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김없이 또 한해가 저물어갑니다
남은 한해 잘 마무리하시길 바라며
요즘 들어 뜬금없이 잘 지내고 있느냐고 안부를 물어오는 친구들이 많습니다. 아마도 제 소식이 너무 뜸하기 때문이겠지요. SNS야 처음부터 발을 들여놓지 않았으니 그런가보다 하겠지만 이곳 심산스쿨 홈페이지에조차 새 글을 올리지 않고 있으니 그런 걱정(?)들을 하실 만도 합니다. 결론부터 말씀 올리자면 저는 ‘아무 탈도 없이 그저 잘’ 지내고 있습니다. 매일 매일 하루가 저물어가는 것을 보며, 또 한 해가 저물어가는 것을 보며, 그렇게 세월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번 가을에는 [심산반]이나 [심산상급반]의 워크숍을 진행하고 있지 않다보니 처음에는 저 스스로도 조금은 어색했습니다. 매주 한번씩 후배작가들을 만나 웃고 떠들고 토론하며 그리고 술잔을 맞부딪치며 보냈던 날들이 지난 20여 년간 거의 습관처럼 되어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이것도 한참을 쉬다보니 또 그럭저럭 적응이 됩니다. 내년 2월이 되면 다시 워크숍을 열어볼 생각인데, 그때까지는 ‘다소 외롭고 조용한 시간’을 보내게 되겠지요.
제가 요즈음 전념하고 있는 것은 시나리오 작업입니다. 국내의 어느 메이저영화사와 계약을 하고 ⟪끈⟫이라는 시나리오를 집필 중인데, 제3고까지 끝냈고 현재 제4고를 진행 중입니다. 힘 드는 것 못지않게 즐거운 작업입니다. 제작자·프로듀서·감독이 모두 후배뻘이라 오히려 조심스럽습니다. 그들 모두를 만족시킬 훌륭한 시나리오를 써내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따금 시간이 나면 전시회나 콘서트를 즐겨 찾고 있습니다. 최근에 본 전시회로는 이호신 생활산수전 <북한산과 도봉을 듣다>(JCC 갤러리, 2019년 11월 15일-2020년 1월 31일)와 강레아 사진전 <산에 들다>(미술세계 갤러리, 2019년 11월 20일-12월 3일)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위의 사진도 이호신 작 <숨은벽 능선에서 본 노을>(2014, 한지에 수묵채색, 69✕140cm)의 일부입니다(이호신 화백님, 허락 없이 그림을 올리고 또 제멋대로 트리밍하여 죄송합니다). 오른쪽 아래 귀퉁이에 앉아 멍하니 지는 해를 바라보고 있는 등산복 차림의 사내가 꼭 저 자신 같아 한참 동안 들여다본 그림입니다.
최근에 본 콘서트로는 <Dave Grusin & Lee Ritenour>(블루스퀘어, 2019년 11월 12일)와 <웅산의 All That Jazz>(블루스퀘어, 2019년 12월 4일)가 좋았습니다. 특히 웅산 콘서트에는 두 명의 깜짝 게스트(도올 김용옥과 MC Sniper)가 출현하여 유쾌함을 배가시켜 주었습니다. 훌륭한 예술가들과 동시대를 살아간다는 것은 분명 대체할 수 없는 행복입니다. 남아있는 생애 동안에도 멋진 예술작품(그것이 미술이건 음악이건 영화건)들을 많이 감상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어찌되었건 오늘도 해가 지고, 올해의 마지막 달도 저물어가고 있습니다. 편안하게 보내줍시다. 본래 가는 사람 잡지 않고 오는 사람 막지 않는 법입니다. “Just Let It Come, Let It Be, Let It Go.” 여러분도 남은 한해 잘 마무리하시기 바랍니다. 하도 소식을 전하지 않자 여기저기서 뭔 일이 있냐고 물어오시는 분들이 많아 그냥 두서없이 적어본 저의 요즘 나날들 풍경입니다. 앞으로도 뭐 소식을 자주 전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제발 SNS라도 좀 하라고들 볶아대지만 그럴 가능성도 별로 없어 보입니다. 그러다 보니 시대에 뒤떨어지고 있는데, 그것도 나름 괜찮다는 생각마저 듭니다. “바쁜 시대여 앞서 가시라, 나는 여기 뒤에 남을 테니.”
이호신 화백의 전시회,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못보신 분들을 한번씩 다녀가세요
도심 한복판에서 생각지도 못했던 안복을 누리게 됩니다
겸재가 추구했던 진경산수가 21세기에 와서 거의 완성되어 간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언젠가 인연이 닿는다면 이화백님과 함께 '수락산 작업'을 해보면 좋겠다는 행복한 꿈도 꾸었습니다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