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심산 등록일: 2006-06-15 14: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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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예산 독립영화 [비단구두] 씨네큐브 단관개봉

[img1]

[태양은 없다] 이후 꼬박 7년만에 스크린에서 저의 크레딧을 보게 되었습니다. 아 뭐 하긴 그 동안 'special thanks to'나 '배우'로서의 크레딧을 가진 적도 있으니 '시나리오작가'로서의 크레딧이라고 한정지어 말해야 되겠네요...^^ 바로 6월 22일(목) 서울 광화문 씨네큐브에서 단관 개봉(!)하는 여균동 감독의 신작 [비단구두]입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이 영화, 말도 많고 탈도 많았습니다. 펀딩과 캐스팅이 너무 힘들었고, 결국 돈이 모자라 촬영이 중단된 적도 있으며, 끝내 크랭크업을 한 다음에는 스탭 잔금을 지불하지 못해 감독 겸 제작자였던 여균동이 피소당하기까지 했습니다. 이 나라에서 저예산 독립영화를 만든다는 것, 정말 끔찍한 일입니다. 그나마 어찌어찌하여 잔금을 치루고 단관 개봉이나마 하게 되었다니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

못 받은 잔금의 액수가 가장 큰 스탭? 바로 접니다. 하지만 여감독과 통화하면서 그냥 웃고 말았습니다. 제가 그랬습니다. "형, 영화로 만들어줘서 고마워!" 진심입니다. 잔금은 커녕 계약금도 받지 못했습니다. 취재와 집필 과정에서는 제 개인의 돈이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원망하지 않습니다. 저희 아래 세대들이 보기에는 '미친 짓'이겠지요. 상관 없습니다. 아마 이런 식으로 영화를 만들고도 웃을 수 있는 '멍청한 놈들'은 저희 세대가 마지막일 것 같습니다.

누구보다도 고마운 것은 민정기 화백입니다. 민화백, 한국의 80년대 화단을 대표하는 화가입니다. 이 분의 산 그림, 저를 감동시켰습니다. 흔히 민중미술작가라고 하면 괜히 한 수 접어주는 경향이 있는데 민화백의 작품은 그렇지 않습니다. 미술작품 그 자체로서 당대 최고의 수준에 올라 있습니다. 그런 분이 기꺼이 주연을 맡아주시고, 개런티는 커녕 당신의 사비를 털어주셨고, 그 끔찍했던 촬영현장을 끝까지 지켜주셨다는 게...정말 눈시울이 붉어질만큼 고맙습니다.

흥행? 평가? 전혀 개의치 않습니다. 어차피 우리들끼리 없는 쌈지돈 털어놓고 만든 영화입니다. 관객들과 평단으로부터 싸늘한 반응 밖에 받지 못한다 해도...후회는 하지 않을 겁니다. 그저 영화 만드느라 고생한 사람들끼리 모여 시원한 맥주 한잔씩 들이키면 그뿐이지요. 다만 걱정이 있다면 단 하나, 앞으로도 이런 영화를 만들 사람들이 있을까...이제 한국에서 저예산 독립영화라는 것은 아예 안 만들어지는 것이 아닐까...그런 것뿐입니다.

 

댓글 '11'

허연회

2006.06.15 17:59
정말 눈물이 납니다. 눈물이 납니다.

강상균

2006.06.16 00:16
부산에서 봤지만 정식 개봉한다니 느낌이 다르네요^^ 선생님, 축하드립니다~

김성훈

2006.06.16 02:21
말씀하신 그 시원한 맥주 한잔!!! 그거 제가 대접해도 될런지요?^^;

김영태

2006.06.16 03:57
클립만으로도 너무 좋네요.
선생님, 무지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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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산

2006.06.16 11:02
내가 맨날 하는 이야기: 어떤 영화든 크랭크인을 하면 기적이고, 크랭크업을 하면 더 기적이고, 개봉하면 기기적이고...^^

최상

2006.06.16 22:45
아... 정말 축하드려요... 한번 보러 갈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씨네큐브... 방학때 곧잘 가던 극장인데... ^^

안슬기

2006.06.19 11:42
축하드립니다~ ^^;;; 극장에서 돈내고 보도록 하겠습니다. 홍보도 하구요~

백소영

2006.06.22 21:45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생각나네요..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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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산

2006.06.22 22:00
방금 아내와 함께 보고 들어왔습니다. 뭐...보는 내내 고통스러웠습니다. 상상했던 것만큼 그림이 안 나오면...작가는 괴롭지요. 물론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겠지만, 훼손 당한 씬과 시퀀스, 봉합된 아니 방치된 갈등, 다소 엉뚱한 결말...하지만 일개 관객이 아니라 '영화를 만드는 사람(film-maker)'으로서 변명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냥 고통스러워 하는 수밖에요...^^
돌아오는 차 안에서 여균동 감독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어땠어?" 저는 잠시 망설이다 대답했습니다. "잘 봤어! 고생 많았어!" 여감독도 잠시 뜸을 들이다 말했습니다. "그냥, 잘 좀 봐주라..." 진심으로 생각합니다. 누구의 잘못도 아닙니다. 저는 하하 웃으며 답했습니다. "조만간 애들 불러모아서 포커나 한 판 치자구...!"^^
이 영화, 꼭 보라고 권해드리고 싶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만약 보러간다면...좋은 점이 딱 하나 있습니다. 그냥 예매없이, 아무 때가 가셔도 됩니다. 자리가 널럴하니까요...^^ HD로 찍었는데 생각보다 화질이 좋습니다. 성철 역을 맡은 이성민의 연기가 좋습니다. 혹시 펑펑 울면 어떻하나...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관객을 억지로 울리지 않겠다는 절제 하나만큼은 확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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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호

2006.06.25 03:42
울지 않았습니다..
근데, 영화를 보면서 울었던 영화보다 더 오래 남을것 같습니다..

한수련

2006.06.25 10:43
어제 보고 왔는데 나만 너무 울어서 쪽팔렸음.
감정 절제를 위해 씬을 잘라버리셨다는데 나는 왜 잘린 씬을 보고도 우는건지.
박수동 할아버지 얼굴 자체가 연기입니다. 얼마나 슬프던지...
엔딩도 잊지 못할 거예요.
개인적으로 간큰 가족보다는 훨씬 더 정성을 들여 잘쓴 시나리오라는 느낌이 들었어요.
영화 초반부엔 배우들의 오버 리액션에 억지스럽게 강요되는 부분들, 그리고 뭔가 정리 되지 못한 느낌들이 있었는데 뒤로 갈 수록 영화의 파워가 느껴지더군요.
극한의 상황에서 주인공을 놓아 인간본성을 깨우치는 것인 시나리오의 주된 일이라고 수업시간에 수도 없이 들었지만, 배영감이 북으로 '가자!' '가자!' 하는 것이, 굳이 분단된 조국에 태어난 한 개인의 설움뿐만 아니라
어딘가를 열망하는데 물리적 심리적 장벽에 막혀 갈 수 없는 인간의 천성적인 나약함에 대한 한탄처럼 들렸습니다.
'가자! '가자!' ....
마음은 수십번도 먹지만 결코 가보지 못하는 곳을 가진 모든 사람들에게
백발이 성성할 때까지 그곳에 도달 못할지도 모르는 우리네 인생에게
'괜찮다. 울지마라. '라고 따뜻하게 어루만져주는 영화였어요.

나 지금 리뷰쓰면서 또 울고 있음. 이런 !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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