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심산 등록일: 2006-07-12 20:52:50 IP ADRESS: *.51.162.4

댓글

0

조회 수

3752



[img1]

뒤틀린 코미디의 썰렁 브라더스
스코트 알렉산더(Scott Alexander, 1963- ) & 래리 카라제프스키(Larry Karaszewski, 1961- )

에드 우드는 좀 모자라긴 하지만 나쁜 사람은 아니다. 아니, 나쁘기는커녕, 순수하기 그지없다. 그러나 그의 순수한 열정은 매번 사람들에게 괴로움을 선사한다. 사상 최악의 영화감독으로 꼽히는 에드 우드를 다룬 전기영화 [에드 우드]는 그래서 뒤틀린 코미디다. 대부분의 관객은 에드 우드가 만든 영화들을 보면서 분통을 터뜨리거나 야유를 보냈지만, 소수의 컬트팬은 [에드 우드]를 보면서 배가 아프도록 웃지 않을 수 없다.

벌써 수년 전 일이고, 완벽한 우연이었지만, 나는 [에드 우드]와 [래리 플린트]를 같은 날 봤다는 사실을 또렷이 기억한다. 모처럼 일찍 귀가하던 날, 집 앞의 비디오숍에서 무심코 고른 두편의 영화가 깊은 인상을 남긴 것은, 얼핏 보아 전혀 다른 색깔인 것처럼 보이는 두 작품을 동일한 듀오작가들이 썼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그때 나는 내심 감탄했다. 어라, 이 친구들 좀 보게? 대단한 녀석들이 나타났군! 그러나 곰곰이 따져보면 [에드 우드]와 [래리 플린트] 사이에는 많은 공통점이 있다. 둘 다 실존인물의 삶을 다룬 전기영화의 형태를 띠고 있고, 건전한 상식(?)의 경계선 밖에서 놀고 있는 삐딱한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내세웠는데, 그를 묘사하는 데 옳고 그름이나 좋고 나쁨을 따지지 않는 대신, 시종일관 독특한 유머감각으로 캐릭터를 깊숙이 파고든다는 것이다.

[img2]

[에드 우드]와 [래리 플린트] 같은 인물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느냐는 온전히 관객의 몫이다. 이런 영화들을 좋아하는 관객 못지않게 싫어하는 관객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찌되었건 분명한 사실 하나는 [에드 우드]와 [래리 플린트]가 대단히 개성적인 작품이며, 독창적인 드라마투르기의 가능성을 내비쳤다는 것이다. “삐딱해도 좋으니 독창적인 작품을 써라!” 뒤틀린 코미디를 즐기는 신세대 듀오작가 스콧 알렉산더와 래리 카라제프스키는 그렇게 외친다. “왜냐고? 아무나 쓸 수 있는 작품만 쓰고 있다가는 언제 잘릴지 모르니까!”

알렉산더와 카라제프스키는 남캘리포니아대학(USC) 기숙사의 룸메이트 출신이다. 이들은 대학 재학 당시 함께 쓴 첫 번째 시나리오가 곧바로 할리우드에 팔려버린 행운의 사나이들이다. 그러나 그 시나리오는 끝끝내 영화화하지 못했다. 1년간의 계약 기간이 끝나자 그들은 집필실에서 쫓겨나 거리를 방황하게 된다. 그렇게 얼마간 실업자 생활을 하다가 유니버설에서 만들게 된 첫 번째 영화가 골칫덩어리 꼬마 하나 때문에 온 집안에 난리법석이 끊이지 않게 되는 코미디 [미운 일곱살]. 저예산영화치고는 꽤 히트한 덕에 아예 시리즈로 만들어지기도 했는데, 이들 듀오작가가 관계한 것은 제2편에 해당하는 [주니어는 문제아]까지다. 미리 경고해두는데 “꼬마가 등장하는 가족용 코미디로군” 하는 안일한(?) 생각으로 온 가족이 함께 봤다가는 큰코 다친다. 이 영화 속에서 꼬마가 저지르는 짓을 보면 [나홀로 집에]는 그야말로 애들 장난이다. 귀여운 꼬마가 아니라 끔찍한 악마처럼 보일 지경이니 과연 이런 영화도 코미디로 분류해야 할지 의문스럽다.

