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심산 등록일: 2019-02-18 22:12:30 IP ADRESS: *.139.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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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2의 덕장이 바라보는 산

김병준, 산을 바라보다, 도서출판 선, 2019

 

심산(한국산서회 편집이사)

 

산악인 김병준(1948-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영예로운 직함이 ‘86 한국K2원정대장이다. 그만큼 엄청난 등반이었고 놀라운 성취였다. 덕분에 그가 K2원정 9년 전에 이미 ‘77 한국에베레스트원정대원이었다는 사실은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다. 그가 우리나라를 대표하여 세계 제1(에베레스트)과 제2(K2)의 원정에 모두 참여하였고, 두 원정 모두를 성공적으로 이끄는데 크게 기여하였다는 사실은 무엇을 뜻하는가. 김병준이야말로 한국 히말라야 등반사의 산 증인이요 공식적인 적자(嫡子)라는 뜻이다.

 

원정대의 대장은 흔히 전쟁터의 장수에 비견된다. 장수는 그의 지휘관()이나 품성 혹은 태도에 따라 맹장(猛將), 지장(智將), 덕장(德將) 등으로 분류된다. 김병준은 전형적인 덕장이다. 그가 용맹하지 않다거니 지혜롭지 못하다는 뜻이 아니다. 용맹하고 지혜롭되, 윽박지르거나 전략전술을 짜는 데 집중하기 보다는, 주변사람들을 아끼고 사랑하는 덕()이 두터워 휘하의 대원들이 절로 믿고 따르도록 한다는 뜻이다.

 

김병준의 미덕이라 할 수 있는 덕장의 면모가 여실히 드러나는 책이 K2 죽음을 부르는 산(평화출판사, 1987, 이하 K2로 약칭)이다. 86 한국K2원정대의 공식 보고서인 이 책은 명실 공히 한국산악문학의 걸작이라 할만하다. K2는 등반보고서인 동시에 문학작품이기도 하다. 이 책은 그 이전까지 거의 관례처럼 통용되었던 등반보고서의 내용과 형식을 완전히 혁신하였다. 김병준은 K2에서 원정에 참여한 모든 대원들 하나하나에 대한 애정과 안타까움과 사랑과 감사의 마음을 아낌없이 털어놓는다. 덕분에 우리는 K2를 읽으며 그들과 함께 K2에 오르고, 그들과 함께 배를 잡고 웃고, 그들과 함께 뜨거운 눈물을 흘릴 수 있었다.

 

나는, 외람된 표현이 될지 모르겠으나, 산악인 김병준이 이룩한 최고의 성취는 바로 K2의 집필과 출간이라고 생각한다. K2는 우리 등반사와 산악문학사에서 그만큼 중요한 작품인 것이다. 사단법인 한국산서회의 평가도 이와 다르지 않다. 그의 원정대가 K2의 정상에 오르던 해(1986)에 발족한 한국산서회는 창립 30주년(2016)을 맞아 한국의 산서 베스트 30’을 선정·발표하였는데, 김병준의 K2가 당당히 3위에 랭크되었다. 이보다 높은 평가를 받은 책은 8000미터의 위와 아래(헤르만 불)영광의 북벽(정광식)뿐이다.

 

K2 이후 32년 만에 내놓은 두 번째 저서

 

그런 그가 K2이후 무려 32년의 세월이 흐른 다음 이렇게 불쑥 두 번째 책을 세상에 내놓았으니 어찌 반갑지 않겠는가. 물론 그 동안의 그가 아예 집필과 담을 쌓고 지냈던 것은 아니다. 김병준은 전국등산학교 교재로 쓰이는 등산의 공저자로 참여했고, 대한산악연맹50년사의 편집위원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하지만 온전히 자신의 이름으로 내놓은 책은 산을 바라보다가 두 번째이다. 막 인쇄소에서 나온 따끈따끈한 책을 손에 넣은 나는, 마치 32년간의 갈증과 허기를 일거에 해소하려는 듯, 미친 듯이 허겁지겁 읽어 내려갔다.

