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심산 등록일: 2006-06-04 22:17:52 IP ADRESS: *.201.17.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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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프로 동여맨 추억의 세월

 아서 로렌츠(Arthur Laurents, 1918-    )

 

허벨은 잘 생긴 부르조아 출신으로 소설가 지망생이고 케이티는 제멋대로 생겨먹은 운동권의 열혈여전사. 이 도시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커플의 인생역정과 러브스토리를 때로는 가슴 설레이게 그리고 때로는 애잔하게 그려낸 영화가 [추억]이다. 두 캐릭터가 그리는 삶의 궤적을 따라가 보자. 허벨은 2차대전에 참가한 이후 안 팔리는 소설을 쓰다가 할리우드로 가서 시나리오작가가 된다. 케이티는 좌파방송국을 운영하다가 허벨과 결혼한 다음 할리우드로 따라가지만 그곳에서 또 다시 사고(!)를 친다. 매카시즘의 횡포를 도저히 묵과할 수 없었던 것이다. 결국 둘은 헤어지고 이제 중년으로 접어든 그들은 영화의 라스트에서 다시 우연히 마주친다. 허벨은 그저 그런 방송작가가 되어 있고 케이티는 여전히 반핵운동의 전선에서 뛰고 있다.

두 캐릭터 모두 내게는 너무 친숙하다. 격동의 80년대에 청춘을 보낸 386세대라면 누구에게나 익숙한 풍경이요 내면세계인 것이다. 케이티는 내가 버린 옛애인이고 허벨의 만신창이 사랑은 우리 모두의 가슴앓이였다. 그러나 [추억]은 케이티와 허벨 그 모두를 끌어안는다. 어느 한편의 손을 들어주는 대신 그들 모두의 삶을 보듬어 안으며 한 시대와 세월을 반추해본다는 점에서 1990년대를 어지럽혔던 우리 문단의 후일담소설들 따위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일정한 품격을 획득하고 있는 것이다. [추억]을 보면서 나는 그 작가가 궁금해졌다. 도대체 자신이 살아온 시대를 이토록 로맨틱하면서도 자부심을 잃지않는 균형잡힌 시각으로 그려낼 수 있는 작가란 어떤 사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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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히치콕의 초기스릴러 [로프]의 크레딧에서 아서 로렌츠를 발견한 것은 충격이었다. [로프]와 [추억]이라? 그 사이의 세월이 너무 길고 그 작품들의 색깔이 너무 다르다. 바로 다음 작품인 [코트] 역시 스릴러인 것을 보면 더욱 종잡을 수가 없다. 그러나 로렌츠는 스릴러 시나리오작가이기 이전에 이미 브로드웨이 극작가요 뮤지컬 대본작가였다. 대표적인 희곡작품으로는 [용자의 고향]과 [뻐꾸기의 시간]을 꼽을 수 있고, 저 유명한 뮤지컬 [웨스트사이드스토리]와 [집시] 역시 그의 작품. 그 때문인지 스릴러 장르에서 벗어난 중기 이후의 작품들 중에는 유난히 무대 위의 삶을 다룬 것들이 많다.  

[아나스타샤]의 배경은 1920년대의 파리. 잉그리드 버그만은 이 영화에서 러시아의 마지막 짜르 니콜라스의 딸 아나스타샤로 나와 열연을 펼쳐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면서 성공적으로 할리우드에 복귀했다. 프랑소아즈 사강의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를 각색한 [슬픔이여 안녕]은 데보라 카의 청순한 매력과 더불어 술집 여가수로 깜짝 출연한 샹송가수 쥴리에트 그레코를 훔쳐보는 재미를 선사한다. 자신의 두 딸을 브로드웨이의 스타로 만들려는 주책스러운 억척엄마의 이야기 [집시]는 로렌츠 원작의 뮤지컬 코미디. [더티 댄싱](1987)과 [시스터 액트](1992)로 유명한 음악영화 전문감독 에밀 아돌리노가 베트 미들러를 주연으로 기용하여 만든 리메이크 TV영화 [집시](1993)가 비디오숍에 있다. 유성영화의 효시로 알려진 동명의 영화(1927)를 현대에 맞게 번안한 리메이크작이 [재즈 싱어]인데 닐 다이아몬드의 팬이 아니라면 굳이 찾아볼 필요는 없다.  

로렌츠 후기의 대표작은 [터닝 포인트]. 한때 발레리나를 꿈꿨으나 지금은 평범한 가정주부가 된 셜리 매클레인과 처녀시절 그녀의 친구이자 이제는 발레리나로 대성을 거둔 앤 밴크로프트의 이야기인데, 여성에게 있어서 가정과 일의 함수관계를 진중하게 탐구해낸 화제작으로서 특히 페미니스트들의 격찬을 받았다. 무려 아카데미 11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되었었지만 끝내 한 개의 오스카도 챙기지 못한 불운한 작품이기도 하다. 그러고 보니 로렌츠의 작품에서는 특히나 여성캐릭터들이 빛난다. 살인마저 게임으로 즐기는 [로프]의 작가로 출발하여 다양한 여성캐릭터들을 만개시킨 페미니스트 작가로의 변신이라…그가 로프로 동여맨 추억의 세월이 길고도 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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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리오 필모그래피

1948년 앨프리드 히치콕의 [로프](Rope)ⓥ
1949년 막스 오풀스의 [코트](Caught)
1956년 아나톨 리트박의 [아나스타샤](Anastasia)
1957년 오토 플레밍거의 [슬픔이여 안녕](Bonjour Tristesse)
1962년 머빈 르로이의 [집시](Gypsy)
1973년 시드니 폴락의 [추억](The Way We Were)ⓥ
1977년 허버트 로스의 [터닝 포인트](The Turning Point)
1980년 리처드 플레셔의 [재즈 싱어](The Jazz Singer)ⓥ

ⓥ는 비디오 출시작

[씨네21] 2000년 6월 13일

백소영

2006.06.22 23:28
*.44.147.104
터닝 포인트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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