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카레면과 사과와 뻥튀기를 앞에 놓고 [닥터 노먼 베쑨]을 손에 그어 쥐며 행복하다. 아! 나에겐 잘 수 있는 12시간이 있다! 읽다가 졸다가 읽다가 하다가 어느 순간 잠이 든다. 아침 8시에 화장실에 갔다왔다가 다시 감자면을 끓여 사과를 먹고 또다시 잠이 든다. 이렇게 먹다자다 또 먹다자다 한 건 저번 [광인일기] 산행 후 처음이다. 왠지 그래도 뭔가 부족하다. 잠을 뒤척일 때마다 허리와 팔 다리에서 ‘뿌드득’ 소리가 난다. 희안하다. 31년 인생동안 이런 적이 한 번도 없다. 12시에 일어나 지금껏 과외를 다니다가 와인 한 병을 비운 아리까리한 이 상태가 되어서야 글을 쓸 힘이 난다. 종아리가 뻐근하다.
그렇다면 어제 무슨 일이 있었던가?
그제는 밤 12시 가까이 귀가해서 삼십분간 멸치, 무, 다시마 국물을 우려서 된장국을 끓여놓곤 새벽 3시 반쯤 잠을 청했다. 바짝 긴장한 마음 때문에 기어이 일어난 게 아침 6시. 사십분간을 쫓아오는 졸음과 투쟁하며 현실에 안착하느라 커피 두 잔과 담배 두 대가 필요했다. 가벼운 스트레칭과 윗몸 일으키기를 한 후 가방을 싸고 구파발 역에 도착하니 9시 15분, 영희언니과 뺑이를 돈 후 심산 선생님께서 이미 와 계신 만남의 광장에 다다랐다.
성은, 월명, 경오 오빠를 뒤로 한 채 한적한적 산에 오르기 시작했다. 그동안 이들과 교신하느라 핸드폰 밧데리가 닳아간다. (원래 산행 날이면 밧데리가 모자르다.)
사라락 떨어지는 빗방울 따윈, 1.5리터 꽉 채운 보온병과 와인병 따윈, 한 달 만에 산행을 시작하는, 게다가 북한산을 오르는 이 설레임을 억누를 수가 없다. 자꾸 미소가 지어지고 발걸음은 상쾌하기 그지 없다. 빗방울이 적셔준 흙이 내뿜는 이 내음, 이 나무들, 이 바위들, 얼마나 그리웠던가!
사기막골에서부터 씩씩거리는 산행을 시작해서 도중에 ‘우회로’라고 씌여진 팻말을 보곤 정말로 ‘우회’해 버려 일원들에게 미안했지만 숨은벽이 나타냈을 때, 안개에 두텁게 둘러쌓인 그 절경을 보았을 땐 정말로 움직이고 싶지도, 내려가고 싶지도 않았다. 그러나 어찌하랴! 두 다리를 땅에 디디고 있는데!
숨은벽을 우회하며 민호가 떨어져 나갔고, 다른 사람도 아닌 감기 기운이 드센 종원 오빠가 구조하러 갔다. 남은 사람들은 기다리며 부르다, 또 기다리며 부르다를 하다가 전에 일별했던 ‘산신제 바위’ 밑에서 도시락을 까서는 춥고 굶주린 배를 채웠다. 결국, 밥을 먹고 한참을 기다리다 민호와 종원 오빠가 있는 협곡으로 구조대를 보내고 나서야 일행은 다시 온전한 멤버를 갖추고는 심한 비와 안개 때문에 하산을 결정한 후 백운산장을 거쳐 하산을 시작했다.
터벅터벅 내려오자니, 종일 무거운 짐을 지고 다닌 탓인지, 무릎이 결리고 몸이 물에 젖은 솜방망이처럼 무겁다. 처음 해 보는 경험이다. 비록 운동이 되라고 무겁게 가방을 짊어 멨어도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어릴 때, 눈 덮인 치악산을 아이젠 신고 세 번 오를 때조차 이 정도로 춥거나 꿉꿉하지 않았다. 그저 신났을 뿐이다. 이상하게 여름 산행 때 보다 입맛도 없다.
