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심산 등록일: 2006-03-13 19:05:52 IP ADRESS: *.215.22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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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영화는 다림의 편지를 보여주지 않았을까?  


흔히들 광고를 30초의 예술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영화는 ‘100분의 예술’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 같네요. 영화가 상영되는 두 시간 남짓의 시간 동안, 우리는 한 사람의 전생을 마주하기도 하고, 역사의 비극을 체험하기도 하며, 사랑과 이별의 감정에 눈물을 글썽이는가 하면,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판타지의 세계로 훌쩍 떠났다 돌아오기도 하니까요. 이 책 <한국형 시나리오 쓰기>는 이와 같은 ‘마법’을 가능케 하는 영화 시나리오의 법칙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저자가 설명하는 시나리오의 법칙 중 가장 흥미로운 대목은 바로 ‘속마음을 눈에 보이게 하라’라는 것인데요, 망설임과 당혹스러움, 체념과 포기, 어쩔 수 없는 선택 등과 같이 눈에 보이지 않는 감정들을 영화는 과연 어떻게 보여줄까요? 책에서 예로 드는 것은 바로 우리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의 한 장면입니다.

영화 속에서 다림(심은하)은 정원(한석규)을 향한 마음을 담아 편지를 한 통 씁니다. 그러고는 사진관 문틈 사이로 편지를 밀어넣다가 돌연 마음을 바꿔 넣었던 편지를 다시 빼려고 애쓰지요. 편지는 손톱 끝에서 안타깝게 밀리다가 결국엔 사진관 안쪽으로 툭 떨어지고 맙니다. 과감하게 고백하지도 못하지만 자신도 어쩌지 못하는 사랑의 감정. 영화는 편지의 내용을 전혀 보여주지 않고도 다림의 마음을 탁월하게 스크린에 옮겨놓고 있습니다.

편지를 받은 정원의 마음은 좀더 복잡합니다. 반가움과 기쁨, 따스함과 행복, 그러나 동시에 얼마 남지 않은 자신의 운명에 대한 원망과 난감함, 막막함…. 영화는 이 또한 구구절절 말로 풀어 설명하지 않습니다. 투명한 유리컵에 담긴 만년필과 거기서 빠져 나와 서서히 물 속에서 엷어져가는 파아란 잉크를 한동안 보여줄 따름이지요. 새로운 희망처럼 다가온 다림의 사랑이지만 그것을 붙잡기에는 너무나 부족한 시간, 결국은 외면할 수밖에 없는 정원의 감정을 영화는 단 하나의 장면으로 멋지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여러분의 마음을 울렸던 영화 속 명장면들은 어떤가요? 손꼽히는 명장면들 대부분이 아마 이 ‘내면의 외면화’ 법칙을 탁월하게 소화한 장면들이 아닐까 싶네요. 화면에는 무엇이 있었고, 여러분은 무엇을 보았나요? 영화의 마법은 바로 그 속에 있답니다.


<오지연 minol7s2@libro.co.kr >

[LIBRO] 2004-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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