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심산 등록일: 2006-06-21 01:52:33 IP ADRESS: *.237.8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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틸만 헤프 저 「Wolfgang Gullich-A Life in the Vertical」
비명횡사한 볼프강 귈리히의 전기

독일의 전설적인 클라이머인 볼프강 귈리히(1960-1992)는 열네 살 때 암벽등반을 시작했다. 그는 1977년 미국 요세미티에서 선진 등반 기술을 익히고 돌아온 독일의 라인하르트 칼(Reinhard Karl)에게서 프리클라이밍을 배웠다. 그런데 이듬해 그의 동생이 단독등반 중 추락사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당연히 부모는 그에게 등반을 포기할 것을 종용했다. 하지만 ‘영혼을 해방시켜 주는 가치 있는 활동’인 등반에 심취해 있던 그에게 등반을 포기한다는 것은 목숨을 버리는 일이나 다름없었다.

1979년 그는 미국 등반 여행길에 올라 뉴욕 부근의 샤왕겅크(Shawangunks) 암장에서 3일간의 각고 끝에 당시 모든 클라이머들의 꿈이던 슈퍼크랙(Supercrack·5.12c) 7등에 성공했다. 요요잉(Yo-yoing·사전 정찰이나 예행연습 없이 오르다가 추락하면 출발지점으로 내려오지 않고 그 자리에서 톱로핑으로 오르는 등반법)으로 높이 20여m인 이 크랙을 올랐는데, 최난구간은 4m 길이의 오버행 핑거크랙이다. 이후 그는 1982년까지 요세미티와 조수아트리를 왕래하며 볼더링을 배우고 피닉스(Phoenix·5.13a), 베이비 에이프스’(Baby Apes·5.12d) 등 20여 개의 루트를 등반했다.

[img1]

요세미티의 세퍼릿 리얼리티(Separate Reality·5.11d)는 지상에서 200m의 직벽을 오른 후 거의 수평으로 튀어나온 6m 길이의 화강암 루프 밑을 기어서 오버행 위로 올라서야 하는 난구간으로 악명 높다. 1986년 볼프강은 이 루트를 프리솔로(자일을 사용하지 않고 단독으로 오르는 등반)로 오르는 데 성공했다. 그는 로프를 사용하며 여러 차례 이 루트를 오르면서 바위의 특징을 모두 암기하고, 단 한 차례의 실수도 허용하지 않는 엄격한 훈련을 거듭한 후 모험에 나서 이와 같은 위업을 달성한 것이다.

정신집중은 기적을 낳을 수 있어서, 이 루트를 등반할 때 그에게 과거, 현재, 미래의 시간적 구분도 없었고, 그의 영혼과 우주 사이에는 경계선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의 육체가 그의 정신이 됐고, 그의 정신이 또한 그의 육체가 됐다. 그는 “정신력이 승패를 좌우하는 경우에 두뇌는 신체적 완력 이상의 힘을 발휘한다”며, “죽음에 관한 사색을 통해서 삶의 진가를 인식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그와 같은 모험을 감행했다”고 말한다.

1987년 그는 독일의 프랑켄유라(Franken jura)에 위치한 크로텐제르 투름(Krottenseer Turm)에 레드포인트로 월스트리트(Wall street·XI-/8)를 뚫고. 미국의 조수아트리 암장에 문빔 크랙(Moonbeam Crack·5.13b)도 개척했다. 1988년 독일 트랑고 등반대에 참가해 동료 두 명과 함께 네임리스타워(Nameless Tower)의 유고 루트(VIII+) 26피치를 레드포인트로 등정했고, 이듬해인 1989년 고소등반에 프리클라이밍을 접목시키려는 목적으로 다시 카라코룸을 방문했다. 그 등반에서 추락해 인대파열의 부상을 입은 그는 악천후에 시달리던 두 대원이 귀국하고, 친구 쿠르트와 둘만 남게 되었다. 그러자 쿠르트가 남은 등로를 모두 리드하고 부상자 볼프강은 진통제를 한 줌씩 삼켜가며 이를 악물고 등반을 계속해 IX-급의 루트를 개척, 이터널 플레임(Eternal Flame)이라 명명했다. 한 번의 펜듈럼과 홀드가 없는 슬랩 두 구간만 인공등반(A2)으로 오르고 나머지 모든 구간을 레드포인트로 올랐다.

[img2]

1991년 볼프강은 친구 4명과 함께 악천후 속에서 파타고니아의 파이네(Paine) 중앙탑 동벽에 IX급의 36피치 루트를 개척하고 라이더즈 온 더 스톰(Riders on the Storm)이라 명명했다. 절벽을 펜듈럼 트래버스하는 등 부분적으로 인공등반(A3)이 포함된 레드포인트 등반이었다. 그 해 친구 밀란(Milan)은 프랑켄유라의 발트코프(Waldkopf) 암벽에서 크랙 하나를 발견했다. 크랙 하반부는 직벽에 있어서 등반이 가능했지만, 그 위 경사 145도에 12m 오버행은 돌파가 불가능했다. 그 이야기를 들은 볼프강은 11일간 그 오버행에 매달려 해결책을 모색한 후, 9월14일 몇몇 클라이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암벽 위의 깊이가 얕은 핑거 포켓들을 이용하며 신기에 가까운 기술을 발휘해 7초만에 오버행을 돌파하고, 액션 다이렉트(Action Direct)라 명명했다. 난이도 V-급 등반부터 시작해 등급을 계속 높여 오다가 마침내 암벽등반 사상 최초로 XI급(9a=5.14d) 돌파라는 위업을 달성한 것이다.

그는 영국, 이탈리아, 프랑스, 미국, 오스트레일리아 등 전 세계에 산재해 있는 고난도 암벽루트 200여 개를 등반했는데, 이 중 55개는 초등이고, 60여 개를 레드포인트로 올랐다. 또한 5개를 프리솔로로, 그리고 3개를 온사이트(on-sight·사전 정찰 없이 추락 없이 단번에 오른 등반)로 올랐다.

그러나 볼프강의 운명은 바위가 아닌 엉뚱한 데에서 끝나고 말았다. 1992년 8월31일 뮌헨의 한 라디오 방송국에서 등반에 관한 인터뷰를 마치고 뉘른베르크의 집으로 귀가하던 중 아우토반에서 졸음운전으로 추정되는 교통사고로 31세라는 꽃다운 나이에 결혼한 지 1년 된 아내를 혼자 두고 떠난 것이다. 이 책의 저자 틸만 헤프(Tilman Hepp)는 슈투트가르트 대학에서 체육교육학과 정치학을 전공한 사람으로 오랫동안 독일의 한 등산잡지사 편집장을 맡았던 언론인이다. 그는 볼프강 생전에 볼프강과 스포츠클라이밍 교육에 관한 저서를 공동 집필도 했던 절친한 친구였다.

1994년 독일 쉬투트가르트 출판사 간행. 크라운판, 144쪽.        

이창기 전 강릉고 교사

월간 [산] 2003년 12월호

유서애

2006.06.21 18:12
*.151.222.68
어떻게 저 상태로 비박이 가능한 것일까...@ @? 세상엔 참 대단한 사람들이 많다는 생각이 들어요.
profile

심산

2006.06.21 19:22
*.254.86.77
저 비박장소가 바로 칠레 파타고니아에 있는 파이네(3.050m) 중앙탑의 수직절벽입니다...^^/위의 등반지가 미국 캘리포니아 요세미테의 세퍼리트 리앨러티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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