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심산 등록일: 2006-06-29 01:40:11 IP ADRESS: *.110.114.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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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생 백전노장 임재영 조명기사부터 스물다섯살 터울의 1978년생 강동균 현장편집기사까지 현장영화인 스무명이 마음에 품었던 책을 꺼냈다. 경험과 연령차는 있지만 이들은 공히 장편영화 3편 이상을 작업한 각자의 분야에서 인정받는 노련한 기사급 스탭이다.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작업하고 있거나 오랜만에 휴식을 취하는 그들에게 책을 추천받고 자필 원고를 청탁했다. 그 결과 영화작업에 실용적으로 도움이 될 만한 전문도서에서 예술적 영감을 주는 화집이나 산문집까지 다양한 분야에 걸맞은 다양한 책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현장영화인 20인이 바쁜 시간을 쪼개어 직접 써내려간 추천사와 함께 그들이 오랫동안 탐독했던 책 스무권의 첫 페이지를 이제 넘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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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감으로 그려낸 인간의 얼굴

<존 버거의 글로 쓰는 사진> 존 버거 지음/ 김우룡 옮김/ 열화당 펴냄

류성희/ 미술감독

수전 손탁은 이렇게 존 버거를 치켜세웠다. “내가 보기에 오늘날의 작가들 중에서 존 버거에 견줄 만한 작가는 없다. 로렌스 이후로 양심의 명령에 따르는 책임감과 감각적인 세계에 대한 배려를 동시에 보여주는 데 존 버거만큼 성공한 작가는 없었다.” 이 시대의 가장 뛰어난 재능을 꼽을 때 그를 빼놓을 수 없다. 저명한 미술평론가이자 소설가, 에세이스트, 사진이론가, 좌파 정치 이론가 등 모든 분야에서 최상급의 역할을 보여준다. 그는 논쟁할 때 열정과 사나움을 가지고 분노할 수 있는 힘이 있지만 동시에 그의 글은 섬세하고 직관적이며 문장이 지닌 음악성은 울림을 남긴다.

<존 버거의 글로 쓰는 사진>이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에는 존 버거가 직·간접적으로 만난 사람들의 모습이 시각적인 문체로 그려져 있다. 작가는 그를 분석하지 않는다. 그렇다. 관찰하는 눈이 있을 뿐이다. 너무도 순수하고 성실한 관찰자의 시선으로 인물과 상황을 치밀하게 묘사하는 데 모든 시각적, 음악적, 후각적인 방법을 사용한다. 그래서 하나하나의 에피소드, 인물들을 대할 때마다 한장의 사진에서 얻는 감흥과 비슷한 무엇을 느끼게 된다. 그리하여 읽는 이가 각자 자신만의 한장의 흑백사진을 찍어내게 만든다. 때로 그것은 그들의 주름과 한숨, 조롱이 담긴 표정의 클로즈업일 때도 있고, 런던광장에서 병든 비둘기를 돌보고 있는 미국산 운동화를 신은 노숙자 여인의 풀숏이기도 하다. 읽는 이는 그 모습에 감춰진 비밀을 탐구하는 데 동참하게 된다. 그럼에도 그가 삶과 인간을 바라보는 시선이, 그의 근심어린 행복한 시선이 너무도 따뜻해서 종종 눈물이 난다. 마치 아직도 희망이 있다고 비밀스러운 제안을 하는 듯하다.

그가 묘사하는 인물들을 연민하고 사랑하고 안타까워하지만, 결코 직접적으로 그런 투로 얘기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의 모든 문장, 조화, 묘사 속에서 그 메시지를 읽을 수 있다. 진실을 갈구하는 젊은 관찰자의 열정, 그리고 세상의 숨겨진 구조를 파악해내려는 지식인의 예리함을 동시에 지닌 훌륭한 작가다. 그의 이런 시선과 방식을 진정 배우고 싶다.

 

비틀어 보기의 매력에 제대로 빠지다

<르네 마그리트> 수지 개블릭 지음/ 천수원 옮김/ 시공사 펴냄

신보경/ 미술감독

어릴 적 대가족의 품에서 자랐지만 유난히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았다. 그래서 항아리 아줌마가 나에게 걸어와 말을 건네거나 요술봉을 흔들면 방 안이 궁전으로 변한다는 등의 상상으로 많은 시간을 보냈다. 특히 요술쟁이로 분한 내가 골목 어귀에 앉아 즐기던 마법은 사람을 난쟁이로 만드는 일이었다. 한쪽 눈을 감고 손을 들어 감지 않은 눈 가까이로 당겨서 지나가는 사람의 발바닥 높이와 잘 맞추면 행인은 금세 난쟁이로 변했다. 같은 방법으로 돌멩이 위에 집을 얹거나 먹던 사과 위로 똥개 한 마리가 어슬렁거리게 했다. 이런 유치한 장난은 시간이 흘러 친구와 노는 즐거움을 알게 된 뒤에는 자연스레 잊혀졌다. 그런데 사춘기를 막 지날 무렵 미대를 다니던 언니의 책상 위에서 어릴 적 내가 즐기던 그 유치한 놀이를 그림으로 그려낸 책을 발견했다. 표지에는 르네 마그리트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이렇게 처음 만난 마그리트 화집은 장난 같은 그림투성이었다. 파이프를 그려놓고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고 말장난을 하거나 비슷한 스케치를 늘어놓고는 이름만 다르게 붙이는 등 그것은 엉성한 화집의 전형이었다. 다만 바다 위 허공에 떠 있는 커다란 바위성을 표현한 그림은 꽤 마음에 들었다. 그래도 고흐의 불꽃 같은 그림 옆에는 나란히 놓일 수도 없고 다시 펼쳐보지 않아도 될 책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마그리트와의 인연은 오래 지속됐다. 미대에 입학한 뒤 미술사 시간에 초현실주의를 강변하던 선생님이 보여준 슬라이드 화면에는 바로 그 유치한 그림이 떡하니 버티고 있었다. 여전히 마그리트의 그림은 나에게는 에곤 실러나 구스타프 클림트보다는 별반 매력없이 느껴졌다. 달라진 것은 예전보다는 훨씬 묘사력이 있다고 생각했을 따름이다. 그 묘사력을 왜 저렇게 쓸까 하는 아쉬움과 함께 말이다. 하지만 예전보다는 가까운 자리에 마그리트의 화집을 두고 심심할 때마다 펼쳐보게 됐다. 몇년 뒤 르네 마그리트를 다시 떠올린 건 <매트릭스>를 보고 나서였다. <매트릭스>와 마그리트의 그림은 왠지 모르게 닮았다. <매트릭스>를 보며 느낀 현재와 실재성에 대한 화두는 내던졌던 마그리트의 화집을 진지하게 다시 집어들게 했다. 그리고 발칙한 비틀어 보기와 삶의 고정관념에 대한 무한한 반문을 제기하는 마그리트 그림의 매력에 나는 제대로 빠져들었다. 마치 오래된 친구와 사랑에 빠진 것처럼 지금은 그의 그림을 탐닉한다.

