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산반 29기(2012년 4월~2012년 8월) 수강후기 발췌록
"29기. 짧은 4개월의 회고록"
토요일 새벽 2시 27분. 때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언제나 동기 분들의 대본을 읽어보는 혼자만의 데드라인이였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자신의 작품에 열병을 앓을 시간 혹은, 누군가의 작품을 읽으며 열병을 앓을 시간 그 시간들이 함께여서 감사했습니다. 처음 심산스쿨에 올 때, 누누이 많이 들었던 이야기중 하나는 ‘충무로 것들은 여의도 것들 싫어한다’ 였습니다. 사실 아직 충무로도 여의도도 아닌. 수원 어딘가에 살고 있는 ‘나’ 라는 사실만 깨닫고 돌아가는 것 같아 새삼 웃음이 나네요. 두 번째로 들었던 말은, 제게 심산스쿨 심산 반을 강추해주신 분의 말인데 ‘나는 모든 시나리오 기법? 배울 거 사실 심산한테 다 배웠다’ 였습니다.
오늘, 돌이켜보니, 내가 누군가에게 심산스쿨을 강추 한다면 아마 똑같은 말을 하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쌤. 한 20년은 더 하셔도 되것어요! 첫 봄의 부연 하늘을 하얗게 쪼갠 목련도 지고 흐드러지게 거리를 덮었던 벚꽃도 졌을 때쯤 화무십일홍이라는 말을 30번 넘게 눈으로 확인할 때, 심산스쿨에 왔습니다. 그 후 4개월 우리에겐, 뜨거운 무더위도, 쏟아져 내리던 비도, 모든 걸 날려버릴 태풍도, 매주 목요일 비밀스러운 미드나잇도 함께 했었죠. 언젠가, 33기, 34기, 혹은 40기.. 수업시간에 심산 샘 입을 통해. 우리 중 한 사람의 이름이라도 언급이 되는 날이 오기를.. 그날을, 믿고 기다리며 몇 번의 봄을, 여름을 또 쓰며 읽으며, 울며 웃으며, 보내겠습니다. The world is small, please never say good bye. 총총 (문◯정)
"막막함의 백지를 채워나가려는 실천으로..."
처음 심산스쿨에 찾아간 날, 무척이나 떨려하며 수업이 시작되기를 기다리며 앉아있던 그 순간이 기억이 납니다. 선생님이 들어오시기를 기다리며 앉아있는 그 순간이 왜 이렇게 길었던지... 그 이후로 한 주 한 주 시간이 흐른 것이 스무 번이 되어 어느덧 후기를 쓰고 있다니 시간은 어떻게 해서든 반드시 흘러가 버리는구나 하는 것을 새삼 깨닫습니다. 심산 반 시나리오 강좌는 백지상태나 다름없던 제가 20주의 기간 동안 screen play, teleplay 의 기본들을 어줍잖게나마 알게 된 워크숍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좋은 인연들도 많이 알게 된 것 같습니다. 다들 저보다 언니, 오빠들이셨던지라 어렵기도 했지만, 20주 동안 함께 하고 나니 익숙해지고 정도 들었네요. 애교도 없는 막내였던 제게 다정하게 대해주셨던 점이 감사합니다.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같은 관심사로 모여 무엇인가를 함께 한다는 것은 참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모였다는 점에서 재밌었고, 같은 관심사와 꿈을 가진 사람들끼리 모였다는 점에서 유익했습니다.
워크숍 기간 동안 시나리오를 써내지 못했다는 것이 아쉬움으로 남습니다만, 제가 이 워크숍을 듣기 전에는 백지였다면 이제는 저의 꿈에 좀 더 가까이 가려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그 구체적인 방법들이 남았습니다. 시나리오 작법에 대해 공부하고 싶으신 분, 시나리오 작가가 되고자 하시는 분들에게 주저 없이 추천합니다. 막막함을 실천으로 옮기는 그 첫 출발점이 될 수 있는 강좌입니다. (나◯수)
"마침표. 그리고 줄 바꾸기⤶"
어릴 때 꿈이 시나리오 작가였다. 그러고 보니 언제부터였는지도 기억하기 어려운 그 시절의 난 사실 시나리오작가가 무슨 일을 하는지조차 정확히 몰랐던 것 같다. 그러니까 영화에 대한, 어쩌면 현실이 아닌 상상 혹은 환상의 세계를 담아낼 수 있는 그런 일을 꿈꿨던 것 같다. 하지만 그 꿈은 그리 쉽게 손에 잡히지 않고 내 삶의 물결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만 흘러갔다. 그렇게 이제는 더 이상 도저히 하나가 될 수 없을 것 같은 어긋난 물줄기가 기획자라는 지점에 닿아 움푹 파인 웅덩이를 만나 잠시 흐름을 멈추고 채우고 지나가라 한다. 컨텐츠 혹은 프로그램 기획을 위해서는 스토리텔링과 드라마틱한 흐름을 알아야하는데, 내가 속한 곳에서는 배울 수 없는 부분이다. 스토리텔링과 드라마틱한 흐름을 어디서 배우지..? 라고 고민하다 문득 ‘아..!’ 하고 떠오르는 곳이 있었다. 순간 이제는 시나리오 수업을 들을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에 당혹스럽기도 하고, 기쁘기도 하고, 약간 슬프기도 하고.. 시나리오 작가를 꿈꾸는 청춘이라면 그냥 텀벙 뛰어들면 된다. 뛰어들기만 하면, 현장 가장 깊숙이에서 삶이 시나리오고 시나리오가 곧 삶이었던 분이 가장 날 것의 이야기와 테크닉을 가르쳐줄 테니 말이다.
