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심산 등록일: 2007-09-30 15:5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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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전! 내 시나리오 살리기 프로젝트
골방에서 촬영현장까지, 신인 시나리오 작가를 위한 스크린 완전 공략 가이드

좋은 시나리오란 어떻게 쓰는 것일까. 그 질문에 절대적인 정답은 존재하지 않지만, 방향을 제시해줄 훌륭한 조언들을 찾기란 어렵지 않다. 지금 이 시각에도 펄떡이는 신선한 아이디어들이 어딘가에서 태동하고 있을 것이고, 그렇게 완성된 무수한 작품들은 다시 치열한 경합을 거쳐 선택받은 몇 편의 작품들로 압축될 것이다. 하지만 영광도 잠시, 다시 한 번 절대 다수의 시나리오들이 극장의 문턱에도 닿지 못한 채 공중분해 된다. 의문은 여기서 시작이다. 그렇다면 시나리오가 한편의 영화로 이어지는 길목에는 어떤 것들이 존재하는가. 왜 엎어지고, 무엇이 필요하며, 어떻게 살아남는가. 한명의 시나리오 작가 지망생이 책상에서 출발해 현장에 도착하기까지의 과정을 함께 걸어보자. 이것은 시나리오를 쓰기 위한 조언이 아니라 시나리오를 쓴 다음, 그것을 정말 스크린으로 가져가기 위한 조언이다. 편집자

글 최하나/편집 김민경/디자인 모보형/일러스트레이션 이진아

Stage 01. 완성된 시나리오 어디다 갖다주지?

마침내 해냈다. 3년이다. 통장 잔고의 압박, 걱정 반 조롱반의 시선들, 스스로의 능력에 대한 회의와 의문으로 잠들지 못했던 숱한 밤들.........  그 혹독했던 시간을 이 한편의 시나리오를 위해 버텨왔다. 그동안 시나리오 지침서라는 지침서는 눈을 감고도 외울 수 있을 정도로 열독했고, 이른바 명작이라 불리는 영화들을 일일이 필사해가며 단련했다. 담배 천 개비 분량의 고민과 치가 떨릴 정도로 거듭된 수정을 통해 탄생한 시나리오. 이제 남은 것은 세상에 나의 작품을 선보이는 것 뿐이리라. 그러나 당선을 확신했던 공모전에서 맥없이 미끄러져 내리기를 수차례. 어느새 감격은 사라지고, 울분이 차오른다. 이대로 시작도 하긴 전에 포기해야 하는 걸까?

공략법   무작정 영화사 찾아가지 마라

현실적으로 시나리오작가 지망생이 선택할 수 있는 경로는 다양하지 않다. 그 중에서도 영화사를 직접 찾아가는 것은 호기롭기는 하나 사실상 승산이 거의 없는 선택이다. 이미 자체적으로 수급되는 아이템들이 넘치는 대다수 제작사들에선 검증되지 않은 신인의 작품은 진지한 검토의 대상이 되는 것 자체가 힘들기 때문이다. 당장 시나리오 공모전을 통해 인정받는 소수에 들지 못한다면, 최선의 선택은 영화진흥위원회의 시나리오 마켓 ( www.scenariomarket.or.kr)이다. 2006년 단순 공모전 형식에서 확장되어 영화사와 작가를 중재하는 ‘시나리오 시장’의 개념으로 자리 잡은 시나리오 마켓에는 현재 300여개의 영화사가 회원으로 가입되어 있다. 매달 추천작으로 선정되는 10여 편의 작품 안에 들 경우, 마켓의 공식적인 검증이라는 타이틀을 업고 메일을 통해 회원사들에게 알려지므로 그만큼 주목받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물론 자체공모도 진행해서, 분기별로 최우수작 1편과 우수작 2편을 선정해 창작지원금을 지원하고 있다.

2006년 시나리오 마켓을 통해 매매가 이루어진 작품은 26편으로, 그 중 <도마뱀><무도리><구타유발자들>이 영화화되어 개봉했다. 올해는 현재까지 24편이 계약을 마친 상태. 작품자체가 판매되지 않더라도, 일정수준 이상의 글쓰기 능력을 갖춘 작가로 영화사의 눈에 띌 경우 다른 작품의 각색 작업에 투입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인맥도 경험도 없는 순수 지망생에서 작가로 현장에 뛰어들고 싶은 이들에게 가장 다양한 가능성이 열려있는 곳이 바로 시나리오마켓이다.