 

가슴을 찌르는 선배 프로듀서의 말씀

<만추, 이만희> 우리 영화를 위한 대화 모임 지음/ 커뮤니케이션북스 펴냄

이진숙/ 엔젤 언더그라운드 대표

영화감독과 프로듀서들이 영화제작 체험에 관하여 직접 쓴 책들에 관심이 많았다. 프랑수아 트뤼포, 로저 코먼, 로버트 로드리게즈, 시드니 루멧, 크리스틴 바숑 등이 직접 쓴 책들이 그것이다. 요즘은 거의 모든 DVD에 메이킹 비디오들이 수록되어 있어 이런 유의 책들을 대신하는 자료들이 많아졌지만, 프로젝트를 책임지는 이들이 제작현장과 비즈니스계에서의 체험에서 우러나온 고뇌에 찬 글들의 가치를 넘어서지는 못한다.

지난해 가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구하게 된 <만추, 이만희>는 이런 맥락에서 나를 사로잡았으며, 게다가 ‘앞으로 영화로 나의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져주었다. 물론 해답까지 주지는 않는다. 필름이 남아 있지 않아 한국 영화사에서 전설처럼 회자되는 이만희 감독의 <만추>를 문헌상으로 복원하는 의미에서 출간된 이 책은 제작자 호현찬, 촬영감독 서정민, 시나리오 작가 김지헌과 백결, 배우 신성일과 문정숙, 윤정희, 그리고 이만희 감독의 딸인 영화배우 이혜영 등의 인터뷰와 젊은 영화평론가들의 글로 구성되어 있다.

이 책은 이만희 감독에 관한 회고전적 책이라기보다 그 시대에 영화를 만들었던 제작자, 스탭, 배우들이 회상하며 함께 쓰는 제작일지 성격을 띠고 있다. ‘제작자 킬러’로 정평이 난 이만희 감독의 성깔과 실력을 존중하며, 가산을 탕진해가면서까지 만들어내고야 마는 제작자 호현찬 선생의 집념에 감동받게 되고, ‘대사가 없는 영화 한번 만들어보자’며 의기투합했던 시나리오 작가 김지헌 선생의 창의적 연대감에 감탄하게 된다. 실패한 가장이었지만 성공한 영화감독이었던 아버지를 재해석하는 배우 이혜영의 인터뷰도 묘한 감흥을 준다.

“저의 제작자로서의 신조는 두 가지인데, 하나는 내 영화는 실패하지 않는다이고 다른 하나는 영화가 좋으면 관객이 든다는 거죠”라는 호현찬 선생의 말씀이 비수가 되어 꽂힌다.

 

잊을 수 없는 캐릭터들의 향연

<대부> 완역본 마리오 푸조 지음/ 이은정 옮김/ 늘봄 펴냄

심산/ 시나리오작가

영화 <대부>를 극장에서 본 것은 아마도 중학생 시절이었던 것 같다. 당시에 그 영화를 속속들이 이해했다고 말한다면 새빨간 거짓말이 될 것이다. 그저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어른들의 세계’라는 것이 있고, 그곳에서는 매우 멋지면서도 무시무시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으리라는 느낌에 압도당했던 것 같다. 나이가 들어서 다시 본 <대부>는 전율할 만한 영화였다. 그것은 ‘비우호적인 진실’을 지그시 응시하는 영화였다. <대부>가 유행시킨 관용어를 그대로 차용한다면 ‘거절할 수 없는’ 작품이었던 것이다.

널리 알려져 있듯 이 영화는 마리오 푸조의 밀리언셀러를 각색한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과연 그 원작을 제대로 읽어본 적이 있던가? 내 기억 속의 소설 <대부>는 전부 날라리 번역 아니면 제멋대로 편집되고 윤색을 덧붙인 불량품들뿐이다. 지금도 나는 어느 유수한 출판사에서 펴낸 <대부2>라는 소설을 보유하고 있는데, 어이없게도 영화 <대부2>를 그저 ‘소설적 문체’로 바꾸어 얼기설기 엮어놓은 책이다. 이쯤 되면 ‘해적판’도 아니고 ‘해괴한 변종 창작품’이라고 해야 한다. 그러므로 최근에나마 길벗출판사에서 저작권자인 마리오 푸조의 유족과 정식계약을 맺고 펴낸 완역본 <대부>의 출간은 실로 경하할 만한 일이다.

완역본 <대부>는 내가 아마도 서른번 정도는 보았을 영화 <대부>의 관극 체험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주었다. 각색이 무엇인지를 알고 싶은가? 그렇다면 소설 <대부>를 탐독해보라. 캐릭터들의 백과사전을 가지고 싶은가? 그렇다면 소설 <대부>를 품에 안으라. <대부>는 서양 범죄학의 <삼국지>이며 잊을 수 없는 캐릭터들의 각축장이다. 나는 <대부>를 보면서 영화에 관한 모든 것을 배웠고 <대부>를 읽으면서 비로소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을 직시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알고 있는 가장 지독한 슬픔의 대사는 이것이다. “비즈니스는 비즈니스일 뿐이야.”

영화 소재의 보물 창고

<미궁에 빠진 세계사의 100대 음모론> 데이비드 사우스웰 저/ 이종인 역/ 이마고 펴냄

이원재/ 시나리오작가

혹시 <9시 뉴스> 도중 갑자기 나타나 “내 귀에 도청장치가 있다”라고 외친 남자가, 정부나 모 비밀단체에 의해 귀 속에 도청장치가 심어진 채 철저한 감시 속에서 살아온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해본 적은 없는지. 또 혹시 몸에 해롭지 않거나 혹은 보약이 될 수도 있는 담배가 이미 발명된 지 오래지만, 각종 금연 보조제 생산업체들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실용화하지 않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해본 적은 없는지. 지극히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말도 안 돼!’ 하고 치부해버릴 만한 이런 황당한 상상을 단 한번이라도 해본 적이 있다면, 이 책 <미궁에 빠진 세계사의 100대 음모론>을 권한다.

케네디 암살 사건이건, 프리메이슨의 실체건, 로스웰 외계인 해부실험이건, 음모론이라는 것이 주로 권력과 시스템에 대한 불신과 저항에서 태어나는 경우가 많고 세상을 다르게 바라보는 마이너의 목소리인 만큼 작가인 나에겐 매력적인 영화 소재의 보물 창고 역할을 톡톡히 해주고 있다. 게다가 이야기 발상의 시작이, 모든 것에 대한 ‘의문’에서 출발한다는 평범하지만 잊기 쉬운 진리를 늘 일깨워주기도 하니,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그것을 남에게 보여주는 일을 업으로 삼고자 하는 분들, 한번쯤 읽어봐도 손해는 아닐 듯싶다.

