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 속의 산]은 [일간스포츠] 이방현 기자가 연재하고 있는 시리즈 기사입니다. 얼마 전에 저희 심산스쿨 산행동호회 [SM클럽]과 함께 신년산행을 하면서 취재한 기사가 2007년 2월 9일자 [일간스포츠]에 실려 퍼왔습니다. 본문 중 사진은 [일간스포츠]의 사진이 아니라 SM클럽 회원들이 찍은 사진입니다. 첫번째 사진은 대남문에서 찍은 단체사진, 두번째 사진 중 제 옆에 서 계신 분이 이방현 기자, 세번째 사진은 보현봉, 네번째 사진은 대남문에서 내려다본 서울 시내(한강이 보이죠?), 다섯번째 사진은 [SM클럽]의 뒷모습입니다. 일간지 지면을 통해서 다시 보니 그날의 즐거웠던 산행이 생생하게 떠오르네요...그러면, 즐감!^^
[img1]한량의 말 없는 친구
내 마음 속의 산(15) 심산과 북한산
산에 오르고 글을 쓰며 산다는 영화 <비트>와 <태양은 없다>의 시나리오 작가 심산(46). 그는 그냥 작가로 불려지길 원한다. 서른살 즈음 ‘한량’이 되기로 결심하고. 지금은 거의 한량이 다 됐다고 자부한다. 한량이란 무엇이던가. 심 작가는 “세상사에 너무 연연해 하지 않고. 돈벌이에만 미쳐 돌아다니지 않고. 자신에게 주어진 시·공간을 최대한 즐기려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단다. 그래서 매주 산에 오르려 하고 매년 해외원정을 떠나려 하는 모습 속에서도 한량의 모습이 묻어난다. 또한 말없는 산이 오히려 끊임없이 말할거리를 제공해주니 작가에겐 더없이 행복한 곳이기도 하다.
[img2]■오르고 또 오르다
심 작가와의 동반산행은 많은 사람이 함께 했다. 시나리오 작가조합원들과 심산스쿨의 시나리오·와인반 수강생들 등 총 16명이 함께 북한산에 올랐다. 북한산은 심 작가에게 있어 매우 의미있는 산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도 일이 잘 풀리지 않았던 시절. 마음을 위로해 주고 힘을 북돋워 준 곳이 북한산이다. 일주일이면 못해도 한 번. 많게는 세 번씩 북한산을 올랐다. 1990년부터 시작해 93년까지 꾸준히 산을 찾았으니 적어도 200번은 오른 셈이다.
하지만 북한산을 다 안다고 또는 다 가봤다고 할 수는 없었다. 북한산은 그만큼 문화적·역사적으로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었고. 인수봉은 아직 오를 엄두도 못냈다. 그래서 북한산과 관련된 책을 찾아 읽고. 93년에 코오롱 등산학교에 들어가 본격적인 바위타기 공부를 시작했다. 본격적인 바위맛을 알면서부터는 3년 정도 바위에 빠졌다. 어렸을 적 등반을 하던 형들이 이곳 저곳을 다쳐 집에 들어오는 걸 보면서 ‘저걸 왜 하나’ 싶었는데 자신이 바위에 올라설 줄은 몰랐던 것이다.
이번 산행은 보현봉을 목표로 했다. “보현봉은 규봉이라고도 하죠. 엿볼 규(窺)를 쓴 것은 보현봉에 오르면 당시 경복궁이 훤히 보이기 때문이었죠. 문헌에 따르면 수양대군이 처음으로 보현봉에 오른 뒤 왕위를 찬탈하게 되면서 보현봉을 오르는 것은 혁명을 뜻하게 됐어요.” 마치 문화역사 기행을 떠난 듯 북한산 곳곳에 얽힌 이야기가 술술 흘러나왔다. 개인적인 추억도 걸음걸음마다 묻어나왔다. “이 바위는 식탁 대용으로 쓰였어요” “야바위라고 들어봤나요. 밤 야(夜)를 써서 달빛을 받으며 바위를 타는 것을 말하죠. 바위 위에서 비박을 하다보면 별·달·해를 다 볼 수 있어요. 일출과 일몰을 지켜보는 것 또한 커다란 즐거움이었죠.”
