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김정한 등록일: 2009-12-06 04:50:21 IP ADRESS: *.47.19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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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이라는 번호를 붙인 것은... 앞으로 다른 글도 올릴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ㅋ
(어쩌면 도배를 할 수도 있겠죠.^^)

아쌈 차차茶 - 김영자 / 이비락

지난 번 [하이힐을 신은 자전거]이후 또 하나의 [인디라이터 동기]의 단행본 리뷰이다.
오월 김영자 선생님은 인디라이터 동문 중에서도 최고령자(?) 그룹에 속하는 분이다. 하지만 젊은 사람 못지않게 팡팡 튀는 패션 감각은 그녀의 사회에 대한 관심을 대변하는 것 같다. 또한 젊은이들을 뻥뻥 차버릴 것 같은 열정은 그녀가 세상을 살아가는 그 뜨거운 열정을 보여준다.

인디 심화반에서 처음 만난 오월 선생님은 매 수업시간마다 PET병 하나 가득 홍차를 넣어서 가지고 오셨다. 바로 그녀의 책 아쌈 차차茶에 등장하는 바로 그 홍차 말이다. 뜨거운 여름, 그녀가 따라주는 차갑게 식힌 홍차는 이마의 땀을 닦아주기에 충분했다.
오월 선생님은 스스로를 ‘글도 못 쓰는 사람이 책을 내겠다고 종종거리는 사람’이라고 하셨다. 어쩌면 그 말도 맞는 말인지 모르겠다.
오월 선생님이 국어를 배우던 시절과 지금은 맞춤법도 제법 달라졌을 것이고, 대한민국에서 제일 바쁜 직업인 ‘아줌마’와 ‘사업가’ 둘을 거머쥐고 달려온 삶에서 글을 쓰는 시간은 충분치 않았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그러면 어떤가?
그녀가 빽빽이 기록해둔 글과 틈틈이 찍은 사진을 엮어서 아담한 책 한 권으로 나왔고, 내가 자주 가는 인터넷 서점 ‘알라딘’에서 그녀의 책을 살 수 있는데 말이다.
분명한 것은 ‘열정과 용기가 있으면’ 못할 일이 없다는 평범한 진리이다. 오월 선생님의 책 [아쌈 차차茶]는 그것을 보여주고 있다.

사실 이 책의 원고는 예전 심화반 강좌를 들을 때 거의 읽은 것 같다. 하지만 심심한 A4복사지에 성의없이 프린트된 활자로 읽는 것과 이렇게 깜찍한 크기의 예쁜 책으로 나와서 매 페이지마다 사진과 함께 실린 글을 읽는 것은 그 재미와 감동에서 엄청난 차이를 느끼게 한다.

더구나 인도, 아쌈 여인들의 낭창낭창한 자태를, 비록 사진으로나마 살짝 엿볼 수 있으니 그 즐거움이 더하다.

책 표지에 이런 문구가 적혀있다.
‘인도여행, 90일간의 차밭살이 이야기’

우리는 흔히 여행을 생각할 때 ‘스쳐가며 보는’ 것을 생각한다.
배낭을 메고 투박한 운동화나 튼튼한 등산화를 신고 잘 빠진 디카 하나를 들고 스쳐가며 본다.
여행지 그곳에서 사는 사람들의 삶이 진정 어떤 모습인지 잘 모른다. 그냥 스쳐갈 뿐이다. 그러면서 디카 액정에 보이는 그림을 저장하기에 바쁘다.
여행에서 돌아오면 ‘블로그’‘카페’에 또는 ‘미니홈피’에 올려서 나의 여행을 증명해줄 ‘증거 사진’을 만들기에 바쁘다.

가끔 여행지에서의 예상하지 못한 로맨스를 꿈꾸기도 한다. 여행지에서 만난 또 다른 여행자와의 하룻밤을 상상하기도 한다.

이것이 우리의 여행이다. 기껏해야 사나흘 머물다가 떠나면 그 뿐이다.

그런 여행의 흔적이 그곳 사람들에게 어떤 흔적을 남길지 전혀 생각하지 못한다. 어쩌면 나의 등장으로 인해 그들의 삶에 아픔을 줄 수도 있고, 나를 통해 ‘어글리 코리안’이라는 인상을 심어줄 수도 있지만 그건 뒷전이다.
오로지 내가 지나간 그 궤적을 따라 증거를 만들고, 적당히 돈을 쓰면서 즐기는 것... 그것이 우리가 말하는 여행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아쌈 차차茶]는 여행기가 아니다.
도대체 어떤 멍청한 여행가가 한곳에서 석 달씩이나 머물며 그들의 집에서 자고, 그들의 음식을 먹으며 그들과 함께 일을 한단 말인가?
그것도 그 나라에서 가장 아래쪽에 위치한 빈한한 사람들과 말이다.