물론 100가지나 되는 음모론을 담고 있기에 진실을 향해 깊숙이 파고들지 못하고 머뭇대는 느낌이 있는데다가, 각 음모론에 대한 반대 의견과 반박 자료들까지 담고 있어 이 책을 읽고 ‘그래서 뭐가 진짜라고?’ 볼멘소리로 불평하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긴가민가 알쏭달쏭한 것이 음모론이지, ‘이건 사실이야!’ 확실하게 외칠 수 있으면 뭐 그런 걸 음모론이라고 말할 수 있나. 근 10년간 폭스 멀더가 뇌까렸던 것처럼 ‘진실은 저 너머에’ 있는 법이니까.

 

촬영감독들의 땀에 경배를 바치다

<영화 100년사를 빛낸 세계의 영화촬영감독> 데니스 쉐이퍼·래리 살바토 공저/ 이민주 옮김/ 책과길 펴냄

김우형/ 촬영감독

1995년 여름, 런던에서 영화유학 중이던 나는 학교 근처의 유명한 서점가에서 책 구경(!)을 하곤 했다. 없는 유학생 살림에 책이 너무 비싸 살 엄두를 내진 못하고, 필요한 부분만 보고 꽂아두기를 반복했으니 구경이라는 표현이 적당할 게다. 영화 코너에서 를 무심코 집어들었을 때에도 그냥 그렇게 구경 좀 하다가 다시 꽂아놓을 생각이었다. 나는 그 순간이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어떤 발견과 만남의 순간이었음을 그땐 미처 몰랐다. 아무 생각없이 몇줄 읽어나가는데 잠시 뒤 나는 이 책 속에서 거론되는 모든 것들과 마술처럼 교감하고 있었다. 그 모든 것들이 내 가슴속에서는 더이상 글로 적힌 단순한 이름들이 아니라, 잡힐 듯 가까이 있는 살아 있는 인물이었고 촬영이 진행되고 있는 생생한 영화의 현장이었다. 말 그대로 눈을 뗄 수가 없었던 것이다. 큰맘 먹고 책을 구입하여 반복해서 읽으면 읽을수록 모든 말들이 가슴을 쳤다. 그 당시 고민했던 온갖 것들- 영화는 예술인가? 영화학교에선 뭘 배워야 하나? 이 수많은 기술적 데이터들은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 촬영감독은 뭘하는 사람인가? 나는 촬영감독이 될 수 있을까? 된다면 뭘 어떻게 하여 영화를 만드는 것인가?- 에 대한 다양한 해답들이 책 속에 녹아 있었다. 그 뒤 나는 이 책을 저만의 ‘성경’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지방 촬영의 숙소에서 지치고 잠이 부족한 촬영부원들을 모아놓고 ‘몇 페이지 몇째 줄의 말씀’이라며 이 책을 읽어주기도 했다. 촬영부원들의 반응이 시큰둥해서 그 ‘전도’ 행위가 오래 지속되진 못했지만 나는 어떤 사명감(?)을 가지고 그 구절들을 읽어나갔다. 이 책은 골치 아픈 이론서적도 속 빈 기술서적도 아니며 화려하기만한 화보집도 아니다. 이 책은 끊임없이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그리고 그 끊임없는 노동이 이루어놓은 고도의 기술적 성취에 대한 경배이다.

한글 번역판이 <영화 100년사를 빛낸 세계의 영화촬영감독>이라는 제목으로 2000년 말에 나왔다. 이상한 것은 원서의 15명 촬영감독 중 8명만이 번역판에 실려 있다는 점이고, 참기 힘든 것은 거의 모든 페이지에 웃어넘길 수 없는 오역이 눈에 보인다는 점이다. 서글픈 일은 나의 ‘성경’ 봉독에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던 촬영부원이 그 번역판을 구입했다는 것이고, 그나마 다행인 것은 번역판이 얼마 전 절판되었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통하는 이유를 알려주는 책

<신화의 힘> 조셉 캠벨·빌 모이어스 대담/ 이윤기 역/ 이끌리오 펴냄

황기석/ 촬영감독

나는 수년 전 이 책을 DVD로 먼저 보았다. 드라마 구조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신화학에도 관심이 많았다. 토머스 불핀치의 그리스 신화집을 즐겨 읽었던 터라, DVD숍에서 우연히 발견한 영화 <신화의 힘>의 겉표지는 내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다. 표지에는 제목과 함께 붉은색으로 그리스 신화에 관한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영화 <신화의 힘>은 다큐멘터리 제작자로 유명한 빌 모이어스와 신화학자 조셉 캠벨의 좌담을 담고 있다. 캠벨은 우리가 재미로 읽어온 신화를 인간의 공통된 의식구조 안의 연결체로 설명한다. 동서를 막론하고 문화와 인종을 떠나 우리는 신화적인 드라마의 테두리 속에 산다. 종교적인 신화와 고대 신화, 그리고 도시신화(Urban Myth)에 이르기까지 인간은 공통된 의식구조를 갖는다는 것이다.

나는 가끔 언어가 통하지 않는 사람들과 일을 할 때 이렇게 이야기한다. “우리의 공통언어는 영어가 아니라 우정이다.” 아무리 말이 통하지 않는다 해도 사람은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공통적인 기반을 가졌기 때문이다. 문화의 차이가 극심한 오늘날 세계에서도 서로의 문화 콘텐츠를 공유할 수 있는 것 또한 인간이 내면적으로 “집단 무의식”을 가졌기 때문이라고 이 책은 설명한다. 단군신화라든가 예수, 석가모니, 그리고 수많은 창조 신화들이 유사한 부분을 갖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책에서 캠벨은 이런 예를 든다. 만약 두 사람이 벼랑 끝에 서 있는데 그중 한 사람이 균형을 잃어 벼랑으로 떨어지려고 하면 나머지 한 사람은 자신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사람일지라도 무의식중에 손을 뻗어 그를 구하려 한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모든 “무의식”은 문화와 지형에 따라 서로 연결된다. 내가 이 책을 권하는 이유는 드라마 구조를 단순한 기-승-전-결에 의존해 만드는 방식의 탈피를 원하기 때문이다. 드라마의 힘은 인위적인 짜임새에 있지 않다. 인간에게는 서로를 연결하는 혼이 잠재한다. 이 혼을 일깨웠을 때 만인이 공감하는 힘도 나온다. 인간 모두가 한 신화 속의 주인공이라 생각하면 우린 모두 어떤 모험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 모험을 일생이라 부르는 것이 아닐까.

 

빛의 비밀을 파헤친 거장들

<명화의 비밀: 호크니가 파헤친 거장들의 비법> 데이비드 호크니 지음/ 남경태 옮김/ 한길아트 펴냄

강성훈/ 조명감독

2년 전 여름의 끝자락이었다. <여선생 vs 여제자>를 끝내고 집에서 쉬고 있었다. 상업영화 한편을 끝낼 때마다 어떤 공허함이 생긴다. 거기서 벗어나려고 영화도 보고 책도 읽으려 하지만 쉬이 손에 잡히질 않는다. 그때 촬영하는 친구와 우연히 통화를 했다. “<명화의 비밀> 알아?” “응 알아. 얼마 전에 케이블에서 하는 걸 봤는데 재밌더라.” “아니, 책 말야.”

