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05-12-21 09:53:41 IP ADRESS: *.16.20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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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은 너무 힘이 셌다. 언론은 숨을 죽였다. 한때 그 둘이 손을 잡았다. 힘 있는 자는 입을 얻었고 입 가진 자는 돈을 얻었다. 점차 세상은 눈도 귀도 없는 세상으로 변해갔다. 거짓은 진실이 되고 있던 일은 없던 일로 바뀌어 버리는 세상이었다. 헌법을 유린하고 동족의 가슴에 총칼을 겨눈 자들이 그 세상을 지배했다.

그때, 새로운, 진정한 언론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이 꿈꾸었던 진정한 언론이란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자유로운 독립언론이었다. 그러나 그들에겐 힘도 돈도 없었다. 진실을 밝히는 일조차도 힘과 돈이 없으면 한낱 백일몽으로 치부될 수 밖에 없는 곳이 그때 ‘우리들’이 살던 세상이었다. 그들은 터무니없는 세상을 바꾸고 싶었다.

그들의 뜻을 가상히 여겨 선뜻 힘과 돈을 모아준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마치 헌금을 하듯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고 장롱 속의 아기 돌반지며 쌈짓돈을 톡톡 털어 생면부지 사람들에게 불쑥 내맡겼다. 그들이 바랐던 것은 어리석을 만큼 소박했다. 그들은 다른 세상에서 살고 싶었던 것이다. 그들은 세상을 바꾸고 싶었다.

멀쩡한 직장을 때려치우고 ‘어리석은 꿈’에 합류한 사람들이 있었다. 월급은 반으로 줄어들고 일은 두 배로 늘어나리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제 발로 찾아 온 정신 나간 사람들이었다. 촌지와 맞바꾼 자존심을 안주 삼아 밤새도록 술을 마시고 현실을 개탄하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언론과 세상이 본래 그럴 수 밖에 없다는 현실론에 결코 동의 할 수 없었다. 그들은 제대로 된 신문만 만들 수 있다면 세상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고 굳게 믿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세상을 바꾸고 싶었다.

이들이 만들어내는 신문을 한 부라도 더 팔아주기 위하여 안간힘을 쓴 사람들이 있었다. 누구는 광고를 맡았고 누구는 지국장을 맡았으며 누구는 독자가 됐다. 그들은 이 신문을 한 부라도 더 파는 것이 곧 이 나라의 민주화를 가늠하는 척도라도 되는 양 천지사방을 휘젓고 다니며 입선전에 열을 올렸다. 그렇게 해서라도 세상이 바뀐다면 언제라도 기꺼이 그 일을 계속할 사람들이었다. 그들도 세상을 바꾸고 싶었다.

한겨레를 만들고 지금까지 키워온 사람들은 그런 사람들이다. 그때 우리가 살고 있던 세상을 견딜 수 없었던 사람들.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믿었던 사람들. 펜이 총칼을 이기고 진실이 거짓을 응징하는 소박한 정의가 통용되는 세상에서 살고 싶었던 사람들. 그렇지 못한 세상을 기어코 뜯어 고치고 싶었던 사람들.

여기 한겨레의 10년 역사가 있다. 그 세월은 곧 세상을 바꾸고 싶었던 사람들의 역사이다. 그 세월 속에는 영광스런 승리의 기록과 상처투성이 패배의 기록과 숨기고 싶은 오욕의 기록이 마구 뒤엉켜 있다. 세상을 바꾸고 싶었던 사람이라면 그 누구라도 그리움과 자부심과 회한이 없이는 되돌아볼 수 없는 그때 ‘우리들’의 지나온 10년이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는 세월이다.

어떤 이는 이 기록 속에서 치기만만했던 청춘의 이상을 읽을 것이다. 어쩌면 이제 다시는 가슴 벅차게 부둥켜 안을 수 없는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와 결코 잊어서는 안 될 우리의 꿈을 새삼스럽게 상기하는 기회가 될 수 도 있다.

그러나 이 기록이 어떻게 읽히든 변하지 않는 사실은 하나뿐이다. 세상을 바꾸고 싶었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이 만들고 키워온 것이 한겨레이다. 이 책은 그들의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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