Stage02. 계약하겠다는 회사 왠지 수상한데...

시나리오 마켓에 작품을 등록한 뒤 하루에도 수십 차례 사이트를 들락날락 거렸다. 중개위탁금 2만원을 내고 작가 회원으로 가입하면 마켓에 올라온 대부분의 작품을 볼 수 있기 때문에 경쟁 작들을 상시 탐색하며 수정 작업을 지속했다. 마침내 마켓 추천작에 이름이 올랐고, 기적처럼 전화가 왔다. 시나리오를 뽑아들고 단걸음에 사무실로 찾아갔다. 그런데 분위기가 이상하다. 잔뜩 흥분해 영화사 이름이 낯설다는 것에 큰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 책상 2개에 컴퓨터가 달랑 1대 놓여있는 모습이 심상치 않다. “믿고 저희에게 주시면 됩니다.” 영화화를 확신하면서 500만원을 제시하는데, 액수도 액수고 마음이 영 찜찜하다. 이거 이대로 팔아도 되는 걸까?

공략법 - 배고프다고 아무거나 먹지마라

판권구매 제의를 받은 신인 작가들이 가장 우선적으로 살펴보아야 할 것은 해당 영화사를 신뢰할 수 있는가의 여부다. 계약이 성사된 작품들 중 영화화로 이어지지 못하는 경우의 상당수는 사실상 기본적인 제작여건을 갖추지 못한 신생 영화사를 통하기 때문이다. 특히 작가 지망생들은 자신의 작품을 누군가가 주목해주었다는 기쁨이 앞서 쉽게 계약을 하기 때문에 헐값에 판권을 넘기고 뒤늦게 후회하는 사태가 빈번하게 발생한다. 시나리오 마켓의 나하나 운영팀장은 “지난해 하반기 까지 정체가 모호한 회사들이 작품을 사들여서 문제가 된 경우들이 몇 번 있었다.” 라며 “특히 계약경험이 없는 분들이 제의를 받으면 무조건 수락하는 일들이 있어서, 이제 마켓 차원에서 그런 것들을 끊어 줘야겠다는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 고 말한다.

역으로 실질적인 제작을 전제하고 작품을 구매하는 메이저 영화사를 통하는 경우 진행속도가 빨라짐은 물론이다. 지난해 시나리오 마켓 당선작으로 싸이더스 FnH 김미희 공동대표가 직접 점찍어두었다가 계약한 이승환 작가의 <싱글맘>이 대표적인 사례. 사실 누가 든든한 영화사와 계약하기를 원치 않겠느냐마는 장기간 누적된 허기로 인해 눈 앞에 놓인 당근의 유혹에 쉽게 넘어가서는 안 된다는 점을 명심하자.

Stage03. 내 작품을 사놓고 난도질은 왜 해? ㅠ.ㅠ

놀랍게도 이름을 들으면 누구나 알만한 제작사에서 연락이 왔다. 계약서를 쓰고, 천 만원을 손에 쥐고 나니 세상이 모두 내 것 같다. 친구들에게 전화를 돌려 거하게 한턱을 소고, 곧 시사회에 불러 주리라 큰소리도 쳤다. 한껏 부푼 가슴으로 영화사를 찾아가 대표와 담당PD를 만났는데, 시나리오를 넘겨보는 표정이 사뭇 딱딱하다. “손봐야 할 데가 많겠다.” 까칠한 멘트가 이어진다. 캐릭터들이 현실성이 없다. 전개가 설득력이 부족하다. 대사가 입에 안 붙는다.. 처음부터 끝까지, 온통 뜯어 고쳐야 한다는 말 뿐이다. 아니, 그렇다면 대체 내 작품을 왜 산건데?

