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05-12-21 09:54:01 IP ADRESS: *.16.20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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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바뀌었다고들 한다. 주변을 둘러보면 분명히 그렇다. 이념은 몰락했고 자본은 상대할 적수를 찾지 못하고 있는데 민주화는 진행중이다. 돌을 던지던 학생들은 성년이 되어 정리해고 대상이 되었고, 노조결성을 외치던 노동자들은 기업살리기에 나섰으며, 군부독재의 주역들이 거꾸로 ‘양심수’나 ‘재야세력’이 되어 재기를 엿보고 있다. 한겨레가 창간되던 당시에는 상상도 못했을 일들이다.

한겨레 역시 많이 바뀌었다. 월급 따윈 내 몰라라 하던 열혈청년들은 어느새 아내의 눈을 마주보기가 겁나는 중년이 되고 있다. 기껏해야 ‘노래를 찾는 사람들’의 흑백사진이 등장하곤 했던 지면에는 이제 S.E.S의 섹시한 자태가 컬러풀하게 등장한다. 판잣집에서 가리방을 밀어도 좋다던 기개는 사옥이 왜 이렇게 좁냐는 푸념에 자리를 내주고 만지 오래이다. 이왕 주간지 시장으로 뛰어들었으면 이 기회에 아예 더욱 대중적인 주간지를 만들어 돈을 벌어보자는 주장에 제법 만만찮은 동조자들이 모여든다.

독자나 주주들 역시 바뀌기는 매한가지이다. 이제 더 이상 독자들은 ‘민주투사’ 한겨레에 박수를 보내지 않는다. 대신 생활기사가 부족하고 재테크 정보가 부실하다면서 핀잔을 보내기 일쑤이다. 만약 한겨레가 또 한 번의 발전기금 모집을 감행한다면 과연 얼마나 많은 국민들이 동참할지 가늠하기 어렵다.

그렇다. 세상은 바뀌었다. 긍정적인 변화도 있었고 부정적인 변화도 있었다. 지난 10년 세월 동안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꾸는 데 한겨레가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는 것 역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모든 것을 긍정해 버릴 수는 없다. 그토록 많은 변화가 있었음에도 세상은 여전히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에 그다지 쾌적한 장소는 아니라는 것이 한겨레사람들의 생각이다.

건국 이래 최초로 여야간 정권교체가 이루어졌다는 사실 자체가 더 나은 세상을 보장해 주는 것은 아니다. 독재자와의 싸움이 끝나면 제도와의 싸움이 기다리고 있고 제도와의 싸움이 끝나면 문화와의 싸움이 뒤를 잇는다. 삶은 조건이 개선되고 나면 삶의 질이 문제로 떠오른다.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의 열망에는 끝이 없다. 어떠한 세상이 와도 그 세상을 더 나은 것으로 바꾸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항상 존재하게 마련이다. 그 사람들의 가장 믿음직한 대변자로 동반자로 남고자 하는 것이 바로 한겨례의 바람이다.

한겨레의 10년 세월은 그런 뜻에서 첫 발자국을 옮겨놓은 정도에 지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제 한겨레는 더 이상 투사가 아니다. 이상과 현실을 혼동하는 얼치기 장사꾼도 아니다. 한겨레는 냉철한 현실감각과 뚜렷한 비전을 가진 ‘진보의 전파가’로서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대장정을 새롭게 시작하려 한다.그 대장정의 시한을 정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앞으로 또 다른 10년의 세월이 지나간다고 한들 세상을 바꾸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멸종될 리는 없다. 100년이 지난다고 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세상이 어떻게 변하든 변하지 않는 진실은 하나뿐이다. 세상을 바꾸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한겨레를 만들어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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