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심산 등록일: 2006-06-22 22:52:28 IP ADRESS: *.146.254.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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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라, 그러면 써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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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실하지 않다, 라는 것은 커다란 문제이다. 저자가 책에서도 밝히고 있듯이 그 수많은 '언제 시나리오나 하나 써야지...' 하며 쓰지 않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절실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건 나역시 마찬가지이다. 딱히 시나리오를 쓰고 싶은 것은 아니지만, 아니 그래. 이렇게 말을 하게 된다는게 문제다. 그렇다면 딱히 달리 하고 싶은 일이 있느냐? 하면 그것도 또 아니니까. 이런 것이 바로 '절실하지 않음'의 대표적인 모습. 나는 무언가 창조적인 생산자가, 아니라면 적어도 땀흘려 노동하는 생물학적 생산자(? 이를테면 농부?)라도 되고 싶지만, 사실 언제나 무엇인가를 소비할 뿐이다. 이대로라면 평생동안 생산(?)하는 게 자식새끼(?) 하나 일런지도 모른다, 라고는 하지만 이대로라면 그것도 영 요원.

그래. 나는 과연 자본주의 사회에서 남들이 잔뜩 창조해놓은 무엇인가를 쌓아놓고 그저 낄낄대며 비웃거나 경탄하거나 씹어버리는 2차적이고 메타적인 소비자로만 살아가야 되겠는가. 방 구석에 가만히 엉덩이 붙이고 앉아서 가장 낮은 곳에서 모든 것을 내려다보며 턱수염이나 너저분하게 기르고 살아야겠는가, 그래서 쓰겠는가. 라는 생각에 절실함이 쪼오금 늘었다. 아니 사실 그것보다는 취업의 압박 때문에. 어느덧 나이는 먹어가고, 여기저기 큰소리 뻥뻥 쳐놓은 것은 있고, 이게 또 더이상 '에헤 그걸 믿었어? 그냥 해본 말이지...' 라고 웃으며 넘길 수 없는 나이가 되었고, 그렇다고 큰소리 뻥뻥을 멈출 수도 없고(다른게 없으므로)... 악순환. cut the crap. 그래서 결국 집어든 것이 이 책이다.

중학교 때 '비트'를 (사실 이런 말 하긴 좀 쪽팔리지만) 반복청취하고, 고등학교 때 이대 앞 한 영화관(지금은 없어졌다)에서 교복입고 친구랑(사내 자식이다) 둘이 태양은 없다 외 2편을 심야 상영으로 봤던 나로서는, 저자의 이름을 보고 책을 고르는 일이 그다지 거북스럽지 않았기 때문에. 사실 시나리오를 쓰고 싶다면, 시나리오 관련 서적을 뒤적이기 보다는 일단 써야한다. 그게 이치에 맞다. 책을 읽는다는 것과 쓴다는 것은 전혀 별개의 행위이기 때문이다. 동전의 양면처럼 뗄 수 없는 것이기도 하지만, 쓸 때는 써야하고, 볼 때는 봐야한다. 500이라는 숫자와 날아가는 학을 동시에 볼 수는 없는 것 처럼. 하지만 그 브루조아지 근성처럼 더러운 소비자의 근성이 남아있는 나로서는, 최선의 선택이라는 것이 고작 시나리오 책을 보는 일.

하지만 책은, 좋았다. 굉장히 도움이 된다(그럴 것 같다). 저자가 시나리오를 쓴 두 편의 영화와 마찬가지로 저자는 스스로가 쌈마이고, 쌈마이 답게 앗쌀하게 말한다. 돌려 말하거나, 있는 척 한다던가 하는 일 없이. 사이드 필드의 '시나리오란 무엇인가'에서 귀따갑게 들었던 3장 구조를 토대로 그 위에 드라마란, 갈등이란 무엇인가, 시간은 어떻게 쓸 것인가, 장면 전환은 어떻게 할 것인가 등등, 굉장히 현실적인 조언들을 끊임없이 해준다. 그리고 물론, '일단 써'라는 뼈아픈 충고도.

그래서 이 책을 다 읽은 나는 시나리오가 쓰고 싶어졌는가? 물론, 물론이다. 잠깐, 잠깐! 그 전에 같은 저자가 번역한 <시나리오 가이드>만 좀 읽어보고... 결국 이렇게. 저자는 에필로그에 이런 말을 써놓았다. "작가가 되고 싶다면 글을 써라". 그리스의 철학자가 한 말이란다. 문득 그런 말이 떠오른다. 배부른 돼지보다는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되겠다. 나는 아니. 나는 그냥 게으른 개가 되고 싶다. 그냥 누워서 뒤적뒤적 하면서, 언젠가 쓰겠지 뭐, 하는. 그래 뭐, 언젠간 쓰겠지. 멍. 다시 한번 말하지만 책은 좋다. 문제는, 나다.

[알라딘] 독자서평 2005년 4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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