一山行盡一山靑
심산이 온라인 전각연하장을 띄웁니다
이제 2011년도 몇 시간 안 남았군요. 전각반-와인반 합동송년회(2011년 12월 28일)에서 하도 술을 퍼 먹어서 하루 종일 골골(!)대다가 오후가 되어 정신을 차리고 나니 무언가 한 해를 마무리하는 일을 해야 되겠다 싶었습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연하장을 띄우는 일입니다. 마침 올해는 제가 전각을 시작한 해이니, 연하장도 전각으로 직접 새기고 싶어졌습니다. 그래서 새긴 것이 위의 작품입니다. 아직 솜씨가 영 시원치 않아 작품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민망하지만, 포치에서 파는 일까지 꼬박 네 시간을 매달려 완성한 나름대로의 노작(?)이기는 합니다.
一山行盡一山靑
한 산을 다 걸으니 또 한 산이 푸르네
제가 좋아하는 김시습의 한시에서 따왔습니다. 처음 이 시귀를 접했을 때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한 산을 다 걸으니 또 한 산이 푸르네.” 이게 도대체 무슨 뜻일까요? 여러분은 어떻게 받아들이십니까? 이렇게 받아들일 수도 있습니다. “이제 이 지긋지긋한 산을 다 넘었으니 평지가 나타날까 기대했는데 또 다른 산이 나타나다니!” 아니면 이렇게 받아들일 수도 있지요. “이 산을 다 걸으면 이제 산에서 내려가야 되나보다 하고 서운해하고 있었는데 또 다른 산이 나타나다니!” 어쩌면 이렇게 받아들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이 산만 푸른 줄 알았더니 다른 산도 푸르구나.”
정답은 없습니다. 그게 한시의 매력이기도 하지요. 저는 제멋대로 받아들입니다. 올 한해가 너무 고통스러웠던 사람은 내년을 기대하지 마세요. 내년도 또한 고통스러울 것입니다. 올 한해가 너무 즐거웠던 사람은 올해가 간다고 서운해하지 마세요. 내년 또한 즐거울테니까요. 이번 삶(此生)은 지겨웠다고요? 다음 삶(來世)도 지겨울 겁니다. 이번 삶을 다 살아 죽기가 싫다고요? 다음 삶이 있으니 굳이 마음앓이 할 필요 없습니다.
一山行盡一山靑. 이 일곱 글자들 중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단 한자, 행(行)뿐입니다. 앞으로 걸어가는 것, 그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다 걷지 못하면 이 산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다 걸으면?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또 다른 산이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만약 걷다가 주저 앉거나 쓰러지면? 그것이 곧 죽음입니다. 간단하지요? 그러니까 우리는 계속 걷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걷는 것을 어떤 사람은 고통으로 받아들이고 또 다른 사람은 즐거움으로 받아들입니다. 여러분은 어느 쪽이십니까?
심산스쿨을 찾아주시는 여러분들께 송구영신의 의미를 담아 다정한 연하장 하나 띄운다고 시작한 글이 그만 삼천포로 빠져버렸습니다. 아니, 산으로 올라갔나?(ㅋ). 어쨌든, 이 알듯말듯한 김시습의 시 한수를 여러분께 연하장으로 띄웁니다. 마음 같아서는 일일이 종이에 찍어 모든이에게 오프라인으로 보내고 싶지만, 그렇게 하려 한다면 아마도 내년 한 해가 모자랄 것이 뻔하니(ㅋ), 이렇게 전각을 한 돌을 사진으로 찍어 온라인으로 보냅니다.
여러분, 한 해가 간다고 서운해할 필요가 없습니다. 내년이 오니까요. 한 산을 다 걸으면 그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또 다른 산이 푸르른 모습으로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어차피 걸어야할 길이라면 즐거운 마음으로 걸어갑시다. 산길은 험하여 육신은 힘들지만 마음을 열고 구석구석 바라보면 너무 예쁜 야생화들이 지천으로 널려있습니다. 아찔한 절벽은 놀라운 시야를 제공하고, 엄청난 눈사태는 인간이라는 존재의 나약함을 기꺼이 받아들이게 합니다. 저는 올 한해 걸은 산이 좋았습니다. 내년에 걸을 산도 좋으리라 믿습니다. 여러분 모두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새해를 시작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설마 쌤의 창작?
모든 게 다 끝났다 생각했는데 새로움이 있더군요
올 한 해가 제겐 그랬습니다.
그래서인지 김시습의 이 시귀가 제겐 그렇게, 이렇게 다가 오네요
마지막, 끝자락에서 만난 푸르름...그 아름다운 유혹
가야할 길, 더 넘고 싶은 산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