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심산 등록일: 2006-06-06 22:39:12 IP ADRESS: *.215.228.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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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 ‘띠띠 할아버지’ 프란시즈 트레자미니씨
 
[월간 산 2006-03-13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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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산악인에게 정 넘치던 샤모니 토박이

지난 날 많은 한국 산악인들에게 따뜻한 관심과 너그러운 웃음을 지으셨던 띠띠 할아버지께서 12월16일 돌아가셨다(1931-2005). 프랑스 샤모니의 터줏대감으로 현지의 많은 유명 산악인들과도 친분이 두터웠던 할아버지가 한국 산악인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1970년대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한국산악회의 제2차 알프스 훈련대에서 이탈한 유재원, 차양재 선배가 띠띠 할아버지가 운영하고 있는 지금의 샤모니아드 볼랑(여인숙)에 기거하면서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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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국하지 않은 유재원, 차양재 선배는 자연히 여권기간이 만료되어 샤모니 체류에 문제가 생겼다. 경찰과 친하게 지내던 할아버지는 당연히 그들에게 법적인 도움을 줬다. 즉 경찰이 불법거주 단속을 나오면 미리 그들을 피하게 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두 선배는 그렇게 산으로 올라가 며칠씩 지내다 내려왔다고 했다.

70년대 초반부터 한국 산악인과 인연

이후 할아버지의 도움으로 유재원 선배는 당시 샤모니 시장인 모리스 에르조그(1950년 안나푸르나 초등)에게 부탁해 노동증도 만들어 실뱅 소당이 운영하던 식당(현재의 임파서블)이나 등산장비 제조회사인 시몽에서 일하기도 했다. 할아버지는 유재원 선배를 성격이 좋고, 혼자 있길 좋아하는 고독을 즐긴 사나이로 기억했다.

특히 할아버지가 당시 한국인에게 호감을 가진 이유 중 하나가 자유로운 프랑스와는 달리 냉전으로 상대적인 자유를 많이 박탈당한 한국인의 젊음이 가슴 아팠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한국인에 대해 고집이 아주 세다며 웃던 할아버지가 아니었던가. 1977년 여름에 유재원 선배가 몽블랑 남쪽에서 조난사했을 때도 할아버지는 직접 나서서 유재원 선배를 샤모니 묘지에 묻고 줄곧 그의 묘에 관심을 가졌을 정도였다.

띠띠 할아버지는 1931년 11월17일 2남2녀 중 셋째로 샤모니에서 태어났다. 집안은 부모님 시절부터 샤모니에 거주하게 됐다. 안마쓰에서 살던 아버지(장프랑수아 트레자미니)가 1914년 제1차 세계대전 때 부상을 당해 요양차 샤모니에 오고부터 이곳 산골에 살기 시작했다.

띠띠 할아버지의 정식 이름은 프란시즈 트레자미니(Francis Tresamini)다. 다소 이탈리아식 이름에 가깝다. 이는 1862년 이전엔 이 일대가 지금의 이탈리아 영토인 샤르데니아 공국이 다스렸기 때문이다. 할아버지 자신은 이 지역 알프스 사보이의 원주민임을 자랑스러워하셨다. 한편 ‘띠띠’라는 예명은 어렸을 적에 워낙 개구쟁이였기에 외할머니가 붙여준 이름인데, 자라서도 계속해서 불리게 됐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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띠띠

할아버지는 20대 시절에 오스트리아에서 군생활을 했다. 바로 그때 알파인 부대에 근무하면서 알피니즘에 처음 눈을 뜨게 됐다. 따라서 자연히 산에 관심을 가져 정규등산학교에 입학해 졸업할 정도였으며, 가이드 견습생활까지 했다. 그러나 군복무 후 샤모니로 돌아왔는데, 부모님이 만류해 정식 가이드가 되진 않았다. 한국 산악인에게도 ‘무상의 정복자’란 말로 널리 알려진 리오넬 테레이 같은 가이드조차 “야, 너같이 힘 좋은 사내가 가이드 일을 왜 안 하지?”라며 가이드협회 가입을 권유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그리고 띠띠 할아버지는 우리 한국 산악인들에게조차 널리 알려진 가스통 레뷰파나 르네 드메종, 실뱅 소당, 크리스토프 프로피, 월터 보나티, 피에르 마조 등과도 친분이 있었다. 이들 모두 당대 최고의 산악인들이 아니었던가. 마조와는 몽블랑에도 함께 올랐을 정도다. 그리고 실뱅 소당이나 프로피는 할아버지 집에서 멀지 않은 샤모니 북측 외곽에 살고 있는데, 할아버지와는 오래 전부터 절친한 사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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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의 위대한 산악인 월터 보나티와 할아버지는 프랑스의 에귀 뒤 미디에서 헬브로너를 거쳐 이탈리아의 앙베르까지 잇는 케이블카(곤돌라) 연결공사 시절에 처음 알게 됐다. 그때 보나티가 몽블랑 남벽의 브루이야르 필라를 등반하러 간다기에 당시엔 일반인에겐 케이블카를 태우지 않았지만 할아버지 자신이 건설현장의 제2 책임자였기에 특별히 그를 태워준 적도 있다. 이후 할아버지는 보나티와 친구처럼 지내는 사이가 됐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샤모니를 거쳐간 한국의 웬만한 산악인들은 거의 다 현재의 샤모니아드 볼랑(일명 띠띠네집)을 알 것이다. 이 집은 띠띠 할아버지의 부모님 집이었는데, 1970년에 현재의 모습으로 개조해 숙박업을 시작했다. 1983년에 현재의 영국인 주인에게 양도할 때까지 띠띠 할아버지가 주인이었다. 이후 할아버지는 1998년 가을까지 샤모니 남쪽 가이앙 암장 근처의 라몽타냐드란 작은 호텔을 운영했다.

샤모니의 관광지화, 도시화 아쉬워해

할아버지는 띠띠네 집이 자신이 경영할 때 사용하던 ‘샤모니아드(샤모니 사람)’란 이름으로 계속해서 사용되길 바랐었다. 하지만 근래에 간혹 샤모니아드와 같은 숙박업소에서 발생하는 분실사고에 대해 안타까워했다. 자신이 그런 숙박업소를 경영하던 당시엔 도둑이 없었다며 샤모니도 옛날과는 많이 변했다며 걱정하곤 했다. 샤모니가 보다 관광화, 도시화가 됨으로써 그 옛날 정답던 산골 분위기는 간 데 없고, 마음 맞는 친구들도 찾기 힘들게 됐다며 아쉬워하던 할아버지가 아니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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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할아버지를 마지막으로 본 게 아마 재작년 봄이었나 싶다. 샤모니 시내를 벗어나 북측 숲으로 산책을 갔는데, 마침 바람 쐬러 나오신 할아버지를 만났다. 한국 산악인을 만날 때면 늘 그러시던 그 변함없는 반가운 표정은 여전하셨다. 하지만 몸이 예전 같지 않으셨는지 다소 불편해 보였으며, 목이 많이 잠겨 있었다.

할아버지는 그런 상태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필자에게 북측 숲속의 볼더링 암장을 아느냐? 모르면 자신이 그곳까지 안내해주겠노라고까지 하셨다. 이미 그곳을 알고 있던 필자는 말만 들어도 고맙다는 인사만 하고 헤어졌는데, 할아버지께서 이렇게 빨리 우리 곁을 떠나실 줄은 몰랐다. 아직 좀더 사실 나이였기에 안타깝고 슬플 따름이다.

글·사진 허긍열 한국산악회 대구지부 회원·프랑스 샤모니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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