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션, 드라마 ||홍콩||엽위신 ||견자단(영춘권 고수, 엽문), 임달화(주청천), 웅대림(엽문의 아내, 장영성)... ||106'||12세 관람가||관련정보없음||이소룡이 존경했던 단 한 사람
1930년대 중국, 수많은 무술가들의 메카가 된 불산. 그 곳에서 ‘엽문’은 빠른 스피드와 강력한 힘을 자랑하는 영춘권의 고수이자, 백전불패를 자랑하는 신화와 같은 실력으로 중국 전역에 명성을 떨친다. 그러던 어느 날, 일본이 중국대륙을 침략해 중일전쟁이 발발하고 불산은 일본의 식민지배 하에 놓이게 된다. 일본은 먼저 ‘민족혼 말살정책’의 일환으로 불산의 무술가들을 비열한 방법으로 하나하나 격파해 나간다. 심지어 이로 인해 죽음에 이르는 무술가들이 늘어가자 엽문은 큰 충격에 빠진다. 그 후 엽문은 제자를 받아들이지 않겠다던 자신의 신념을 버리고 국민들이 일본으로부터 자신의 몸을 지킬 수 있도록 무예를 가르치며, 중국의 자존심을 되찾기 위해 자신의 무술로 일본에 저항하는데...
“우리의 무술은 ‘인(仁)’을 기본으로 남을 헤아릴 줄 안다.
그러므로 너희 일본은 평생 이해할 수 없는 이치이며, 무술을 논할 자격이 없다!”
중국 광동의 불산에서 태어난 엽문(1893~1972)은 7세의 어린 나이에 무술을 시작하여, 16세가 되던 해 ‘영춘권’의 대가 ‘양벽’ 밑에서 수학하며 무술실력이 장족의 발전을 이룬다. 이후, 불산에 있는 다른 무인들과의 교류와 대련을 통해 그의 명성은 중국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그러던 중 중일전쟁이 발발하고 중국이 일본의 손아귀에 들어가자, 애국심이 투철했던 엽문은 일본군을 위해 일하기를 거부하며 가난한 생활을 자처하였고, 중국인들이 일본으로부터 자신의 몸을 지킬 수 있도록 자기방어 수단이 뛰어난 호신무술 ‘영춘권’을 가르치며 일본에 맞서 중국의 자존심을 지켜냈다. 해방 후, 홍콩으로 건너간 엽문은 개인에게 맞는 차별화된 교육 방식으로 홍콩 전역에 ‘영춘권’의 붐을 주도하였으며, 전통무술의 대중화에 앞장섰다. 특히, 당시 13세의 이소룡을 제자로 받아들여 훗날 이소룡이 가장 존경하는 스승이자 ‘절권도’의 기본원칙과 그 사상의 중심이 된 인물로도 유명하다. 겸손한 성품을 가진 그는 영춘권의 대가로서 절대 거만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고, 홍콩에 자리를 잡은 후 영춘권과 무술계의 발전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 영춘권에 대한 끝없는 열정과 무술인에 대한 존경심은 물론 국가와 민족을 진정으로 아끼고 사랑했던 영춘권의 대가이자 중국을 대표하는 무술인으로 중국인들에게 여전히 존경 받고 있다.
“영춘권은 ‘엄영춘’에 의해 창시되어 ‘양찬’의 손으로 뿌리내려지고,
‘엽문’이 널리 번영시킨 무술이다.”
중국 명나라 말, 청나라의 압박을 피해 후난마을로 피신한 소림의 ‘오매선사’는 동네건달에게 결혼을 강요 당하고 있던 두부장사의 딸 ‘엄영춘’을 돕기 위해 여성의 신체에 적합한 무술동작을 가르쳤고, 무술에 타고난 재능을 가진 그녀는 이 무술을 직선적이고 간결한 호신무술로 승화시켜 자신의 이름을 딴 ‘영춘권’으로 탄생시킨다. 여성의 자기 방어를 위한 수단으로 만들어진 영춘권은 자세가 높고 부드러우며 실용성까지 겸비한 실전무술이다. 이후 그녀의 남편인 ‘양주박’에게 전수된 ‘영춘권’은 그의 제자 ‘황화보’와 ‘양이제’ 등에 의해 영화 속 배경인 중국 광동의 ‘불산’에서 새롭게 태동하게 된다. 계속해서 발전을 거듭한 영춘권의 기술은 영춘권의 왕이라 불린 ‘양찬’을 거쳐 그의 제자인 ‘진화순’에 이르러 제대로 된 권법으로 재확립된다. 그리고 그의 수제자인 ‘엽문’에 의해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는 실용무술로 재탄생, 비로소 대중화에 이르게 된다. 여기에 ‘이소룡’의 인기를 바탕으로 세계적으로 알려지면서 중국을 대표하는 무술로 자리잡게 된다.
전대미문! 유일무이! 상상초월!
이소룡의 스승이자, 중국 무술의 전설 ‘엽문’의 감동 실화가 펼쳐진다!!
하지만!
딱 한가지, 중국과 우리가 함께 갖는 역사적 안타까움 덕(?)에 봐 줄만 했던 듯..
그리고 마지막이 그랬기 때문에 참 다행이야..
그나저나 이 영화, 일본 수출엔 문제 없울지 살짝 궁금ㅋ||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