케이블 채널에서 봤던 비슷한 제목의 미스터리영화를 생각했지만 그것은 전혀 다른 미술 연구서였다. 바로 시내 서점에 들러서 거금 6만원을 주고 책을 구입했다. 난 원래 책이나 영화를 나눠 보는 편이 아니다. <명화의 비밀: 호크니가 파헤친 거장들의 비법>도 사자마자 그 자리에서 읽어버렸다. 처음 조명을 시작할 때는 막연히 ‘이 일을 하면 굶지 않고 영화를 할 수 있겠다’라고 생각했다. 나에게 조명은 곧 밥이었고 영화를 계속할 수 있는 수단이었다. 문제는 조명은 하면 할수록 더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나에게 조명은 어렵기보다는 이해하기엔 너무 넓은 세계였다. 다른 영화를 볼 때마다 방법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고 좋은 조명이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이 생겨났다. 그때부터 조명과 관련된 기술서들을 읽기 시작했다. 대부분 역서였던 그 책들은 렘브란트, 베르메르, 홀바인, 카라바초를 공통적으로 언급했다. 조명의 기본인 하이 콘트라스트, 로 콘트라스트의 텍스트로 그들의 그림은 되살아났다.

<명화의 비밀…>은 그들의 그림이 어떻게 그려졌는지를 알려주는 보고서다. 내가 읽어낸 결론은 빛이다. 그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세상의 빛을 고스란히 담아내는 데 주력했다. 어린 시절 시립도서관에서 문고판으로 간행된 작가별 화보집으로 그들의 그림을 본 적이 있다. 그때는 어떻게 저렇게 그렸을까 하고 의문을 가졌던 화가들의 그림이 조명의 기본이 된다는 사실을 새롭게 느꼈다. 그리고 그것은 세상에 원래 존재하던 빛의 존재를 살려낸 것임을 새삼 깨달았다. <명화의 비밀…>은 나에게 과거의 의문을 해소시킨 동시에 빛에 대한 사고를 다시 하게끔 만들었다. 적정한 광량과 시간이 그림을 생성하고 그 그림은 다시 시간이 흘러 사진을 창조하며 영화를 만들어낸다. 영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중반부에 베르메르가 카메라 옵스큐라로 작업하는 것처럼. 나에게 <명화의 비밀…>은 내가 보는 빛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를 처음부터 다시 생각하게 만든 책으로 남았다.

창조적 조명이란 무엇인가

<영화조명기술> 제럴드 밀러슨 저/ 집문당 펴냄

임재영/조명감독

영화조명은 다른 기술 파트에 비해 작업에 대한 일반화된 방법이나 절차를 쉽게 포착하기 어렵다. 그래서 대부분 개별 영화마다 백지상태로 시작하여 새로운 방식의 조명을 구상하는 경우가 많다. 똑같은 장면을 구성해도 누가 어떻게 조명을 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분위기의 수많은 이미지를 얻을 수 있다. 제럴드 밀러슨의 <영화조명기술>은 20년 전부터 곁에 두고 보는 책이다. 반복해서 읽을수록 새롭고 통독해서 이해할 수 있는 책이 아니라서 새로운 작품을 시작할 때마다 참고한다. 한두장씩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대부분 조명 관련 서적들이 장비의 기계적 특성이나 제원을 나열하거나 각종 데이터를 표로 소개하는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그러나 <영화조명기술>은 비교적 깊이있는 조명방법론을 다룬다. 오래된 책이기에 구식장비들이 소개된 부분은 다소 미흡한감이 있지만 책 중·후반부에 언급되는 ‘창조적 조명이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를 깊이있고 함축된 문장들로 다양한 예와 함께 소개하는 대목은 근래 출간된 어떤 책과 비교해도 탁월하다.

이를테면, “영상예술 창조에 있어서 조명감독이 맡고 있는 역할은 카메라 앞에 놓인 피사체와 이것이 변형되어서 스크린 위에 나타나는 영상간의 간격을 메우는 일이다. 따라서 조명기사는 경험을 통해서 성취할 수 있는, 풍부한 상상력의 기대치만큼 영상이 실현되게 만드는 정확히 계산된 변형능력을 지녀야 한다. 그렇게만 하면, 짓궂은 사람이 영상의 본래 대상이었던 별 볼일 없는 기재들이 어떤 것들이었나를 밝혀내려고 노력하더라도, 창조적 조명작업을 통한 마치 연금술과도 같이 신비스러운 최면술적인 감응은 남게 되는 것이다.” 조명의 초심자에게는 다소 모호하고 잘 와닿지 않는 부분이 많지만 개인적으로는 세월이 지난 지금 재독하며 새롭게 공감하는 내용이 많아서 후배들에게도 권하고 싶은 책이다. 이 책을 꾸준히 읽으면 현장에서 보고 배운 것들을 정리하거나 새로운 구상을 떠올릴 수 있다. 좋은 영화를 보면서 감각을 키우는 것도 방법이지만 초보자의 개론서라는 고정관념을 버리고 <영화조명기술>을 비판적으로 읽으면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갈무리하여 앞으로의 작업에 활용할 수 있는 밑거름으로 작용할 것이다.

 

능동적이고 창의적인 편집이란

<영상편집에 대한 조망> 윌터 머치 저/ 윤영묵 옮김/ 예니출판사 펴냄

강동균/ 현장편집기사

현장편집 기사는 매일 촬영을 마치면 그날의 촬영분량을 편집하게 마련이다. 언젠가 숙소에서 함께 편집 중이던 모 감독님께서 나에게 어떤 영화의 편집이 좋은 것 같냐고 물었다. 그때 그 감독님께서 말한 작품이 <지옥의 묵시록>이고, <영상편집에 대한 조망>의 저자는 바로 <지옥의 묵시록>과 <대부>를 편집한 월터 머치다. 저자가 현장에서 일하면서 중요하게 느꼈던 편집의 여러 조건과 노하우를 명료하고 현실적으로 설명하는 이 책에서 말하는 이상적인 편집의 조건은 모두 여섯 가지이다. 감정의 연결, 스토리의 자연스러운 연결, 리듬, 시선의 일치, 평면성, 그리고 공간적 연속성이다.

