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심산 등록일: 2006-07-06 19:46:20 IP ADRESS: *.241.46.164

댓글

1

조회 수

3095

[img1]

우리에게 축구는 무엇인가
베리 스콜닉의 [그들만의 월드컵](2002)

엊그제 상암 월드컵 경기장에 다녀왔다. 축구에는 분명히 사람들을 흥분시키는 마력이 있다. 평소 스포츠라면 심드렁해하던 아내도 경기 내내 새된 목소리를 질러댔고, 붉은악마 티셔츠를 입은 딸은 우리가 내리 두 골을 내어주자 기어코 눈물까지 글썽였다. 나는 우루과이가 훌륭한 팀이라고 생각했다. 영리한 체력안배와 효율적인 공격방식에 있어서 그들은 분명히 우리보다 한 수 위였다.

내게 있어서 우루과이와 축구를 연결시켜 주는 인물은 에두아르도 갈레아노다. 우루과이 출신으로서 라틴아메리카를 대표하는 양심적 지식인으로 존경받고 있는 그는 세계 최고 수준의 축구평론가로도 유명하다. 국내에도 출간되어 있는 그의 축구에세이[축구, 그 빛과 그림자]에는 인상적인 통찰들이 넘쳐난다. “일부 좌파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축구를 단지 지배계급이 뿌리는 아편 정도로 폄하하려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라틴아메리카의 민중 실상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 편견이다.”

[그들만의 월드컵]은 이런 갈레아노적 축구인식의 유쾌한 표현이다. 이 영화는 피지배계급 혹은 억압된 민중에게 축구가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잘 보여준다. 한때 영국 축구대표팀 주장으로서 A매치에 73회나 출전했던 대니(비니 존스)가 교도소에 들어오자 재소자들이 보여준 반응은 적의에 가득 찬 것이었다. “왜 모두 나를 미워하지?” 대니가 묻자 고참 재소자가 대답한다. “우리는 본래 아무것도 가진 게 없었어. 하지만 너는 우리가 평생 꿈꿔왔었던 모든 것을 다 가졌었지. 그런데 그걸 하루아침에 내팽개쳐 버리다니!”

그렇다. 그들에게 있어 축구란 소외이며 아편인 동시에 희망이며 자부심이다. 그래서 재소자팀이 온갖 비열한 불이익 조치와 방해공작들을 뛰어넘어 교도관팀을 물리쳤을 때 그 승리는 곧 삶의 역전이며 해방의 완성이 된다. 주연을 맡은 비니 존스는 원래 잉글랜드 프로리그를 주름잡던 스타급 축구선수 출신이어서 그 연기가 더없이 사실적이다. 제작을 맡은 가이 리치의 영향 때문인지 빠른 편집과 경쾌한 음악도 돋보인다. 그나저나 내일 있을 아르헨티나 전에서는 우리도 승리를 맛볼 수 있으면 좋으련만.

[한겨레] 2003년 6월 10일

이시연

2006.11.23 11:00
*.46.95.254
80년대 야구는 전두환 정권이 만든 정말 멋진 사탕이라면서 스포츠는 마약이라고 부르짖는 사람들이 있었죠.
폭압과 독재의 관심을 은근히 내돌리게 하는...저도 그 당시 청룡의 팬이었습니다. ㅋㅋ
하지만, 스포츠를 보다보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습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46 낯선 예술가들의 공포와 희열 + 1 file 심산 2006-07-10 3519
45 빙하에 묻힌 영원한 청춘 file 심산 2006-07-10 3046
44 강물의 지배에 순응하라 + 1 file 심산 2006-07-10 3051
43 너만의 바람을 찾아라 + 1 file 심산 2006-07-10 2995
42 기저귀가 아니라 미와시라니깐! file 심산 2006-07-10 3064
» 우리에게 축구는 무엇인가 + 1 file 심산 2006-07-06 3095
40 볼링에 대한 화장실 유머 + 1 file 심산 2006-07-06 3397
39 적과 함께 자일을 묶다 file 심산 2006-07-06 3274
38 가슴 아픈 4쿼터 사랑 file 심산 2006-07-06 2914
37 스포츠영화의 기품있는 클래식 file 심산 2006-07-06 2946
36 폭주족들의 내면일기 file 심산 2006-07-04 2869
35 마이너리그의 웃음과 사랑 file 심산 2006-07-04 2762
34 권투로 표출된 흑인들의 절망 file 심산 2006-07-04 2963
33 게임의 법칙과 삶의 진실 file 심산 2006-07-04 2904
32 어느 삼류복서의 추억 + 2 file 심산 2006-06-30 3237
31 깊이의 유혹에 사로잡힌 영혼들 file 심산 2006-06-30 3022
30 승부가 다는 아니다 file 심산 2006-06-30 2736
29 우리들끼리도 즐거웠어 file 심산 2006-06-30 2868
28 너만의 스윙을 되찾아라 file 심산 2006-06-02 3246
27 낙오자들에게 재기의 기회를! + 2 file 심산 2006-06-02 28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