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심산 등록일: 2006-06-04 22:21:07 IP ADRESS: *.201.17.225

댓글

1

조회 수

2124



[img1]

지금도 새벽2시면 컴퓨터를 켠다

론 바스(Ron Bass, 1943-    )

 

캐서린 제타-존스는 아름답다. 천성적으로 여배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내가 [엔트랩먼트]를 세번씩이나 본 것은 순전히 그녀의 섹시한 엉덩이와 고혹적인 눈빛 때문이었다. 으흠, 저 정도라면 과연 마이클 더글러스가 몇백만달러의 게임비(이혼위자료)를 치르고서라도 달려들만 하군! 스크린 속의 여자에게 반한 것은 마릴린 몬로 이후 거의 20년만의 일이어서 새삼스럽게 사춘기로 돌아간 느낌까지 들 정도였다.

그러나 때로는 한심해보이는 반복만이 숨겨져 있던 비밀을 드러내주는 법이다. 꼼꼼히 들여다보라. [엔트랩먼트]의 시나리오는 결코 만만한 수준이 아니다. 표면적으로는 그저 ‘웰메이드’ 테크노액션스릴러처럼 보이지만, 그 저류에 흐르고 있는 두 도둑남녀(!)의 멜로라인 역시 범상한 수준을 훌쩍 넘어서고 있다. 본질적으로 ‘빤할 수 밖에 없는’ 멜로라인을 서브플롯이라는 좁은 범주 내에서도 이 만큼 자유자재로 변주할 수 있는 작가라면? 필모그래피를 뒤져보던 나는 전율했다. 대어(大魚)의 손맛을 아는 낚시꾼처럼 등줄기에 잔소름이 돋았던 것이다.

론 바스는 L.A.토박이다. 병약했던 그는 어린 시절의 대부분을 침대에 누워서 보낼 수 밖에 없었는데 그 결과 엄청난 독서광으로 자라났다. 그런 그가 도스토예프스키나 윌리엄 포크너를 우상으로 떠받드는 작가지망생이 된 것은 당연한 수순. 홀로 악전고투하던 병약한 소년은 놀랍게도 17살때 첫번째 장편소설을 탈고하지만 “너무도 마음에 들지 않아” 박박 찢어발겼다고 한다. 병상에서 일어난 론은 이제 작가의 꿈을 잠시 접어두고 학업에 몰두하여 미국 최고의 엘리트코스들을 차례로 섭렵한다. 스탠포드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하고, 우드로우 윌슨 펠로우십을 따서 예일대학에서 공부하고, 하바드대학 로스쿨을 졸업한 다음 연예산업에 정통한 잘 나가는 변호사로 우뚝 선 것이다.

[img2]

웬만한 사람이었다면 이쯤에서 남은 여생을 즐길 궁리에나 빠져들었겠지만 론은 달랐다. 타고난 책벌레이자 집필광이었던 론에게는 돈 잘버는 변호사생활이 너무 따분하게만 느껴졌던 것이다. 소년시절 품었던 작가의 꿈을 그냥 묻어버릴 수 없었던 그는 매일 새벽2시에 일어나 출근하기 전까지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완성한 장편소설이 세 편. 그 중에는 17살때의 장편을 복원한 [완벽한 도둑]과 훗날 그가 직접 시나리오로 각색해 영화로 완성한 [코드네임 에머랄드](1985)도 포함된다. 마흔이 넘은 나이로 할리우드에 신고식을 치룬 첫작품이 [비서 사만다](1984). 이후 부자관계를 주축으로 하는 첩보물 [진 핵크만의 표적]과 베트남 반전영화 [병사의 낙원]을 거쳐 아카데미 각본상 수상작인 [레인맨]에 이르자 론은 아예 변호사생활을 때려치우고 서재에 틀어박힌다.

1990년대는 론 바스의 시대였다. 섬세한 멜로에 강한 그는 줄리아 로버츠를 주연으로 기용한 세 작품 [적과의 동침], [내 남자친구의 결혼식], [스텝맘]을 연달아 히트시키면서 안정된 작품세계를 구축한다. [조이럭클럽]과 [사랑을 기다리며]는 그의 페미니스트적 성향을 강하게 드러내는 작품이다.  최근에 개봉한 [삼나무에 내리는 눈]은 어느 모로 보나 론에게 적합한 작품.  정치학과 법률지식 그리고 각 캐릭터들 간의 멜로라인이라는 세 방향의 화살표가 모두 론에게 집중되어 있는 까닭이다. 그의 차기작으로 예약되어 있는 것은 [영혼은 그대 곁에]에서 이미 한번 호흡을 맞춰본 적이 있는 스티븐 스필버그의 [게이샤의 추억].

