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심산 등록일: 2006-06-02 01:02:13 IP ADRESS: *.147.6.178

댓글

1

조회 수

1409

[img1]

  20세기 최고의 스포츠영웅

  마이클 만 [알리](2001)

 

그때 나는 열 두 살이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비롯한 우리 4형제는 마루에 들여놓은 자그마한 흑백텔리비전 앞에 와글와글 모여 있었다. 당시 우리 가족들 중에서도 무하마드 알리가 이길 거라고 예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는 이미 서른을 훌쩍 넘긴 중년의 사내였으며 ‘한때 유명했을 뿐인’ 퇴물복서에 지나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상대는 당시 파죽지세의 KO행진으로 40연승의 대기록을 달성한 24살의 ‘도살자’ 조지 포먼이었으니까.

경기는 시시했다.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쏜다”던 호언장담은 추억 속의 유행가였을 뿐이다. 알리는 경기 내내 가드로 얼굴을 가리고 얻어맞기만 했다. 하지만 너무 지루하여 하품이 나올 즈음 경천동지할 반전이 일어났다. 알리가 돌연 수비에서 공격으로 전환하더니 포먼을 몰아붙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승부는 순식간에 끝나버렸다. 무려 30년 전의 일인데 지금도 포먼이 쓰러질 때의 그 항공모함이 침몰하는 듯한 느낌이 생생하다. 그것은 홍수환의 4전5기와 더불어 영원히 잊을 수 없는 명승부였다.

내가 알리의 위대함을 이해하게 된 것은 그로부터 많은 세월이 흐른 다음의 일이다. 쏟아 붓는 듯한 말투와 당돌한 자신감 그리고 현란한 푸트워크는 알리라는 복잡한 다면체의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그는 ‘정치적으로 올바른’ 사람이었다. 그는 반전운동의 상징이었고 흑인민권운동의 대변자였다. 미국을 지배하는 백인주류사회에서 볼 때 그는 차라리 일종의 악몽이다. 알리는 포먼과의 명승부를 벌이기 10년 전인 1964년 세계헤비급챔피언에 등극하면서 일찌감치 자신의 존재를 알렸다. “나는 당신들이 원하는 챔피언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챔피언이 될 것이다!”

마이클 만 감독의 [알리](2001)는 이 격동의 10년 세월을 집중적으로 다룬다. 알리 역을 맡은 배우는 래퍼로서 그래미상을 수상한 경력이 있는 윌 스미스인데, 그는 알리에 대한 존경심이 너무 커 오랫동안 이 역할을 맡기를 두려워했다고 한다. 알리 전성기의 실제 코치였던 안젤로 던디(론 실버)가 영화 전체의 권투자문을 맡았다는 것도 특기할 만하다. 이 영화를 보고나면 어째서 CNN이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스포츠영웅’으로 무하마드 알리를 첫 손가락에 꼽았는지 이해하게 될 것이다.

[한겨레] 2004년 3월 10일자

백소영

2006.06.23 01:54
*.44.147.104
모든 사람들이 절대 이길 수 없다고 한 경기를 이긴 사나이..
진정한 챔피언은 여기 있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sort 조회 수
26 영원히 잊지못할 12번째 샷 + 2 file 심산 2006-06-02 1450
» 20세기 최고의 스포츠영웅 + 1 file 심산 2006-06-02 1409
24 벨파스트의 권투와 사랑 + 1 file 심산 2006-06-02 1379
23 꿈이 없다면 아무 것도 없다 + 1 file 심산 2006-06-02 1448
22 화려함 뒤에 숨은 비정한 세계 file 심산 2006-06-02 1449
21 돌연변이 스포츠 에이전트의 꿈 + 2 file 심산 2006-06-02 1447
20 낙오자들에게 재기의 기회를! + 2 file 심산 2006-06-02 2828
19 너만의 스윙을 되찾아라 file 심산 2006-06-02 3246
18 우리들끼리도 즐거웠어 file 심산 2006-06-30 2868
17 승부가 다는 아니다 file 심산 2006-06-30 2736
16 깊이의 유혹에 사로잡힌 영혼들 file 심산 2006-06-30 3022
15 어느 삼류복서의 추억 + 2 file 심산 2006-06-30 3237
14 게임의 법칙과 삶의 진실 file 심산 2006-07-04 2904
13 권투로 표출된 흑인들의 절망 file 심산 2006-07-04 2963
12 마이너리그의 웃음과 사랑 file 심산 2006-07-04 2762
11 폭주족들의 내면일기 file 심산 2006-07-04 2869
10 스포츠영화의 기품있는 클래식 file 심산 2006-07-06 2946
9 가슴 아픈 4쿼터 사랑 file 심산 2006-07-06 2914
8 적과 함께 자일을 묶다 file 심산 2006-07-06 3274
7 볼링에 대한 화장실 유머 + 1 file 심산 2006-07-06 33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