어쩌면 이 책은 삶의 기록이다.
낯선 이방인이 현지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며 일상에 동화되어 지낸 90일의 흔적, 그것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 책의 저자 오월 김영자 선생님은 말 그대로 대한민국 아줌마이다. 아니 그냥 아줌마가 아니라 강남, 그것도 대치동이라는 ‘대한민국식 상류사회’에서 생활하며 이벤트 사업을 하고 있는 말 그대로 ‘잘 나가는 강남 아줌마’이다.
그런 그녀가 인도의 아쌈이라는 곳으로 여행을 떠났다. 그리고 90일간 함께 한 사람들은 인도의 ‘브라만’이 아니다.
그들의 신분은 '천민'이다. 물론 그들 스스로는 ‘불가촉천민’보다는 낫다며 스스로를 위안한다지만 어쨌든 그들은 평생 찻잎이나 따면서 살다가 가야 하는 존재들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인도는 지금도 철저하게 신분계급이 존재하는 곳이다.
대한민국, 강남의 잘 나가는 아줌마가 인도의 아쌈 그 오지에서 ‘천민’과 과연 교감할 수 있을까?
그것이 내가 가장 궁금한 것이었다.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들었다.
김영자라는 이름은 우리 부모님 세대에는 제일 흔한 이름이다. 내가 초등학교 1학년 때 배웠던 국어책에는 이런 문장이 있다.

철수야, 가자.
영희야, 가자.
바둑이도 함께 가자.

철수, 영희만큼 흔한 이름이 ‘영자’이다.
영화제목도 있었던가? ‘영자의 전성시대’
그렇게 대표적인 대한민국 아줌마의 이름을 가진 그녀가 인도 아줌마와 과연 어떤 일들을 벌일까?

여행자에게 여행지는 어떤 의미를 가질까?
앞서 말했듯이 스쳐가며 그림만 저장하는 여행을 하는 사람에게는 ‘피사체’, 또는 사진을 위한 세트장 이상의 의미를 가지지 못할 것이다.

집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지 못하는 여행자에게는 단지 거리의 풍경, 집들의 뭉쳐있는 모습, 시장의 번잡함, 유흥가의 떠들썩함 정도가 스냅사진으로 기억될 것이다.

그녀에게 아쌈은 생활이었다.
아무도 부르는 사람이 없는 그곳을 스스로 걸어 들어간다. 주위에서는 그런 그녀를 만류하는 사람만 있었을 뿐이고, 그곳 사람들에게도 그녀는 어색한 이방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을 것이다.
그녀는 ‘내가 누군지 알아? 난 대한민국 아줌마야!’를 외치며 그들에게 다가간다.
그렇게 해서 ‘찻잎을 따며 생활하는’ 그들과 생활을 하게 된다.
토굴보다 못한 집에서 그들과 함께 먹고, 자고, 일하는 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한국에서는 정보조차 찾기 어려운 아쌈에서, 대학교수인 현지 친구조차 극구 만류하는 차밭에 기어이 들어간 그녀는 그들과 살을 맞대고 산다. 말 그대로 사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한솥밥을 먹는다’고 표현할 때는 그만큼 막역한 사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녀는 그들과 한솥밥을 먹었다.

90일이라는 시간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보통 3개월이라는 시간은 한 계절에 해당하는 기간이다. 우리가 아무리 춥다고 종종 거려도 석 달이면 끝난다. 더워 죽겠다고 에어컨을 끼고 살아봤자 역시 석 달이면 끝이다.
일상생활에서의 석 달은 딱 그만큼의 시간인 것이다.
석 달 전의 나나 지금의 나나 별반 다를 것이 없고, 그 때나 지금이나 하는 일도 다르지 않다. 하지만 생활의 터전을 벗어나 낯선 이방인과 함께 그들의 사회 속에서 생활하는 석 달이라면 어떨까?

그 답이 이 책에 들어있다.
그녀가 경험한 석 달은 결코 짧지 않다.
토굴만도 못한 현지의 집에서 보낸 첫날, 그녀는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거리며 ‘멍청한 선택’에 후회를 했다. 누구 하나 잡는 사람이 없는데도 ‘스스로 선택한’ 것에 대한 오기, 또는 자존심 때문에 쉽게 떠나지 못하고 있다. ‘어떻게 하면 그다지 모양 빠지지 않게 이곳을 떠날 수 있을까?’를 궁리하며 하루 이틀을 보내던 그녀는 점차 그들과 동화되고, 그 생활에 익숙해지는 스스로를 발견한다.
결국 아쌈을 떠나던 날, 그녀는 함께 했던 사람들과 펑펑 울며 이별을 한다.

석 달이라는 시간이 그녀에게는 ‘헤어지기에는 너무나 가슴 아픈’ 인연을 만들어 준 것이다. 그리고 그 시간동안 참 많은 것을 보고 경험하게 한다.

저자 스스로 ‘인생 후반기’를 살아간다는 그녀에게 그 석 달은 남은 인생에서 절대 잊을 수 없는 인연을 만들었고 분명 그녀의 인생은 그 경험으로 인해 달라질 것이다.

