹으려면 조물락거리는 정성이 필요하다. 망고 매니아들은 이런 농담을 한다. 탱탱한 망고? 그건 열 여덜살 처녀의 젖가슴이야. 주체못할 호르몬만 무섭게 뻗쳐 탱탱하게 부풀어 있을 뿐 입을 갖다대기에는 영 불편하지. 이렇게 세월아 네월아 하면서 부드럽게 조물락거리고 있어야 부드럽게 안으로 농익는 법이라고.

샌달마저 벗어던진 맨발을 탁자 위로 길게 걸쳐놓고 망고를 조물락거린다. 20분쯤 조물락거리니 한결 부드러워진다. 30대 여자의 가슴이다. 손가락 끝을 간지럽히는 몽실한 느낌이 에로틱하다. 다시 10여분을 더 조물락거린다. 40대 여자의 젖가슴이다. 맥아리가 하나도 없이 자유자재로 흐느적거리지만 그 안의 농익은 느낌이 침샘을 돋군다. 이쯤에서 입을 대볼까 싶지만 이왕 참는 김에 더 조물락거리는 것이 좋다. 이제 망고는 손가락 끝에 놓여진 형상대로 휘어져 감기기 시작한다. 흡사 달리의 그림에 나오는 늘어진 시계처럼. 이쯤에 이르면 손놀림을 극히 절제해야 한다. 여차하면 한쪽 끝이 터지면서 그 달콤한 망고 쥬스가 흘러나오기 때문이다.

탱탱한 망고를 조물락거리다 보면 흡사 한 여인의 생애 모두를 목도하는 것 같다. 터질듯한 호르몬의 시절은 가고 요염한 합일의 시절도 가고 이제 남은 것은 오직 농익은 쥬스뿐이다. 이빨로 꼭지를 따기 전의 망고는 삶의 노역을 모두 끝낸 지혜로운 할머니 같다. 이빨로 망고의 한쪽 끝을 따낸다. 달콤한 주스가 뭉클 솟아나와 손가락 끝을 간지럽힌다. 나는 달디 단 천연 망고 쥬스를 빨며 호텔문을 나서 거지와 사기꾼과 상인들과 수행자들이 바글대는 저자거리로 스며든다. 노을이 지자 더위가 한 풀 꺾여 온 세상 인간들이 모두 다 뛰쳐나온 듯 하다. 어디로 갈 것인가? 아무 데도 가지 않아도 좋다.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손 안에 든 망고를 쥐어짠다.

월간 [VnVn] 2003년 6월호


백소영

2006.05.17 16:30
*.212.95.251
아.. 망고는 그렇게 먹는거였군요.. ㅎㅎㅎ
그것도 모르고.. 친구가 준 망고를 처음 본다며 덥썩 받아 손으로 어떻게 해보려는데 푹푹 들어가데요..
잘 안잘라져서 결국 입으로 죄 뜯어 놓고서야.. 처음으로.. 우주선만한 씨앗의 존재를 알게됐죠.. ;;;
너덜너덜 붙어있던 섬유질을 보면서 얼마나 욕을 했는지..
결국.. 약간의 염분(손으로 하도 주물러서)이 가미된 국물(?)을 조금 맛보고 아깝지만 버렸어요.. ㅜ.ㅜ

김희자

2006.05.20 09:37
*.101.125.241
갑자기 옛추억이..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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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산

2006.06.24 02:20
*.146.254.60
아아 내가 쓴 글을 읽으면서도 다시 떠나고 싶어 미치겠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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