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심산 등록일: 2006-03-12 03:24:43 IP ADRESS: *.147.6.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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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곤의 감독 데뷔기 [1]
[씨네21 2006-03-10 16:00]    


충무로 사람이라면 1964년생 시나리오 작가 김해곤을 모르는 이는 드물다. 일반 관객이라도 <장군의 아들>의 단역으로 영화계에 입문한 김해곤이 <파이란>과 <블루>의 작가인 사실은 모를지언정 <게임의 법칙> <파이란> <라이방> <태극기 휘날리며> <달콤한 인생> <가문의 위기-가문의 영광2>에서 조폭과 군인으로 등장했던 그 얼굴만은 낯이 익으리라. 영화계에선 육두문자의 달인으로도 널리 알려진 그가 드디어 메가폰을 잡았다. 3일간 부산 수영만 스튜디오와 통도사를 오가며 목격한 김해곤 감독의 몸놀림은 예상대로 진막에 앉아 군선을 휘두르기보다는 화살 속을 헤치고 부하들을 독려하는 맹장에 가까웠다. 주위 사람에게 친근감을 표현하는 리듬감 넘치는 욕설도 여전했다. “몸무게가 7kg이나 빠진” 날렵한 얼굴은 영화감독이 겪는 제작의 어려움 때문일 것이라고 지레짐작했지만 “실은 하루도 빠지지 않고 운동했다. 내가 지치면 안 되니까”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영화 <보고 싶은 얼굴>에 대한 무성한 소문도 이런 식이었을까. 7년을 품은 <보고 싶은 얼굴> 시나리오를 허리에 차고 촬영현장에 뛰어든 신인감독 김해곤의 달콤쌉싸름한 감독 도전기.

시나리오 쓴 이가 왜 직접 연출까지 하냐고?

“영화작업의 근간은 책이잖아. 막말로 하면 지금 책 없어서 영화 못 찍지, 감독이 없어 영화 못 찍느냐고. 사람들이 X까는 소리 하는 게 시나리오가 영화의 60∼70%라고 매번 이야기는 해. 그러면서 결국 책을 만드는 건 작가인데 처우가 너무너무 X같은 거야. 어떨 때는 감독과 작가랑 이야기하는 걸 보고 있으면 둘 다 목 졸라 죽여버리고 싶어. 김대우 감독, 심산 작가, 김희재 작가, 나 정도면 톱클라스니까 작업하면서 문제 제기도 하고 싸우는데, 밑에 있는 놈들은 완전 개자두 취급받는 거야. 심지어 신인들은 돈 1천만원 주고 세번, 네번을 돌려버리는 경우도 있다고.”


“원래 욕에 조예가 깊은” 시나리오 작가 김해곤이 <보고 싶은 얼굴>을 연출하기로 한 출사의 변은 이러했다. 다시 말해 “충무로에서 시나리오 작가로 사는 게 너무 X같아서 감독을 해야겠다”로 귀결된다. 카드빚으로 3년 넘게 공사판을 전전하던 그에게 본격적인 영화인생을 열어준 시나리오 작업이 “너무 무망하게 느껴졌고 갈수록 영화인으로서의 보람이 없었다”고 자탄했다. 그런 김해곤이 집어든 입봉 카드는 1998년 영화진흥공사 시나리오 공모 당선작 <보고 싶은 얼굴>이다. 영화진흥공사 당선작이 영화화되는 비율이 거의 없던 그 시절, <보고 싶은 얼굴>의 판권 구입에 나선 영화사는 무려 여덟 군데에 달했다. 또한 <보고 싶은 얼굴>은 “이창동 감독이 유독 예뻐했던 시나리오”로 세간에 알려졌다. 그가 세상에 처음 내놓은 장편 시나리오 <보고 싶은 얼굴>은 “초고 그대로 하나도 고치지 않고 배열도 바꾸지 않은 채” 영화 <보고 싶은 얼굴>로 만들어지고 있다.

