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산와인반 개강에 즈음하여 재미 있는 에세이를 연재하게 되었습니다. 김대우의 탓 혹은 덕분에 [무비위크]에 격주로 '심산의 와인예찬'을 연재합니다([심산서재>영화>충무로통신] 참조). 앞으로 '김대우의 맛집기행'은 [심산서재>여백>펌글창고]에, '심산의 와인예찬'은 [심산서재>여백>와인셀러]에 올립니다. 이 연재의 시작을 기념하여 그 첫번째 글인 '쉬 워즈 쉬라즈'는 이곳 [여는글]에 올려놓습니다.
[img1]쉬 워즈 쉬라즈
심산의 와인예찬(1)
시라 단일 품종으로 만들어진 와인들
내가 언제부터 와인을 마셨던가에 대해서는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워낙 제사가 많은 종손집 막내아들이니 음복(飮福)으로 홀짝 홀짝 마셔대기 시작한 것이 처음이었을지도 모른다. 산에 오르면서 와인을 많이 마시게 된 것은 사실이다. 산 위에서 마시는 술로는 와인이 제격이다. 소주는 너무 독하고 맥주는 너무 무겁다. 한겨울에라면 보온 효과를 위해서라도 위스키 정도가 어울릴 수도 있으나 그렇지 않은 계절이라면 누가 뭐래도 와인이다. 한 바탕 흠씬 땀을 흘리고 난 다음 시원한 나무그늘 아래 해먹이라도 걸어놓고 와인을 한 잔 걸치면 그대로 신선놀음이 된다.
내가 언제부터 ‘본격적으로’ 와인에 빠져들게 되었는가에 대해서는 너무도 명확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것은 한 여인 때문이었다. 그녀의 이름을 ‘시라(Syrah)'라고 하자. 시라는 내가 사랑했던 여자들 중의 한 사람이었다. 나 역시 그녀가 사랑했던 남자들 중의 한 사람이었으리라고 믿고 싶다. 사랑하는 사람들끼리 흔히 그러하듯 우리는 함께 소풍을 가고, 함께 영화를 보고, 함께 맛있는 식당을 찾고, 함께 잠을 잤다. 하지만 서로를 깊이 원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다음에는 이 모든 쓸데없는 짓거리들을 그만 뒀다. 이후 우리의 만남은 단순해졌다. 우리는 함께 있는 시간을 아껴 ’정말 하고 싶은 일‘만을 했다. 단 둘이 마주 앉아 와인을 마시다가 곧바로 사랑하는 일이다.
시라와의 나날들을 되돌아 볼라치면 지금도 가슴이 뜨거워지고 아랫도리가 뻐근해진다. 그녀는 언제나 와인 한 병을 가슴에 품고 내 집필실로 찾아왔다. 나 역시 다양한 와인들을 나란히 눕혀놓고 설레이는 가슴으로 그녀를 기다리곤 했다. 이따금씩은 안주거리를 펼쳐놓기도 했는데, 편의점 같은 곳에서 아무 때나 살 수 있는 싸구려 잡동사니들뿐이었지만, 사랑에 빠진 남녀들에게는 그 모든 것이 성찬처럼 느껴질 뿐이다. 칼몬드와 맥스봉과 복숭아 통조림, 혹은 싸구려 체다 치즈를 끼워놓은 에이스 크래커. 이따금씩 약간의 여유가 생기면 네덜란드제 김치 치즈나 이탈리아제 에만텔 치즈를 곁들이기도 했다. 그런 날 밤이면 우리는 지치지도 않고 끝없이 사랑을 나눴다.
언젠가 사랑에 지쳐 깜빡 잠이 들었다가 문득 깨어났을 때의 풍경을 나는 잊을 수 없다. 내 곁에는 전라의 시라가 쌔근 쌔근 잠들어 있었다. 그녀 너머로 보이는 탁자 위에는 커다란 와인잔이 두 개 놓여져 있었는데, 핏빛 와인을 가득 담은 채 은근한 빛을 발하며 우리를 내려다 보고 있는 모습이 마치 신비한 달[月]처럼 보였다. 가장 행복한 순간의 풍경이다. 사랑하는 여인과 붉은 와인이 어우러져 지상에서의 삶을 찬미하고 있는 순간. 내가 손을 뻗어 와인잔을 끌어당기자 어느 새 잠에서 깬 시라가 장난스러움을 가득 담은 목소리로 낮게 말했다. “날 재워 놓고 혼자 마실려고?” 나는 푸훗 웃으며 내 입 안에 든 와인을 그녀의 입술 안으로 흘려 넣었다. 우리는 곧 키득거리며 또 다시 사랑놀이에 빠져들곤 했다.
와인에 대한 나의 지향은 시라가 만들어줬다. 우리는 매주 새로운 와인을 따면서 제멋대로 품평을 해댔다. 카베르네 소비뇽은 어때? 토할 것 같아. 왜? 너무 잰체하고 제 가슴을 보여주지 않잖아. 메를로는? 부드러움이 지나쳐서 헤퍼 보여. 산조베제는? 갑자기 시라가 푸훗,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촌뜨기 이태리 청년 같아. 나름대로는 멋을 부리려고 했는데 무언가 빠져 있는 듯한 느낌. 피노 누아, 얘는 롤리타 같지 않아? 응 맞어, 나이는 먹었는데 아직도 소녀티가 남아 있는. 귀 기울여 들을 필요 없다. 전혀 객관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다만 사랑에 빠진 두 명의 와인초보자들이 장난스럽게 주고받은 제멋대로의 품평일 뿐이다.