한때 나는 이 책에서 말한 여섯 가지 규칙을, 내가 편집할 영화 시나리오의 첫 페이지에 적어둘 정도였다. 그러나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그 여섯 가지의 조건이 아니라, 그것을 나열한 순서에 있다. 즉 연속성보다는 리듬이, 스토리의 연결보다는 감정의 연결이 중요하며 더욱 중요한 것을 위해서라면 다른 것을 희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어차피 관객은 인물의 감정을 따라가기 때문에 감정의 연결에 설득력이 있다면 나머지는 인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MTV식 영상을 보면서 자란 탓인지 이전까지 나는, 정말 잘한 편집은 현란한 리듬감을 지닌 뮤직비디오식 편집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어차피 영화는 관객이 판단하는 것이고, 관객은 영화가 지닌 어떤 울림이 자신의 감정을 자극할 때 만족감을 느낀다. 때로 현장편집 기사가 하는 일이 감독의 요구대로 자르고 붙이는 수동적인 일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해 현장편집 역시 능동적인 창의력을 발휘해서 매 순간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하는 일이 단지 찍은 대로 자르고 붙이고, 동작이나 시선, 소품의 연결 등을 보는 걸로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편집은 그 소스의 조악한 화질 때문인지 때때로 별것 아닌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위의 여섯 가지를 적절히 충족시키는 정말 좋은 편집은 소스의 기술적인 문제마저 깨닫지 못하도록 만들 수 있다.

 

영화를 복기하는 재미

<현대영화의 몽타주> 박지훈 지음/ 책과길 미디어 펴냄

문인대/ 편집감독

바둑에서 승부가 끝나면 처음부터 끝까지 바둑을 둔 순서를 기억해내면서 그대로 다시 두어보는데, 그것을 복기라 한다. 복기의 목적은 반성과 분석에 있다고 본다. <현대영화의 몽타주>는, 영화도 바둑처럼 복기하는 재미를 가질 수 있음을 일깨워주는 책이다. 이 책은 <잉글리쉬 페이션트> <라이언 일병 구하기> <트래픽> 등 60년대 후반부터 30년 동안 오스카 편집상을 수상한 작품들의 편집 포인트와 리듬 그리고 비약에 대한 논리적이고 체계적인 해설을 담고 있다. 편집에 관한 많은 책이 국내외에서 출판되었지만, 영화 한편의 편집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에 대해서 이처럼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는 책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일단은 편집을 업으로 삼고 있는 나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던 것은 물론이다. 간혹 편집에 너무 집중하다 보면 감성 또는 조그마한 의도에 빠져서 영화를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마다 이 책은 한편의 영화에 대해 객관적인 시선을 가지게 해준다. 그런 의미에서, 편집을 직업으로 하거나 공부하는 사람에게만 한정된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니라, 영화의 어떤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에게도 많은 도움을 줄 것이다. 때때로 일을 하다보면 누구나, 작업의 특정한 부분에 매몰되어 전체를 보지 못하는 경우가 흔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영화를 공부하는 사람은 물론 영화를 좀더 재밌게 보고자 하는 사람에게도 훌륭한 지침서가 되어준다. 책에 있는 30편의 영화에 대한 여러 가지 분석된 내용을 읽고나서 다시 영화를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아마 자신도 모르게 영화에 대한 또 다른 시각 하나를 가지게 되었음을 알게 될 것이다. 또한 번역서가 아닌 편집전문 서적을 찾아보기 힘든 현실에서, 국내 저자가 이런 책을 집필했다는 것은 매우 반갑다. 작은 바람을 가져본다면, 오스카상을 수상한 미국 작품이 아닌 우리나라 작품으로만 이루어진 또 한권의 <현대영화의 몽타주>가 이른 시일 내에 출판되었으면 한다는 것 정도이겠다.

 

만화가 알려주는 리듬의 비밀

<백귀야행> 이마 이치코/ 시공사 펴냄

신민경/ 편집감독

내가 태어나서 처음 접했고 기억에 남아 있는 책은 디즈니 만화를 동화책으로 각색한 것이었다. 알록달록한 그림이 어찌나 예뻤던지 아직도 기억이 난다. 당시에도 글자는 보이지 않고 방긋방긋 웃고 있는 데이지덕(도널드덕의 여자친구)만 눈에 들어왔다. 아마 그때부터 책과의 악연이 시작됐을 것이다. 어찌나 책을 싫어했던지 학창 시절 교과목을 공부하면서도 머릿속에선 ‘이거 누가 녹음해서 읽어줬으면’ 하고 매번 간절히 바랐다. 그런 내게 시나리오를 읽고 써야 했던 영화와의 만남은 글과 친숙해진 전환점이며 나의 두뇌를 숙성시켜준 김치냉장고였다.

편집 작업에 가장 많은 도움이 된 책을 꼽으라면 만화책 <백귀야행>을 택하겠다. <백귀야행>은 보통 사람들은 볼 수 없는 요괴의 존재를 볼 수 있는 소년과 요괴가 만나 벌이는 오싹하면서도 가슴이 따뜻해지는 이야기다. <백귀야행>의 장점은 세 가지다. 첫째, 식으로 말하자면 장르의 룰로 토마시를 이끌어냈다. 다시 말해 요괴 이야기라면 호러 장르라고 짐작하기 쉽지만, 이 만화는 코믹·스릴러·멜로·휴먼드라마·판타지 장르가 버무려져 있다. 장르의 경계가 없고 각 장르의 특성을 잘 살려 각각의 에피소드를 만들어낸다. <백귀야행>을 보노라면 여러 장르영화의 장점이 집약된 듯한 즐거움이 느껴진다. 둘째, 매력적인 캐릭터다. 주인공 소년과 요괴의 배경 설정이 명확하고 간결하다. 주인공의 주변부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들도 짧은 에피소드에도 불구하고 조연의 개성과 목적을 명쾌하게 드러내며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감정선을 선사한다. 셋째는 다른 좋은 만화에서도 볼 수 있듯이 만화라는 매체가 부여하는 컷의 개념에 대한 확립이다. 정지된 그림들의 나열에서 인물들의 감정 포인트와 움직임의 포인트를 무의식적으로 흡수할 수 있다. 이것은 영화의 스토리보드와 시나리오를 해석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나는 복잡한 이미지를 과도하게 매칭하기보다는 명료하며 초점이 분명한 목적의 기초를 충분히 다져주는 편집을 선호한다. 컷의 배치, 구성, 구축의 기본 이론은 모두 ‘장면’이 가지는 중추에 기원해서 차례차례 쌓아올리며 ‘장면에 리듬’을 부여하는 것이 내 편집의 기준이자 목표이다. 컷의 개수나 한컷의 지속 시간을 결정할 때 정보량보다는 리듬에 무게를 두는 것이 나의 편집 이론이라고나 할까? 만화책만이 가진 리듬의 재미를 가끔 느껴보는 것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우주와의 조우

<유년기의 끝> 아서 C. 클라크 저/ 정영목 역/ 시공사 펴냄

심보경/ 프로듀서

아서 C. 클라크가 쓴 몇편의 SF소설들은 수많은 할리우드 SF영화에 큰 영향을 끼쳤다. 작가가 상상하는 공간과 미래의 모습은 때로는 피폐하고, 때로는 너무도 따뜻하고 자연적이기까지 하다. 그중에서도 <유년기의 끝>은 SF소설의 고전으로 통한다.