‘영진공 시나리오 공모 당선작=아트영화’ 딱지

“1998년 당시만 해도 진흥공사 공모에 당선된 시나리오는 저작권을 본인에게 주질 않았어. 처음에는 정지영 감독이 이 책을 가져갔는데 이스트필름에서 500만원을 더 주고 그걸 다시 산 거야. 그러다가 이스트필름에서 영진공이 정한 제작시한 3개월을 남기고 제작부서, 연출부 다 꾸려놓고 투자도 20억원인가 받더라고. 2년 동안 처놀고 자빠져 있다가 갑자기 만든다는 거야. 그래서 영진위에 유권해석을 의뢰했지. 영진위쪽에서 ‘A프린트가 기한 내에 나와야 한다’고 유권해석을 내려 김해곤 작가에게 저작권이 돌아가는 것으로 공문을 보내면서 시나리오가 나한테 다시 돌아왔지. 영진위 공모 당선작들의 저작권이 그 이후에는 작가에게 귀속되는 걸로 바뀌게 됐지.”


김해곤은 “문성근 선배가 춘사영화제 막간에 귀띔을 해준 도움”으로 우여곡절 끝에 자신의 품으로 돌아온 <보고 싶은 얼굴>을 두해쯤 지나 직접 연출하기로 결심한다. 시나리오에 대한 세평이 워낙 좋아 제작은 일사천리로 진행될 듯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자 모두들 “책은 좋지만 돈은 안 벌릴 것 같은 아트영화”라며 지레 뒷걸음질쳤다. 싸이더스FNH의 차승재 대표도 “나는 이 책을 문학으로 봤지, 영화화되는 관점으로는 보지 않았다”고 김해곤에게 유보적으로 말했다. 김해곤이 썼으니까 암울한 이야기일 것이라는 풍문도 만들어지지도 않은 <보고 싶은 얼굴>이 ‘막연한 예술영화’로 규정되는 데 한몫했다. 하지만 김해곤은 연출을 결정하고 처음 생각대로 장진영에게 출연을 제안한다. 사석에서 만난 장진영에게 “책을 줬으면 반응이 있어야 될 것 아니오?”라고 눙을 친 것이 시작이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봤던 시나리오 중 제일 좋았다”는 장진영은 연아 역을 수락한다.

왜 김승우, 장진영이냐고? 나 같은 인상이면 공포물 되는 거야

“영운(김승우)과 연아(장진영)의 캐스팅의 주안점은 욕이 많기 때문에 그걸 순화할 수 있는 분위기의 배우가 필요하다는 거야. 인상 X같은 새끼가 ‘씨발년아’ 그러면 정말 X같은 새끼처럼 보이잖아. 이것을 희석할 수 있는 게 필요했다고. 장진영이는 어떤 욕을 해도 그런 느낌이 안 들어. 눈이 순둥이처럼 생겼잖아. 김승우도 어렸을 때 곱게 자라 그런지 저의나 악의가 있어 보이는 얼굴이 아니라고. 나처럼 험악하게 생긴 배우를 써서 ‘야 이 씨발년아’ 이러면 그건 사람 죽이겠다는 이야기라고. <보고 싶은 얼굴> 괄호 치고 공포물 되는 거야. 영운과 연아는 입장이 충돌했을 때도 서로간의 품성적 부딪침은 있지만 사람 자체는 착한 사람 이미지가 있어야 해. 무서운 이미지를 보여줄수록 작품의 리얼리티와는 점점 멀어지는 거야. 극중에서처럼 연아가 빗자루 들고 와서 영운을 욕하고 때리는 장면에서 인상이 너무 험악하면 관객 입장에서는 ‘씨발 더러워서 더이상은 못 보겠다’ 할 거 아냐. 그렇게까지 가면 진정성은 가질지언정 리얼리티는 없어진다고 생각했어.”