공략법- 수정에 상처 받지 마라

한국 시나리오 작가조합 공동대표이자 심산스쿨을 운영하며 작가 지망생들을 직접 교육하고 있는 심산 작가는 “대부분의 신인 작가들이 독방에서 홀로 작업해왔기 때문에 충무로 영화판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이 큰 문제” 라며  “상업영화 시스템을 이해하지 못하고, 상처받고 떠나는 경우가 많다.”고 말한다. 작가 지망생들의 가장 대표적인 ‘착각’은 완성된 작품을 팔았다고 생각하는 것. 제대로 가공되지 않은 원석을 그 상태로 밀어붙여 승부를 보려고 하는 것인데, 영화사가 신인 작가와 계약하는 경우는 사실상 작품보다는 컨셉과 아이디어의 가능성을 사기 위함이 대부분이다. 보통 시나리오 개발에 소요되는 시간은 짧아야 1년에서 1년 반 정도. 경우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보통 20고로 정도의 수정단계를 거치고, 4~5고 까지는 이른바 ‘0고’라는 말이 자조적으로 사용될 정도다. ‘0고’란 캐릭터를 죽여도 보았다가 살려도 보았다가 하는, 즉 이야기를 이리저리 뒤집어가며 최적의 틀을 잡아가는 단계를 일컫는다. 그 과정에서 시나리오는 자연히 무수한 탈바꿈을 경험한다.

2006년 경기영상위원회 시나리오 공모전 수상작으로 김석주 작가의 시나리오 데뷔작인 <걸스카우트>는 당시 심사위원이었던 심보경 대표에게 직접 낙점 받아 실제 촬영까지 이어진 ‘모범사례’중 하나다. 하지만 프로 사기꾼들에게 곗돈을 떼인 여자 4인방이 돈을 찾아 나선다는 컨셉의 작품은 공모전 버전에서는 다소 폭력적이고 어두운 성격이 짙었다. 주인공들의 적대자로 돈을 가로챈 이들이 아닌, 제 3의 인물이 부각된다는 점도 논리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 심보경대표의 지적이었다. 심보경 대표, 김상만 감독, 박제현 PD, 김석주 작가, 네 사람이 머리를 맞댄 난상토론이 이어졌다. 여성들이 적대자를 물리적으로 응징한다는 극단적인 클라이맥스는 대중적으로 무리 없이 소화가 가능한 수준으로 조정됐고, 한국아줌마들의 정서를 맛깔스럽게 살려낼 대사의 디테일들이 하나, 둘 추가됐다.  김석주 작가는 “나 스스로 대중적인 지점을 많이 고민했다고 생각했고 이것이 최상의 결과물이라고 봤는데, 이야기들을 듣고 나면 ‘왜 진작 그런 생각을 못했지?’ 반응하게 되는 경우들이 많더라.” 며 “수정을 하면서 내 색깔을 잃어버린다는 것 보다는 작품이 더 풍성해진다고 생각하게 됐다.” 고 말한다.

2005년 영진위 시나리오 공모전 당선작인 <용의주도 미스 신>은 ‘된장녀가 자기 아이덴티티를 찾아가는 과정’이라는 컨셉을 중심에 놓고 , 각색 작가가 별도로 참여해 원안과는 사뭇 다른 결과물이 나온 경우다. 각색을 담당한 이승환 작가는 “무엇보다 현실적인 시나리오를 만들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찢어지게 가난하지만 연인을 위해 신장을 떼어줄 정도로 사랑이 전부인 남자, 머슴처럼 여자가 부를 때면 언제든지 달려오는 남자” 등은 현실성이 부족하다고 생각되 원안의 캐릭터들이 지워지고, 아예 새로운 인물들이 탄생했다.

수정의 갈래는 빈번하지만 대부분의 신인 작가들의 시나리오가 빈번하게 드러내는 문제점은 지나치게 ‘관념적’이라는 것이다. 캐릭터에 현실의 중력을 불어넣고 대중적인 접점을 확장해 가는 관정은 시나리오작가 한 사람의 머릿속이 아닌 치열한 토론을 통해 이루어진다. 심산 작가는 “시나리오는 객관적인 장르다. 자신을 위해 작품을 쓰는 것이 아니며, 혼자서는 결코 할 수 없는 작업이라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내 시나리오가 난도질당한다.’는 피해의식에 앞서 공동의 논의를 통해 영화화를 위한 최적의 지점을 찾아나갈 수 있다는 인식이 전제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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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ge 04. 감독님, 저보고 어쩌라고요~

고쳐야 한다는 것은 알겠다. 문제는 도무지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거다. 회의 때 감독이 대뜸 한다는 이야기가 “70신 정도에서는 벗기는 것”이 필요하단다. 울컥, 화가 치밀어 오른다. 그딴 것 싫다고 자리를 박차고 나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꾹 참았다. 마지못해 알겠다고 대답하고 억지로 장면을 밀어 넣었다. 그런데 수정본을 받아본 감독의 반응이 놀랍다. “내가 말한 건 이런 게 아닌데.” 당신이 벗기라고 해서 벗겼잖아! 기가 막힐 따름이다.