이 책은 2050년 미국과 소련이 우주개발을 위해 서로 경쟁력을 키워나가고 있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미 2000년을 훌쩍 넘겨버렸지만, 소설을 처음 읽었던 10여년 전만 해도 2050년은 나에게 아득한 미래로만 느껴졌다. 그러나 소설 시작 부분에 작가가 묘사한 2050년의 모습에는 미-소간의 갈등과 전쟁 등 현실 세계를 염두에 둔 암시들이 진하게 배어 있다. 역사는 인간들의 실수와 오만에 의해 그대로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그때, 지구를 덮는 수많은 우주선이 도착한다(이 대목에서 작가가 보여주는 상상력은 정말 대단하다. 나는 완전히 압도되고 말았다). 하늘 위에 떠 있는 우주선, 그 안에 타고 있던 ‘오버로드’라는 초지성적 존재들에게 인간이 지배당하기 시작한다. 1년, 2년… 10년, 20년… 100년. 그 사이 인간들은 편견, 전쟁, 범죄에서 구원된다. 범죄를 일으키고 싶어하는 마음까지 초지성적 존재에게 감지되기 때문이다. 대신 오버로드들은 인간들 밑바닥에 자리한 허무와 자유에 대한 갈망을 이해하지 못한다. 이 책은 끊임없이 묻는다. 자유롭지만 끊임없는 고통과 불행 속에서 살 것인가? 혹은 획일화될 것인가?

<유년기의 끝>은 철학적이고, 문학적인 방식으로 인간들의 제2의 진화과정을 그려낸다. 이 책의 제목은 인간들의 역사가 시작되고 사라지는 것에 대한 은유다. 인간들의 삶이 지속돼온 차원과는 다른 차원의 공간으로 사라짐. 그것이 유년기의 끝이다. <유년기의 끝>은 실존과 상상에 관한 책이다. 그리고 우주에 관한, 그 우주 속에 살고 있는 또 다른 존재에 관한 책이다. 이 한권의 책 속에 담겨 있던 우주와의 조우를 결코 난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인생은, 영화 만들기는, 선택이다

<선택> 스펜서 존슨 지음/ 형선호 옮김/ 청림출판 펴냄

이유진/ 프로듀서

가끔 어떤 프로듀서가 좋은 프로듀서인가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말문이 막혔던 적이 있다. 스펜서 존슨의 <선택>을 읽고서 이제야 감히 좋은 프로듀서란 더 나은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영화감독이 한편의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하루에 100가지 이상의 선택과 결정을 해야 한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프로듀서는 투자·배급 환경 등 외적인 요소까지 포함해서 어쩌면 더 많은 선택과 결정을 내려야 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한편의 영화를 이끄는 선장의 역할이랄 수도 있는 프로듀서의 크고 작은 결정들은 촬영현장의 효율성은 물론 영화의 성공 여부에까지 영향을 끼치기도 하는 중요한 선택이다.

프리 프로덕션 단계에서는 어떤 투자자와 파트너십을 함께할 것인지, 무슨 수를 써서라도(?) 톱스타를 캐스팅할 것인지 아니면 모험적으로 신인을 기용할 것인지, 프로덕션 과정에서 작게는 오락가락하는 일기예보에 맞추어 촬영을 취소할 것인지 아니면 감행할 것인지까지. 크게는 영화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예산을 초과할 것인지, 초과한다면 어떻게 책임질 것인지, 아니면 예산에 맞추어 원하는 것을 포기해야 할 것인지까지. 수많은 선택의 기로에서 나는 과연 올바른 결정을 해왔던 것일까. <선택>은 결정의 원칙에 관한 책이며 바른 결정은 우리의 삶에서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더 나은 결정을 내리기 위해서 내게 정말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고 정보를 모아 선택의 폭을 넓히고 미리 충분히 생각하고 있는가? 결정을 내릴 때 내가 느끼는 것은 압박감인가, 편안함인가? 두려움인가 열정인가? 두려워하며 결정을 내렸을 때 실수를 범할 수 있으며 이미 익숙하고 편안한 것을 버리는 데는 용기가 필요하다. 하지만 그 용기는 더 나은 결과를 약속해준다. 매 순간 올바른 결정을 내리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더 나은 결정을 내리는 프로듀서가 되기 위해 <선택>의 ‘예스/노 시스템’을 메모하고 실천해보려고 한다.

 

궁중사극을 준비하는 사람들의 필독서

<조선조 궁중 풍속 연구> 김용숙 지음/ 일지사 펴냄

한필남/ 특수분장

<조선조 궁중 복식사 연구>는 10년 전 근무했던 방송국에서 대하드라마를 준비하기 위해 자료조사를 하다가 발견했다. 처음에는 수발이나 화장법을 찾기 위해 참고로 봤지만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재미있고 다양한 내용과 표현에 감탄하며 점점 빠져들었다. 무엇보다 우리가 기존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 자주 접하기 때문에 쉽게 짐작할 수 있는 왕의 생활, 즉 조정대신들과 국정을 논하고 신하에게 명령하는 알려진 모습을 넘어서서 왕의 개인적인 생활과 특별한 기본 업무나 항상 동행하는 사람들과의 비하인드 스토리까지도 <조선조 궁중 복식사 연구>는 풍성하게 담아내고 있다. 의생활, 식생활, 성생활, 생리적 모습마저도 포괄하는 이 책의 장점은 추론에 의한 논리 전개가 아닌 우리나라 마지막 상궁들의 실제 증언을 빌려 사실적으로 서술했다는 것이다. 주로 복식을 중심으로 논하는 <조선조 궁중 복식사 연구>는 고증에 입각한 궁궐에서의 다양한 머리 모양이나 화장법에 관한 다양한 양식들을 제대로 예측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우리가 흔히 보고 알던 고정된 복식이나 수발 및 화장법 스타일에서 고증에 벗어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다양한 변화를 시도하고 추구하는 것이 사극을 표현할 때 매우 중요한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말하자면 역사적 사실에 입각하면서도 새로운 시도를 가능케 하는 도전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어떤 특정한 의식이나 상황을 기계적으로 보여주는 작업을 뛰어넘어 리얼한 당대의 생활상을 표현해야 하는 영화작업이다. 따라서 책이나 자료에 정리돼 있지 않은 상황까지 상상하고 예측해서 만들어내야 하기 때문에, 사극에는 더 많은 공부와 검토가 필요하고 종국에는 현실적으로 재현할 수 있어야 한다. 이처럼 사극이나 시대물의 분장은 상상력과 고증이 공존해야 하는 분야다. 그런 면에서 분장을 하는 내 입장에서는 <조선조 궁중 복식사 연구>의 심층적인 표현과 묘사는 많은 공부와 동시에 자극이 됐다. 사극은 무엇보다 특정한 일부만 파악해서는 전체를 표현하는 데 위험하고 어려운 요소가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따라서 궁중사극을 준비하는 영화인이라면 <조선조 궁중 복식사 연구>를 미리 읽어본다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1989년, 청회색 청춘의 동반자