 

산을 바라보다K2와 다르다. 비록 문학적인 형식을 취하였다고는 하나 K2는 여전히 공식보고서이다. 산을 바라보다는 보다 사적(私的)이다. K2에서 들을 수 있는 김병준의 목소리는 간혹 개인적인 감정의 토로가 있을지언정 어디까지나 공인(公人)인 원정대장의 입장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반면 산을 바라보다에서 접하게 되는 김병준은 개인이며 자연인이다. 인간 김병준의 육성을 조금 더 편안한 마음으로 경청할 수 있다는 것이 산을 바라보다라는 책이 갖는 미덕이다.

 

하지만 책을 완독하고 나면 이러한 구분조차 미덥지 않게 된다. 김병준을 규정하는 또 다른 수식어는 한국산악계의 마당발혹은 산악행정의 달인이다. 그는 대한산악연맹과 서울시산악연맹 등에서 가장 오랜 세월 동안 최일선에서 실무를 담당해온 인물이다. 덕분에 그가 참석하지 않은 산악계의 대소사(大小事)는 상상하기조차 힘들다. 저자 자체가 산악계의 일부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니, 그의 개인적인 에세이조차 묵직한 중량감을 갖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긴 산악인 김병준에게 산이 어찌 공사(公私)로 나뉠 수 있는 대상이겠는가.

 

이 책의 1<, 내 사랑>은 그가 만났던 산악인들의 이야기이다. 이미 우리 곁을 떠난 이들도 있고 여전히 바위와 얼음에 매달려 사투를 벌이는 이들도 있다. 김병준은 K2의 덕장답게 그들 모두를 하나하나 사랑으로 감싸 안는다. 그 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숨겨진 에피소드들은 읽는 이의 눈시울을 적신다. 2<내 생애의 산행>은 그가 환갑 이후 즐겼던 등반과 트레킹의 기록이다. 인생의 후반기를 여유롭게 즐기고 있는 그의 모습이 입가에 미소를 머금게 만든다. 3<우리나라 등산의 어제와 오늘>은 뜻밖에도 매우 꼼꼼하고 치밀한 소논문(小論文)이다. 어쩌면 조금 더 발전시켜 별개의 단행본으로 만들었어도 좋지 않았을까 싶을 만큼 알차고 학구적인 글들로 가득 차 있다.

 

산과 사람과 술을 사랑한 사나이의 인생고백록

 

김병준은 산악계에서 보기 드문 인품의 소유자이다. 산 선배들에게 그는 깎듯 예의 바른 후배이면서 모든 대소사를 앞장서서 챙기고 자리를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사람이다. 나 같이 까마득한 산 후배들에게도 그는 믿고 기댈 수 있는 커다란 언덕 같은 맏형이며, 언제라도 껄껄 웃으며 즐겁게 소주잔을 맞부딪칠 수 있는 존재다. 산을 바라보다는 그런 김병준의 삶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는 고백한다. “산은 내 삶의 반려자이며, 내 사랑이자 내 생명이다.”

 

K2의 덕장이 바라보는 산이란 어떤 것일까. 그것이 산을 바라보다라는 책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이다. 그는 소년시절 보이스카우트 야영활동을 하면서 산에 빠져들었다고 고백한다. 암벽등반의 세계에 빠져든 것은 무려 고1때였다. 청장년기의 그는 히말라야를 넘나들었다. 그리고 칠순을 넘긴 지금도 여전히 산을 떠나지 못한다. 김병준에게 산이란 곧 그의 삶과 다름 아니었다. 그러므로 산을 바라보다는 그가 들려주는 산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그 자신의 인생고백록이기도 하다.

 

언젠가 김병준의 카톡 첫화면을 보고 크게 웃은 적이 있다. “I Love 3S.” 도대체 3S가 뭘까? 산과 사람과 술이란다. 우리가 아는 김병준을 가장 잘 표현해준 세 가지의 키워드는 어쩌면 바로 이것이 아닐까? 산과 사람과 술을 사랑한 사나이. 그런 그가 칠순이 넘어 이토록 다정다감한 책을 다시 세상에 내주어서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김병준도 이 책을 세상에 펴내며 자신의 남은 삶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다. “앞으로 한 10년 정도 더 산에 갈 수 있으려나? 욕심은 없다. 산과 벗하며 산 친구, 산 선후배와 한잔 나누며 그렇게 늙어 가리라.”

 

월간 [사람과 산] 2019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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