[img3]■쓰고 또 쓰다
심 작가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어느새 보현봉을 돌아 대남문에 도착했다. 배낭을 여니 간식거리와 함께 와인이 나왔다. 산 속에서 즐기는 와인 한 잔은 별미였다. 추위에 꽁꽁 얼었던 몸도 녹고. 마음도 스르르 풀어헤쳐진다. 꿀맛보다 더 달콤한 와인맛 휴식을 취하고. 다시 정신을 바짝 차려 구기터널 쪽으로 하산하기 시작했다. 하산길에서는 심 작가와 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심 작가가 본격적으로 산에 대한 글을 쓴 것은 코오롱 등산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다. 이용대 교장의 권유에 힘입었다고 한다. 산문학에 취약한 우리나라의 현실을 개선해 보자는 뜻에서였다. 지금도 산과 관련된 글은 계속되고 있다.
기자는 무엇보다도 궁금한 것이 ‘산과 관련된 시나리오를 써봤는가’였다. “산악 시나리오를 한 편 썼는데 영화화되지는 않았어요. 영화는 문학과 달리 산업적 측면을 고려해야 하죠. 제작비가 만만치 않잖아요.” 지금은 산악시나리오를 쓸 엄두조차 못 낸다고 한다. 영화의 흥행을 고려해 할리우드식으로 쓰면 산악인들에게서 비난을 받을 것 같고. 산악인들이 공감하는 시나리오를 쓰면 일반인에게는 그 감동을 전달하는 것이 힘들 듯해서라고 한다.
심 작가는 서울에서 규모 면에서나 질적인 면에서 의미 있는 산악영화제를 개최하는 것이 꿈이다. 또 산악 시리즈(심산 마운틴 라이브러리로 기획 중)로 100권 정도의 책을 준비하고 있다. 등반사·산악문학·산악논문·등반백과사전·가이드북·산악소설 등 등반과 관련된 세계의 산악문학 걸작선을 소개하는 것이 목표인 것이다. “산이라는 것. 그리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를 영화와 책을 통해 전하고 싶어요. 그 속엔 잊혀지지 않을 감동이 살아 있을 겁니다.”
[img4]■심 작가가 권하는 산악문학서 3선
1. 레슬리 스티븐의 <유럽의 놀이터>(The Playground of Europe. 국내 미번역작): 19세기 산악문학의 백미. 가장 아름다운 문장으로 쓰여진 등산의 찬미. 스티븐은 당대 최고의 지식인이었으며. 훗날 저명한 소설가가 된 버지니아 울프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2. 민경길의 <북한산> 3부작(집문당. 2004년): 현직 육군사관학교 교수인 민경길의 북한산 역사지리탐구서. 방대한 사료를 독창적으로 해석해내고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저자의 북한산 사랑을 뼛속 깊이 느낄 수 있는 역저.
3. 김선미의 <산에 올라 세상을 읽다>(영림카디널. 2006년): 전문 산악인이 아니면서 ‘산에 미쳐’ 사는 다양한 사람들과의 인터뷰 모음집. 만화가 허영만. 연극평론가 안치운. 소설가 김훈. 시인 이성부. 가수 전인권. 바둑기사 조훈현. 의사 임현담 등 다양한 직업의 사람들이 왜 산에 오르고 어떻게 산을 바라보는가를 다루었다.
[img5]■심산 작가는?
1980년 한성고등학교 졸업. 85년 연세대 불어불문학과 졸업. 89년 시집 <식민지 밤노래> 출간. 91년 시나리오 <맨발에서 벤츠까지> 영화화. 92년 장편소설 <하이힐을 신은 남자> 출간. 97년 시나리오 <비트> 영화화. 99년 시나리오 <태양은 없다> 영화화. 백상예술대상 시나리오상 수상. 2002년 산악문학 에세이 <심산의 마운틴 오딧세이> 출간. 2004년 작법서 <한국형 시나리오 쓰기-심산의 시나리오 워크숍> 출간. 2005년 한국 초모랑마 휴먼원정대원. 다큐멘터리 <엄홍길의 약속> 출간. 심산스쿨 설립. 2006년 시나리오 <비단구두> 영화화. 현재 한국시나리오작가조합 공동대표. 코오롱 등산학교 강사. 한국산서회 회원.
[일간스포츠] 이방현 기자 2007년 2월 9일
지난 신년 산행과 관련된 내용이네요^^;;
2월 정기 산행은 과연 어느 코스로, 또 얼마나 고생을 하며 오르게 될 지 벌써부터 기대+궁금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