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심산 등록일: 2015-12-19 20:5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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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년회에서 살아남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심산이 송구영신의 인사말을 올립니다

 

어느덧 올해도 끝이 보이네요. 여러분들은 올 한해를 어떻게 보내셨습니까? 올해 잘한 일은 무엇이고 후회되는 일은 무엇인지요? 저는 올해 제일 잘한 일로 “심산스쿨 캠퍼스를 없앤 것”을 꼽습니다. 후회되는 일? 저는 원래 후회 같은 거 전혀 안합니다(ㅋㅋㅋ). 내년의 제일 멋진 계획? [하이힐을 신은 남자](1992년)와 [사흘낮 사흘밤](1994년)에 이어 무려 22년(!)만에 세 번째 장편소설을 세상에 내놓는 겁니다. 현재 내정된 제목은 [사랑에 빠진 김시습]입니다. 영어로 [Kim Siseup in Love]라고 하면 아주 명확해지고 마음에 드는데, 그것을 우리말로 옮겨 [사랑에 빠진 김시습]이라고 하니 약간은 어색한 느낌입니다. 제목에 대해서는 조금 더 고민해봐야 되겠습니다.

 

지난 두 달 동안 저는 엄청나게 많은 물건들(주로 책들입니다)과 헤어졌습니다. 적절한 새 주인이 떠오르면 그에게 주기도 했지만, 대개는 그냥 내다버렸습니다. 제가 원래 “뭘 잘 버리는” 성격인데, 하도 내다버리다 보니 재미가 들려, 제 집필실과 자택의 물건들까지 죄다 버렸습니다. 덕분에 제가 머무는 공간들이 매우 넓어졌습니다. 예전에 [심산의 마운틴 오딧세이](2002년)의 서문에 이렇게 쓴 적이 있습니다. “과학적으로 증명할 방법은 없지만 무언가를 버린다는 행위에는 명백히 자기 해방의 기능이 있는 것 같다. 이때 버려지는 것은 물건만이 아니다. 그 물건과 얽혀있는 앙금 같은 미련과 지키지 못한 약속과 남의 눈을 의식한 허장성세 따위가 깨끗이 사라져버리는 것이다.” 지금도 역시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제 올해가 겨우 열흘 남짓 남았군요? 그저께(2015년 12월 17일) [심산반 36기]의 15번째 워크숍을 끝으로 올해의 모든 수업은 마무리 되었습니다. 그리고 버릴 만큼 버렸으니 이제 남은 기간 동안 판판 놀 생각(!)입니다. 내일부터는 올해의 마지막 취재여행을 떠납니다. 여행에서 돌아와 두어 개 남은 송년회까지 해치우고 나면 새해를 맞이하게 됩니다. 사실 딱히 새해를 맞이한다고 해서 희망에 부풀 일은 없습니다. 저로서는 무엇보다도 “아직도 박근혜의 임기가 2년이나 남았다”는 사실이 너무 끔찍하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그래도 세월은 가고, 새해는 오는 거겠지요. 이 송구영신의 계절을 맞아 어떤 글로 인사를 대신할까 잠시 고민했습니다. 하지만 뭐 제가 신년법어를 발표하는 조계종 종정도 아니고, 인류를 구원할 메시지를 던져야할 카톨릭 교황도 아니니까, 그냥 새해를 맞는 제 마음가짐을 담은 전각작품을 하나 골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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滿窓梅影月明初 만창매영월명초

달이 처음 밝아와 매화 그림자 창에 가득할 때

 

閑著人間不見書 한저인간불견서

세상 사람들이 못 본 책을 한가롭게 짓노라

 

<題金鰲新話>(제금오신화) 2수 중 제1수의 2행과 4행

<금오신화를 쓰며>

 

雪岑詩深山刻 설잠시심산각

김시습의 시를 심산이 새기다

 

해남석 45mm×45mm×10mm×2개

적목액자 210mm×300mm×45mm




김시습이 금오산(현재의 경주남산)에 머물며 [금오신화]를 지을 때 쓴 시이니까 아마도 1465년부터 1468년 사이에,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약 550년 전에 쓰여진 것이지요. 산 속에 작은 움막을 짓고 틀어박혀, 달빛에 매화나무 그림자가 창에 드리울 때, 세상 사람들이 본 적 없는 책을 한가롭게 쓴다……참 멋지지 않습니까?(김시습은 호(號)를 많이 갖고 있었는데, 가장 널리 알려진 호 ‘매월당’이 바로 이 시에서 비롯되었지요). 새해에는 저도 이렇게 살고 싶습니다. 번잡한 세상사로부터 몇 발자국 떨어져서, 책을 쓰되, 다른 사람의 것을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독창적인 그리고 새로운, 그래서 “세상 사람들이 본 적 없는” 책을 쓰는 것, 그것이 저뿐 아니라 모든 작가들이 해야 될 일이겠지요. 여기 심산스쿨을 찾아오시는 분들의 대부분이 작가 내지 작가지망생들이시니까 그분들께도 덕담 삼아 이 시구를 새해인사로 올립니다. 새해에는 여러분 모두 “세상 사람들이 본 적 없는” 작품을 쓰시기를!(다만, “달빛에 매화나무 그림자가 창문에 어른거리는”, 그런 멋진 집필실을 갖기는 쉽지 않겠지요? 우리는 과연 550년 전의 조선시대 사람들보다 잘 살고 있는 걸까요?).

 

올해도 여러분들의 관심과 사랑으로 행복한 한해였습니다. 감사합니다. 심산스쿨 캠퍼스의 폐쇄과정에서도 많은 분들로부터 “마음이 따뜻해지는” 인사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내년부터는 제가 맡고 있는 [심산반] 및 [심산상급반]만 최선을 다하여 이끄는 한편, 남는 시간과 노력을 창작활동에 쏫아붓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도 남은 한해 잘 마무리하시고, 송년회에서 술 먹다 죽지 마시고(ㅋㅋㅋ), 더욱 활기찬 모습으로 새해를 맞이하시기 바랍니다. 새해에는 여러분이나 저나 모두 “세상 사람들이 본 적이 없는 책을 한가롭게 쓸 수 있게 되기를” 기원하면서 송구영신의 인사말을 마칩니다. 내년에 어느 자리에서 뵙든 건강하고 반가운 얼굴로 인사 나눌 수 있게 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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