[에드 우드]와 [래리 플린트]로 쌓아올린 명성을 한순간에 날려버린 졸작이 [명탐정 디.씨.]. 썰렁하다고 밖에는 달리 표현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어찌되었건 괴팍한 상상력과 뒤틀린 유머만은 여전하다. [맨 온 더 문]은 어느 모로 보나 이들 듀오와 찰떡궁합을 이룬 작품. 짐 캐리를 주연으로 기용하여 가장 썰렁한 코미디언 혹은 코미디언 같지 않은 코미디언으로 유명했던 실존인물 앤디 카우프만을 다루고 있는데, 밀로스 포먼에게 베를린영화제 감독상을 안긴 작품이다. 국내에서도 수입했다는 소문이 있는데 너무 썰렁하다고 판단되었던지 개봉날짜가 잡히지 않고 있다.

시나리오는 물론이고 연출까지 함께한 [엉망진창]은 그야말로 엉망진창이었던지 최악의 비평을 받았다. 그래도 그들의 작품활동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부러움을 감출 수 없다. 자신들만의 개성을 끝까지 밀어붙이며 독창적인 필모그래피를 이어간다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 썰렁브러더스여, 끝까지 삐딱하라!

[img3]

시나리오 필모그래피

1990년 데니스 듀건의 [미운 일곱살](Problem Child) ⓥ
1991년 브라이언 레번트의 [주니어는 문제아](Problem Child 2) ⓥ
1994년 팀 버튼의 [에드 우드](Ed Wood) ⓥ
1996년 밀로스 포먼의 [래리 플린트](The People vs. Larry Flynt) ⓥ
1997년 밥 스파이어스의 [명탐정 디.씨.](That Darn Cat) ⓥ
1999년 밀로스 포먼의 [맨 온 더 문](Man on the Moon)
2000년 스콧 알렉산더 & 래리 카라제프스키의 [엉망진창](Screwed)

ⓥ는 비디오 출시작

[씨네21] 2000년 12월 26일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sort
46 시나리오의 3대 요소? 구조, 구조, 구조!/William Goldman(1931- ) + 6 file 심산 2006-09-05 6379
45 마음을 닫고 사는 보통사람들/Alvin Sargent(1952- ) file 심산 2006-07-27 4936
44 너무 일찍 성공한 작가/Scott Rosenberg(1964- ) file 심산 2006-09-02 4612
43 그대 안의 포르노그래피/Patricia Louisiana Knop(1947- ) file 심산 2006-08-29 4574
42 블랙리스트 작가의 멋진 복수극/Walter Bernstein(1919- ) file 심산 2006-08-29 4536
41 미국 남부의 정서와 풍광/Horton Foote(1916- ) file 심산 2006-07-25 4273
40 상처를 응시하는 불안한 눈동자/Paul Schrader(1946- ) file 심산 2006-07-12 4027
39 고칠 수 없을 때까지 고쳐쓴다/Bruce Joel Rubin(1943- ) file 심산 2006-09-02 3968
38 인간의 심연을 파고드는 스릴러/Ted Tally(1952- ) file 심산 2006-07-27 3964
37 흑백TV시절 안방극장의 단골손님/Daniel Taradash(1913-2003) file 심산 2006-08-29 3961
36 거친 사내의 아메리칸 드림/Joe Eszterhas(1944- ) file 심산 2006-09-02 3944
35 전세계의 감독들을 지휘하다/Jean Claude Carriere(1931- ) + 1 file 심산 2006-07-27 3931
34 아버지와의 섀도복싱/Nicholas Kazan(1946- ) file 심산 2006-07-27 3899
33 무성영화시대를 통과하여 살아남은 장인/Ben Hecht(1893-1964) file 심산 2006-07-25 3862
32 만화와 영화의 경계를 허물다/David Goyer(1968- ) file 심산 2006-07-25 3832
31 손맛을 신봉하는 정공법의 달인/Bo Goldman(1932- ) file 심산 2006-08-29 3761
» 뒤틀린 코미디의 썰렁 브라더스/Scott Alexander(1963- ) & Larry Karaszewski(1961- ) file 심산 2006-07-12 3752
29 담담히 지켜본 한 계급의 소멸/Ruth Prawer Jhabvala(1927- ) file 심산 2006-07-27 3745
28 고통과 냉소의 저술광/Frederic Raphael(1931- ) file 심산 2006-08-29 3639
27 개성 없다고? 기다려봐!/Eric Roth(1942- ) file 심산 2006-07-25 35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