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심산 등록일: 2006-06-05 19: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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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친다는 것과 배운다는 것

 제가 가르치는 일을 좋아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었습니다. 실제로 저는 가르치는 일, 싫어합니다. 특히 대학생들 가르치기. 이 친구들 뻑하면 지각에 결석에 숙제도 안 해오고...그래서 대학강의는 가능한 한 피합니다. 지금은 차승재 교수 때문에 억지로 동국대 겸임교수로 일합니다만, 조만간 사표를 낼 생각입니다. 그런데 심산스쿨에서 수강생들을 가르치는 일은 정말 즐겁습니다. 다양한 연령대와 다양한 직업군, 그리고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는 수강생들! 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어찌 즐겁지 않겠습니까? “열심히 쓰고 신나게 놀자!” 이게 심산스쿨의 모토입니다. 그것은 모두가 열심히 워크숍에 참여한다는 전제 하에서만 가능한 일이지요. 이런 조건 하에서라면 가르치는 일도 즐거울 수 있습니다.

제가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것은 배우는 일의 즐거움입니다. 누군가 당신의 최종학력이 무엇이냐고 물어오면 저는 언제나 이렇게 대답합니다. “1994년에 코오롱등산학교를 졸업했어요.” 실제로 그곳은 참 멋진 학교였습니다. 그곳에서 등산의 세계를 배워나갈 때의 기쁨은 무엇과도 맞바꿀 수 없을 만큼 멋진 경험이었습니다. 그리고는 이제 더 이상 무언가를 배우는 기쁨과는 영영 이별한 줄 알았지요. 그런데 최근에 제가 다시 배움의 길(!)로 접어들었습니다. 바로 김준철 선생님이 이끌고 계시는 서울와인스쿨의 소믈리에 과정입니다.

사실 지난 해에 저는 갈림길에 서서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무언가 새로운 사업을 시작해야 되겠는데, 와인집을 차릴까 심산스쿨을 차릴까, 였습니다. 실제로 홍대 근처에 아담한 2층 양옥집을 얻어 와인집을 여는 문제를 아주 심각하게 고려해 보았었습니다. 하지만 결론은 아직은 아니다, 였지요. 일단 투자해야될 돈의 규모가 너무 컸고, 그걸 차리면 남은 삶을 몽땅 와인에 젖어 보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보류하기로 한 것입니다. 와인집은 좀 더 나이가 든 다음에 차려도 늦지 않다! 그게 당시에 내린 판단입니다. 덕분에 심산스쿨을 열어 지금 여러분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기회에 와인을 좀 더 공부해보자! 서울와인스쿨에는 그런 마음으로 등록했습니다. 저는 오래 전부터 일주일에 적어도 와인 서 너 병씩은 마시고 있으니 ‘와인애호가’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이제는 와인애호가에서 와인전문가로 나아갈 때가 되었다, 그런 생각에 등록한 서울와인스쿨에서의 수업은 대만족(!)입니다. 저의 와인스승이 되신 김준철 선생님의 강의는 촌철살인의 유머감각과 냉정한 현실주의에 기초하고 있어 저의 적성에 딱 맞습니다. 수업시간마다 와인을 홀짝거리며 서로 충분한 커뮤니케이션을 나누는 수업방식도 맘에 듭니다. 이를테면 와인전문가를 양성하기 위한 워크숍 과정인 셈이지요.

서울와인스쿨의 수강생이 되면서 ‘배우는 즐거움’을 새삼스럽게 깨닫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강단에만 서 있다가 이제 그 반대의 위치에서 교실을 바라보니 시야가 조금은 더 넓어지는 느낌입니다. 덕분에 심산스쿨의 수강생 여러분들에 대한 생각도 조금씩 바뀌어가고 있습니다. 역시 사람은 배워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더불어, 나이가 들어 무언가를 배우려 한다는 것이 얼마나 신나는 일인지, 누군가에게 자랑하고 싶은 마음도 듭니다. 앞으로도 오랫동안 좋은 사람들과 어울려 무언가를 가르치거나 배우면서 보기 좋게 나이를 먹어가고 싶습니다.

 덕분에 공부라면 지레 손사래부터 쳐대던 제가 요즘 어떤 날에는 하루에 8시간 가까이 수업을 합니다. 오는 수요일(6월 7일)에는 아침 10시부터 서울예술종합학교 영상원에서 ‘한국 시나리오작가의 위상’이라는 주제의 특강을 하고, 오후 2시부터는 서울와인스쿨에서 ‘와인과 음식’이라는 주제의 강의를 듣고, 밤 7시 30분부터는 심산스쿨에서 심산상급반의 리뷰수업을 주재하고...모두 다 제가 좋아서 하는 일이라 힘이 들기는커녕 즐겁기만 합니다.  그 다음주 화요일에는 또 아침 10시부터 동국대 대학원에서 ‘내러티브의 기초’라는 수업을 하고...어떨 때는 가르치는 일과 배우는 일만 하면서도 생계를 잘 꾸려갈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그런 생각도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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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책은 요즘 제가 읽고 있는 일본만화입니다. 오키모토 슈라는 작가가 그린 5권짜리 [신의 물방울]이라는 작품인데요, 해박한 기초지식과 탄탄한 플롯, 그리고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나와서 더 없이 흥미진진합니다. 옆의 책은 저의 와인스승이신 김준철 선생님의 역저 [와인]인데, 서울와인스쿨의 정규 교재입니다. 무려 600 페이지가 넘어가는 두툼한 분량에 하드커버까지 갖추어 아주 묵직한 느낌을 주는 책입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제대로 가르치려면 적어도 이런 정도의 책을 써낼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하는 경외심(!)을 느끼게 하는 작품입니다.

서울와인스쿨의 소믈리에 과정은 매주 화요일과 수요일, 하루에 2시간 반 내지 3시간, 총 14주에 걸쳐 진행됩니다. 주간반과 야간반이 있는데, 저는 주간반입니다. 심산정규반과 심산상급반이 종강하는 7월 첫째주 이후에는 야간반으로 옮겨갈 생각입니다. 소믈리에 과정을 끝내고 나면 매주 월요일 밤마다 진행되는 마스터 과정도 수강할 계획입니다. 두 과정을 모두 다 끝낸다고 해도 어디 가서 와인 좀 안답시고 잰 체 할 수야 없겠지요. 즐거운 것은 그 과정을 통해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과의 인연입니다. 가르친다는 것과 배운다는 것, 둘 다 일방통행이어서는 재미없습니다. 그것은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공동의 노력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상, 뒤늦게 무언가를 배우게 되어서 새삼스럽게 가슴 설레고 있는 늦깎이 학생의 행복한 넋두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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