술만 마시면 마누라를 개 패듯 패대는 남자, 그렇게 얻어맞아서 눈두덩이 퉁퉁 부은 여자.
열댓 살 어린 나이에 비슷한 또래의 남자에게 강간당한 여자는 결국 그 강간범과 결혼을 선택하게 되었단다.
‘없어도 너무 없는’ 삶을 살다보니 그 빈한함이 익숙해져버린, 꿈조차 꿀 기력도 없는 사람들.
차 농장 안에서 왕처럼 군림하며 악행을 저지르지만 상대적으로 높은 신분일 여행자에게는 비굴해지는 관리인.

그렇게 살아가는 그들, 그 속에서 그녀가 만나는 것들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고마움을 표시하기 위해 옷 한 벌, 시장에서 파는 값싼 음식들에도 감격하며 고개를 조아리는 현지 여인들을 보며 저자는 상대적 우월감을 느낀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또 다른 형태의 상처를 주는 것은 아닌지 고민해야 했다.
인도에서 파는 양배추로 만든 한국식 김치를 선보였고, 그들과 어울려 하쯔라는 술도 기울이며 신나게 밤을 보내기도 했다.
그들과 같이 찻잎을 따기도 했고 그렇게 언니, 동생이 되었다.

이 책은 그렇게 ‘살아가며 겪은 90일’을 기록한 것이다.

여행을 하며 만나는 사람들은 마네킹이 아니며, 그 마을과 풍경 역시 세트장이 아니다.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나는 이 책 [아쌈 차차茶]를 읽으며 비로소 그것을 실감했다.
그들도 사람이다. 비록 천민이라는 딱지를 평생의 카르마로 안고 살아가지만, 그렇게 평생 찻잎을 따고 그것으로 최저생계비에 턱도 없이 부족한 수입을 올리고, 그렇게 빈한하게 살지만 그들도 사람이다.

그들에게도 가슴 아픈 사랑이 있고 소중한 가족이 있으며 절대 놓쳐서는 안 되는 가치가 있다. 그들 역시 꿈을 꾸며, 보다 나은 내일을 바란다. 자식들에게는 어떻게 해서든 가난과 아픔을 물려주지 않기 위해 고민하며 살아간다.

이 책은 서너 장 정도의 분량으로 한 꼭지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화장실에서 볼 일을 보며 읽거나, 전철이나 버스를 타고 가며 읽기에도 그다지 부담스럽지 않은 분량이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아쌈이라는 지명이 지구 위 어느 지점쯤에 있는지 전혀 감도 잡히지 않았다.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아쌈이라는 지명이 조금은 친숙한 느낌이 드는 걸 보면 제법 재미도 있고 감동도 있는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드는 궁금증 하나...
루이엄마 소마리는 떠나는 저자에게 이렇게 말을 했다.
“언니, 꼭 다시 오셔야 돼요.”
과연 그 약속은 언제 지켜질 수 있을까?

* 심산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9-12-28 15:43)
profile

심산

2009.12.06 11:21
*.110.20.43
와우 좋아 좋아, 정한!
이런 정도 수준이라면...도배를 부탁해...ㅋ

아울러...추천수도 선정작 결정에 뭔가 변수로 작용할듯한 예감...ㅋ
profile

명로진

2009.12.06 12:28
*.86.217.161
음.....잘 읽었어.
여전히 장문에 강한 면모를 보이는 정한. ^^

김정한

2009.12.07 02:10
*.47.197.18
심산쌤~ 감사합니다. 도배를 부탁하시다뉘... ㅋㅋ

명쌤~ 장문에 강한 면모라... 진짜로 짧고 간결하게 쓰는 건 너무 어려워요.
이렇게 장황하게, 주저리 주저리 늘어놓기나 하는... ㅠㅠ

김영자

2009.12.08 09:17
*.121.175.170
귀절 귀절마다 과찬의 말씀을.... 대단히 괌사!
//팡팡 튀는 패션 감각//...아니 언제 지 맵시까지 관찰 하셨대요?

대문호 심샘의 인정을 받기란 쉽지 않을텐데.... 부러부러워용!
요즘 인터뷰어들 책이 잘나가 듯 리뷰어들 책이 대박날 차례~
작업실(!)까지 마련해주시고 도배하라면 인제 계약만 남은 거네요!

[아쌈차차茶]의 속치마 색깔까지 내보인것 같아 부끄럽사와요!...

2탄은 [아쌈차차車]로 할까 싶은데~ ㅋ ㅋ ㅋ
게이랑 같이 지냈던 기차안 풍경부터 닭장 릭샤, 멀미나는 초만원 버스까지,
장남감 같은 석탄 실은 탄광차를 타기까지 인간군상들에게서 일어나는 일.....등등.

여기에 실어 주신것만도 영광이지요~
진심으로 감사드림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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