공략법 - 글 쓰는 만큼이나 대화도 잘해야

수많은 시나리오들이 중도하차하는 가장 큰 이유 증 하나는 이른바 ‘동상이몽’이다. 완고가 나올 때 까지 가장 많이 부딪치는 것은 감독과 시나리오작가인데, 두 사람의 커뮤니케이션이 합리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다. 시나리오 회의를 통해 서로 합의했다고 생각하는 부분들이 실제로는 조정되지 않아, 10고, 20고가 넘도록 제자리걸음을 하는 웃지 못 할 일들은 실제로 빈번하다. 노효정 감독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영원한 제국> 각본, <인디안 썸머> 각본.연출)은 “감독이 어떤 에피소드를 넣자고 말을 하면 신인작가들은 대부분 그 에피소드 자체만을 놓고 좋은지 싫은지를 판단한다. 왜 그런 것을 요구했는지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같은 ‘눈물’을 놓고도, 애절한 눈물과 코믹한 눈물이 있을 수 있는데, 맥락에 대한 구체적인 이해 없이 표면적인 합의만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수정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뿐더러 서로 감정의 골만 깊어진다는 것이다.

싸이더스 FnH의 최선중 PD(<연애의 목적><비열한 거리>)는 “서로 대안을 가지고, 최대한 구체화해서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배우들에게 연기 디렉션을 주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단지 심각한 표정을 짓는다, 가 아니라 컵을 찌그러뜨린다는 식으로, 예를 들어, 유하 감독의 시나리오를 보면 정말 구체적이다. 액션신 하나를 써도 어느 쪽 손이 나가고 , 어떻게 받는다는 합이 하나하나 묘사되어 있다. 그것이 그대로 촬영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이 사람이 생각하는 ‘막싸움’이라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개념을 모두가 잡을 수 있는거다.” 신인 작가에게 있어 글쓰기 능력만큼 중요한 것은 대화의 능력이다. ‘벗기고 안 벗기고’의 여부는 결국 작가 자신이 결정한다고 하더라도 상대방의 의도를 끌어내고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한 것이다. 무엇보다 하나의 단어를 가운데 놓고 동상이몽에 빠지지 않도록 시나리오 작가와 감독이 언어를 맞추는 작업은 시나리오가 산으로 올라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가장 필수적인 항해술이다.

Stage 05. 돈 잃고 작품 잃고... 힘없는 작가의 비애

인간처럼 보이지 않던 감독에 대해 서서히 파악하게 됐다. 벗기자는 제안은 감정이 증폭되는 포인트가 필요하다는 이야기였단다. 일단 그 의도를 살려서 에피소드를 구성했다. 이제는 서로간의 소통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른 것 같다. 문제는 통장이다. 작업이 시작된 지 벌써 2년이다. 나머지 돈은 완고가 나오고, 투자자가 결정되어야 들어온다는데, 흉흉한 소문들이 귓가를 어지럽힌다. 몇 년째 개발만 하다가 결국 돈도 못 받고 엎어졌다는 소리가 남 이야기 같지 않다. 흥분 상태에서 계약서를 깐깐하게 챙기지 않은 것도 후회된다. 이미 판권을 온전히 영화사에 양도해 놓은 상태이기 때문에, 10년 동안 영화가 나오지 못해도 나는 작품에 대한 권리가 없다.

공략법 - 작가의 권리를 명심하라

지명도 높은 기성작가가 아니라면, 대부분 시나리오 작가들은 3단계에 걸쳐 돈을 지불 받는다. 처음 계약할 때, 완고가 나왔을 때, 투자가 결정됐을 때, 각각 1/3씩 받는 것이 보통이다. 시나리오가 중도하차할 경우 완고가 나왔다고 하기에도 애매한 상황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전체 계약금의 1/3을 받고 작품전체를 날려버리는 사태가 발생하게 된다. 물론, 제각사 입장에서는 작품이 영화로 이어지게 될지 확신하지 못한 채 투자를 하는 것이기 때문에, 돈을 ‘덜 줬다.’가 아닌 ‘날렸다’는 식의 상반된 해석이 가능한 것도 사실이다.