100병쯤 되는 와인병들을 눕혔을 즈음 우리의 포도 품종은 결정됐다. 그것이 시라(syrah)다. 시라의 원산지는 프랑스 론의 북부지방이다. 시라는 영어권으로 진출하며 쉬라즈(shiraz)라는 이름을 얻었다. “냉정해, 단단하고.” 시라 단일 품종으로 만들어진 와인들을 홀짝이며 내가 말했다. “만만치 않지. 섣불리 접근할 수가 없어.” 시라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어갔다. “차가운 금속성 안경테를 낀 전문직 오피스 레이디 같아.” 나는 싱긋 웃으며 그녀의 말을 받는다. “하지만 정장 아래로 얼핏 얼핏 드러나는 그녀의 육체는 정말 관능적이지.” 시라가 쿡쿡 웃으며 우리의 이미지를 완성해준다. “사람들은 모르지, 그녀가 얼마나 뜨거운 여자인지를. 아마도 알게 되면 앗 뜨거라, 하면서 줄행랑을 칠 걸?”
내가 아는 시라는 그런 여자다. 검은 스타킹과 하이힐이 잘 어울리는 정장 차림의 오피스 레이디. 차가운 금속성 안경테 안의 두 눈은 언제나 일에 집중하고 있어 섣불리 말을 걸어볼 엄두가 나지 않는 여자. 이따금 몸을 열지 않는 시라를 만날 때가 있다. 마치 상처 받은 암표범처럼 몸을 잔뜩 웅크리고 있는데, 그녀의 팔꿈치 밑에 조아린 두 무릎에서는 견고한 대리석의 느낌마저 난다. 하지만 일단 그녀가 마음을 열고 몸을 열면 감당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진다. 그녀의 심장은 대범하고, 그녀의 가슴은 뜨겁고, 그녀의 관능은 정신을 아뜩하게 만들만큼 열정적으로 타오른다.
시라와 나는 우리들만의 언어체계를 만들었다. 맹숭맹숭한 영화를 보면 우리는 이렇게 말했다. 저 영화는 좀 피노 누아스럽지 않아? 물컹한 요리를 맛볼 때면 우리는 이렇게 표현했다. 얘는 완전히 메를로네. 하지만 멋진 것, 쿨한 것, 적성에 맞는 것을 발견할 때면 우리는 입을 맞춘듯 이렇게 말한다. 와우, 정말 쉬라즈한데! 쉬라즈는 우리가 가장 즐겨 쓰는 형용사였다. 우리가 함께 본 <록키호러쇼>는 쉬라즈했다. 스타벅스의 카라멜 마키아토와 <탱고레슨>의 OST와 충무의 밤바다는 쉬라즈했다. 우리는 시라 단일 품종으로 만들어진 와인들의 혈액형은 B형일 거라는 데 전격 합의했다. 그것은 센티멜탈리즘을 경멸하고, 지독하게도 개인주의적이며, 허무와 대면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독립적인 사람들만이 즐길 수 있는 와인이다.
시라는 이별의 통고마저 쉬라즈하게 했다. 만날 약속이 세 번이나 연기되자 내가 전화를 걸었다. 그녀는 전화를 받는 대신 문자를 보내왔다. “결혼할 남자가 생겼어.” 그것으로 끝이다. 그녀를 잃은 내게는 와인을 마시는 일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나는 시라로 만들어진 세상의 모든 와인을 맛보고 싶었다. 그 와인들 속에는 시라의 향기와 관능과 지성과 몸짓이 그대로 녹아들어 있다. 그녀가 떠나간 이후 내가 맛본 최고의 시라는 에르미따쥬였다. 처음에는 완강하게 몸을 웅크린채 마음을 열어주지 않는 와인이었다. 하지만 디캔팅을 해놓은지 두 시간 정도가 지나자 에르미따쥬는 시라의 본색을 유감 없이 드러냈다. 나는 검붉은 에르미따쥬 위로 눈물 한 방울을 떨구었다. 슬프거나 그리워서가 아니다. 그 맛과 향기가 너무도 쉬라즈했다.
[img2]이 글을 쓰고 있노라니 문득 시라와 사랑을 나누던 나날들이 그리워진다. 심산스쿨의 와인셀러를 열어 싸구려 호주 쉬라즈를 한 병 꺼낸다. 코르크를 따니 시라 특유의 강렬한 향기가 코 끝을 파고 든다. 한 모금을 목구멍으로 넘기니 자극적인 행복감이 온 몸을 감싼다. 한 명의 와인폐인은 이런 식으로 탄생하는 법이다. 헤이, 시라! 잘 지내고 있어? 이런 식으로 네게 부치지 못할 편지를 쓰는 것도 나름대로 괜찮군. 새로운 애인은 어때? 그 친구가 네 아름다움과 파워를 속속들이 이해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래. 만약 그렇지 못하다 해도 실망할 필요는 없겠지? 우리에겐 시라가 있으니까 말이야. 우리가 함께 했던 시간과 함께 하지 못할 시간들 모두를 위하여 건배.
[무비위크] 2006년 11월 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