그러나 산은 산이다. 매연과 담배독에 찌든 폐에 활력을 불어 넣는 신선한 공기, 시야는 없어도 신비한 안개들, 온 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견실하게 느껴지는 근육의 쟁투들... 비록 안개과 비 때문에 소리도, 시야도 두터워져 서로 밀착되진 못 했지만, 일행중 한 명이라도 안개를 뚫고 나타날 적엔 이산가족 상봉처럼 반갑기 그지 없다.
비와 안개와 추위와 험한 산령을 넘어 ‘원석이네’에서 짐을 풀고나니, 모두의 얼굴에 맥이 빠지고 멍해 진다. 몸처럼 두서없고 뜬금없는 잡담들을 뛰어넘어 선생님께서 ‘2008년의 계획’에 대해 물으셨다. 누구나 내년의 계획을 이렇게 저렇게 곰삭아 생각해 보았을 터이지만, 막상 발화하려니 부끄럽기도 하다. 선생님께서는 발화가 가진 이런 강제력을 우리에게 부과하고 싶으셨을 지 모른다.
경오 오빠가 뒤를 이어 ‘올 해 가장 기뻤던 기억’ 을 물어 본다.
나에겐 올 해 가장 즐거운 사건은 ‘심산스쿨’에 들어왔다는 일이다. 그 중에서도 ‘SM클럽’의 일원이 된 것이 가장 즐겁다. 돌이켜보면 내 삶은 빡빡하기 그지없다. ‘존재란 무엇인가’ ‘사람은 어디에서부터 오고, 어디로 가나.’를 마치 미친년처럼 정신없이 탐구했던 중고등학생 시절을 넘어 경제력으로 자립하고 운동을하고 정신병자 언니에게 4년동안 괴롭힘 당했던 대학교 시절에서 사람에 대한 믿음과 판타지를 모두 잃었다. 집에서도 나는 언제나 '가장'으로서 행동해야 했다. 부모님께 기대고 싶었던 마음은 고2때 큰 사건을 겪으면서 모두 접었고 큰 일이 생기면 집안식구들이 모두 내 얼굴만 보고 있는 것에 익숙해져야 했다.
알고보면 어제의 [‘~지’로 끝나는 인간의 부분] 놀음에서 가장 큰 건 ‘무지’와 ‘판타지’이다. 그동안 이런 경험들 덕분에 판타지에 대한 부분은 많이 감소되었지만, ‘무지’의 영역은 점차 늘어만 가서 스트레스가 쌓인다. 나이가 들수록, 더 많은 지식의 영역이 추가되기 때문에 게으른 자에게는 그만큼의 적체량이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SM클럽에서 산행을 하고 있노라면 이런 모든 어깨 결리는 스트레스가 저 뒤로 젖혀진다. 다정한 사람들, 포카판처럼 돌아가지 않아도 되는 가벼운 머리, 사랑스럼 내 몸의 부분부분들, 맛있는 식사들, 감사한 산과 풍경들... 생각하고 염려하고, 또 생각하고 염려하는 것이 병처럼 파고든 내 온몸에 Don't think, just do it! 이란 행복한 치유어를 내려준 그 복된 시간들...
언제 이런 휴식을 맛보랴! 언제 이런 휴식과 알맞은 이런 사람들과 함께 하랴! 그동안 산에서 만난 모든 사람들을 형용하려면 글과 시간이 모자르다. 차라리 말을 말자.
어제의 송년 산행에서 안개속을 걸으면서, 그동안의 모든 산행들을 곱씹어 보았다. 잘왔다. 심산스쿨! 잘만났다. SM! 난 당신들이 사랑스럽다. 그리고 고맙다.
다 영문으로 써있는 줄 알고.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