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심산 등록일: 2006-06-04 22:13:32 IP ADRESS: *.201.17.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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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카는 팔방미인을 미워해

어니스트 레먼(Ernest Lehman, 1920-    )

 

할리우드작가가 23년 동안 15편의 시나리오를 썼다면 놀랄 일이 못된다. 오히려 과작인 셈이다. 그러나 그 15편이 거의 모든 장르에 펼쳐져 있는데 각각의 장르마다 대표작으로 꼽힐만한 작품들로 이루어져 있다면 그것은 놀라운 일이다. 어니스트 레먼의 길지 않은 필모그래피를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한숨 섞인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거의 모든 작품들이 영화사에 등장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다양하되 옹골찬 작품세계를 일궈온 작가가 어니스트 레먼이다.

뉴욕 토박이인 어니스트 레먼은 브로드웨이를 출입하는 신문기자로서 생활하면서 틈틈히 단편소설들을 발표해왔는데, 이때의 취재경험을 밀도 높은 캐릭터 드라마로 완성시킨 것이 [성공의 달콤한 향기]이다. 출세를 위해서라면 언제라도 표변하는 다면적 인간 시드니 팔코(토니 커티스)에 대한 캐릭터 묘사가 대단히 뛰어나 많은 시나리오 작법서에서 ‘인물 중심의 시나리오(character-centered screenplay)'의 표본으로 거론되곤 하는 작품이다.

레먼의  데뷔작은 오늘날까지도 로맨틱 멜로의 대표작으로 꼽히며 끊임없이 리메이크되고 있는 [사브리나]. 다행히도 오드리 헵번과 험프리 보가트가 나왔던 오리지널판이 영어회화 연습용(!)으로 출시되어 있다. [상처 뿐인 영광]은 1950년대를 대표하는 청춘영화이자 주인공이 늘씬하게 얻어맞는 권투영화의 맏형과도 같은 작품인데, 빈민가 출신의 반항적인 복서 록키 그라지아노의 자서전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이 영화에서 처음으로 주연을 맡아 세계적인 청춘스타로 급부상한 폴 뉴먼의 반항적이고 격렬한 연기를 잊을 수 없다.

히치콕의 대표작이자 스릴러의 교과서라고 칭송 받는 작품이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 미스터리와 서스펜스의 황금분할이 과연 경탄할만하다. 농약살포용 경비행기 시퀀스와 러시모어산 암벽 위의 추적 시퀀스는 모든 영화교과서에 등장하는 필수과목이다. 히치콕의 유작([패밀리 플롯])과 자신의 은퇴작([블랙 선데이])을 모두 스릴러로 마감한 것을 보면 이 장르에 대한 레먼의 애정이 유난히 각별한 것 같다.

[img2]

뮤지컬 장르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사운드 오브 뮤직][왕과 나]의 시나리오를 쓴 작가도 레먼. 모두가 전세계적으로 천문학적인 흥행수입을 올렸던 작품들이다. 그러나 이 장르는 흥행에서 참패한 [헬로, 돌리!]를 끝으로 시들어간다. 호화캐스팅, 거대하면서도 정교한 세트, 엄청난 제작비, 무한정의 엑스트라 동원 등으로 특징지워지는 스튜디오 시스템이 한풀 꺾여지는데  이정표와도 같은 역할을 한 것이 [헬로, 돌리!]이다.

레먼이 제작자 겸업선언을 하며 만든 첫작품이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이다. 이 영화는 당시까지 만들어졌던 모든 메이저 영화들을 통틀어 가장 신성모독적이며 외설적인 작품으로 지목되어 격렬한 논쟁을 유발했다. 리처드 버튼과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서로의 상처를 할퀴는 부부로 출연하여 눈부신 연기를 보여준 이 작품은 미국 영화사상 최초로 쌍소리와 욕설을 여과없이 내보낸 작품으로 기록된다. 흥행결과? 대성공이었다. 뿐만 아니라 아카데미상에도 무려 12개 부문에 노미네이트(수상은 5개부문)되었을 정도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이처럼 시나리오의 거의 모든 장르에서 에이 플러스 학점을 받은 레먼에게도 상처는 있다. 그와 함께 작업했던 스태프들과 캐스트들은 잘도 타가는 오스카 트로피(모두 60회 노미네이트되었고 31회 수상했다)가 유독 그에게만은 거부반응을 보였던 것이다. 가장 잔인했던 것은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의 경우. 10개부문에 노미네이트되었는데 오직 레먼의 각색상만 빼고 9개부문에 오스카를 안겨줬으니 울화통이 안 터졌다면 오히려 비정상일 것이다. 아카데미가 그 보수적 기질상 팔방미인을 질시한다고 밖에는 달리 해석할 도리가 없다. 그런 맥락에서 보면 유일한 감독작품의 주인공으로 하필이면 시종일관 불평만을 늘어놓는 노인을 등장시킨 것도 예사롭지 않은 설정인 셈이다.  

[img3]

시나리오 필모그래피

1954년 빌리 와일더의 [사브리나](Sabrina)ⓥ★
1956년 월터 랭의 [왕과 나](The King and I)ⓥ             
          로버트 와이즈의 [상처 뿐인 영광](Somebody Up There Likes Me)
1957년 알렉산더 맥켄드릭의 [성공의 달콤한 향기](Sweet Smell of Success)
1959년 앨프리드 히치콕의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North by Northwest)ⓥ★
1961년 로버트 와이즈-제롬 로빈스의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West Side Story)ⓥ★
1965년 로버트 와이즈의 [사운드 오브 뮤직](The Sound of Music)ⓥ
1966년 마이크 니콜스의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Who's Afraid of Virginia Wolf?)★ 1969년 진 켈리의 [헬로, 돌리!](Hello, Dolly!)
1972년 어니스트 레먼의 [포트노이의 불평](Portnoy's Complaint)
1976년 앨프리드 히치콕의 <패밀리 플롯>(Family Plot)
1977년 존 프랑켄하이머의 <블랙 선데이>(Black Sunday)ⓥ

ⓥ는 비디오출시작 ★는 아카데미 각본(색)상 후보작

[씨네21] 2000년 8월 8일

백소영

2006.06.22 23:43
*.44.147.104
대단하네요.. 북북서에.. 열번봐도 질리지 않는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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