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심산 등록일: 2006-07-02 17:49:46 IP ADRESS: *.215.23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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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를 이끌어갈 젊은 작가
앤드류 케빈 워커(Andrew Kevin Walker, 1964-    )

스릴러가 관객과의 게임이라면 [쎄븐]은 너무 일방적인 게임이다. 영화사상 가장 완벽한 연쇄살인범 존 도우는 성서와 토마스 아퀴나스와 단테에 정통하며, 세상의 악을 정화할 방안에 대하여 200여권이 넘는 저서를 집필했고, 그것의 구체적인 실행을 위해 7대죄를 저지르고 있는 인간군상 중 7명을 무작위로 선정하여 차례로 죽여나간다. 큰물에서 놀고 싶어 굳이 대도시의 강력계로 지원해온 신참내기 형사 밀즈는 이 징그러울 만큼 냉철한 확신범과 대적하기에는 너무 약해보인다. 은퇴를 코앞에 둔 베테랑 형사 서머셋이 차마 발을 빼내지 못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지원과 분전에도 불구하고 패배는 피할 수 없다. 존 도우의 연쇄살인 시나리오가 너무도 완벽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곧 [쎄븐]의 작가 앤드루 케빈 워커의 시나리오이기도 하다. 마치 밀즈가 결코 도우를 이길 수 없듯 관객은 결코 [쎄븐]의 작가에게 이길 수 없다. 도우(와 작가)는 게임의 법칙을 완벽히 준수하되 전혀 예측할 수 없었던 치명적 반전으로 밀즈(와 관객)를 외통수로 몰아넣어 불가항력의 패배선언을 받아내고야 만다.

펜실베이니아의 알투나에서 태어난 앤드루 케빈 워커는 줄곧 그곳에서 성장하여 펜실베이니아 주립대학을 마쳤다. 이후 그는 다양한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해나가면서 시나리오 집필에 매달린다. 그의 출세작인 [쎄븐] 역시 타워레코드 가게에서 아르바이트 점원으로 일하던 3년 동안 밤마다 시립도서관을 찾아 자료조사와 집필을 반복하는 주경야독의 결과로 쓰인 것이다. 당시 자신과 동갑내기이면서도 이미 할리우드에서 가장 잘 나가는 신세대 작가로 명성을 날리고 있던 데이비드 코엡에게 [쎄븐]의 시나리오를 보내고 그로부터의 조언을 경청했다는 일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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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커는 [쎄븐]으로 맺은 데이비드 핀처와의 관계를 각별하게 여기는 듯하다. 비록 작가 크레디트를 남기지는 않았지만 핀처의 차기작들인 [게임](1997)과 [파이트클럽](1999)의 시나리오작업에 모두 참여했는데, 그가 후자의 엔딩자막에 자신의 이름을 남긴 방식이 대단히 유머러스하다. 영화 속에서 에드워드 노튼을 무지막지하게 두들겨 패는 폭력경찰 세명의 이름이 각각 앤드루와 케빈과 워커인 것이다.

워커의 출발점이자 주특기는 호러. 그러나 잔혹한 장면과 피범벅으로 도배를 하는 범상한 호러와는 처음부터 궤를 달리한다. 그가 관객에게 선사하는 공포는 대개 미스터리 스릴러라는 탄탄한 플롯 위에 기초해 있다. [터미네이터2](1991)의 미소년 에드워드 펄롱이 등장하는 [브레인스캔]은 CD롬으로 즐기는 가상현실 게임을 소재로 삼아 ‘자신의 무의식과 대면하는 자’의 공포를 생생하게 그려낸 독창적인 데뷔작이다. [하이드 어웨이]는 교통사고로 죽음의 문턱을 넘어갔다 온 골동품 거래상 제프 골드블럼의 이야기. 죽어 있던 그 잠깐 사이에 살인광의 영혼이 침투해 들어와 일상 속에서 서서히 본색을 드러내는 과정이 소름끼치도록 무섭다.

이상의 초기작들이 주로 소수의 호러팬들 사이에서만 각광받던 일종의 컬트였음에 반해 호러에서 누아르로 무게 중심을 옮겨놓은 [쎄븐] 이후의 작품들은 좀더 폭 넓은 대중의 지지를 받는다. [8MM]는 스너프필름 속에 담긴 살인사건을 수사하러 포르노산업의 범죄세계 속을 파고 드는 사립탐정의 이야기. 관객과 더불어 지옥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듯한 플롯은 근사하나 지나치게 도덕적인 결말이 다소 아쉽다. 미스터리 스릴러의 플롯 속에 호러와 누아르를 멋지게 녹여넣을 줄 아는 워커의 재능이 만개한 작품이 바로 [슬리피 할로우]. 기괴한 상상력을 현란한 비주얼로 표현하는 데 있어서는 독보적인 재능을 갖춘 팀 버튼과 함께한 작업이었으니 최상의 결과가 나온 것은 당연하다.

비평과 흥행에서 모두 대성공을 거둔 [슬리피 할로우]를 거치면서 이제 워커는 할리우드를 이끌어갈 젊은 작가로서 확고한 지위를 차지했다. 블록버스터의 양산이나 다작이라는 측면에서는 비록 코엡에 뒤지지만, 확실한 개성을 가지고 있는 자기만의 작품세계를 차근차근 구축해나가고 있다는 측면에서는 워커가 한수 위임에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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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리오 필모그래피

1994년 존 플린의 [브레인스캔](Brainscan) ⓥ
1995년 빌 미젤의 [하이드어웨이](Hideaway) ⓥ 
          데이비드 핀처의 [쎄븐](Se7en) ⓥ
1999년 조엘 슈마허의 [8MM](8MM) ⓥ
1999년 팀 버튼의 [슬리피 할로우](Sleepy Hallow) ⓥ

ⓥ는 비디오 출시작

[씨네21] 2000년 10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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