장진영이 캐스팅되면 상황이 나아질 것이라 다들 예상했지만 <보고 싶은 얼굴>에 붙은 “예술영화라는 딱지”는 쉬이 떨어지지 않았다. “상황을 뻔히 알면서도 불 속으로 들어온 김승우”가 가세하고도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 메이저 투자사에서는 실무진들의 적극 추천에도 번번이 최종심사에서 물을 먹었다. 캐스팅을 문제시하던 투자사들은 철저히 상업영화 컨셉으로 준비된 캐스팅에도 묵묵부답이었다. “시나리오를 본 투자쪽의 이야기는 이런 거야. 이 시나리오에 더 암울하게 생긴 애들 데리고 만들면 차라리 투자를 할 만한 이야기라고 말을 바꾸는 거야. 사람들이 우려하듯이 아트영화로, 감독 딸딸이로 안 가기 위해서 김승우, 장진영, 오달수, 김상호, 탁재훈까지 캐스팅한 상업영화로 만든 거야. 그런데도 돈을 안 줘. 책은 다 좋데, 캐스팅도 좋아. 그런데도 돈을 안 줘. 말도 안 되는 소리지”라고 김 감독은 술회했다. 설상가상으로 투자를 결정했던 코리아픽쳐스의 조직이 변동되고 상황이 바뀌면서 제작일정은 최악으로 몰렸다. 이때 제작사 굿플레이어의 김정수 대표는 사비로라도 강행하겠다고 김 감독에게 의사를 전했고 <보고 싶은 얼굴>은 그렇게 제작의 닻을 올렸다.

책은 다 좋데, 캐스팅도 좋아, 그런데도 돈을 안 줘

“투자 때문에 프리 프러덕션 단계에서도 무지 힘들었다. 그런데 원래 나는 낙천적이고, 뺀질뺀질하고, 산전수전 다 겪은 놈이잖아. 감독이 현장에서 약한 모습 보이면 안 되는 것이고. 김승우, 장진영, 김해곤, 김정수가 오해, 눈흘김, 격려, 위로 등등을 거쳐 이제 결승점까지 왔다고. 지금 우리 제작 형태는 1970년대 충무로 토착자본 때나 하던 방식인 거야. 서로 미친년, 미친놈이 아닌 다음에 누가 요즘 영화를 이렇게 해. 당대의 장진영과 한류 배우 김승우가 촬영 80%까지 개런티를 안 받고 출연하는 게 말이 되냐고. 그나마 다행인 건 스탭들은 돈도 꼬박꼬박 주고 숙식을 어느 작품보다 좋게 대우하면서 같이 일한 거야. 신기한 건 갈수록 영화 자체의 탄력은 붙더라고. 동병상련이랄까. 너도 참 X같지, 나도 참 X같아. 이러면서 다독이며 여기까지 온 거지.”


의상비는 감독 호주머니에서 나오고, 세트 계약금은 개런티도 못 받은 김승우가 내놓으며 <보고 싶은 얼굴>은 크랭크인했다. 부산에서 촬영이 준비되는 동안 제작자 김정수 대표는 미친 듯이 사방을 뛰어다니며 제작비 30억원을 자신의 이름으로 차례차례 밀어넣었다. <게임의 법칙> 시절 촬영 퍼스트로 인연을 맺은 최지열 촬영감독, <깊은 슬픔>에서 조명 퍼스트로 친해졌던 임재국 조명감독 등 베테랑들이 프로덕션에 가세했다. “안 된다는 말이 나오면 흥분, 광분부터 하는 똘아이 감독을 어루만지면서 지금까지 촬영하느라 나이 많은 두 사람의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것”이라고 김 감독은 지금 그들에게 깊은 고마움을 표한다. 콘티 작업을 총 3차례나 하고 현장에 맞춰 다시 변화시킬 만큼 꼼꼼히 고되게 작업을 준비했다. 무엇보다 <보고 싶은 얼굴>을 괴롭힌 것은 소문이었다. “일주일에 촬영을 하루만 한다더라”, “영화 엎어졌다더라”는 무성한 소문과 음해에도 김해곤 감독은 2005년 10월29일 부산에 터를 잡은 이후 지금까지 단 한번도 서울에 올라오지 않고 묵묵히 현장에서 작업을 진행했다. “두번 정도 영화를 엎을까 싶은 순간”을 김승우, 장진영이 사비로 스탭들 회식을 시키고 같이 놀면서 겨우 넘긴 김 감독은 “두번 다시 오지 않을 혹독한 감독수업”을 언제나처럼 “X같은 팔자”라 생각하고 받아들였다.

(글) 김수경

lyresto@cine21.com

(사진) 서지형

blackaura@cine21.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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