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로진은 제가 사랑하는 후배입니다. 여러모로 닮은 점이 많은 친구지요. 같은 대학의 같은 학과 출신이고, 글을 쓰고, 산에 오르며, 다양한 짓꺼리(?)를 하며 놀고 있는 한량(!)이니까요. 원래는 [스포츠조선]의 기자였는데, 어느날 방송국에 취재를 갔다가 이장수 PD가 "너 배우 해라!"고 슬쩍 꼬시자 곧바로 사표를 내고 딴따라계(!)로 들어온 친구입니다. 그 동안 TV쪽에는 꽤 굵직굵직한 역을 많이 연기했었죠. 당장 떠오르는 건 [도깨비가 간다][태양의 남쪽][변호사들] 같은 작품들입니다.
연극배우로도 활동하는데 [덕혜옹주]나 [등신과 머저리]가 생각나네요. 최근에는 임상수 감독의 영화 [오래된 정원]에서 주인공(지진희)의 형 역할을 맡아서 촬영한 적이 있습니다. 여기까지는 일반인들이 아는 프로필이지요. 가까운 선배로서 제가 아는 프로필은 훨씬 더 다양합니다. 그는 작가입니다. 시집, 에세이집, 교양서적 등을 포함해서 여지껏 10권이 넘는 책을 집필했습니다. 그는 클라이머지요. 지금도 저의 가장 미더운 자일파티들 중의 하나입니다. 그는 또한 댄서입니다. 라틴댄스와 살사(다른 건가?)에 특히 능한데, 그가 만든 댄스동아리는 엄청난 회원수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그는 또한 여행가이지요. 북유럽에서 아프리카, 그리고 남미까지 거의 모든 대륙을 돌아다녔답니다. 그리고 또...끝이 없네요. 어찌되었건 엄청 '치열하게 놀고 있는' 친구입니다. 이 친구가 새로운 연극에 출연한다고 해서 오늘 보고 왔습니다. 바로 [지대방]입니다.
'지대방'이 뭔지 모르시죠? 저도 오늘 이전에는 몰랐습니다. 지대방이란 사찰의 큰 선방 옆에 딸린 작은 방으로, 안거에 들어간 스님들이 참선 중간 휴식할 수 있는 공동생활공간을 말합니다. 몸과 마음을 서로에게 '기대는 방'이라는 뜻에서 나온 말이라네요? 한마디로 '수행승들의 휴게소'라고 보시면 됩니다. 연극 [지대방]은 이 공간을 무대로 삼아 펼쳐집니다. 스태프와 캐스트들이 정말 짱짱(!)합니다. 연극 자체의 콸러티는 어떻냐고요? 저는 '별 네개'를 주고 싶습니다. 불교에 관심 있으신 분들에게라면 '별이 다섯 개'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불교 혹은 수행에 무관심한 분들이라도 여러번 빙긋이 미소지으며 보다가 가슴이 저릿해지는 체험을 하시게 될 품위 있는 작품입니다.
작가인 원담 스님은 배낭여행기 [걸망 속에 세계를 담고]와 연극 [뜰 앞의 잣나무]로 유명한 분이지요. 현재는, 맙소사, 조계사 주지(!)로 계시네요. 연출은 강영걸 선생이 맡았습니다. 강영걸...연극팬들이라면 굳이 덧붙여 설명할 필요가 없겠죠? [그것은 목탁구멍 속의 작은 어둠이었습니다][넌센스][불 좀 꺼주세요]의 연출자입니다(며칠전 암수술을 하셔서 모두들 걱정했는데 다행히도 수술결과가 좋답니다). 지대방의 '방장' 역을 맡은 배우는 오영수 님입니다. 연극판에서야 최고의 베테랑이고 영화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동승] 등으로 널리 알려진 분이지요. 이 분의 연기? 한 마디로 악(!)소리가 납니다. 돈조 스님 역의 지춘성 님, 엄청난 다역을 소화해내시는 김선화 님도 빼어난 연기를 보여줍니다(위의 사진 중에서 가운데 계신 분이 오영수 님이고, 오른쪽에서 두번째가 명로진입니다).
어디선가 맛 있는 음식을 먹고 난 다음이면 가까운 누군가에게 그 밥집을 소개하고 싶은 심정...아시죠? 오늘 참 오랫만에 멋진 연극을 보고 왔습니다. 불교, 선방, 수행...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꼭 한번씩 가서 보세요. 나는 불교와는 전혀 무관하다(!)고 생각하시는 분이라도 후회하시진 않을 겁니다. 캐릭터들이 정말 흥미롭고, 그들이 빚어내는 드라마가 가슴에 파문을 일으키며, 자신의 삶을 한번쯤 돌아보게 만드는 좋은 작품입니다. 인적이 끊긴 깊은 산속의 조용한 선방을 찾아갔다가 그곳에 계시는 멋진 선승으로부터 향긋한 솔잎차 한 잔 얻어먹고 온 느낌입니다...그 향기로운 느낌이 가시기 전에 기록으로 남겨놓고 싶어 이 글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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