그러나 꼭 시나리오 작가 지망생이 아니어도 좋겠다. 다니엘 핑크가 “새로운 미래가 온다”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감성우뇌를 활용하여 컨텐츠나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일을 하고 있는 이들이 가장 컴팩트하고 가장 임팩트있게 드라마틱한 스토리텔링을 배울 수 있는 곳이니 말이다. 하지만 사실 내가 진정 좋았던 건, 나로서는 결코 경험해보지 못한 깊고 다양한 삶을 산 누군가로부터 그 진한 흔적을 전해 받는 일이었다. “시나리오 작가가 되는 것은 재능의 문제가 아니라 만씬을 쓸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이다” 이것이 비단 시나리오 분야에서만 해당되는 일일까..? 골이 깊으면 봉우리가 높다는 말을 실감할 수 있는 촌철살인의 말씀들. 사실 그 말씀들에 힘입어 동기들이 시나리오를 쓰는 동안 나는 책 한 권을 마칠 수 있었던 것 같다. 시나리오가 아니기에 쌤이나 동기들의 리뷰를 받을 순 없었지만, 그래서 더욱 시나리오 리뷰를 받는 동기들이 한없이 부러운 시간들이었지만, 그래도 이 시간들이 나의 첫 책을 무사히 마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음을 잘 알고 있다.
지난 4개월은 내게 진정 “한 여름 밤의 꿈”같은 시간들이었다. 현실의 필요성과 아른한 꿈이 어우러져 한 여름의 목요일 밤에 취한 듯 몽롱한 시간들.. 여기엔 분명 수업 앞뒤로 만나던 수영조 멤버들과의 끈끈함 또한 절대적이었음이다. 수업 첫 날부터 같은 테이블에 앉기 시작한 우연이 결국 같은 조로 편성되는 인연으로 이어져 어느 틈엔가 슬며시 정이 오고가는 필연으로까지. 저마다 다른 빛깔을 지닌 예쁜 물방울들과 함께 한여름 밤의 꿈을 꾼 것 같다. 너무 예쁜 우리 수영조 아이들.. 한 사람, 한 사람 얼굴을 떠올리노라면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누군가를 떠올리며 미소를 지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가슴 따스한 일인지.. 마음으로나마 한 번씩 꼬옥 안아본다.. 무릇 끝은 또 다른 시작이야. 늘 하나의 일이 끝날 때 다 스스로에게 거는 주문과도 같다. 작가로서의 길들은 모두에게 이제 시작이겠지만 우리들의 관계, 심산스쿨과의 인연은 마침표가 아니라 줄바꾸기임을 알고 있다. 지난 20주는 그런 시간들이었다.. (박◯현)
"고독놀이꾼(?)들을 깨웠던 각성제"
누군가 심산반 수강하면서 가장 힘든 게 뭐였냐고 묻는다면 "수강후기 쓰는 거요!" 라고 주저 않고 대답하겠다. 수강후기 쓰려고 3일 동안 고민해봤는데 할 말이 너무 많기도 하면서 할 말이 없기도 했다. 너무 할 말이 많아서 말문이 막힌 것일까? ㅋㅋ
나는 이십대의 대부분을 비교적 비대중적이고 비상업적인 것을 하는 것으로 시간을 보냈다. 취미생활만이 아니라 학업적인 것까지 나의 모든 생활은 그런 것들로 꽉 차 있었다. 그렇게 해도 잘 먹고 잘 사는 사람들을 롤모델로 바라보며 나도 비슷하게 될 것을 막연히 기대했었다. 내가 너무 순진했고 멍청했다는 것을 깨달은 건 시간이 많이 흐른 뒤였다. 시나리오까지 그렇게 만들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었다. 그래서 심산 반 강의가 시작되기 전에 걱정을 많이 했었다. 시나리오라는 예술에 대해 철학과 미학을 논하는 것을 몇 달 동안 계속 하면 어떡하나... 그런 걱정 말이다. 그런 심오한 것은 집에서 혼자 심심할 때 책을 보며 "고독놀이"로 하면 되는데 학원에서까지 하면 곤란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ㅋ
아무튼 선생님은 첫 수업부터 이 수업이 지향하는 바와 다루는 범위를 아주 깔끔하게 밝혀 주시며 그런 기우를 보기 좋게 깨주셨다. 잔인(?)하리만큼 상업영화의 틀에 맞춘 트레이닝을 넉 달 넘게 받다보니 나 스스로는 내가 상업적으로 많이 변했다고 생각하는데도 불구하고 아직도 갈 길이 멀다는 것을 수시로 느낄 수가 있었다. 그걸 잊을 만하면 심산선생님과 동기들이 눈빛으로라도 등짝을 때려주며 각성하도록 도와주니까 한시도 상업적인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게 나에게는 아주 좋은 의미의 특별한 경험이었던 것 같다. (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