<짧은 여행의 기록> 기형도/ 살림출판사

은희수/ 현장녹음기사

1989년 나에게는 태양서점이란 낙원이 있었다. 이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나는 일정한 시각에만 들르던 드문 손님들과 비좁은 공간에 한없이 쌓여 있는 책들을 보며 포만감을 느꼈다. 아침에 출근하고 청소를 할 때마다 콧노래가 절로 났다. 재수생이던 나는 아르바이트와 함께 사민청(사회민주주의청년연맹) 산하 정치학교를 다니고 사회과학 서적을 탐독하며 우울한 20대의 시작을 맞이하고 있었다. 방송 말미에는 항상 시를 읊어주던 는 그렇게 편중됐던 독서에 균열을 일으켰다. 어느 날 라디오로 처음 기형도의 시 <전문가>를 들었다. <전문가>는 지금도 내가 유일하게 외우는 시다. 다음날 서점에서 <입 속의 검은 잎>이란 유고 시집을 찾아내고 앉은 자리에서 끝까지 읽었다. 수많은 이를 존경했던 그 시절, 내가 늦은밤 술에 취해 길을 걸을 때 나를 지배했던 사람은 기형도였다. 가장 진지했고 혼자였던 그 시간은 언제나 그와 함께였다. 1990년 그의 유고 산문집 <짧은 여행의 기록>이 발간됐다. 책장이 헤지도록 읽었던 <짧은 여행의 기록>은 이등병 첫 휴가를 마치고 복귀하던 날에도 내 품에 있었다.

입대 직전 나는 <짧은 여행의 기록>처럼 홀로 여행을 떠났다. 망월동에 도착한 늦은 오후였다. 그곳에서 나는 그가 가졌던 양심의 우울을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날 내가 느낀 그의 얼굴은 시대의 우울함이었다. 그의 글에는 언제나 특별한 용기는 보이지 않았지만 슬픈 내면의 초상이 드리워져 있었다. <짧은 여행의 기록>은 지난날 그렇게 무력했던 나를 위로해준 친구였다. 기형도의 문학적 성취를 나는 알지 못한다. 나는 그저 그의 책과 삶과 죽음을 동일선상에서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 1989년 그는 극적으로 생을 마감했고 그 시기에는 모든 것이 마지막으로 타오르던 시기였다. 많은 사람들이 구호를 외치며 죽어갔고 치열한 열정은 갈 곳 없이 꿈틀거렸다.

지금도 레코더 앞에 앉아 혼자서 촬영현장의 소리를 듣노라면 그가 떠오른다. 붐마이크가 하나하나 소리를 잡아내듯이 정처없이 발걸음을 내딛으며 그는 원고지의 빈칸들을 머릿속으로 채웠을 것이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면서 책만 읽던 그 시절에도, 행복하게 현장에서 녹음 일을 하는 지금도 기형도와 <짧은 여행의 기록>은 홀로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나와 함께하고 있다.

테크놀로지에 대한 근본적 질문제기

<하이테크네-포스트휴먼 시대의 예술/디자인/테크놀로지> R. L. 러츠키 지음/ 김상민·윤원화 외 옮김/ 시공사 펴냄

<하이테크네-포스트휴먼 시대의 예술/디자인/테크놀로지>는 모더니티의 시작부터 현대의 테크노-문화에 이르는 테크놀로지, 예술, 문화의 관계 변환을 고찰함으로써 ‘테크놀로지란 무엇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하는 책이다. <이론을 위한 전략-마르크스에서 마돈나까지>를 공동 편집했던 R. L. 러츠키 캘리포니아주립대 교수는 프리츠 랑의 영화와 옥타비아 버틀러의 과학소설, 토머스 에디슨의 발명품과 일본 아니메, 구성주의와 사이버스페이스를 전방위적으로 아우르며 새로운 하이테크네의 지형도를 흥미진진하게 그려내고 있다.

강기영(달파란)/ 영화음악

테크놀로지라는 단어 자체가 넘쳐나는 지금. 우리는 어쩌면 테크놀로지라는 단어 자체를 오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내가 어린 시절에 상상했던 서기 2000년대는 지금의 2000년대와 같은 모습이었을까?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미래를 굳이 테크놀로지와 연관시키며 우리에게 그 많은 정보들을 던져주었던 것일까? 그건 어쩌면 단순히 흥미를 위해서였을까?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이었을까? 이토록 많은 궁금증이 있었던 나에게 R. L. 러츠키의 <하이테크네-포스트휴먼 시대의 예술/디자인/테크놀로지>는 조금이나마 어떤 단서를 전해주었다.

 

영상 미학 세계에 대한 친절한 안내서

<영상제작의 미학적 원리와 방법> 허버트 제틀 지음/ 박덕춘, 정우근 옮김/ 커뮤니케이션북스 펴냄

강종익/ 특수효과

1973년에 초판이 발행된 <영상제작의 미학적 원리와 방법>은 1999년에 두 번째 번역본이 출판되었으며, 다시 2002년에 2판에 비해 새로운 장을 만들고 디지털 시대에 맞춰 새로운 개념들이 추가되어 재출판되었다. 물론 그 지나온 세월 동안 ‘영상’이라는 분야가 엄청난 변화와 발전을 이루었고 영상을 만드는 기술 또한 다양해졌지만, 이 책은 우리가 영상제작에 앞서 이해해야만 하는 기본적인 다섯 가지 미학적 요소(빛, 공간, 시간, 동작 그리고 음향)가 어떻게 상호조화를 이루며 텔레비전과 영화에 적용되는지에 관해서 여전히 잘 설명하고 있다. 또한 각 미학적 요소들의 세부적인 구성 요소들을 사진이나 일러스트, 그림 등을 예로 들며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고 있어 처음 영상을 접하는 사람들에 대한 배려도 돋보인다.

<영상제작의 미학적 원리와 방법>은 보는 이가 가시적인 메시지의 이면에 존재하는 영상의 의미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영상미학의 원칙을 제시하고 다양한 텔레비전과 영화 장르를 경험하고 판단하게 해준다. 또한 이 책은 텔레비전, 컴퓨터, 그리고 영화 영상의 효과적인 표현을 위해 하나의 사건(event)을 명료화하고 강조하며 해석하는 방법을 보는 이에게 제시해준다. 다시 말해 ‘사람의 지각작용을 조절하기 위해 어떤 미학적인 요소들을 어떻게 적용시키는가’ 하는 것을 이 책을 접한 이들에게 말해주는 것이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이럴 때에는 이렇게 촬영해라’ 식의 단편적인 정보 전달이 아닌 좀더 체계적인 영상제작 기법이 필요한 부분에 대해 다양한 영상 이론을 바탕으로 실질적이고 응용적인 바탕을 제공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영상제작의 ‘기본’에 충실하면서도 우리 주위에서 흔히 접하고 상상할 수 있는 여러 예시들을 다양하게 보여주기 때문에 책을 읽는 사람들이 빠르고 즐겁게 이론을 이해할 수 있다. 또한 음향과 영상과의 결합에 관한 여러 정보들은 영상과 소리가 결코 뗄 수 없는 관계임을 새삼 확인해준다.