나이가 들어가면서 원숙함을 더해가는 작가를 바라보는 것은 즐겁다.  나이 오십을 넘어서면서 그는 매년 평균 3편의 시나리오를 써낸다.  비결?  간단하다.  그는 할리우드에서 최고의 대우를 받는 작가가 된 이즈음에도 여전히 새벽2시에 일어나 글을 쓴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아내 및 두 딸과 함께 아침식사를 한 다음에도 출근하지 않는 대신 해가 질 때까지 계속 글을 쓴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우리는 너무 게으르게 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img3]

시나리오 필모그래피

1985년 아서 펜의 [진 핵크만의 표적](Target)ⓥ
1986년 밥 라펠슨의 [블랙 위도우](Black Widow)ⓥ
1987년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의 [병사의 낙원](Gardens of Stone)ⓥ
1988년 배리 레빈슨의 [레인맨](Rain Man)ⓥ
1989년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혼은 그대 곁에](Always)ⓥ
1991년 조셉 루벤의 [적과의 동침](Sleeping with the Enemy)ⓥ
1993년 웨인 왕의 [조이럭 클럽](Joy Luck Club)ⓥ
1995년 포레스트 휘태커의 [사랑을 기다리며](Waiting for Exhale)ⓥ
1997년 P. J. 호건의 [내 남자친구의 결혼식](My Best Friend's Wedding)ⓥ
1998년 크리스 콜럼버스의 [스텝맘](Stepmom)ⓥ
1999년 존 아미엘의 [엔트랩먼트](Entrapment)ⓥ
1999년 스코트 힉스의 [삼나무에 내리는 눈](Snow Falling on Cedars)
2005년 스티븐 스필버그의 [게이샤의 추억](Memoirs of a Geisha)

[씨네21] 2000년 3월 7일자

백소영

2006.06.22 23:27
*.44.147.104
필모 정말 화려하다!!! 장르에 구애를 받지 않는 작가네요.. 감동도 늘 빠지지 않고.. 와..
내 남자친구의 결혼식 정말 재밌었는데.. ^^*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sort
46 시나리오의 3대 요소? 구조, 구조, 구조!/William Goldman(1931- ) + 6 file 심산 2006-09-05 6394
45 마음을 닫고 사는 보통사람들/Alvin Sargent(1952- ) file 심산 2006-07-27 4948
44 너무 일찍 성공한 작가/Scott Rosenberg(1964- ) file 심산 2006-09-02 4625
43 그대 안의 포르노그래피/Patricia Louisiana Knop(1947- ) file 심산 2006-08-29 4582
42 블랙리스트 작가의 멋진 복수극/Walter Bernstein(1919- ) file 심산 2006-08-29 4557
41 미국 남부의 정서와 풍광/Horton Foote(1916- ) file 심산 2006-07-25 4284
40 상처를 응시하는 불안한 눈동자/Paul Schrader(1946- ) file 심산 2006-07-12 4047
39 고칠 수 없을 때까지 고쳐쓴다/Bruce Joel Rubin(1943- ) file 심산 2006-09-02 3993
38 흑백TV시절 안방극장의 단골손님/Daniel Taradash(1913-2003) file 심산 2006-08-29 3988
37 인간의 심연을 파고드는 스릴러/Ted Tally(1952- ) file 심산 2006-07-27 3982
36 거친 사내의 아메리칸 드림/Joe Eszterhas(1944- ) file 심산 2006-09-02 3965
35 전세계의 감독들을 지휘하다/Jean Claude Carriere(1931- ) + 1 file 심산 2006-07-27 3954
34 아버지와의 섀도복싱/Nicholas Kazan(1946- ) file 심산 2006-07-27 3918
33 무성영화시대를 통과하여 살아남은 장인/Ben Hecht(1893-1964) file 심산 2006-07-25 3881
32 만화와 영화의 경계를 허물다/David Goyer(1968- ) file 심산 2006-07-25 3850
31 손맛을 신봉하는 정공법의 달인/Bo Goldman(1932- ) file 심산 2006-08-29 3780
30 뒤틀린 코미디의 썰렁 브라더스/Scott Alexander(1963- ) & Larry Karaszewski(1961- ) file 심산 2006-07-12 3772
29 담담히 지켜본 한 계급의 소멸/Ruth Prawer Jhabvala(1927- ) file 심산 2006-07-27 3767
28 고통과 냉소의 저술광/Frederic Raphael(1931- ) file 심산 2006-08-29 3662
27 개성 없다고? 기다려봐!/Eric Roth(1942- ) file 심산 2006-07-25 35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