문제는 5년, 10년이 지나도록 영화화가 되지 못해도, 작가가 아무런 권리를 갖지 못하는 불합리한 상황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때문에 한국시나리오작가조합을 필두로 특정기간동안 제작사가 작품을 만들지 못하면 판권을 원작자에게 돌려주는 조항을 계약서에 반드시 삽입하도록 하는 방안이 추진 중이기도 하다. 실제로 현재 시나리오 마켓이 제시하는 표준계약서는 ‘5년간 시나리오가 영화화되지 않는 것이 객관적으로 분명한 경우에 계약이 만료된다.’는 조항을 포함하고 있다. 다만, 이는 권고 사항에 그치기 때문에 현장에서 유통되는 계약서는 다른 형태를 띠는 경우가 많다. 특히 신인 작가들은 경험 부족과 힘의 논리에 의해 작품의 권리를 무기한, 온전히 양도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노효정 감독은 “시나리오작가조합이 할리우드처럼 힘이 있다면, 이 계약서에 도장 안 찍으면 우리는 못한다는 식의 움직임이 영향력을 자길 텐데, 한국에서는 그런 말을 해도 제작자협회의 파워가 크기 때문에 겁먹을 제작자가 아무도 없다”며 “시나리오작가의 권익을 보호가기 위해서는 힘의 균형이 맞아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투명한 계약을 위한 작가들의 단합이 더욱 필요하다”고 이야기 한다. 눈앞의 돈 천 만원보다 작가로서의 크레딧을 선택할 것. 장기적인 커리어를 꿈꾸는 작가 지망생들이라면 더더욱 스스로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의식이 필요하다.

Stage 06. 작가는 현장에 나가봤자 왕따 신세?

마침내 투자자가 결정됐고, 잔금을 모두 지불 받았다. 2년 반여의 시간을 생각하면 금세라도 눈물이 쏟아질 정도지만, 어쨌거나 영화화의 문턱에 도달한 나는 행운아임을 부정할 수 없다. 이른바 ‘작가 완고’는 나왔지만, 아직 해야 할 일은 남아 있다. 촬영현장에 직접 뛰어드는 것이다. 시나리오 작가들은 현장에서 결코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라는 이야기는 익히 들어왔지만, 밥을 축낸다는 소리를 듣더라도 내 작품이 문자에서 현실로 살아나는 모습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싶다. 촬영은 내일 시작이고, 아직 내 시나리오는 완성되지 않았다.

공략법 - 그래도 현장에서 배워라

시나리오작가들이 완고를 낸 뒤 현장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경우는 아직까지 많지 않다. 작가들은 대개 “영화사에서 작가를 한명의 스텝으로 인정해 주지 않고, 현장에서 철저히 이방인 취급한다.”는 점을 들어 불만을 토로하고, 역으로 PD들은 “작가가 원고를 내놓고 나면 다 끝이라고 생각하고 책임지지 않는 것이 문제”라며 엇갈린 주장을 내놓는다. 시시비비를 따지기에 앞서 모두가 공유하고 있는 전제는 작가의 역할은 현장까지 이어진다는 점이다. 배우의 입말을 통해 나오는 대사를 확인하고, 문자가 시각화되는 현장을 직접 체험하는 것은 신인작가들이라면 특히나 놓쳐서는 안 될 과정이다. 현장에 작가를 가로막는 무형의 벽이 존재한다 할지라도, 그것에 위축되기보다는 스스로 스텝들과 부딪치고 뒹굴며 벽을 깨기 위한 노력을 하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다.

지금 당신의 손에 시나리오가 있다. 당신이 혼신의 힘을 다해 완성한 그 작품은 어쩌면 그 자체로 빼어난 문학작품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나리오가 진정한 생명력을 더는 것은 그것이 영화로 탄생했을 때다. 원석을 세공해 하나의 보석으로 탄생시키는 과정, 그 길고 고통스러운 여정은 아직 시작조차 되지 않았다. 이제, 책상 밖으로 나와라.

[씨네21] 2007년 10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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