 

어느 광기어린 영화인의 초상

<올리버 스톤1, 2> 제임스 리어단 지음/ 이순호 옮김/ 컬처라인21 펴냄

한동성/ 예고편 제작

<올리버 스톤>은 정확히 말하자면 <내추럴 본 킬러>의 올리버 스톤이 있기까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저자 제임스 리어단은 <올리버 스톤>을 쓰기 위해 3년여에 걸쳐 올리버 스톤과 그의 가족, 주변 사람들과 수많은 인터뷰를 했다. 증권브로커 미국인 아버지와 프랑스인 어머니 사이에서 자라난 그가 겪는 문화적 혼란, 방황, 베트남 참전을 거쳐 현재에 이르는 이야기가 한편의 영화처럼 펼쳐진다. <올리버 스톤>은 기존 감독들의 평전과는 달리 객관적이고 냉정하게 인간 올리버 스톤과 영화감독 올리버 스톤을 파헤친다. 스티븐 스필버그나 구로사와 아키라를 비롯한 한 세대를 풍미한 감독들의 평전에는 대부분 상찬으로 가득하지만 <올리버 스톤>은 한 영화감독을 현미경처럼 해부하는 치밀함을 견지한다. 올리버 스톤은 모든 사람들을 위한 영화를 만들지 않는다. 무엇인가를 느낄 수 없는 영화를 그는 근본적으로 만들지 못한다. 느낌을 생생히 살리려는 그의 열망은 때때로 극단적이고 과도한 방법을 수반한다.

<스카페이스> 시나리오를 쓰기 위해 그는 실제로 코카인과 헤로인에 중독되어 많은 범죄자들과 어울리며 생생한 대사와 리얼한 상황을 얻어냈고 이를 여과없이 반영했다. 소재의 위험성 때문에 생명의 위협을 받기도 했다. 이 책의 제작 당시 에피소드를 읽는다면 그의 영화적 의지에 대해 존경심을 품게 될 것이다. 그의 논쟁적 작품들이 어떻게 발생했고 그것을 가능케 하는 예술적 광기와 동력의 원천이 무엇인가를 <올리버 스톤>은 보여준다. 마이클 더글러스는 <올리버 스톤>의 추천사를 이렇게 적었다. “올리버는 할리우드를 감동시키려고 영화를 만드는 것이 아니며 돈을 위해서는 더더욱 아니다. 세상에 영향을 주려고 예술을 하는 것도 물론 아니다. 그는 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즉 그 자신의 악마를 정복하지 많으면, 광기를 이겨내지 않으면 그리고 격발적인 성향과 대결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영화를 하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한국 영화인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특히 술자리에서 “흔히 할리우드이니까 가능한 이야기이다. 나도 거기서는 그렇게 할 수 있다”라고 쉽게 말하는 이들에게 <올리버 스톤>을 권하고 싶다. 한국에서도 못하는 일이라면 그곳에서는 더욱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올리버 스톤>을 읽어보면 실감할 것이다. 참고로 서점에서 <올리버 스톤>은 영화가 아닌 인문서적 인물 코너에서 만날 수 있다.

 

영화적인 사진이란?

필립 로르카 디 코르시아·피터 갈라시/ Museum of Modern Art 펴냄

필립 로르카 디 코르시아/ Twin Palms Publishers 펴냄

임훈/ 현장스틸기사

영화의 스틸을 찍는 것이 사진을 하는 사람으로서 창의력(혹은 더 거창하게 예술성)을 발휘하는 데 제한적 작업이 아니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어떤 의미에서는 그렇다고도 할 수 있지만, 같은 영화를 다른 사진가가 스틸을 찍는다면, 분명 서로 다른 결과물을 낼 것이라 생각한다. 영화의 스틸이더라도, 사진은 역시 피사체와의 교감이 중요하고, 상대(즉 극중 캐릭터)와 그의 인생을 대하고 받아들이는 마음은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찍어내는 인물과 그의 인생은 물론 가상의 것이지만, 진짜인 것만 같은 순간을 마주할 때는 배우가 아닌 극중 그 인물을 만난 것만 같아서 가슴이 설렌다.

필립 로르카 디 코르시아는 일반인을 모델로 ‘영화적’인 사진을 찍어온 작가로, 미리 선정된 일반인 모델이 포즈를 취하고, 임의로 거리를 지나는 행인들이 적절한 장면을 만들어내는 순간을 포착한다. 이런 식으로 그는 <할리우드> 연작 시리즈를 내놓았고, 나아가 세계 도시들의 거리 위에서 ‘거리 장면’(street scenes)들을 보여주었다. 영화의 스틸이 가상의 인물의 삶을 담는다면, 디 코르시아의 작품들은 거꾸로 현재를 살아가는 누군가의 실제 삶을 영화적으로 보여준다. 그의 작품들은 마치 각자의 인생을 살고 있는 우리 모두가 각자의 인생이란 영화의 주인공이라는, 누구나 인생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그런 흔한 말들을 시각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듯하다. 사진은 순간의 이미지이다. 좋은 사진은 대상의 그럴듯한 외형적 멋이 아니라 그 내면을 들여다보고, 그에 담긴 이야기까지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디 코르시아의 사진 안에서 배경과 자연스럽게 융화된 인물은 사전에 합의된 어느 정도의 연출에도 불구하고- 혹은 반대로 그러한 연출에 의해서 각자의 스토리를 가진다.

는 필립 로르카 디 코르시아의 대표적인 작품을 보여주는 사진집이다. 좋은 사진을 찍기 위해서는 많이 찍어보는 연습도 필요하지만, 좋은 작품을 많이 보는 훈련도 필요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피사체에 대한 이해와 설득력 있는 접근이 필요하다. 이런 의미에서 디 코르시아 작품은 하나의 모범과도 같은 사진이다. 수년 전에 본 그의 작품은 아직도 나에게는 큰 자극이고 영감이다.

 

 

 

profile

백동진

2006.06.29 14:49
*.233.80.9
저도 이 기사를 읽고 몇권 사서 읽었는데 정말 도움이 많이 되더군요....
profile

심산

2006.06.29 15:01
*.254.86.77
사실은 나도 저 위에서 읽은 책들이 몇 개 안된단다...^^

권귀옥

2006.09.07 17:43
*.216.6.140
르네마그리트... 완전 철학자...

홍주현

2006.10.31 16:34
*.73.43.160
저도 오늘 리스트를 뽑아 봤습니다. ^^;; 어서 사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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