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심산 등록일: 2015-11-30 21:36:38

댓글

16

조회 수

1945

20셀파0068.jpg


머물다 떠난 자리

 

2005년에 저는 [한국 초모랑마 휴먼원정대]에 참가하였습니다. 석 달을 훌쩍 넘기는 기나긴 여정이었고, 참가한 대원들 모두 평균 8~10 킬로그램 쯤 체중이 빠지는 험난한 등반이었습니다. 당시에 진행했던 시나리오 워크숍이 [심산반 14기]였는데, 덕분에 14기 수강생들은 무려 석 달이 넘는 휴강을 강제로 체험(?)해야만 됐습니다(ㅋㅋㅋ). 그런데 신기한 것은, 그렇게 기나긴 휴강을 겪은 덕분인지, 14기에서 가장 많은 작가들이 배출되었다는 점입니다. “심산이 가르치지 않아야 작가가 된다?”(ㅋㅋㅋ).

 

원정기간 중의 두 달 이상을 에베레스트의 북측 베이스캠프(티베트에 속하며 해발고도 5,200미터 쯤 됩니다)에서 보냈습니다. 물론 그 위의 인트롬(5,800미터)이나 전진베이스캠프(ABC, 6,300미터)에도 계속 오르락내리락했지만 그래도 베이스캠프는 베이스캠프, 즉 ‘집’입니다. 그 집을 떠나오던 날, 제가 쓰던 개인 텐트를 철거하고 막 돌아서려는데, 무엇인가가 제 발목을 덥썩 움켜잡았습니다. 한 마디로 무어라 정의하기 어려운 감정이었습니다. 이 지긋지긋한 황무지에서 드디어 떠난다는 해방감 혹은 기쁨? 아니었습니다. 오랫동안 정들었던 곳과의 이별에서 오는 슬픔 혹은 허망함? 그것도 아니었습니다. 정말이지 뭐라고 정의하기 힘들었습니다. 여하튼 그 어떤 뜨거운 감정이 북받쳐 올라 저도 모르게 뒤돌아서서 사진을 한 장 찍었습니다. 그것이 위의 사진입니다.

 

그로부터 10년의 세월이 흐른 오늘, 2015년 11월 30일, 저는 놀랍게도 그때와 동일한 감정을 또 한 번 느끼는 체험을 했습니다. 바로 심산스쿨의 캠퍼스를 완전히 철거한 직후입니다. 슬픔도 아니고 기쁨도 아닌, 해방감만도 아니고 허망함만도 아닌, 정말이지 뭐라고 형언해야 할지 알 수 없는 감정이 들어 아래의 사진들을 찍었습니다. 머물다 떠난 자리. 그곳에서 영원히 떠나가기 전에 문득 다시 한번 그 자리를 뒤돌아볼 때 느끼게 되는 이 기묘하고 ‘유니크’한 감정. 어쩌면 우리가 죽음 직후에 자신이 살던 곳을 흘낏 본다면 아마도 이런 감정을 느끼게 되지 않을까요?


DSC05252.JPG

DSC05249.JPG

DSC05254.JPG

댓글 '16'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sort
111 심산스쿨의 토요일 강의일정이 바뀌었습니다 + 8 file 심산 2012-08-02 2251
110 심산 공개특강 [산악문학] 안내 + 5 file 심산 2014-11-22 2228
109 무위당(无爲堂) 20주기 추모 전각전 + 4 file 심산 2014-05-15 2218
108 쓴다는 것은 곧 고쳐쓴다는 것이다 + 7 file 심산 2014-03-29 2215
107 심산스쿨 제4회 전각체험교실 안내 + 12 file 심산 2012-07-25 2204
106 글이 돈이 되는 기적에 대하여 + 4 file 심산 2016-03-27 2194
105 심산 공개특강 [현대 암벽등반의 이해] 안내 + 17 file 심산 2015-09-03 2184
104 심산 공개특강 [프랑스 와인기행] 안내 + 19 file 심산 2014-02-21 2159
103 김진석 공개특강 [파리를 걷다] 안내 + 6 file 심산 2014-11-10 2142
102 명로진 공개특강 [2013년의 출판동향] 안내 + 5 file 심산 2013-02-25 2136
101 금요일 밤에는 신화를 읽는다 + 5 file 심산 2013-08-04 2108
100 제주올레와 히말라야 그리고 프랑스 + 6 file 심산 2012-08-09 2096
99 [라비 드 파리] 혹은 김진석사진반 14기 + 1 file 심산 2015-08-08 2090
98 김진석사진반과 청소년사진반의 졸업전시회 + 4 file 심산 2013-01-31 2051
97 Sparkling & White in Summer Night + 12 file 심산 2014-07-28 2009
96 2015년 심산스쿨 마나슬루 라운드 트레킹 + 2 file 심산 2015-01-15 2005
95 유대헌 [공모전 대비] 공개특강 안내 file 심산 2013-09-12 1960
» 머물다 떠난 자리 + 16 file 심산 2015-11-30 1945
93 김진석사진반 일본 큐슈올레 촬영여행 file 심산 2014-03-17 1936
92 심산의 시나리오 워크숍이 19년차로 접어듭니다 + 2 file 심산 2016-01-18 19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